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보다민간인이더많이희생된6·25
인류역사상전쟁과내전,쿠데타등에휘말려민간인이희생되는일은많았다.6·25전쟁때도민간인사망자가군인전사자의5배에이르는것으로추산된다.그러나정부와군대가적대세력이아닌자국민들을대량학살한사건은흔하지않다.그런일이70여년전,바로이땅에서벌어졌다.사회부기자로주로활동해온언론인문창재가국민보도연맹과국민방위군사건,서울수복후부역자처단등정부에의해저질러진참담한민간인대량학살의실상을파헤친다.
통곡조차허락되지않은보도연맹희생자들
1948년대한민국정부수립을전후하여좌우의대립이극심했던때,정부는좌익인사를관리하기위해그들을교화및전향시킨다는국민보도연맹이라는단체를조직했다.그러나보도연맹에는좌익의핵심인물보다는목표치달성을위해마구잡이식으로가입시킨무고한민간인이더많았다.1950년6월25일,북한의남침으로전쟁이발발하자보도연맹가입원들은무차별적인즉결처분의대상이되었다.70여년이지난오늘날에도이들의억울한죽음과사건의전모는제대로밝혀지지않고있으며,정확한해명과사과도이루어지지않고있다.
정부에배신당한국민방위군
국민방위군사건은더욱충격적이다.전쟁중자국의청년들을국민방위군으로징집하여,제대로된보급과훈련도없이끌고다녔다.거액의예산을타냈음에도군수뇌부부터하급장교에이르기까지조직적으로그예산을착복하는동안수많은젊은이들이굶주림과추위,질병으로사망한것이다.그뿐만이아니다.전쟁발발후정부가아무대책없이한강교를터뜨리고도망을가는바람에발이묶여인공치하의서울에남았던시민들역시서울수복후‘피란못간죄’로부역자로몰려처단되었다.
6·25의미스터리를파헤치다
한국전쟁의참혹한참상속에서많은사람들이겪은억울한죽음의진상이이제야조금씩밝혀지고있다.이제71주년을맞이한6·25전쟁은수수께끼전쟁이었다.파죽지세로서울을점령한인민군은사흘을머뭇거리는의문의행보를보였고,뜬금없이국군이해주를점령했다는뉴스가퍼져나갔다.누구보다빨리피란을떠난정부는대전에자리를잡고앉아서울을사수하겠다는방송을내보내서울시민을기만했고,처음참전한미군사단장은어처구니없이포로가되었다.언론인의눈으로한국전쟁당시의미스터리를파헤친이책은한국전쟁사의중요한자료로서자리매김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