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 이상 시선(큰글씨책) (반품불가)

초판 이상 시선(큰글씨책) (반품불가)

$32.10
Description
▶ 이 시리즈는 국내외 고전 작품을 정리한 책이다.
저자

이상

1910년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김해경, 본관은 강릉이다. 여덟 살 되던 해 신명학교에 입학하여 화가 구본웅과 만나 오랜 친구로 지냈다. 학창 시절, 미술에 관심이 많아 화가를 꿈꾸다가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했다. 학교 추천으로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발령받아 근무했다. 1930년,잡지 《조선》 국문판에 첫 작품이자 유일한 장편 소설 「십이월 십이 일」을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으로 연재했다. 1931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서양화 「자상」이 입선하고, 《조선과 건축》에 일본어로 쓴시 「이상한가역반응」 등 20여 편을 발표했다. 폐결핵으로 조선총독부 건축기사를 그만둔 후, 1933년 서울 종로1가에 다방 ‘제비’를 개업했다. 1934년 박태원, 정지용, 이태준 등의 도움으로 연작시 「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에 발표하고 ‘구인회’ 회원이 되었다. 1936년 구인회 동인지 《시와 소설》 창간호를 발간하고 단편 소설 「지주회시」, 「날개」를 발표하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1936년 가을, 일본 도쿄로 건너가 작품 활동을 하다가 1937년 2월에 ‘사상 혐의’로 일본 경찰에피검되어 조사를 받던 중 폐결핵이 악화되어 병원으로 옮겼으나 같은 해 4월, 스물여덟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목차

烏瞰圖 ······················3
詩第一號 ····················3
詩第二號 ····················5
詩第三號 ····················6
詩第四號 ····················7
詩第五號 ····················8
詩第六號 ···················9
詩第七號 ···················11
詩第八號 解剖 ·················13
詩第九號 銃口 ·················15
詩第十號 나비 ·················16
詩第十一號 ··················17
詩第十二號 ··················18
詩第十三號 ··················19
詩第十四號 ··················20
詩第十五號 ··················21


易斷 ······················23
火爐 ·····················23
아츰 ·····················24
家庭 ·····················25
易斷 ·····················26
行路 ·····················27
街外街傳 ····················28
明鏡 ······················32
異常한 可逆反應 ·················34
破片의景致 ···················36
∇의遊戱 ····················38
BOITEUX·BOITEUSE ··············40
空腹? ·····················42


建築無限六面角體 ················44
AU MAGASIN DE NOUVEAUTES ········44
熱河略圖 No.2 (未定稿) ············47
診斷 0 : 1 ···················48
二十二年 ···················49
出版法 ····················50
且8氏의出發 ··················53
대낮?어느 ESQUISSE ·············55
?나무 ·····················57
이런詩 ·····················58
거울 ······················59
·素·榮·爲·題· ··············61
紙碑 ······················63
紙碑 ······················64
破帖 ······················66


失樂園 ·····················71
少女 ·····················71
肉親의章 ···················73
失樂園 ····················75
面鏡 ·····················77
自畵像(習作) ·················80
月傷 ·····················81
?? ······················83
한個의밤 ····················85
肉親의章 ····················87
아침 ······················89
最後 ······················90
구두 ······················91
一九三一年(作品 第一番) ············95
?의 記 作品 第二番 ··············100
?血의 아침 ··················108


해설 ······················113
지은이에 대해 ··················125
엮은이에 대해 ··················130

출판사 서평

지식을만드는지식 ‘한국 근현대시 초판본 100종’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이상의 시는 다다이즘이라는 아방가르드적인 예술 정신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이상의 다다이즘은 단순히 호기심 차원에서 우연히 성립된 것이 아니다. 그의 다다이즘은 전위적 미학 운동인 입체파와 미래파적인 요소에 대한 선행 체험을 통해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입체파와 미래파에 대한 그의 체험은 보성고보 시절, 일본에 건너가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최초로 모더니즘적인 감각(조형 감각 혹은 조형적인 사고)을 배우고 돌아온 고희동이라는 미술 선생을 사사한 체험에서 비롯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고희동의 화풍이 입체파와 미래파의 특성을 보여 준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기존의 전래 기술의 답습이나 중국 회화의 모사로 일관하던 때에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시절의 이 모던한 체험은 그를 쉽사리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그가 백부의 반대로 미술 공부를 포기하고 고공으로 진학해 건축기사가 되었지만 이 모던한 체험의 강렬함은 무의식의 심층 저편에 온전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는 조선건축학회 기관지인 ≪조선(朝鮮)과 건축(建築)≫의 표지 도안 현상 공모에 1등과 3등으로 당선하고, 그 이듬해 화가로 공식적인 인정을 받는 총독부 주관의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해 다시 입선을 하기에 이른다. 이 모던한 것에 대한 욕망,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보다 래디컬하고 아방가르드적인 속성을 지닌 입체파와 미래파 예술에 대한 체험은 화가 구본웅과의 교류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기에 이른다.
고희동 사사나 구본웅과의 교류를 통해 성립된 것은 관념의 차원이 아니라 온몸의 차원에서 체험한 것들이다. 어떻게 보면 그의 시가 드러내는 입체파나 미래파 혹은 다다와 쉬르레알리슴으로 이어지는 아방가르드적인 흐름이 단발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갱신을 통해 그 의미를 확대 재생산할 수 있었던 것은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그런 실질적인 체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이상이 우리 문학사에서 ‘이상한 토양에서 이상하게 탄생한 이상한 존재’라고 해서 그 우연성과 우발성, 기이성만을 특화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무지의 소치인가를 말해 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서구의 전위적인 예술 사조를 표피적으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그 세계와 만나 또 다른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 그런 존재로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다다이즘적인 기획을 통해 이상이 체험한 것은 시와 그것의 토대인 언어에 대한 긴밀한 관계성이다. 언어에 대한 극도의 부정과 절망의 끝에서 그가 만난 것은 언어 자체가 세계를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는 사실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언어가 필요하다는 사실 바로 그것이다. 그는 언어에 대한 극도의 부정과 절망을 통해 철저한 부정과 파괴를 수행하는 다다의 기획이 잘못하면 시(예술) 자체를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 결과 그는 다다의 부정 정신을 살리면서 시(예술) 자체도 살릴 수 있는 길을 찾은 것이다. 즉 그는 언어에 대한 절대 부정과 절망에서 긍정과 희망의 통로를 마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