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하고살벌한현대사회에서잃어버린인간성
살고싶고,살겠다는생명력에서비롯되는새로운가능성
원주에서거주하던박경리작가가오랜만에서울을방문하며느낀감상은이러하다.“돈암동길모퉁이를스쳐가던바람,정릉골짜기의물소리,서대문하늘가의그붉은노을,(중략)그런것들이고달팠던삶을그얼마나받쳐주고부축해주었는지이제는알것같다.”그러나그가실상마주친풍경은,야윈소나무들이절망과공포에떨고있는모습,정발산기슭을향해가는개발의굉음,헤아릴수없이많은초목이쓰러진종말같은공포다.생명의몸짓과소리는지난시간뒤편으로모두사라지고주변에남아있는것은개발에혈안이된인류와인색하고무감해보이는도시풍경,공룡처럼지축을흔드는자본주의다.분꽃,접시꽃,봉선화등을벗삼고“그것도생물인데꽃모가지를함부로꺾는것은안좋다”는생명의식을깊이체화하며살아온그에게현대사회의단면은잔인하고무심하다.
그가바라본현대사회에서는많은것이사사오입식으로생략된채진행되며합리주의라는명목아래자본의관점으로귀결된다.퇴적되는쓰레기,오염된땅과바다,파괴된생태계와핵전쟁의위협까지,지구의많은것이폭주하는인간으로인해혼란스러워지고균형을잃어가는중에파괴의주체인인간들역시이공간과시간에영향받는다.인간의사고(思考)는더각박하고건조하며엉성해지고인간성은압사되고박제되어기계화된다.이토록살벌한사회속에서사라지는것은인간이가지고있던생명력과창조성,원동력이다.
박경리작가가생명과환경에대해이토록집요하게파고드는까닭은무엇일까.그가보는자연은대자대비(大慈大悲)의세계다.순환하는자연안에서는모든생명이애잔하다.살아가기가힘에부치고외로운데도씨앗을위해헌신하는모든생명체는고귀하고값진존재이나그생물역시생물을먹지않고는생존할수없는원죄를가진존재들이다.풀뿌리,들꽃,풀벌레하나까지모두애처로운가운데,박경리작가는이모든존재의삶을가능하게하는것은그들이지닌능동성덕분이라는것을발견한다.살고싶고,살겠다는의지를가지는것.그것이생명만이보유한능력이라는것이다.
폐허속에서도언어를찾고진실을마주한시인의전언
우리는생명체로서우리자신을충분히받들고있는가
생명의능동성을찬양하는박경리작가에게글쓰기,즉예술은현대사회의인류가병든자연속에서축소된공간을확대할단하나의방법론이다.인간이가진생명력은인간의역사와말들의씨앗에서비롯되어저항하고생각하는능력이기때문이다.자신의실존을의식하고사물을인식하며본질을추구하는사고에서이세계를재건하고복원할해답이나온다고본것이다.그러나그가보는현대의인류는침묵하고있으며진실을향하지못한채피동적으로살아가고있다.문명은독주하고융성했으나,문화는퇴화하고자연스러움의멋은사라져균형을잃고있다.갯벌의매립,경제제일구조,물질의절대적우세,인간위주의사상으로현대인류들은총체적관점을잃고평등한생명의가치를간과하고있는것이다.
박경리에따르면,시인(詩人)은폐허속에서도언어를찾아가는사람이다.시인이찾아헤매는언어는다름아닌‘진실’이며,시인은진실을마주하기위해몸부림치는사람이다.그러므로시인은존재를인식하는인간,그리고그인간들이만들어낸역사의진행을최전방에서빠르게감각하는사람이기도한것이다.생애마지막작업으로시를써내려갔던시인박경리는작고하기전집필한마지막산문에서기후위기시대를살아가는우리가기억해야할가장중요한메시지를전한다.우리는생명체로서의우리자신을어떻게받들고있는가.우리의생명력은충분히능동적인가.우리는우리의존재를충분히인식하고있는가.
“정신적가치대신에물질이힘을발휘하는세상을살아가는일은어렵습니다.자기자신이자기를위해살아가는세상이되어야합니다.자기를위한다는것은좋은음식을먹고좋은옷을입는다는뜻이아니라자존심을지키는것을의미합니다.자존심은자기자신을스스로귀하게받드는것을말합니다.부끄러운일을하지않는것입니다.”(160쪽)
#박경리17주기추모기획
#다산책방<박경리산문선>출간!
한편다산책방에서는2026년박경리작가탄생100주년을준비하며한국사회와문학의중추를관통하는그의방대한작품들을새롭게출간하고있다.대하소설『토지』와장편소설선에이어진행하고있는이번기획은박경리작가의산문과시를아우르며,오랫동안유실되었던미발표작품도포함되었다.올해집중적으로출간되는<박경리산문선>은지난2023년에다시출간된『일본산고』에이은토지문화재단과다산책방의기획산문선이다.새롭게개정된『생명의아픔』은작가의에세이와발표문을옮기는과정에서발생했던이전판본의오류들을바로잡았다.또한현대의독자들이편하게읽을수있게끔다듬으면서도고유한문장과표현,시대를드러내는단어들은그대로두어작가의목소리를오롯이전하고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