자본주의는 자본주의와 싸운다 (개정판 2 판)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와 싸운다 (개정판 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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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자본주의, 전쟁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야 할 국가
이 책의 원고를 마무리하는 2025년의 상황은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매우 엄중하다. 2월 초 취임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난 80년간 미국이 보여주었던 자비로운 패권국과는 매우 다른 얼굴의 미국을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 1기 때와도 다르다. 그 당시보다도 현재의 미국의 얼굴은 더 사납고 공격적이다. 약자는 물론 동맹의 입장에 대한 배려는 없다. 그리고 미·중 간의 경제 전쟁은 이제 본격화되었다.
국제정치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지금의 미국은 자유주의적이지만 그다지 민주주의적이지는 않다. 자신의 이익에 관한 한 극도로 이기적이다. 심지어 중상주의적 국가 자본주의의 면모도 있다. 주권상의 평등함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편에게 국력 상의 차이를 각인시키려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미국 없이 당신이 내놓을 카드는 더 이상 없다. 그는 “Without us, you don’t have any card!”라고 일갈했다. 더 이상 외교적인 미국은 없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지금까지의 대국 다운 미국의 모습이 더 예외적이었을지 모른다. 미국은 과거 소련 때문에 그리고 지금은 새로이 부상하는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동맹의 힘이 필요했고 그래서 자비로운 모습을 잠시 연출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런 미국의 태도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미국의 자본주의적 위기감과 동시에 국력회복의 자신감 때문이다. 트럼프는 심각한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을 유지하고, 기술 자본주의를 주도하고, 현재 정도의 군사력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적자는 ‘위대한 미국’의 존망을 가름할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AI 등 제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 2위인 중국을 훨씬 앞선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세계적으로 달러의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무역과 재정상의 적자를 감수해야 했다. 이처럼 지속적인 무역적자와 재정적자 상황이라면 달러의 가치가 약화되어야 마땅했다. 그럼에도 미국으로 집중되는 안전자산 선호효과와 2022년에 시작된 고금리 정책으로 인해 강달러 현상이 지속됐다. 그런데 달러의 강세는 미국상품의 수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자 트럼프 행정부는 1985년 플라자 협약처럼 주요 상대국들의 통화가치를 절상시키고 달러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하락시키려 했다. 아울러 이들에게 100년 만기 채권을 강매하려 한다는 설도 등장했다. 상대국이 무역흑자로 벌어들이는 달러를 미국채로 흡수하되 100년 후에 갚을 수 있다면 달러 유동성의 급격한 변동은 막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기적인 발상이다. 과거 제국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중국에 이어 미국마저 공격적인 자본주의로 돌아서자 21세기 들어 전 세계가 이제 전쟁을 의식하면서 살기 시작했다. 단순한 군사적 충돌은 큰 전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진정한 의미의 대전은 정치경제적 이유가 있어야 발발한다. 과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과의 냉전을 종식시킬 수 있었던 비결이 있었다. 그는 소련과의 대결을 군사적인 것에서 경제적인 것으로 전환시켰다. 막대한 규모의 군대와 무기와 핵을 가지고 있었던 소련은 미국에게 큰 위협이었지만, 근본적으로 공산주의는 자본주와의 체제경쟁에서 이길 수 없었다.
레이건이 소련을 상대로 건 전쟁은 군비경쟁armament race이었다. 군대를 유지하고 전쟁을 준비하는 비용을 마련하는 전쟁이었다. 단순히 전투능력의 넘어서는, 군사분야를 넘어서는 전쟁이었다. 소련 역시 미국에 버금가는 핵전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냉전에서 이길 수는 없었다. 공산주의 계획경제는 시장 자본주의와의 효율 경쟁을 벌일 수 없을 만큼 유능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구소련의 엘리트들도 잘 알고 있었다. 구소련의 마지막 지도자였던 고르바초프도 그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 간의 대립이 구소련과의 대립보다 더 위험할지 모른다. 큰 목소리로 공산혁명을 부르짖던 소련은 미국이 침공하지 않는 한 전쟁을 먼저 도발할 능력이 과연 있었을지 의문이다. 양 진영은 냉전적 대립의 긴장을 동맹을 관리하는데 이용했다. 그리고 동맹들은 이를 국내정치에 이용했다. 전쟁의 공포를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강화했고 국내정치의 안정을 도모했다.
