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지대 (양장)

녹지대 (양장)

$26.25
Description
“삶에 고통이 없었다면, 문학을 껴안지 못했을 것이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가 한국 문학사에 남긴 또 다른 걸작
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아우르며 격변하는 시대 속 한민족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 대하소설 『토지』. 한국 문학사에 다시없을 걸작을 남긴 작가 박경리의 장편소설이 다산책방에서 새롭게 출간된다. 원전을 충실하게 살린 편집과 고전에 대한 선입견을 완벽하게 깨부수어줄 디자인으로 새 시대의 새 독자를 만날 준비를 마친 이번 작품은 『녹지대』이다. 이 소설에는 한국 전쟁이 끝나고 폐허와 상처가 가득했던 1960년대 서울의 명동 거리를 배경으로, 경제적 풍요를 누린 적도 없고 현실을 변혁할 능력도 없는 ‘한국의 비트족’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입체적이고 개성 있는 여성 주인공 하인애와 그를 둘러싼 여러 인물은 그 시대의 고독한 군상으로 각각의 인생에서 모두 우왕좌왕하고 있으나, 작가 박경리는 갈피를 못 잡는 이 전후 세대 캐릭터 모두를 단순화하지 않고 “진짜, 인간”으로 정성스럽게 빚어낸다. 각자의 청춘을 통과하며 자신의 내면과 조우하는 이들의 삶을 통해, 비극적 현대사와 가족사를 겪고도 치열한 생활 속에서 글을 써내려 간 서른여덟 살 작가 박경리의 흔적 또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박경리

저자:박경리(1926.12.2.∼2008.5.5.)
본명은박금이(朴今伊).1926년경남통영에서태어났다.1955년김동리의추천을받아단편「계산」으로등단,이후『표류도』(1959),『김약국의딸들』(1962),『시장과전장』(1964),『파시』(1964~1965)등사회와현실을꿰뚫어보는비판적시각이강한문제작을잇달아발표하면서문단의주목을받았다.
1969년9월부터대하소설『토지』의집필을시작했으며26년만인1994년8월15일에완성했다.『토지』는한말로부터식민지시대를꿰뚫으며민족사의변전을그리는한국문학의걸작으로,이소설을통해한국문학사에뚜렷한족적을남긴거장으로우뚝섰다.2003년장편소설『나비야청산가자』를《현대문학》에연재했으나건강상의이유로중단되며미완으로남았다.
그밖에『Q씨에게』『원주통신』『만리장성의나라』『꿈꾸는자가창조한다』『생명의아픔』『일본산고』등과시집『못떠나는배』『도시의고양이들』『우리들의시간』『버리고갈것만남아서참홀가분하다』등이있다.
1996년토지문화재단을설립해작가들을위한창작실을운영하며문학과예술의발전을위해힘썼다.현대문학신인상,한국여류문학상,월탄문학상,인촌상,호암예술상등을수상했고칠레정부로부터가브리엘라미스트랄문학기념메달을받았다.
2008년5월5일타계했다.대한민국정부는한국문학에기여한공로를기려금관문화훈장을추서했다.

목차

1.비오는거리
2.시화전
3.무너지지않는성
4.비는내린다
5.여름밤
6.비틀어진얼굴
7.강이보이는곳
8.여름은가고
9.뒷거리
10.서로이해못한채
11.동요
12.이상한그림자
13.의상
14.바람따라간사람
15.종장

작품해설

출판사 서평

“제삶이평탄했다면글을쓰지않았을것입니다.
삶이문학보다먼저지요.”
고전의품격과새시대의감각을동시에담아낸
박경리타계16주기추모특별판

1955년단편「계산」으로데뷔해,26년에걸쳐집필한대하소설『토지』로한국문학사에거대한이정표를남긴거장박경리.타계16주기를맞아다산북스에서박경리의작품들을새롭게엮어출간한다.한국문학의유산으로꼽히는『토지』를비롯한박경리의소설과에세이,시집이차례로묶여나올예정인장대한기획으로,작가의문학세계를누락과왜곡없이온전하게담아낸의미있는작업이다.이번기획에서는한국사회와문학의중추를관통하는박경리의방대한작품들을한데모아구성했고,새롭게발굴한미발표유작도꼼꼼한편집과정을거쳐출간될예정이다.

