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경성제국대학

다시 보는 경성제국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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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경성제국대학』은 일제강점기 서울에 설치된 ‘경성제국대학’을 조명한 책이다. ‘경성제국대학’의 풍경과 인물들 그리고 주요 사건들을 중심으로 소개하며, 우리가 알지 못했던, 알았지만 쉽게 지나쳤던 역사의 단면을 소개한다. 그로부터 우리 근현대사 속에서 만들어진 대학교육의 초석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저자

이충우,최종고

저자이충우는1938년익산에서출생하여전주북중,전주고,한국외국어대학교불어과를졸업하였다.1965년한국일보사견습기자로출발하여사회부기자,주간한국부차장,문화부차장,일간스포츠레저부장,문화?부장,부국장으로재직했다.1989년천주교회언론매체로옮겨평화방송보도국장,평화신문편집국장을지냈다.한국가톨릭언론인협의회회장등을맡았으며,가톨릭언론대상을받았다.현재가톨릭문인회,한국인물전기학회회원으로활동하고있으며저서로『경성제국대학』을1980년출간한후성지순례기『피어라순교의꽃』,시집『내영혼을맡기다』등14권의도서를출간했다.

목차

목차
화보
머리말
제1장예과개교
설립배경과민립대학운동
경성제대냐조선제대냐
영예의1회입학생
한달늦은예과개교식
예과의교과목과교수진들
발군의조선인학생
‘방[蠻]칼라’풍조와호연지기
기숙사와하숙촌
사립명문의진출
다양했던서클활동
관동팔경과무전여행
영국인블라이스교수의추억
제2장학부시대
동숭동에학부개설하다
법문학부의유명교수들
의학부개강과의전(醫專)과의마찰
관립고보대사립고보
배일의식에서싹튼좌경서클
경제연구회발족과시대적배경
치열해지는입시경쟁
문우회와『문우(文友)』의시말
관현악단의탄생
구학문과신학문의병존
축구부와조선인학생
졸업논문과고등문관시험
제3장민족의식과학생운동
비밀조직독서회의확산
일인(日人)교수의조선문화연구
잡지『신흥(新興)』과조선문단사정
민족의식과두개의교가
철학과카페와자유연애
북촌과남촌의대결
성대반제동맹의태동
성대반제동맹의진행
사건관련자일제검거
반제동맹사건공판
조선어문학회활동
만주시찰단과간도(間島)순회치료
제4장지사(志士)냐입신(立身)이냐
예과2년제에서3년제로
미야케사건의전모
한스켈젠의시상품
지사(志士)냐입신(立身)이냐
백두산등정과금강산수학
‘이전(異田)’에서나온수재들
단발령과마술의망토
제5장전시(戰時)의학원
전운(戰雲)과이공학부의설립
자유주의의막차
전시체제의학원
학병징집과독립군가담계획
징용·옥고·도피
전쟁말기의학원정황
제6장경성제대출신의사회진출
법문학부법학과출신
법문학부철학과출신
법문학부사학과출신
법문학부문학과출신
의학부의학과출신
이공학부7개학과출신
연구생중퇴생출신
부록조선인입학생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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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출판사서평
푸른사상의신간[다시보는경성제국대학]을소개합니다.일제강점기서울에설치된“경성제국대학”을조명한이책은낯설지만누구도부정할수없는우리의역사로서한교육기관의역사를,그로부터우리근현대사속에서만들어진대학교육의초석에대하여이야기하고있습니다.
해방을맞은1945년까지서울에존속한이일본제국대학은우리나라국공립대학의최고라말할수있는서울대학교의초석이라는점도있지만,한국현대학문의초석을놓은교육기관이라는점도부정할수없는사실이기때문입니다.이책은‘경성제국대학’의풍경과...
푸른사상의신간[다시보는경성제국대학]을소개합니다.일제강점기서울에설치된“경성제국대학”을조명한이책은낯설지만누구도부정할수없는우리의역사로서한교육기관의역사를,그로부터우리근현대사속에서만들어진대학교육의초석에대하여이야기하고있습니다.
