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 시선

김시습 시선

$19.80
Description
김시습의 시 가운데 경주와 관련한 작품을 엮은 『김시습 시선』. 어려서 천재로 이름을 날렸지만 24세에 세상을 등지고 방랑한 김시습. 출가해 승려가 되었지만 뿌리 깊이 박힌 유교의 가르침을 버리지 못하고 자기모순으로 인한 방황과 고뇌 가운데 유독 그의 마음을 끈 곳이 있으니 바로 경주다. 이 책에서 550년 전 경주의 풍경과 그 속을 거니는 나그네와 이들 사이에서 빚어진 시경을 만날 수 있다.
저자

김시습

저자김시습(金時習,1435~1493)은1435년서울성균관북쪽에있는반궁리(泮宮里)에서태어났다.본관은강릉이다.친가외가모두대단한집안이아니었다.외가에서자라면서말을배울무렵부터외조부에게서글자를익히기시작했다.김시습은유년시절장안의화제였다.두살때“난간앞에꽃웃으나소리아니들리고,숲아래새울지만눈물보기어렵네(花笑檻前聲未聽,鳥啼林下淚難看)”구절을듣고는병풍의꽃과새를가리켰다거나,다섯살때자기를보러온정승허조(許稠,1369∼1439)를두고“고목에꽃이피니마음늙지않았다오(老木開花心不老)”라는시구를지었다는종류의이야기가여럿전해온다.소년의천재성은궁궐안에까지들려왔고,세종은그를불러시험하게했다고한다.하지만유년기의천재성과이로인한주변의칭찬은김시습의삶을불행한쪽으로몰아갔던것으로보인다.예나지금이나천재성은비정상성과통하고,유년기의능력은나이가들면서퇴색하기십상이며,그자질은건강하고행복한삶과비례하지않는다.김시습은내성적이며부끄럼이많았던것으로보인다.뒷날그는친지와이웃의넘치는칭찬때문에힘들었다고고백했다.과거엔실패했고집안은빈한했다.유년기의충만감은일순공허감으로뒤바뀌었다.15세에어머니를여의었다.오래도록치유되기어려운내상을입었다.아버지는곧재취했다.평생집에마음을붙이지못하고떠도는계기가되었다.18세즈음에혼인을했지만결혼생활은순탄하지않았다.이후계유정난(癸酉靖難,1453),단종의선위와세조의즉위(1455),단종복위운동의실패와사육신등의죽음(1456),단종의죽음(1457)등정치적격변이잇달아일어났다.여러문헌에는김시습이사육신의시신을수습해매장한것으로기록되어있다.1458년,24세의김시습은승려행색으로관서여행을떠났다.평생의방랑이시작된것이다.이후관동과호남을유람하고,서른살무렵에경주에안착한다.37세(1471)에경주생활을청산하고서울로이주했다.이듬해수락산동쪽에집을짓고평생을이곳에서살려고마음먹었다.수락산시절김시습은외부활동과교유를자제하고수행과학문에전념했던것으로보인다.<십현담요해(十玄談要解)>등의주요불교저술을지었다.이시기가장가까이지낸사람은남효온(1454∼1492)이었다.후대사람들은두사람을생육신으로묶어일컬었다.47세에는잠시환속해다시결혼하고부친의제사를지냈다.잠시공부와시작(詩作)의방향이유교로급격하게쏠렸다.하지만두번째결혼생활도오래가지못했다.수락산에터를잡은지만10년이되는1483년봄,49세의김시습은다시짐을꾸려길을떠났다.남효온이지은시에따르면,김시습은육경(六經)과역사서등을싣고관동의산수를돌아다니다가농토를얻어생계를꾸릴것이며다시는돌아오지않을작정이라고했다.이후10년그의발걸음은춘천,홍천,인제,양양,강릉등지를지났다.오봉산과오대산과설악산에머물렀다.바닷가에서한철을보내기도했다.그러는사이에늙어갔다.1493년,죽음을직감한코끼리가깊은동굴을찾아들듯이,이승을떠날때가된김시습은백제로향했다.무량사(無量寺),지금은부여군외산면에있는아늑하고포근하며부드러운절집에서그는평생방랑에지친영혼을안식한다.