과연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벌이게 될까 하는 의문을 많은 이들이 공유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이러한 상황은 하나의 가능성으로만 여겨졌다. 1978년 중국의 개방개혁 이후 양국은 경제적 밀월을 도모해 왔다.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 지식인들은 중국에서 경제적 번영이 일단 시작되면 일본, 한국, 대만처럼 서구적 근대화 과정이 자연스레 시작될 것이라고 믿었다. 시민계층이 생기고 자유주의가 확산하고 결국 서구적 민주주의가 전개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역사의 종언은 나타나지 않았다. 2000년 이상 유지해 온 중국만의 문명은 변화하지 않았다. 중국은 오히려 자본주의의 기원이 유교에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산당 국가가 주도하는 자신들만의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를 발전시켰다. 문명은 다시 충돌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시장 자본주의 대 국가 자본주의 간의 대립이라는 형태로 말이다.
본디 자본주의는 생존력과 파괴력이 강하다. 역사적으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경제적 기반이 되었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보여주는 미국의 모습은 어찌 보면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본래 모습과 가까울지도 모른다.
자본주의의 성장 욕구는 왕성하다. 20세기에 들어 자본주의의 괴수화를 막을 수 있던 것은 그나마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였다. 그러나 이제 민주주의도 그 능력의 한계를 보인지 오래 되었다. 오히려 자본주의의 힘에 의해 민주주의가 부식되고 있다. 민주주의만의 책임이 아니다. 슘페터의 예상과는 반대로 사회주의는 그 자체의 무능함으로 인해 결국 자본주의화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한 나라의 자본주의적 내부모순은 종종 전쟁이라는 결과물로 위기를 외부화시켰다. 그동안 자유 민주주의 이념에 입각한 국제기구와 제도의 존재로 인해 일국이 전쟁을 일으켜 타국을 침범하는 것은 규범적으로 금기시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깨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강대국들이 더 이상 전쟁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준 사례이다. 중국과 미국 모두 자본주의적 경제의 내적 문제들이 축적되고 있다. 이를 일거에 타개할 방법은 전쟁일 수 있다는 생각을 지도자들이 갖게 될 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런 위험한 생각은 전쟁의 비용을 대야 하는 큰 손들의 찬성을 유도할 명분을 제공할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해서 가스 파이프 라인의 운송권을 확보할 수 있다면, 동부지역의 희토류와 광물을 확보할 수 있다면 그리고 크림반도의 항구를 장악할 수 있다면 그래서 폴란드를 비롯 NATO 국가들을 공략할 수 있는 해상 길목을 차지할 수 있다면 전쟁은 수지가 맞는 프로젝트일 수 있다. 우리가 20세기 평화의 시대에는 잊고 있었지만 본래 전쟁은 이런 것이었다. 궁극적으로 대규모 정치경제적 비즈니스 프로젝트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길을 가야 할 것인가? 사실 이 질문은 우문이다. 이미 우리가 싫든 좋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있다. 냉전 체제하에서 자유 민주주의 그리고 시장 자본주의 진영에 편입되었고, 그리고 매우 성공적으로 그 길을 걸어왔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국가 중심이 아니라 개인 중심의 사회에 살고 있다. 심지어 우리의 다음 세대는 한국적이기보다는 서구적이다. 이제 과거로 되돌아가기는 불가능하다. 일부의 사람들이 이에 대해 비판을 제기하지만 사실 그들도 자유와 경제적 번영의 달콤함을 포기하지 못한다. 우리 모두가 세속적 가치를 포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제 우리에게 더 절실한 질문은 다가올 기술 자본주의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의 문제이다. 고장난 민주주의는 홀로 기술 자본주의를 견제할 힘이 없다. 민주주의가 더 고장나면 이 이념이 주장하던 평화론은 지켜지지 못할 것이다. 막연하게 민주주의에만 이 문제를 맡겨둘 수 없다. 민주주의의 이미지는 고상하다. 하지만 이를 도구삼아 생업을 해결하려는 사람의 숫자가 빠르게 늘어날까도 걱정이다.
민주주의라는 명분하에 분배 카르텔이 만성화되는 것을 젊은 세대는 거부할 것이다. 스스로 획득한 재산보다는 기본소득처럼 분배를 통해 얻어진 보조금을 선호하는 이들은 시민의 자격이 없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주체가 될 수도 없다. 시민의 감소 그리고 감성적이고 반엘리트적인 대중의 확산은 결국 민주주의를 더 망가뜨릴 것이다.
그래서 다시 국가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국가는 전제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통치를 일삼는 국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시장과 사회를 통제하는 국가 자본주의를 희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국가를 만들어야 하는가? 이 책을 마무리하는 나의 생각은 자유 민주주의적 국가 모델은 여전히 적실성이 있다는 점이다. 국가는 개인의 재산과 생명과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적 정치 체제여야 한다. 그리고 작으면서도 강해야 한다. 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발로 한 때 이 개념에 대해 반감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시민이나 대중의 참여를 확대한 민주주의가 대안을 제공해 줄 것이라고 믿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기술 자본주의의 도래를 목격하며 민주주의에게 더 이상 이 짐을 지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중세시대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는 민주적 공화 체제였다. 그러나 봉건시대 말기 농업 자본주의가 세를 일으키면서 근대국가의 태반이 형성되었고 이들 자치적 도시국가들은 15-16세기에 등장한 절대주의 국가들에 흡수되었다. 생각보다 민주주의 체제는 갑자기 붕괴되기 쉬운 정치 체제이다. 민주적 아테네도 군국적 스파르타에 의해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해 몰락하지 않았던가?