오래전에고전의반열에오른박경리의작품들은새롭게읽힐기회를갖지못했다.이번에펴내는특별판에서는원문의표현을살리고이전의오류를잡아내는것을넘어,새로운시대감각을입혀기존의판본과는전혀다른분위기의책을선보인다.이전에박경리의작품을읽은독자에게는기존의틀을부수는신선함을,작품을처음접할독자에게는고전의품위와탁월함을맛볼수있도록고심해구성했다.이전의고리타분함을말끔하게벗어내면서도작품각각의고유의맛을살린표지디자인으로,독서는물론소장용으로도손색이없게했다.한국문학사에영원히남을이름,박경리문학의정수를다산북스의기획으로다시경험하길바란다.

“나를기른것은사람이아니다.
나는바람이기른아이다.”
허황된마음을쫓고슬픔에매몰된패배자들
그들이넘실대는1960년대서울의명동거리

박경리의장편소설『녹지대』는1960년대서울명동에있는‘녹지대’라는이름의음악다방에서시작된다.‘녹지대’에는음악,문학,철학등예술과삶에관해고뇌하는‘한국식비트족’젊은이들이모여드는데,이중몇몇은‘녹지대’라는동인회를만든다.그중단연코눈에띄는한사람이있으니그가바로소설의주인공인하인애다.노랗고짧은머리에선머슴같은모습의인애는그자신만의독특한매력과어디에도얽매이지않은자유로움을타고나모두가선망하는대상이다.인애는돈한푼제대로벌지못하는습작생이지만두둑한배짱으로시화전찬조금을얻어내는인물이자,방랑벽을벗삼아산과바다를떠도는씩씩한인물이다.그러나이런인애의내면에도슬픔과외로움이가득하다.인애는한국전쟁으로부모를모두잃고작은아버지댁에서얹혀살아온고아이자,알수없는사정으로거듭인애를피하려는김정현과의애정관계로속을앓고있기때문이다.이러한자유와비애사이에서도인애는빨간수첩에시를쓰고,비내리는쓸쓸한늦봄의명동을걷고,“황홀한슬픔과아득한사랑”을맛보며,예술과인생을점차로알아간다.

인애를둘러싼여러인물역시그들각자의슬픔에서허우적대고,또거기서벗어나기위해부단히애를쓴다.인애의친구은자는‘양공주의딸’이라는집안배경때문에자신이사랑하는박씨에게열등감을느껴괴로워한다.결국은자는현실에타협하고자신을오래도록좋아해온한철과의결혼을결심한다.어떻게든인생에서“비상구”를찾으려는인애와달리,은자는“밀폐”됨으로써생활의안정과내면의평화를찾고자하는것이다.내면의외로움을견디지못해계속해방황하는인물은은자뿐만이아니다.인애의작은어머니인최경순여사는평생동안남편인하흥수의“허황된마음”을쫓고자애를쓰다자살까지시도한다.게다가하흥수씨는“심술과이기”가가득해,외로움에목숨을끊으려고했던아내조차온전히사랑할수없는인물이다.잘못된결혼생활에몸과마음이묶여되레습관적으로여자를찾는허무주의자민상건도있으며,자신의힘으로어쩔수없는자기생활이부끄러워계속자신을감추고도망치는김정현도있다.거대한인파로가득한명동거리에서어떤사람들은텅빈마음을감춘채,“어디로가는지도모르게가고있는얼굴”들이다.

