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분의 사랑 - 오늘의 젊은 문학 8

여분의 사랑 - 오늘의 젊은 문학 8

$15.00
Description
“박유경의 위로에 여러 번 마음이 붙잡힐 수밖에 없었다.”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작가, 박유경의 첫 소설집
2017년 한경신춘문예에 장편소설 『여흥상사』로 “일상의 숨은 악의를 꿰뚫어 보는 집요한 시선”을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평을 들으며 등장한 작가 박유경의 첫 번째 소설집 『여분의 사랑』이 다산책방에서 출간되었다. 장편소설로 긴 호흡의 이야기를 먼저 선보인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 그간 드러내지 않았던 자신만의 단단한 세계를 펼쳐 보인다. 현실의 지독한 폭압과 모순을 왜곡 없이 비춰내면서도, 그 안에 꼿꼿한 온기를 품은 박유경의 또 다른 세계를 이제 경험할 차례다. 이번 책에는 등단 후 발표한 단편소설 일곱 편과 문학평론가 장은영의 해설을 함께 실었다.

저자

박유경

1984년울산에서태어났다.장편소설『여흥상사』가2017한경신춘문예장편소설부문에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장편소설『바비와루사』가있다.

목차

떠오르는빛으로
가장낮은자리
여분의사랑
검은일
변신을기다려
루프
손의안위

해설인간이인간에게늑대인세계에서우리는_장은영
창작노트

출판사 서평

“다정한걸찾으라고했어.그럼좀낫다고.
바닥까지내려갔을땐그래야살수있다고.”
부조리와모순으로가득한이세계에
품위라는이름의온기가더해진다면

강렬한흡인력과팽팽한긴장감을선사한2017년한경신춘문예장편소설당선작『여흥상사』로신예페이지터너로서의가능성을입증한소설가박유경의첫소설집이다산책방에서출간됐다.“쉬지않고읽을정도로흡인력이있었다”라는평이보여주듯,밀도높은서사속인간의어두운면을그려내는작가의세계를오롯이마주할기회가드디어온것이다.소설집에실린단편소설일곱편에는모순으로가득한현실의폭압을버텨내면서도,우리를인간으로살게하는꼿꼿한태도를잃지않는인물들이등장한다.
소설집의첫번째작품,「떠오르는빛으로」의화자시현은출판사에서근무하다가지금은육아에전념중인삼십대여성이다.친구가현에게건네받았던다정함을잊지않고간직해온시현은,가현이온기를가장필요로할때이에화답한다.이어지는이야기인「가장낮은자리」의주인공지민은자신을‘여성의몸’으로만대하는아파트모델하우스에서일하며갖은수모를겪는다.그러나작은복수를계획하는지민의얼굴은남성성을뽐내며기고만장했던김기사와은호는감히쳐다볼수없을만큼밝게빛난다.「여분의사랑」속다희와우주는한때가장가까운사이였지만,이제는서로를이해할수없는지경에이르렀다.고된군생활로어딘가망가져버린우주를,다희는자신의과거와일별하듯떠나보낸다.「검은일」의시훈은번돈에빌린돈까지모두코인에투자했다.그덕에다신하지않으리라결심했던김부장이주선하는‘검은일’을맡아한다.정체를알수없는가루가흩날리는그곳에서,시훈은사납지만따스한짐승의온기를느낀다.일이나빨리처리하라는윽박에도시훈은그것들의안위를걱정하며망설인다.「변신을기다려」의‘나’는시터앱으로만난아이지후가무인판매대에서포켓몬카드를훔쳤음을짐작하지만,자신의어린시절을닮은지후에게어쩔수없이마음을내준다.아르코문학창작기금수혜작「루프」는결혼이라는의식을거치지않고아이를낳게된삼십대여성이자신의과거와마주하는이야기다.주인공지수는아빠없는아이의미래를말로만걱정하는주변인들을뒤로한채,꿋꿋하게자신의보금자리를꾸려나간다.「손의안위」는겉모습으로인생을쉽게재단당하는대출콜센터담당여성의하루를그리는데,오해를산그손으로스스로의존엄을만족스럽게지켜낸다.
박유경이그려내는인물들은이미순응한듯부조리를받아들이는것처럼보이지만,결국자신만의방식으로한줌의품위를사수한다.오롯이독자의손에놓인그한줌의품위는읽는이의마음에따뜻하게번지기도,날카롭게박히기도하며박유경소설의세계를텍스트너머로까지이끌고나아간다.