해방을맞은1945년까지서울에존속한이일본제국대학은우리나라국공립대학의최고라말할수있는서울대학교의초석이라는점도있지만,한국현대학문의초석을놓은교육기관이라는점도부정할수없는사실이기때문입니다.이책은‘경성제국대학’의풍경과인물들그리고주요사건들을중심으로소개하며,우리가알지못했던,알았지만쉽게지나쳤던역사의단면을소개하는데그의미가있습니다.특히지금은고인이되었지만경성제대시절재학생들의면담을통해생생한현장을담았습니다.
이책이귀사의소개로많은독자들과만나길기대합니다.감사합니다.
서울의일본제국대학,“경성제국대학”
낯설지만알아야할우리역사의단면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KeijoImperialUniversity)은일제강점기인1924년부터해방을맞은1945년까지한국의서울에존속한일본제국대학이다.이대학은일본인에의하여세워지긴하였지만한국현대학문의초석을놓은교육기관이기때문에그의의를부정하려야부정할수없다.
그런데광복후일제유산극복이라는민족주의내지애국주의의분위기속에서경성제국대학에대해서는기억도하지않으려는무관심으로내려왔다.그공간과건물,도서관과인적유산을물려받은서울대학교도새로운대학의출발만생각하고,경성제국대학의역사는의도적으로기피하여온것이현실이다.
그렇지만다른것은몰라도학문이란정치와는달리선배가쌓은업적에누적되는것이기에경성제국대학의학문은새로운서울대학교에연결되지않을수없는것이다.긴설명을할필요도없이,경성제국대학에서배운인물들이서울대학교의교수로선구자적역할을하였다.철학의박종홍,국문학의이희승등적지않은예를볼수있다.
이제우리는좁은민족주의의틀에서만이아니라세계속의한국,세계학계와어깨를나란히하는한국학문을전개하고있다.이러한새시대에우리는우리의전통을아픈전통이라하더라도긍정적으로받아들이고,진지하게연구해야할것을자각하고있다.
이책은경성제국대학의모습,특히경성제대졸업자들을직접면담하여생생한기록으로남기는유일한책이다.이들면담자들은이제는거의모두고인이되었지만,이들이서울대학교를비롯하여학계는물론각계에선구적지도자역할을하였던것은다아는사실이다.이러한공헌을면밀히추구하여정리한것도하나의업적이라하겠다.
월남이상재는1924년6월12일경성제국대학개교식청첩을받고나서의관을정제하고“오늘우리민립대학(民立大學)의개교식이있는날이니제군들도함께가지”하고YMCA(월남은당시YMCA의고문이었다)직원들에게말했다.직원들이의아하여“그게무슨말씀입니까”하고물으니그는껄껄웃으면서“저놈들의관립경성제국대학은곧우리민립대학의발족물이요,우리대학의전신이될줄모르는가,경성제국대학은장차우리대학이될거야.”라고했다는일화가있다.
우리손으로세우려다시대적역부족으로결국일제가설립하긴했으되이나라최초이자,해방전까지하나밖에없던이대학은학문의요람으로숱한지도급의영재를길러냈다.
경성제국대학의간판이내려진지만68년이지났고,첫졸업생을낸지도84년의세월이흘렀다.그동안타계한졸업생들도해마다늘고있고남북분단의비극속에북(北)에갇혀소식조차모르는이들도적지않다.설상가상으로경성제국대학의발상지인청량리예과건물과동숭동법문학부자리는아파트가들어섰거나주택빌딩가로변모했다.이공학부자리인서울대공대마저1979년말관악캠퍼스로옮겨,이제의학부건물만이대를이어서울대의대로살아남아있을뿐이다.
게다가졸업생들이점차줄고있고,캠퍼스마저흔적을잃어가고있는경성제국대학은우리의뇌리속에서점차잊혀지려하고있다.사라져가는한자연계의현상을방불케한다.그러나이대학은우리의뇌리속에서잊혀지거나사라져가는현상으로방치해서는안될아까운역사적단면과민족의식이도사려있는곳이다.
흔히경성제국대학을일제가남기고간학문의잔재정도로간단히단정해버리기는쉽지만사실은그와다르다.일제시대의정치·사회·국제·문화·체육등소중한사실이다각도로숨겨져있는곳이경성제국대학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다.
그당시의대학생들은무엇을생각하고무슨일을했던가?경성제국대생이중심이된반제동맹(反帝同盟)사건의진상은무엇일까?
어느시대나억압된상태에서는정확한사실이전달되지못하는법이다.게재금지가다반사이던그시대의일들을,지금자료를모으고증언을듣지않으면잊혀지고사라져버린다.일본사람들은동숭동대학건물의일부가헐릴때,그벽돌을사서도쿄로날라경성제국대학기념관을지었다고한다.
우리가이런식으로학교건물을차례로없애고,그때자료를보관하지않는다면,이대학을거쳐나온분들마저세상을떠난다음에는이땅에있었던대학의일을혹시일본에가서알아와야할지도모른다.그와같은시점에서문은모당시한국일보기획실장이‘경성제국대학’에대해써보라고아이디어를냈고,1년여에걸친자료수집과각종증언을정리하는동안여러선배동료들로부터아낌없는협조와관심,조언과성원에힘입어이기록이이루어졌음을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