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이처럼 사소한 것들

$14.03
저자

저자 : 클레어 키건 (Claire Keegan)

1968년 아일랜드 위클로에서 태어났다. 17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로욜라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정치학을 공부했다. 이어서 웨일스대학교에서 문예창작 석사 학위를 받아 학부생을 가르쳤고, 더블린트리니티칼리지에서 철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가디언》은 키건의 작품을 두고 “탄광 속의 다이아몬드처럼 희귀하고 진귀하다”라고 평한 바 있다. 이는 그가 24년간 활동하면서 단 4권의 책만을 냈는데 그 모든 작품들이 얇고 예리하고 우수하기 때문이다. 키건은 1999년 첫 단편집인 『남극(Antarctica)』으로 루니 아일랜드 문학상과 윌리엄 트레버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2007년 두 번째 작품 『푸른 들판을 걷다(Walk the Blue Fields)』를 출간해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출간된 가장 뛰어난 단편집에 수여하는 에지 힐상을 수상했다. 2009년 쓰인 『맡겨진 소녀』는 같은 해 데이비 번스 문학상을 수상했고 《타임스》에서 뽑은 ‘21세기 최고의 소설 50권’에 선정되었다. 최근작 『이처럼 사소한 것들』로 오웰상(소설 부문)을 수상하고, 2022년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자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거장의 반열에 오른 키건에게 미국을 넘어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이 책은 ‘역대 부커상 후보에 오른 가장 짧은 소설’로도 알려져 있다.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아일랜드 정부의 협조하에 가톨릭 수녀원이 운영하며 불법적인 잔혹 행위를 저질렀던 ‘막달레나 세탁소’를 배경으로, 자칫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선택 앞에서 고뇌하는 한 남자의 내면을 치밀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이 작품은 현재 아일랜드 배우 킬리언 머피가 직접 주연과 제작을 맡아 영화로 제작 중이다.



역자 : 홍한별

글을 읽고 쓰고 옮기면서 살려고 한다. 옮긴 책으로 『클라라와 태양』 『밀크맨』 『신경 좀 꺼줄래』 『도시를 걷는 여자들』 『깨어 있는 숲속의 공주』 『달빛 마신 소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등이 있다. 『밀크 맨』으로 제14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아무튼, 사전』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공저) 등이 있다.

목차

이처럼사소한것들_11
덧붙이는말_123
감사의글_125
옮긴이의글_127

출판사 서평

역대부커상후보중가장짧은소설
크리스마스마다반복해서꺼내읽을새로운고전의탄생!

“십여년만에마침내나온클레어키건의신작이고작100여쪽에불과한데실망하는사람도있을것이다.그러나안심하길.키건은단어하나낭비하지않는작가니까.”『맡겨진소녀』(104쪽)에이어11년뒤출간된『이처럼사소한것들』을소개하며영국의문화평론가베리피어스가남긴말이다.

키건은자국아일랜드를비롯한유럽에서이미거장의반열에오른작가였으나,다른대륙으로까지는그명성이채전해지지않았었다.그러나2021년『이처럼사소한것들』이출간되면서미국을비롯한세계의독자들에게,마치지나간시간들을벌충하려는듯한광적인흥분을일으켰다.그러한현상을더욱부추긴사건은이책이2022년부커상최종후보에등극한것이다.원서기준으로116쪽에불과한이책은‘역대부커상후보에오른가장짧은작품’이라는별칭을얻게되었다.

키건의소설에지배적인사조가있다면그것은,기꺼이드러내지않음과효율에대한집착이라할수있다.그는자신의작업을‘덜어내는작업’이라고일컬으며무엇보다간결함으로부터기쁨을느낀다고고백한다.초기작부터이어져온이러한성격은주인공빌펄롱의시선에서전개되는『이처럼사소한것들』에도드러나는데,이토록긴대화나너절한설명을피하는것은동시에소설속인물을위한작가의배려이기도하다.키건은등장인물이인정하길꺼리는감정들을작가가노출하는것이부적절하게느껴진다며이렇게덧붙인다.“훌륭한글쓰기란훌륭한예의에달려있다고믿는다.”

