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은 시간

너무 늦은 시간

$16.80
저자

클레어키건

저자:클레어키건(ClaireKeegan)
1968년아일랜드위클로에서태어났다.17세에미국으로건너가로욜라대학교에서영문학과정치학을공부했다.이어서웨일스대학교에서문예창작석사학위를받아학부생을가르쳤고,더블린트리니티칼리지에서철학석사학위를취득했다.
『가디언』은키건의작품을두고“탄광속의다이아몬드처럼희귀하고진귀하다”라고평한바있다.이는그가25년간활동하면서단5권의책만을냈는데그모든작품들이얇고예리하고우수하기때문이다.
키건은1999년첫단편집인『남극(Antarctica)』으로루니아일랜드문학상과윌리엄트레버상을수상하며화려하게데뷔했다.2007년두번째작품『푸른들판을걷다』를출간해영국제도에서출간된가장뛰어난단편집에수여하는에지힐상을수상했다.2009년에쓰인『맡겨진소녀』는단편소설을대상으로당시세계에서가장큰상금을수여하던데이비번스문학상을수상했다.『뉴욕타임스』‘21세기최고의책’에선정된『이처럼사소한것들』은2022년오웰상(정치소설부문)과케리상(아일랜드소설부문)을수상하고그해부커상과래스본즈폴리오상최종후보에올랐다.2022년아일랜드올해의여성문학상,2023년올해의작가상,2024년지크프리트렌츠상과셰이머스히니문학상을수상한키건의작품들은국제적인호평을받으며30개이상언어로번역되었다.
최신작『너무늦은시간』에는키건이25년의시차를두고완성한세단편이수록되어있다.원작에‘여자들과남자들의이야기’라는부제가달린이소설집은남녀의뒤틀린관계에대한조용하면서도파괴적인증언이라할수있다.프랑스에서는미묘하거나노골적인우월주의를추적한이소설의번역판에원제대신‘Misogynie(여성혐오)’라는제목을붙였다.

역자:허진
서강대학교영어영문학과와이화여자대학교통번역대학원번역학과를졸업했다.옮긴책으로클레어키건의『맡겨진소녀』,앤그리핀의『모리스씨의눈부신일생』,루이자메이올컷의『작은아씨들』,조지오웰의『조지오웰산문선』,엘리너와크텔의인터뷰집『작가라는사람』(전2권),지넷윈터슨의『시간의틈』,도나타트의『황금방울새』,마틴에이미스의『런던필즈』와『누가개를들여놓았나』,할레드알하미시의『택시』,나기브마푸즈의『미라마르』,아모스오즈의『지하실의검은표범』,수전브릴랜드의『델프트이야기』등이있다.

목차


너무늦은시간
길고고통스러운죽음
남극

감사의말
옮긴이의말

출판사 서평

시인김민정,소설가김중혁추천

클레어키건이25년의시차를두고완성한
여자와남자에관한세편의이야기

간결하고암시적인문장으로세계와인간을예리하게그려내며아일랜드를넘어세계적인작가로자리매김한클레어키건.그는초역작『맡겨진소녀』와대표작『이처럼사소한것들』로국내독자들에게강렬한인상을남기고,이어서초기작『푸른들판을걷다』를선보이면서‘지금서점가에서가장뜨거운소설가’로호명되었다.2024년에는온라인서점예스24,알라딘,밀리의서재에서동시에올해의책1위에등극한것을비롯하여주요언론사의‘올해의책’을휩쓸면서해외작가중에서는라이벌이없는독보적인위치에우뚝섰다.

그의신간『너무늦은시간』은뒤틀린관계에관한조용하고도파괴적인세편의이야기가실린소설집이다.본판이라할수있는영국판과달리미국판에서는소설치고독특하게도부제가달려있다.‘여자들과남자들의이야기’.그부제처럼이책은미묘한것부터노골적인것까지여자와남자의관계속에존재하는폭력과우월주의의기류를추적한다.안에담긴단편은각각2022년(「너무늦은시간」),2007년(「길고고통스러운죽음」),1999년(「남극」)에발표된것으로,세편이대략10년씩의시차를두고있어클레어키건이작가로활동해온족적을이한권으로더듬어짐작해볼수있다.

그중에서도표제작「너무늦은시간」은키건이『이처럼사소한것들』로전세계의스포트라이트를받은뒤처음발표한최근작이라는점에서이목을끈다.작가가10여년에걸쳐다듬어온작품으로알려진이단편은,문예창작강사로도일하고있는그가오래전한수업에서‘드라마틱하지않으면서긴장감넘치는소설’의예시를들며칠판에적어내려간이야기에서시작되었다.그로부터10여년의시간이지나완성된이작품은50페이지가채안되는짧은분량이지만장편소설못지않은감정의격랑을경험할수있는,그야말로‘키거니언’소설이다.

「너무늦은시간」은2023년『뉴요커』에처음발표되었고1년후단행본으로출간되면서이야기의일부가바뀌었는데,두버전을비교해보면키건이텍스트를얼마나고심해다루는지알수있다.『뉴요커』버전에서주인공카헐은연인과헤어진뒤남동생에게“괜찮아?(YouOK?)”라는문자메시지한통을받지만,단행본버전에선이렇게수정되었다.“프랑스창녀랑헤어져서오히려잘됐어.(YourbetteroffwithoutthatFrenchhoor.)”이러한적나라한표현을사용하는데거리낌이없었는가하는질문에키건은,이단어들이야말로사실을더잘드러내고더정확하다며덧붙인다.“실제로사용되는언어를글로옮겨쓰는것은우리가살고있는삶과세계를묘사하기위해작가가해야하는일이다.”