21세기 우리의 화두는 다시 국가이다. 어떤 이는 중국처럼 사회에 대한 통제력이 강한 국가에 대한 미련을 갖는다. 발전국가하에서 경제성장을 성취했던 기억을 회상한다. 그러나 비자유주의적 권위주의 국가의 역할은 거기까지이다. 시장이라는 제도를 건설하고 질서를 수립하는 역할까지가 최선이다. 통제적 정부나 국가가 성숙한 사회와 시장을 대상으로 간섭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
그렇다고 해서 자유방임적 시장주의를 신봉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방임적 시장 자본주의를 만들자는 것과 자유 민주주의적 국가를 만들자는 것은 결이 다르다. 시장 자본주의가 자유주의 국가를 만든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수립되자 시장 자본주의가 완성되었다. 애덤 스미스는 자본가들을 옹호하기 위해 국부론을 쓴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중상주의적 자본가들의 책임을 강조했다. 시장 자유방임의 논리를 퍼트린 것은 그것이 절실했던 국가이고 사회였다. 당시 영국의 제국주의적 팽창을 위해 그 논리가 필요하다고 그들이 느꼈던 것이다. 자유주의 국가를 통해 당시 영국사회는 의도적으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동의어로 만들었고 자기조절적 시장이라는 개념을 디자인했다.
국가는 사회의 창작물이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수레의 두 바퀴처럼 굴리는 것도, 반대로 둘이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것도 결국은 국가의 역할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국가를 조정하는 것은 사회다. 우리나라의 사회적 발전단계를 보면 자유주의가 적절하다. 그래서 자유 민주주의 가치와 규범을 잘 반영한 국가를 만드는 일, 바로 그 작업이 필요하다. 1987년 제6공화국 헌법을 쓰면서 본격화되었지만 아직 미완성인 채로 남아있는 그 작업 말이다.
단순히 어느 자본주의가 더 많은 돈을 벌어줄 것인가 하는 문제가 핵심이 아니다. 밀John Stuart Mill의 말처럼 만족스러운 바보가 되느니 불만족스러운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야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세울 수 있다. 자유가 세속적이고 물질 중심의 가치여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인간으로 남아 있기 위해서 자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쓰면서 내가 줄곧 가지고 있었던 고민은 시장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문제들을 더 이상 민주주의가 해결해 낼 수 없다면, 그리고 국가 자본주의가 시장 자본주의에 도전을 지속하고 있다면 그 해결방안이 무엇이겠는가 하는 점이었다. 답은 국가로 돌아가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를 잘 지켜줄 수 있는 자유 민주주의적 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이 국가는 사회 위에 군림하며 명령하는 존재가 아니라 개인과 사회의 요구를 수렴하여 실행하는 제도여야 한다.
21세기 자본주의의 중상주의적 국가 자본주의화는 평화를 위협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심지어 국가 자본주의와 시장 자본주의 간의 대립도 위험하다. 크고 작은 전쟁으로 비화하기 쉽다. 자유 민주주의와 비자유주의적 권위주의 간의 발전효율 논쟁은 무용하다. 권위주의를 정당화하려는 권력자들에게 명분만 제공할 뿐이다. 차라리 자유주의 틀 안에서 사회 민주주의와 자유 민주주의 간의 경쟁적 대립이 바람직하다. 이는 어떻게 시민 개인의 자유를 확대할 것인가를 두고 벌이는 대립이다. 그 방법에 따라 자본주의의 변형을 도모할 뿐이다. 자유 민주주의의 원형은 변하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의 확대를 위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본주의가 봉사하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시민의 재산, 생명 그리고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 자유주의 체제의 목적이다. 이를 만드는 일은 국가가 해야 한다.
2025년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고 난 이후 미국과 중국 간의 대립은 그 강도를 더 하고 있다. 미국은 관세 전쟁을 벌이며 중국은 물론 동맹국마저 당황스럽게 만들고 있다. 미국의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제조업 경쟁력의 상실이다. 1980년도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3%였지만 2021년 12.0%로 하락했다. 제조업이 만들어 내는 고용은 전체고용의 9.6%에 불과하다. 제조업보다 서비스 산업이 더 크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니 미국은 더 이상 제조업 국가가 아니다. 중국의 경우 제조업의 비중은 2021년 GDP의 27%를 차지했고 세계 제조업 GDP의 28.7%를 감당했다.
