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부 : 소금이 빚어낸 시대의 사랑

염부 : 소금이 빚어낸 시대의 사랑

$16.90
Description
빼앗긴 땅 위에서도, 소금의 열기처럼
뜨겁고 아름답게 타오르는 두 청춘의 사랑 이야기!
“근현대사를 살아 숨 쉬는 이야기로 녹여, 한 줄기로 유장하게 꿰어냈다”는 평으로 제2회 고창신재효문학상을 수상한 박이선 소설가의 장편소설 『염부』가 출간되었다. 동리(桐里) 신재효 선생의 국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고창신재효문학상은, 매해 고창 지역의 역사ㆍ자연ㆍ지리ㆍ인물ㆍ문화 등을 심도 깊게 조명하는 작품들을 공모하고 시상한다. 수많은 응모작들 가운데 『염부』는 특히 시대적 배경과 개인 서사에 담긴 고난과 애달픔을 세심하고 아름답게 풀어낸 작품으로 손꼽혔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을 빌리면, 『염부』는 작은 땅에 깃들어 있는 거대한 이야기를 섬세하게 풀어낸 세계적인 작품이다.
선정 및 수상내역
★제2회 고창신재효문학상 수상작★

저자

박이선

2012년제7회대한민국디지털작가상을수상하고,2015년전북일보신춘문예에「하구(河口)」가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2022년장편소설『염부』로제2회고창신재효문학상을수상하였고,역사와시대상을반영한여러작품을출간하며왕성하게창작활동을이어가고있다.

목차

프롤로그:선운사에온손님

1.염전과국일여관
2.염부의아들
3.사등마을소금의맛
4.경성옥의소리꾼
5.구름에가려진세상
6.전주역에서만난사람
7.불령선인(不逞鮮人)
8.한여름밤
9.여수의봄바람
10.광복
11.출가(出家)

에필로그:소금은변하지않는다
고창신재효문학상심사평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1940년여름.쉬지않고소금을끓이는염부와
열기를따라눅진하게,그리고아름답게발화하는사랑이야기

“어머니가일본에서나를낳았지만제아버지는분명한국사람입니다.”선운사의스님염봉은어느날자신을찾아온일본인여성코코네와마주한다.일제강점기때조선에거주했던일본인어머니의자취를따라이곳까지왔다는그녀를염봉은알수없는눈빛으로바라본다.소설의태엽은일제강점기를향해감겨들어간다.‘종일토록물을져나르고불을때서소금을만드는전통염전’의염부(鹽夫)는뙤약볕과소금물에절어밤새불을지펴야하는고된직업이었다.주인공염길은그염부의아들로,고창고보(고창중학교)에다니는수재다.염길은가계에보탬이되기위해,읍내여관을운영하는일본인사장료스케의집에가정교사로들어간다.그는그곳에서료스케의큰딸인아케미와처음만난다.그러나인연을길게이어갈수는없었다.주권을잃어버린나라에서먹고살기위해온힘을다해야하는시대였다.진로를고민하던끝에염길은교사가되어고창을떠난다.더욱강화된황국신민화교육아래,천왕사진앞에서고개를숙이고학생들을검열해야하는굴욕과설움의날들이계속되었다.

전주를찾은염길이마찬가지로교사가된아케미와우연히마주치며분절되었던인연은다시생동하기시작한다.두사람에게서서히찾아드는사랑이라는감각은불투명하고혼탁한세상에서유일하게선명한색채를띠었다.그앞에서시대나출신같은거대한문제는잠시나마아무것도아닌것이되었다.그러나염길이반일운동에동조했다는의심을받아구속되고,곧이어해방을맞자조선에살기어려워진아케미는일본으로떠나게된다.염길의본가에서구워낸소금이담긴단지와함께였다.

쌀보다도,금보다도더귀하게여기며지켜온한줌의소금,
세월이지나도결코변하지않는결정체가되다

이작품의성취는대중적인사랑의문법을따르면서,일제강점기부터미군정때까지의역사와문화를세심하게담아냈다는점에있다.소금생산노동자의고달픈생애,당시청년들의민족애와진로문제,고창의교육사,해방무렵조선에거주하던일본인들의행방과당시치러지고있던국가시험의난항,정치세력간의충돌,여순사건등당시의혼란을사실적이고현실적으로그려냈다.시대는개개인을배려하며기다려주지않았다.대다수의평범한서민들이그러했듯,자신의의지와관계없이소용돌이속으로휘말린염길은스님의도움으로가까스로목숨을건져산으로들어간다.