“좋은비는때를알고내려요.
언젠가는봄이올겁니다.”
그럼에도우리를일으키는건
이야기가건네는한줌의위로

박유경의소설은‘종종마음의균형을무너뜨린다(장은영문학평론가).’이소설들이우리를불편하게하는이유는우리의현실을그대로직시하기때문이다.신자유주의와코로나팬데믹이불러온불평등,무엇하나보장되지않는세계에서매몰되지않으려매일분투하는나날들을우리는늘겪고있으니까.아무리충실하게일해도제대로된일자리를얻지못한채다시떠돌고(「가장낮은자리」),코인으로일확천금을꿈꾸었다가어두운일에손을대며(「검은일」),아이들마저도남들보다더좋은물건을갖기위해분투한다(「변신을기다려」).이들은‘가장낮은자리’에서삶의전복을노리지만,그시도는매번실패에그친다.그실패가남긴상흔은읽는이의마음에도깊게파고든다.더나아가지못하고연착된삶이우리의하루와맞닿아있기때문일테다.그러나우리는이이야기를통해타인과,그리고바라보지않으려던나와온전히마주하게된다.
이일곱편의이야기는’불평등이만연한비정한세계에대한고발에그치지않는다(장은영문학평론가).’박유경의인물들은상황을수긍하지만결코타협하지않는다.‘여성’노동자로서불완전한존재로치부되던「가장낮은자리」의‘지민’은모델하우스구석에서돌을집어들고,「여분의사랑」의‘다희’는망가진우주를인정하고연애의끝을맺는다.미발표작이자최근작인「떠오르는빛으로」의‘시현’과「검은일」의‘시훈,’「루프」의‘지수’는여기에서한발더나아간다.이들은낙오된자들을기꺼이보듬으며,틀어진삶의궤도에기꺼이발을올려놓는다.실패한자들에게호명된실패한자들은,또다른실패자들에게손을내밀며끝내떠오르는빛을향해나아간다.

전에는날카로운단면으로찌르는불편한소설을쓰고싶었다.
그러나이젠,누군가의마음을붙잡을수있는소설을쓰고싶다.
-창작노트중에서

추천사

괜찮다는말을함부로할수없는어떤순간에,빛을향한걸음을내딛기위해우리가지켜야할존재를단단하게끌어안는박유경의위로에여러번마음이붙잡힐수밖에없었다.
-이주란(소설가)

늑대의세계에서인간임을잊지않기위해절박한심정으로누군가의이야기에귀를기울이고자신의이야기를들려주는뜨거운입의서사.박유경의소설을읽다가종종마음이무너지는건바로이때문이다.
-장은영(문학평론가)

책속에서

“(…)지구에사는지구인이오로지달의앞면밖에볼수없는것처럼개개인이받은상처는고유해서누구도그상처의깊이를알수없습니다.마이클콜린스가말한달의뒷면은마이클콜린스외에누구도본적없어요.같은시간,같은장소에서같은것을마주해도사람들은모두다른것을보니까요.불가능을가능으로만드는유일한방법은무엇을보았는지말하는것에서시작된다는생각을하게되었습니다.오직말만이그일을할수있지요.이책을제게보낸사람은그걸아는분이었던것같습니다.그부분을읽어보라고표시를해두었으니까요.이해의가능성은우연에서생기는것같습니다.인간의의지는우연을뛰어넘을만큼대단하지않아요.거듭해읽다보니다시이야기를써야겠다는마음이들었어요.”
-「떠오르는빛으로」중에서

이젠완전히혼자였고어떤생각도위로가되지않았다.조금씩깜깜해지던바깥에어둠이순식간에내려앉았다.모델하우스와그주변을밝히는불빛에바닥의자갈이누군가의눈처럼번뜩였다.지민은번뜩이는그것을가만히노려보다가가장뾰족한돌하나를주워손안에숨기고스타렉스주위를한바퀴빙도는자신의모습을떠올렸다.가슴이두근거렸다.차창에지민의얼굴이비쳤다.긴장한듯미소짓고있는얼굴을지민은홀린듯바라보았다.
-「가장낮은자리」중에서

걸쇠에서손이미끄러지며짐칸이완전히기울어졌다.모서리를잡고버텼지만소용없었다.가루에휩쓸려굴러떨어졌다.시훈위로가루가쏟아져내렸다.시훈은가루사이에서필사적으로기어나왔다.기고,구르고,또기었다.그것들이계속짖었고,똑같은찬송가가되풀이되었다.
온몸에가루가들이닥쳤다.가루속에서허우적거리는동안엔진음과찬송가가멀어졌다.노인은시훈이짐칸에탄것을몰랐을까?시훈은어쩐지노인에게유기된것같은기분이들었다.돈을받고처리하는유해한가루더미처럼,흰쥐의사체와무르고터져폐기되는참외처럼더고약해지기전에보이지않는곳으로치워져버린것같았다.
-「검은일」중에서

2층으로올라가이동가방을들고나왔다.튜브가가라앉은수영장에서검은물이출렁였다.바람이불때마다악취가코끝을스쳤다.달없는밤이었다.이제정말돌아갈수없다는걸알수있었다.휴대전화번호를바꾸고이사를해야했다.새로운직장을알아보고SNS를탈퇴하고우주와공통으로알고지내던지인들과연락을끊고,말끔하게사라지고난뒤의생활을떠올려봤다.우주에대해어느누구에게도말하지않게된때에도종종튜브가잠긴수영장의서늘함이느껴질것같았다.강아지가이동가방안에서작게울었다.다희는강아지가우는게마음이아팠고,마음이아파서다행이라고,어디든같이가자고중얼거렸다.
-「여분의사랑」중에서

우주와공명하는우리는언제나충만합니다.우리는매순간우주의모든존재를느끼고연대합니다.우리의춤은늘새롭고그자체만으로아름답습니다.우리가몸에절반쯤갇힌상태에서양수를들이마시는것은숨을쉬기위한연습이아니라우리는여전히에너지임을항변하기위함입니다.양수와탯줄에서분리된몸의단절로한때우리였던에너지는우주와동떨어진존재,단독자가되고맙니다.고독과외로움은인간만이느끼는고통입니다.몸이단절되기전에몸에서해방된상태로나아가야만합니다.
-「루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