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편견이기를바라지만,오늘날대다수한국인은‘시없는삶’을살고있지않은가한다.적어도일상의생활속에서‘시적’감성을간직하고자하는사람들에게지금이땅의현실은너무도각박하고참담한것이사실일것이다.사정이이러함에도불구하고우리나라에시인으로불리는사람은1만명이훨씬넘는다고한다.그뿐만아니라한국은여전히시가살아있는문학장르로여겨지고있고시집이팔리고있으며상당수의시인지망생이존재하는예외적국가라고한다.대체이역설적현상을어떻게설명할것인가.“
염무웅비평의특징은무엇인가?
한국현대문학을바라보는대형비평가염무웅의문제의식은다음다섯가지로요약될수있다.(김수이,권말해설「문학이라는생명체의비밀을탐구하다」참조)
첫째,염무웅의문제의식은위대한문학과위대한삶의긴밀한관계다.위대한삶이위대한문학을자동적으로만들어내는것은아니지만,위대한삶없는위대한문학은불가능하다는것이다.
둘째,염무웅의비평의식은인간의윤리와문학의윤리,문학의미학사이의삼자적관계에대한집요한질문이다.“왜어떤작가의작품은현실문제를치열하게다루는데도미학적으로빈곤한성과를노출시키는지,현실에대한실천적문제의식과작품의미학적완성도가만나는지점또는그모순적관계를해명하는것.이것이나의관심사입니다.”
셋째,염무웅의비평에서가장중요한것은비평가의자의식을포함하면서그것을뛰어넘는비평가의윤리적태도다.그윤리는역사와현실앞에서비평가스스로의삶을성찰하는윤리다.염무웅의경우그척도는4ㆍ19혁명이다.
넷째,문학평론가,외국문학번역가,출판편집자,대학교수등다양한직업을함께지속해온염무웅의비평은문학전문가의비좁은제도적비평을넘어비평의‘다른/새로운’독법을발견하는‘경험적비평’을지향한다.그것은역사앞에선작가의윤리적선택과일상적삶이녹아든‘삶의비평’으로나타난다.
다섯째,오랜세월출판사에서편집자와기획자로일하며그가현장에서추구한민족문학과민중문학의진보적열정은‘비평가의윤리’를자극하고재점검하는모티브로끊임없이작동한다.
한국현대시의역사적맥락을짚어가는시론(詩論)과시인론(詩人論)
우리현대문학사에대한해박한지식과남다른통찰력으로,민중민족문학론을위시한우리문단의주요한문학담론을기획하고실천해온염무웅은단순한이론생산자가아니라현장의비평가로서현대‘한국문학사의산증인’이기도하다.그의섬세하고자상한독법을통해한국문단에보내는따뜻한위로와애정의시선을느낄수있게해준다.
1970년대와1980년대에걸친군사독재시절한국문학의가장전위적인화두가된것은‘민족’과‘민중’이다.염무웅은《창작과비평》의편집동인에합류한뒤백낙청과더불어민족문학과민중문학진영을이끈대표적평론가중하나다.문학을평가하는그의일관된잣대는“민중적현실과민중적실천에대한참여의정도”다.따라서그가지향하는문학은‘민족ㆍ민중사관’에바탕을둔문학이다.그것은민중에게계몽적·해방적작용을하는문학이다.한편그는월북문인들의작품발굴에도힘쓰며민족문학론의구체적이고역사적인근거를마련하는데이바지한다.그는‘위대한작가’란어떤시대이건제양심의실체를제가속한공동체의운명속에서발견하는사람이며,‘위대한작품’이란일상생활에길든범인들에게계몽적·해방적작용을하는작품이라고주장한다.
염무웅은현대시의탄생과성장에관심을가져왔지만체계적인공부에몰두하지못했다고고백한다.그럼에도시론이나시인론을쓸때마다자신이다루는대상이우리현대시의역사적맥락속에서어느지점에위치하는지를의식했다고말한다.그의『한국현대시:그문학사적맥락을찾아서』는‘실천적양심의시문학사’로시인의구체적삶과또내면의삼투과정이어떻게한편의시로구현되는가를보여주는‘증언의시문학사’이기도하다.
‘한국현대시라는옥동자’에대한애정어린탐색
몇가지논란거리가있지만오랫동안관습적으로최남선의신체시「해(海)에게서소년에게」는문학사의시대를가르는이정표로간주되었으며,이를기점으로신문학의태동을이야기한다.1960년대까지만해도‘근대문학’이라는역사적개념대신‘신문학’이라는말이주로쓰였다.신문학이시작된지도한세기가넘으면서수많은작가와시인들이등장하여우리나라의근대문학을수립하기위한힘든노력을기울여왔다.그결과우리는이제공간적으로는민족문학,시간적으로는근대문학이라일컬을만한작품적축적을갖게되었다.
20세기초에는오늘날처럼직업으로서‘시인’개념도희미했고,‘시’에대한사회적합의도부재했다.개인들의시적감정을나타낼어떤선행하는서정시의모델도존재하지않았다.19세기말부터20세기초에쏟아져나온각종시적표현,가령동학가사ㆍ개화가사ㆍ의병가사는전통적시가장르의해체를보여주는말기적현상으로서,현대적의미에서는‘시이전의’또는‘시를향하는’몸부림으로저자는이야기한다.우여곡절끝에1920년대에이르면번역시집『오뇌의무도』(1921)가간행되고이를전후한시기에김억(金億,1896~?)을비롯한일본유학생출신의문학청년들의선구적역할에힘입어오늘우리의머리와심장에여전히생동하는호소력을가지는언어적형상물로서의시가우후죽순처럼발표되기에이른다.염무웅은이를‘바로한국현대시라는옥동자의탄생’이라고언급한다.