한쪽이사라져야한쪽이살아나는이야기

표제작「너무늦은시간」의배경은화창한여름의더블린,회사에출근해일하는공무원카헐의모습을따라간다.핸드폰을확인하지않으려는주인공의모습이이상하지만,무엇이문제인지당장은알수없다.그러다가그의머릿속에서결혼을약속했던여자와의다툼이재생된다.그다툼의주제는남자들이여자들에게무엇을원하는지에관한것이었고,그다툼가운데자신이저지른실수와아버지의유산을생각하며후회와증오가뒤섞인기묘한감정으로침잠해간다.그리고카헐이약혼녀와의관계를회상하는동안독자들은그의실패의원인이된성격적결함들을하나씩확인하게된다.

「너무늦은시간」이연인간의이야기를치밀하게파고들었다면,「길고고통스러운죽음」은낯선관계에서의미묘한갈등양상을다룬다.이야기는‘뵐하우스’라는작가레지던스에서느긋하게집필작업을하려던여성주인공이갑자기걸려온전화한통을받는데서시작된다.자신을독문학교수라고소개한남자는대뜸여자가머물고있는집을둘러보겠다고말한다.남자의요구에마지못해응한주인공은글을써야하는귀중한시간에손님을위한케이크를준비한다.그렇게찾아온손님은“대화를이끌지도못하고,대답도못하고,대화가없는것에만족하지도못”하는남자였고,기껏대접한케이크를게걸스럽게먹어치운다음이렇게질책한다.“당신은작가라면서하인리히뵐의집에서케이크나만들고있군요.”

「남극」은소설집중제일마지막에나오지만선보인지는가장오래된단편으로,다음의도발적인문장으로시작된다.“행복한결혼생활을하고있던여자는멀리나갈때마다다른남자와자면어떤기분일까궁금했다.그래서다음주말에알아내기로결심했다.”며칠동안가족을위한크리스마스선물을사러도시로떠난그녀는술집에서한남자를만나그와하룻밤을보낸다.그러나불길한기운이이모험주위를내내둘러싸고있고,마침내그녀는뼈가얼어붙을듯한무서운전환점을맞게된다.

두편뿐인키건의중편『이처럼사소한것들』과『맡겨진소녀』들과나란히놓았을때두드러지는이소설들의특징은‘따스함’을배제했다는점이다.험하고차가운세상에친절한사람들을데려온중편들과달리,이번에키건은외로운남자들의좌절과두려움,그들이어둠속에서욕망과허기를키워가는방식을절묘하게묘사하여차가운현실을차가운그대로내놓는다.

각각의이야기는표면적으로는잠잠해보이는인물들사이에숨은폭력적인긴장감과혐오,그로인해틀어진관계를절묘하게묘사한다.그리고그이야기속의끔찍한남성성의자화상이아버지세대에서부터거듭전해져굳건히자리잡은모습을보자면,키건이책의서두에서필립라킨의시구를인용된의도를짐작하게된다.

“우리가아는것,항상알았던것,/피할수없지만받아들일수도없는것은/옷장만큼이나명백하다./한쪽은사라져야한다.”_필립라킨,「새벽의노래(Aubade)」

예민하게,그러나결코나약하지않게날카롭게벼린문장으로남성의세계를해체하는일

「너무늦은시간」속에는주인공카헐의동생이,식사준비를마친뒤본인접시를들고식탁에앉으려는어머니의의자를뒤로빼서넘어뜨리는장면이등장한다.남편과두아들은바닥에자빠진그녀를보며웃어댄다.“안타깝게도이장면은저의자전적인이야기예요.”키건은이단편을『뉴요커』에발표할당시인터뷰에서말한바있다.“제가어릴때오빠가어머니에게그런짓을했는데,다들그걸가볍게,별일아니라는듯이넘어갔어요.그장면은제기억속에영원히박제되었죠.”

책속에등장하는뒤틀린관계의근원적인문제가어디에서비롯되었는지파고들어가면이책의프랑스번역판에왜‘Misogyny(여성혐오)’라는제목이붙었는지를이해할수있다.세대를걸쳐오래이어져온불균형한권력관계가현대에이르러어떤모습으로드러나는지,일상화된혐오가남성과여성모두에게어떤영향을미치는지,이기심과충동에인간은얼마나취약한존재인지를키건은예민하게포착해낸다.오랫동안키건의작품에서다뤄진질문을담아낸이책은,새로이나아가지않고후퇴하는자에겐일말의행복도사랑도허락되지않으리라는일종의선고처럼느껴진다.

작가특유의함축적이면서도암시적인문장,조용한분위기속에서강렬한충격을전달하는기교,사유를매끄럽게흘러가게하는탁월한필치가돋보이는이번신작은이전작품들에담긴문제의식을한층더강인한시선으로마주한다.키건의소설을옮겨왔던허진번역가는일찍이키건을두고매우강한사람이라면서,“삶에서벌어지는불협화음을느끼고볼수있으나,그시선이결코나약하지않은작가”라고언급한바있다.아버지세대가만들어놓은남성의세계를해체하려는이번신작은키건의목록중에서도그예리하고강인한시선이특히돋보이는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