제조업 경쟁력의 상실로 인한 무역적자를 동맹국의 희생으로 보상받으려는 이기적인 정책은 결국 미국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킬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딜레마는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국제정치적인 문제에 노출된다. 미국의 심술에 화가나 중국의 편에 서야 할 것인가?
그러나 이 또한 정답은 아니다. 중국 편에 선다는 것은 자유주의를 포기한다는 것이고 과거 중화주의의 시대로 그리고 결국은 국가 자본주의 시대로 회귀하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아무리 부정해도 국제사회는 우리의 변신을 그렇게 볼 것이다.
사실 1945년 이후 우리는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의 강대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미국이라는 존재를 이용했다. 미국 및 자유주의 진영과 가까워지기 위해 미국식 자유주의를 도입했고 그 결과 정치경제적으로 양국 간의 호환성이 높아졌다.
우리의 다음 세대는 행태 면에서 서구적인 인간으로 변화했다. 우리 언어에서 한자가 물러나고 영어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우리는 서구적 세계인이 됨으로써 동북아의 소국적 지위에서 탈피하고자 했고 그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반면 북한과는 이 점에서 더 멀어졌다. 이제 남한과 북한은 같은 민족이지만 거의 다른 나라가 되었다. 이제 감성적 통일론은 지지를 받지 못한다.
미국의 자유주의가 오류를 범하더라도 여전히 지정학적으로 중국보다는 미국이 동맹인 것이 우리에게 유리할지 모른다. 특히 군사적 동맹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보다 먼 곳에 위치한 나라가 안보적으로 안전하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국제정치의 행위자로서 내재적 역량을 강화하여 국제적 위상을 높이려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세계의 구조적 변화가 우리에게 유리하게 변화했거나 또는 우리가 그 조류를 우리에게 유리하게 이용한 점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제 그 구조의 힘이 더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지정학이나 정치경제적 구조는 평화의 시기보다는 전쟁과 위기의 시기에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강대국은 군사력으로 자신의 주권적 지위를 정의할 수 있지만 그 외의 나라들은 그러한 접근에 한계가 있다. 중견국인 우리나라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군사적 역량을 갖추는 것 외에도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리고 민주주의적으로 탄탄하게 자리매김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경제, 문화, 정치적 기반 이념은 무엇일까?
자유 민주주의 국가화 전략 이외에 다른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자유주의 국가가 되어 우리도 식민지를 개척하고 제국주의를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강대국들이 자유주의를 앞세워 약소국들에게 상처를 입힌 역사를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강대국도 아니지만 설사 그러한 지위를 얻더라도 약소국들에게 몹쓸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유의 좋은 점도 알지만 그에 따르는 책임도 그리고 남용의 결과도 인지하고 있다.
우리의 저력은 자유 민주주의적인 중견국이라는 점에 근거해야 한다. 약자의 입장에서도 자유가 왜 좋은 것인지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자유를 명분으로 힘을 남용하려는 강대국에게 경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유가 어떻게 한 나라를 진정으로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이념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자유주의를 활성화한다는 것은 국내적으로 국가에 의한 보호와 기득권의 해제를 의미한다. 경쟁을 통해 우리 사회의 역량을 제고하는 것이다. 다수의 사람들에게 골고루 성공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자기조절적 시장이 ‘사탄의 맷돌’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방지할 수 있는 힘과 방법은 자유 민주주의적 사회와 국가가 충분히 가지고 있다. 이것은 짧은 기간에 자유를 흡수하면서 혹독한 시행착오를 경험한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아시아에서 가장 성숙한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가고 있다. 다른 나라들에게 자유와 민주라는 주제로 정치적인 영감을 주는 나라로 발전하고 있으며, 그 점에서 존중받고 있다. 자유와 인권을 사랑하는 한국인이 만든 상품과 문화가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한다. 1945년 이후 줄곧 우리는 바로 이런 현재를 맞이하고자 이 길을 향해 걸어왔다. 이 길을 포기하고 다른 선택을 할 이유가 없다. 국가주의와 전체주의는 이미 우리가 떠나온 이념이고 다시 돌아가고픈 정치적 기억도 아니다. 이제 미국 때문이 아니라 변화하는 우리 자신 때문에 자유주의의 내면화가 필요하다.
자유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한국이 국제적으로도 생존 가능성을 가장 높여준다. 세계인이 보기에 우리는 이미 매우 자유적이고 민주적인 대한민국이다. 자유와 평등의 동시적 달성을 위한 지혜와 노력이 절실하다.
저자