목차

선방사터에서
흥륜사터에서2수
황룡사의큰불상을놀리다
연좌석을놀리다
영묘사부도에올라
월성에서옛일을떠올리다
포석정에서
오릉에서
경순왕사당
계림에서
천주사에서꽃을보다
안압지옛터
첨성대에게묻다
첨성대대신답하다
매화를찾아2
매화를찾아9
매화를찾아11
매화를찾아14
백률사다락에올라
공자사당
신라장수김유신의무덤에서
빈현루
옛성터에서
모그내
분황사무쟁비
동정에서달을보며벗과마주하다
분황사석탑
동천사에서사계화를보다
남정
봉덕사신종
불국사에서2수
김알지의무덤
선덕여왕의무덤에서
월성당에서
지금은인가가된사천왕사터에서
북천의김주원공집터에서
천룡사의옛사연
대로원에서옛일을떠올리다
비로자나대불을뵙다
동산령에올라바다를바라보다
용장사경실에서
매화를심다
황룡동
장미를심다
잣나무를심다
소나무를심다
죽순을위해울을치다
대가지치기
하얀꽃뱀
진사김진문에게
초사를읽고3수
상상주계정에게
설죽
차나무를기르며
송이버섯을따다
백률사계회에
달밤의옥피리소리
탑의돌과불상으로다리를놓은것을보고
병봉사에서매화를보다3수
양하
눈구경
북명사의모란꽃5수
그리운금오산
받은돈으로다책을사서금오산으로돌아가다
병들어초당에누워회포를적다
열흘몸져누운새가을이깊어세월을느끼며

해설
지은이에대해
옮긴이에대해

출판사 서평

어려서천재로이름을날렸지만24세에세상을등지고방랑한다.출가해승려가되었지만뿌리깊이박힌유교의가르침을버리지못한다.자기모순으로인한방황과고뇌가운데유독그의마음을끈곳이있으니바로경주다.김시습의시가운데경주와관련한작품을엮었다.시를읽으며외로운천재와함께천년고도경주를거닐어보는것은어떨까?

출판사책소개
‘명성은일찍부터컸지만하루아침에세상을도피했고,마음은유자(儒者)이면서행적은불자(佛子)이니시대에괴상하게보일것’으로생각해고의로미친짓을함으로써사실을엄폐하려했다.

1582년이이(李珥,1536∼1584)가선조의명을받아지은<김시습전>의한구절이다.심유적불(心儒迹佛)네글자에는김시습의숱한방황과깊은고뇌가모두담겨있다.이이는김시습의일생을자기모순과자아분열로간파한것이다.김시습은세상과화합하지못한,사회부적응자이자시대의이방인으로일컬어지는데,그근본원인은세계와마주하기이전스스로자아의분열을이겨내지못했기때문이다.
단종의죽음은여러해를두고일어난일련의사건들,수많은사람들의죽음으로속이흉흉하던김시습에게모종의결단을촉구했다.그는갑자기승려가되어여행을떠난다.이후김시습의삶은여행의연속이었다.“반생길위를집삼아보냈으니,만수천산이눈아래호사로워라(半生長以路爲家,萬水千山眼底?).”7년정도의여행끝에견문이많아지고지식은단단해졌지만몸은무척지쳤다.지친그를편안하게품어준곳이경주,즉신라였다.그는여기서7년의긴안식을가진다.
1583년간행된개주갑인자(改鑄甲寅字)본≪매월당집≫권12의<유금오록>에는106제146수의시가실려있다.금오산에거처를두고있던시절에지은작품들이다.
전체106제146수의시중에서,일부추정을포함하면경주에머물면서경주의풍물이나생활을읊은시는69제100수다.본서는이중63제76수를번역하고해설을붙인것이다.경주에서지은시는대부분포함하되연작시의경우일부만을실었다.1465년한양에서지은<금오산을그리며(憶故山)>(72)와<시주받은돈으로모두책을사서금오산으로돌아가다(所??財盡買圖書還故山)>(73)두수는당시김시습의금오산에대한애정을잘보여주고있어뽑아넣었다.경주시절김시습은폐허에서신라를거니는시간여행자였다.그는심신이지친몸으로경주를찾았고,경주의빈터와허물어진전각,기운탑과훼손된불상,그위에서려있는먼옛날의사연들이그황량한속을어루만져주었다.김시습은오랜만에심신의안식을찾았고,그따스한둥지에서≪금오신화≫가태어났다.경주를찾는이가이책을들면,550년전경주의풍경과그속을거니는나그네와이들사이에서빚어진시경(詩境)을만날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