번역을맡은홍한별역자가설명하듯,클레어키건은무수한의미를압축해언어의표면안으로감추고말할듯말듯조심스레이야기하는작가이다.명시적으로말하지않고미묘하게암시하기에독자가두번,세번,아니그이상읽어야눈에들어오는것도있다.이책을추천한신형철,은유역시입을모아“읽자마자그자리에서다시한번더읽었다”라는후일담을밝힌바있다.

불운의출입구를지나본이는안다,
안락과몰락을가르는것은더없이연약한경계임을

1985년,나라전체가실업과빈곤에허덕이며혹독한겨울을지나고있는아일랜드의한소도시뉴로스.부유하진않아도먹고사는데부족함없이슬하에다섯딸을두고안정된결혼생활을꾸려가는석탄상인‘빌펄롱’의시선으로이야기가전개된다.뉴로스는서서히쇠락하는중이다.실업수당을받으려는사람들줄이점점길어지고,전기요금을내지못해가정집은너나없이냉골이라외투를입고자는사람도있다.펄롱은이스산한풍경을보며생각한다.세상에서가장쉬운일이모든걸잃는일인지도모르겠다고.

펄롱은빈곤하게태어나일찍이고아가되었으나어느친절한어른의후원아래경제적도움을받았고,그런본인이그저‘운’이좋았음을민감하게자각하는사람이다.가족을먹여살릴수있는직업이있고,딸들을좋은학교에보낼수있으며,따뜻한침대에누워다음날어떤일들을처리해야할지생각하면서하루를마무리할수있는특권을누리고있음을잘알고있다.그리고이안온한일상을언제든쉽게잃을수있다는사실까지도잊지않고살아간다.

크리스마스를앞둔어느날아침,펄롱은수녀원으로석탄배달을나가창고에서한여자아이를발견하고그곳에서벌어지는불법적인사건의정황을파악하게된다.스스로에게‘서로돕지않는다면삶에무슨의미가있나’하는질문을던지는데까지생각이이르지만,아내를비롯한그를둘러싼세계는평온하게가정을지키기위해서는무시할것들은무시해야한다고조언하며그를침묵하게끔한다.수녀원이절대적권력을행사하는마을에서안락한삶을누리던펄롱은위험이예견된용기를내야할지아니면딸들과가정을위해자신도침묵해야할지깊은고민에빠진다.그리고그위태로운갈림길앞에서불안과동시에어떤전율을느낀다.모든것을잃을수있는선택앞에움츠러든펄롱은마을에흐르는강을오래도록내려다본다.강물은자기가갈길을안다는것,너무나쉽게자기고집대로흘러드넓은바다로자유롭게간다는사실을부러워하며.

“우리가운데살아남을것은사랑이다.”
인간의품위에대한클레어키건의확언

정치적인글을예술로승화시킨작품에수여하는오웰상을수상한이책에는‘막달레나세탁소’사건이등장한다.소설초반에‘수녀원’이라는단어가나왔을때부터아일랜드독자들은이미숨겨진불길함을알아챘을것이다.막달레나세탁소는18세기부터20세기말까지아일랜드정부의협조하에가톨릭수녀원이운영했던시설로,당시‘성윤리에어긋난짓을저지른’여성들을교화시키고보호한다는명분으로설립된곳이다.하지만실제로는죄없는소녀들과여자들이그곳에감금된채폭행과성폭력,정서적학대속에서노역에시달렸고그들의아기들또한방치되거나죽임을당했다.무려70여년간자행되어온잔혹한인권유린에대해아일랜드정부는아무런사죄의뜻도표명하지않다가2013년이되어서야뒤늦은사과문을발표했다.

이러한배경을두고『이처럼사소한것들』은종종역사소설로비치곤했으나,작가는이소설이막달레나세탁소사건을주제로한작품이라는점에는완벽히동의하지않는다.