이책은염무웅이한국현대시의중요한맥락에서선별한시인을중심으로논의를이어간다.엄혹했던식민지시기를보냈던이상화,김동환,김소월,정지용,임화,윤동주를비롯해젊은날우상이었던김수영을비롯해자신이교류하기도했던신동문,천상병,신경림,고은등한국현대시의역사에서차마그냥지나칠수없는시인의시와삶,시세계를총체적으로그려낸다.
역사의굴곡을살아낸가혹한시대의시인들
염무웅이그려내는시인의삶과시세계에는그가한국문학에얼마나깊은애정을갖고있는지깊게투영된다.그에게시인들은시대를견디고,또시대를맞서고,시대를세우고,그러다가좌절하기도하는역사속에서분투하는시대의영혼들이다.
「가혹한시대시인」은식민지시대일본유학을경험한네명의시인(김동환,정지용,이상화,김소월)의서로다른삶의행로와정신세계를분석한다.이들은대한제국시대에태어나식민지체제가굳어지는과정을살았던사람들이다.따라서그들의삶과문학은식민지체제와의관계속에서이루어지며체제의규정성을피할수없었지만,개성도다르고문학적성향도판이한이들이식민지현실을살아내는방식이달랐다.김소월은시대와의불화끝에30대에요절했고,이상화도고향대구에서낙백(落魄)한상태로40대에생애를마감했다.김동환은해방후친일파로몰려은둔해있다가6ㆍ25때납북된이후소식이끊어졌고,정지용은갓창간된《경향신문》의첫주필로서미군정체제에비판적인칼럼을쓰다가정권의미움을받아칩거하던중역시6ㆍ25전쟁와중에행방이묘연해졌다.염무웅은그들각자에게만책임을물을수없는안타까운결말이라고말한다.
「순수,참여그리고가난」은천상병의삶과문학을살펴본글이다.시인으로데뷔하여한때는평론가로도두각을나타낸천상병의시세계가어떻게변모해갔는지를흥미로운일화를곁들여가며짚어낸다.그는가혹한수난을정신적으로이겨내고그것을객관적으로바라볼수있었지만,뒤늦은결혼으로세속의불행을벗어나면서그의문학은급속도로긴장을잃고유아적자기만족의늪에빠지기시작했다.염무웅은천상병이허망하게‘문학의전장’에서물러나는모습에안타까움을표한다.
「김남주의시번역에대하여」에서는처절한시쓰기와투쟁의삶을기린다.아마염무웅만큼이불굴의시인에게깊은애정을가졌던평론가는없을것이다.그는『김남주시전집』(창작과비평사,2014),『김남주문학의세계』(창작과비평사,2014)등을엮는작업을통해한국문학사에서김남주가갖는위상과의미를정립하려고했다.김남주는염무웅의민중적관점의문학론에부합하는인물이겠으나,그렇다고염무웅이김남주의사상적주장에는다소동의하지못하는부분이많다.그럼에도염무웅은김남주가자신의‘주장’을순결하기그지없는마음으로혼신의힘을다하여밀고나가고있으며,자신의온정신을그한곳에치열하게집중시키고있음을의심없이믿는다고한다.염무웅은이런열정과극진한헌신성,비타협적혁명정신과불퇴전의반항심이야말로김남주고유의것이라고하며,그것이그의문학에진정한힘과생동성을부여하고또1980년대민족ㆍ민주운동속에서그를핵심의자리에위치시켰다고주장한다.
이책에서도「김수영론」과「김수영이수행한문학사의전환」2편의‘김수영론’이실렸는데,두글은45년이라는긴시차를두고있다.염무웅은김수영을‘젊은날의내우상’이었다고했지만,한국모더니즘의위대한비판자였으나예리한감각의양심적소시민이요외국문학의젖줄을떼지못한도시적지식인으로서의그는모더니즘을청산하고민중시학(民衆詩學)을수립하는데까지나아가지는못했다는한계를지적했다.그럼에도「풀」「사랑의변주곡」같은그의마지막무렵의작품은그가1960년대부터등장한젊은후배시인들과나란히또는앞장서서그자신의시대적한계를뛰어넘는사업에적극진출했으리라는심증을굳게한다며,그의느닷없는죽음을슬퍼해야할이유는너무나많다고말한다.「김수영이수행한문학사의전환」은최근김수영탄생100주년을기념한학술대회〈다시,100년의시인-김수영학을위하여〉의기조발제문으로작성되었다.이글을통해김수영의사후반세기동안이루어진문학사의전환이그의문제의식을출발점으로한다는점을더듬어보았다.“우리문학사상거의유례가없는이도저한정직성과치열성이야말로김수영으로하여금모든기존의문예사조와사회적허위의식으로부터벗어나게만들었을것이다.김수영은철저한리얼리스트이자탁월한모더니스트이지만,동시에그모두이기도하고또그모두를넘어선존재,즉가장깊은뜻에서자기자신에도달한시인이었다.문학의길에들어선우리모두에게언제나새로운목표로다가오는것이바로이‘자기자신-되기’아닌가.”
염무웅은그스스로가한국문학사의한페이지를장식하는대표적평론가다.이책은그가엄선하여한권으로묶은‘한국현대시의문학사’로서,시대를대표하고상징했던시인과그들의시세계를총체적이고입체적으로펼쳐낸다.누구보다한국문학을사랑했고이땅의현실에뿌리를내린민족ㆍ민중문학의역사적실천에한평생을앞장서분투했던노평론가의시론(詩論)을통해우리는‘시인그이상의시인’,‘작품그이상의작품’을마주하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