“난사람과저와의공간에서빚어지는마음때문에시를써요.
그까짓흙부스러기,그까짓시몇줄,사람이있어서귀중하고.”
무참히손상된관계에서시작되는예술
타자의침범으로확장되는자아와인생

『녹지대』에서눈여겨볼것은각자의인물들이자신의삶을구원하는방법이다.소설속인물들은모두자신을둘러싼사람들에의해상처받고고통받는다.허무로가득찬조각가민상건의삶을송두리째망쳐버린것은그의전부인이다.무자비함과악의만남은전부인은집착적으로민상건을괴롭히며그의인생을장악하려든다.민상건이마음을둘곳은오직그의일이자삶인조각뿐이고,그런이유로그의제작실에는무감각해보이는여성의나체조각상이가득하다.“인간에겐희망도절망도가져본일이”없는그에게는오직“작품과나와의공간이있을뿐”이다.자신의고통으로만가득찬이에게는타인과의관계를쌓아갈공간이남아있지않다.그누구보다강하던자존심을모두내려놓고“자기자신을위해서보다민상건을위해슬퍼하는”숙배의애정어린침범이없었더라면,그는여전히자신의제작실안에틀어박혀있을지모른다.

반면인애가고통을타개해가는법은민상건의방식과는다르다.인애가시를쓰는까닭은사람때문이다.인애는“사람과저와의공간에서빚어지는마음때문에”시를쓴다.예술가로서자각하게되는“사치스러운자의식”은멀리하고“자연의,있는그대로의것”,그래서“아름답고순박하며평화스러운”것을찾으려한다.머물곳이마땅치않고수중에돈이얼마남아있지않아도인애는감을주워먹는가난한소년에게차비를모두내어주며,자신의슬픔에매몰되지않고타인과사회를바라본다.자신이손상되는것에대해서는두려워않고정신을놓을듯김정현을그리워한후,이뤄질수없는것에대해서는더이상애쓰지않는다.대신여전히뻐근한마음을움켜잡고,원고뭉치가가져다주는생활감이“어떤행복감과같은”것이라고여기며살아간다.그렇게끝까지인애는쓰러지지도않고꿋꿋이서있다.

“내가가는곳은어디든지현실이야.
내일일은모르니까가야가는줄알겠지만.”
좌절과상처가득한시대를뛰어넘어
새로운삶의방향과의미를모색하는자들

『녹지대』는1964년6월1일부터1965년4월30일까지10개월동안연재되었는데,소설속이야기도연재기간과비슷하게비내리는늦은봄에서시작되어여름,가을,겨울을거쳐다시봄을맞이한다.1년전사회의관습과개인의욕망사이에서갈피를잡지못하던여러인물은사계절을보내면서자신만의균형점을찾아내고,더나은삶을위한나름의방법을택한다.경순여사와하흥수씨는지난날의과오를덮고원래의일상으로돌아오고,민상건과숙배,은자와녹지대동인들은새로운미래를그리며용기내한발을내디딘다.그리고휘어지지도구부러지지도않고단단히그자리에서있는인애의모습도있다.

작가박경리는한국전쟁을겪고폐허가됐던1960년대서울에서고독과불안을겪으면서도생활을이어나가려는이들,사회적관습에괴로워하면서도또이에의지하며살아가고자하는이들에게,사랑과젊음그리고예술이어떻게버팀목이되는지보여주고있다.이들뒤로는“봄옷을만들어진열장에화려하게장식”하는양장점의주인,어두운얼굴의소녀들,구두창이닳은청년들,호화로운털외투를입은숙녀들이“생활하는모습”이아니라“생존하고있는모습”으로걸어다닌다.햇볕은여전히다사롭고,무르익은봄기운은여지없이인간들의삶사이로넘쳐들어온다.박경리작가는이소설에서서술자의목소리를빌려“희로애락을외면한,언제나대범스럽고그래서무자비한자연은그냥자기자신의자리만지키고있는데우왕좌왕하는인간의무리에는참으로이야기도많다”고도말한바있다.모두가주변부에머무르며불안을껴안고살아가는이시대의우리에게도,그럼에도반복되는계절안에서삶의의미를찾아가는우리에게도,60년전에이쓰인소설이새삶의탐색과모색의가능성을제공해줄수있지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