그리고,다시현재.염봉이된염길앞에코코네가서있다.어머니의소금을따라이곳에왔다는코코네의이야기를들으며,염봉의시선은그녀의얼굴에아주오래머문다.아버지의염전은동생대길이지키고있다.바닷가에서소금끓일준비를하며대길은언젠가아버지가했던말을떠올린다.“우리염부들이배운그대로만하믄절대소금은변하지않을것인께허튼생각말고맘속에똑똑히새겨야써.”모든퍼즐이맞추어지고,끊어졌던선이다시이어져형태를갖춘실체가된다.다른모든것이변해도소금만은,어디에있든그귀한맛을잃지않았다.아버지말그대로였다.소금은변하지않았다.

작가의말

식민통치와해방,그리고좌우이념대립이극심하던격변의시기에저마다살기위해몸부림치고사랑을했다.비록그사랑이결실을맺지못하고애달픈사연이되어가슴에새겨졌을지라도진실한사랑은소금처럼변하지않는다.세상에변하지않는것이어딨느냐고물을지모르겠다.그렇다.세월이흘러나이를먹고산천초목이변해가는데사랑이라고어찌변하지않겠느냐만,쉬달아오르고쉬식어버리는그런사랑이아니라오래도록변치않는진실한사랑을소설에담고싶었다.그소재가바로소금이었다.소금은변하지않는다.세상의많은것들이변하고오염되어도소금은그맛을잃지않는다.모든것이빠르게변하고발전하는현대사회에서사랑만큼은소금처럼변하지않았으면좋겠다.

책속에서

석대는연회색빛이감도는하얀소금을손가락으로집어입속에넣었다.감칠맛과짠맛이적절하게배합된좋은소금이었다.그동안의수고가모두잊히는듯했다.자신이만든소금이지만이렇게맛있는소금은세상어딜가서도맛볼수없겠다는생각이들었다.천일염은간혹눈살이찌푸려질만큼짤때도있지만자염은불로가열해서그런지짠맛이덜하고,개펄의유기질이섞여감칠맛이감도는것이특징이었다.대길도아버지를따라소금을조금집어입속에넣어보고는저도무슨맛을아는것처럼히죽웃었다.
---p.063

“걸핏하면평등,평등하는디사람은모두각자의욕심이있는것아니겄소.강아지를키워도양껏배를채우고잘크는놈이있는반면처져서빌빌거리는놈도있는법이요.근디어떻게생각이다르고능력이다른사람들을칼로두부모썰듯높낮이를없애고평등하게만들수있단말인지아무리생각해도모르겄소.난없이살아서그러는지는몰라도,여기서내려가믄부지런히돈벌어서장가가고효도하는것이나의할일이라고생각합니다.열심히일해돈벌고땅사고부자되면될것을왜그리욕하고잡아묵을라고하는지모르겄구만요.”
---p.273

아,결국이렇게되는구나.이제어떡해야한단말인가.지금바로달려가아케미를보고싶은마음이들다가도만약이사실을세상사람들이알게되면온갖손가락질을해댈것같아불안했다.마음이보리동냥간것처럼매사불안정하고작은실수를연발하여교감선생으로부터꾸지람을자주들었다.아무래도서로바쁘니방학에야얼굴을볼수있겠다싶어마음을꾹눌렀지만일이손에잡히지않았다.누가보아도넋나간사람처럼보였다.
---p.303~304

광복전에중대발표가있으니조선인들은경청하라는벽보가붙었지만라디오를가진조선인이드물었고,히로히토가무조건항복을선언하는방송은잡음이심했으며알아듣기힘든한자어가많았다.게다가일본인들도이해하기힘든황족들이쓰는말로방송되었기때문에정확한내용을알고있는사람이드물었다.그래서똑같이방송을듣고난후에도조선인이나일본인모두조용한것은당연했다.아니,어쩌면방송의내용을확실히인지했더라도그충격이너무커서넋이나간것일수도있었다.
---p.322

대길이작은소금단지를들고아케미가그뒤를따라나섰다.밤새내린이슬이차가웠다.안개가자욱이껴서어디가바다고어디가들판인지분간이되지않았다.아케미는잠시걷다멈추어뒤돌아보고,또몇걸음가다뒤돌아보길반복하였다.밥짓느라고연기가모락모락피어오르는모릿등이안개속으로점점사라지고있었다.
---p.359

고향은어린시절추억이있는곳이니어쩌면영영보지않고마음속에담아두는편이나을지도모른다.친구들과놀던동산의둥구나무가베어져도로가깔리고아기자기했던집이무너진자리에현대식건물이우뚝솟아있는것을보면마치내몸어딘가가잘려나간것처럼가슴아플테니까.코코네는한국에오지못했던어머니를마음속으로위로하며흔들리는차에몸을맡겼다.
---p.399

대길은아버지가헛기침과함께벌막으로들어와어서염구를챙기라고호통치는상상을해보았다.아궁이속나무가타닥타닥타들어가고솥에서뜨거운김이솟아오르는것같다.아,아버지가그립다.어느새자신이아버지의얼굴과고집을닮아있는줄도모르고대길은아버지가미치도록그리웠다.
---p.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