이연호

연세대학교정치외교학과교수이다.연세대학교와영국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정치학을공부했다.정치경제발전이론,국제개발협력론그리고EU통합론등을연구하고강의한다.「TheState,SocietyandBigBusinessinSouthKorea」(Routledge1997),「발전론」(연세대출판부2009),「불평등발전과민주주의」(박영사2013)등다수의학술저서와논문을출간했다.

목차

프롤로그 1

01전쟁과자본주의 31
1.1.19세기100년의평화 32
1.2.19세기자유주의와보수적국가중심주의 38
1.3.양차대전과독일식국가자본주의 45
1.4.자본주의대공산주의 52
1.5.신우파주의NewRight와세계화 60
1.6.자유주의의승리? 68
1.7.중국의부상과다가올전쟁 72
1.8.도널드트럼프의미국자본주의 77

02근대화이론과자본주의 95
2.1.봉건시대의자본주의 96
2.2.전쟁과근대사회 98
2.3.근대사회의가치변화와경제발전 104
2.4.근대화이념과식민주의그리고제국주의 107
2.5.고전적자유주의,민주주의그리고자본주의 110
2.6.자본주의의진화와전쟁 114
2.7.21세기의근대화이론 119

03산업자본주의와한국 123
3.1.유교자본주의는있는가? 124
3.2.냉전과한국자본주의의발전 129
3.3.냉전체제와박정희정권의역할 133
3.4.한국자본주의와국가 138
3.5.자유주의로의대전환:1987-1997 144
3.6.불평등발전과상대적박탈감 151
3.7.자유주의와민주주의의갈등 158

04기술자본주의와민주주의 163
4.1.기술자본주의대금융자본주의 164
4.2.블록체인이만들어낸비트코인 167
4.3.블록체인민주주의 172
4.4.IT빅테크플랫폼비즈니스 178
4.5.기술이촉진한대중민주주의 183
4.6.기술은어떻게자유민주주의와자본주의를위협하는가? 192
4.7.강한국가의부활 198

05자본주의전쟁:국가와시장중누가기술을더잘개발할수있는가? 205
5.1.국가자본주의의도전 206
5.2.일대일로一帶一路 210
5.3.중국의국가자본주의와빅테크 213
5.4.권위주의의기술자본주의적한계 216
5.5.자본주의와민주주의중어느것의문제인가? 222
5.6.미·중갈등:세력균형,세력전이그리고패권국가 231
5.7.BRICs의도전 242
5.8.자본주의의시장확대욕구 253
5.9.불가피한전쟁:나토NATO와유엔UN체제 259
5.10.어떤국가를만들어야하는가? 270

06기술자본주의시대의자유민주주의국가만들기 275
6.1.어떤자유민주주의인가? 276
6.2.사민주의적대안의평가 285
6.3.자유민주주의국가란무엇인가? 298
6.4.자유민주주의적인국가의조건 303

에필로그 355
참고문헌 367
미주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