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유학생들의 사상적인 갈등.가난을 그린 희곡 <김영일 의사>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23년 생활고로 일본에서 귀국. 희곡<파사>를 <<개벽>>지에 발표했따. 1925년 카프에 가담해 이기영,한설야 등과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였따. 대표작<낙동강>은 계금사상 신봉자인 사회운동가 박성은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1928년 일제탄압을 피해 소련으로 망명. 한인촌 교사로 일하며 민족의 한을 노래한 <짓밟힌 고려>를 발표함. 일제의 간첩이란 누명으로 스탈린 정부에서 44세로 총살당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지 벌써 100년이 흘렀으며, 한국 근대 문학의 태동과 전개 역시도 10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근현대 문학의 정체성에 대한 많은 도전과 의문들 속에서 조명희 문학은 철저하게 배제되었거나, 너무 늦게 문학 연구자의 관심을 받게 되어 문학사적인 조명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조명희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나라인 소련으로 망명한 작가였다는 정치적인 점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며, 부차적으로는 ‘조명희를 조선의 작가로 볼 수 있는가?’라는 배타적 민족 문학의 시각도 담겨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명희는 한국 근대 문학의 형성과 KAPF 소설의 문학적 가치를 논의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도쿄 유학 시절에 결성한 ‘극예술협회’가 초연한 <김영일의 사>는 조명희가 쓴 연극 대본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희곡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소설가 고리키와 톨스토이에 경도되어 당대 현실을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서술해 낸 <낙동강>은 조명희를 대표하는 소설이자, 일제 식민지 현실 속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꿈꾸는 계급적이면서도 민족적인 현실 인식을 제대로 형상화해 낸 KAPF 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비한다면, 우리나라 세 번째 창작 시집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봄 잔듸밧 위에≫나 연해주 망명 전까지 썼던 사실주의 경향의 시들, 연해주로 정치 망명한 후 쓴 여러 산문시들과 동요시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문학사적 평가를 받은 것은 아니다. 물론 <짓밟힌 고려>와 같이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조선인이 민족적 정체성을 환기한 시에 대한 평가도 이루어졌지만, 문학성 그 자체보다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성과로 받아들여지는 면이 없지 않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민족적 경계를 넘어서는 디아스포라 문학을 상정한다면, 조명희는 근대 문학의 디아스포라 작가로 손꼽을 만하다. 식민지 조선에서 문학 청년기를 보내고, 도쿄 유학 시절에 서구 근대 문학을 본격적으로 접했으며, 다시 식민지 조선으로 돌아와 KAPF 문학 활동을 하다가, 소련으로 망명해 소비에트 조선 문학을 일으켜 세운 이력 속에서 경계에 선 디아스포라 경험이야말로 조명희 문학의 중요한 토대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명희는 근대 문학의 여러 장르를 아우르며 선구적인 문학 활동을 펼쳐 보이지만, 시만큼 작가의 디아스포라 이력을 잘 나타내는 문학 작품도 없을 것이다. 도쿄 유학 시절에 관념적 자연을 노래한 시, 식민지 조선으로 되돌아와 궁핍한 현실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경성의 삶을 형상화한 시, 망명 후 조선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꿈꾸며 노래하는 시 등 조명희 시들은 작가가 경험하는 탈경계적 삶의 궤적을 관통하며 울려 퍼지고 있다. 그 선율을 따라 조명희 문학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유랑해 보자.
초판 조명희 시선(큰글씨책) (반품불가)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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