“이책은아버지와함께석탄을배달하러간소년이기숙학교의석탄창고에갇혀있는또래소년을발견하는이야기에서출발하였습니다.소년의아버지는그저문을잠그고아무말도하지않은채다음배달을계속했지요.어느순간부터저는석탄배달부의관점에사로잡히게되었고그에게집중했습니다.아버지인그가이사실을지닌채어떻게배달을마치고,하루를보내고,인생을살아갈지그리고그가여전히자신을좋은아버지라고여길수있는지탐구할필요를느꼈습니다.저는펄롱이라는남자가이소설이끝난후에도여전히자신을좋은아버지라고여길수있을지모르겠습니다.딸들에게제대로된교육을제공하지못할수도,사업을잃고가족을부양하지못할수도있기때문입니다.저는우리가어떻게대처하고,우리마음속에갇혀있는것을어떻게안고살아가는지에관심이있습니다.의도적으로여성혐오나가톨릭아일랜드,경제적어려움,부성또는보편적인것에대해글을쓰려고한것은아닙니다.하지만왜그렇게많은사람이,소녀와여성이수감되어강제로노동해야한다는사실을알면서도거의또는아무것도하지않았는지에대한질문에답하고싶었습니다.”
_클레어키건,2022년부커상인터뷰중에서

이렇듯소설은단순히어떠한사건자체에대한고발이아니다.종교나수녀원에시선을집중시키는대신주인공이삶에서느낀비참함이나감격의순간들에주목하는방식으로이야기를풀어나간다.사건은단지사회의문화나환경이한소시민의도덕성에어떤영향을주는지포착하기위한장치로서작용할뿐이고,그안에서개인의내면을뒤따라감으로써인간의실존적고민과삶의본질에대해이야기한다.

하지만드러내려고의도하지않았으나드러난것들이의미하는바도없지않다.유럽에서가장완고하다고여겨지는가톨릭국가인아일랜드,그리고아기예수의탄생을축하하는크리스마스가배경이라는점에서이야기의비극은강화된다.그러나그비극속에서쉽게절망하지않고,모두가즐거운크리스마스를보내고있을때문밖에서어떤일이벌어지고있는지관심을두는한사람에게서우리는인간의가능성에대한한줄기희망을찾는다.신형철평론가는이소설의끝에서“우리가이세계를포기할수없는이유하나를얻게된다”고이야기했고,키건역시이작품이“우리가운데살아남을것은사랑이다.”라는영국시인필립라킨의말에응답하는책이되길바란다고밝혔다.펄롱의사랑이어디서흘러와어디로흘러가는지를생각해보면“거대한휴머니즘을이작은책한권에압축해놓았다.(《파이낸셜타임스》)”라는말이결코과장이아님을알게될것이다.한개인의이야기에서시작된이소설이종국에는인간의품위에대한확언을대신해주기에이른다.

옮긴이의글

(...)여러주문과설명을담은저자의긴메일을이책번역을시작할때출판사를통해전달받았다.저자가번역에신경을쓰고세심하게도움을주려하는것이무척고마웠다.그런한편이짧은소설에서저자가말하고싶지만말하지않은것이얼마나많은지,드러내지않고암시하고자한부분이얼마나큰지알게되었고빙산의일각같은이글을과연어떻게옮겨야할지난감했다.이짧은소설은차라리시였고,언어의구조는눈결정처럼섬세했다.잘못건드리면무너지고녹아내릴것같았다.클레어키건은무수한의미를압축해언어의표면안으로감추고말할듯말듯조심스레이야기한다.명시적으로말하지않고미묘하게암시한다.두번읽어야알수있는것들,아니세번,네번읽었을때야눈에들어온것들도있었다.그렇지만번역을하기위해이책을무수히읽으면서내가알게된것을번역에설명하듯담지는않으려고애썼다.그랬다가는클레어키건이의도한대로삼가고억누름으로써깊은진동과은근한여운을남기는글이되지못할터였다.그래서독자들도이책은천천히,가능하다면두번읽었으면좋겠다.그러면얼핏보아서는보이지않는것들을볼수있을것이다.그랬으면좋겠다.
_홍한별번역가(‘옮긴이의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