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유령 - 푸른사상 소설선 53

소설의 유령 - 푸른사상 소설선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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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어둠 속 빛의 흔적을 찾아 나서다

이진 작가의 네 번째 소설집 『소설의 유령』이 〈푸른사상 소설선 53〉으로 출간되었다. 사회의 어두운 이면 속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그려낸 9편의 단편이 수록된 이 작품집에서 작가는 모순으로 가득한 현대사회의 한 단면을 치밀하게 그려내며 우리가 간과했던 빛의 흔적을 찾아 나간다.

저자

이진

광주에서태어나전남대를졸업하고광주여대문창과에서석사학위를,목포대국문학과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2001년무등일보신춘문예'겨울날의우화'가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하였으며,현재광주여대에출강하고있다.

목차

작가의말

코로나시대의싱글라이프
도도와쭈아
소설의유령을위한습작
우주적사건지평선너머
초록알람
은행나무협주곡
도미노게임
평강의숲
백제의악(樂),바다건너꽃피다

작품해설:돌봄,지평선너머의언어_방승호

출판사 서평

이진작가의네번째소설집『소설의유령』은사람사이의얽히고설킨관계와사회의어두운이면이함께드러나는9편의이야기를펼쳐나간다.등장인물들의복잡한사정을끈질기게따라가며모순으로가득한현대사회의한대목을치밀하게그려내고있다.작가는특유의섬세한문장과탁월한구성으로우리가사는세계의가혹한진실을들여다보며아픔을어루만진다.
「소설의유령을위한습작」에등장하는디지털장의사는죽은소설가의디지털장례를의뢰받는다.장의사는그소설가의이메일을일일이확인하다가죽은소설가와의뢰인에얽힌의문의기록을발견하게되고,이야기는교차하고포개지면서소설가와의뢰인사이의숨겨진비밀이드러난다.「초록알람」은대리모일을자처하는주인공이느껴야했던여러겹의감정들을섬세하게그리고있다.여성이짊어지고감수해야만했던정체성의역설과여성만이소유해야하는모순적욕구들을정면으로드러낸다.한편바이러스와공존하는현대인의삶의모습을그린「코로나시대의싱글라이프」,가족을거느린아비고양이도도에관한이야기「도도와쭈아」도오늘을살아가는군상들의생생한모습을여실히담아낸다.평강공주와온달의사랑을모티프로한「평강의숲」과백제미마지의애절한이야기를모티프로한「백제의악(樂),바다건너꽃피다」도주목할만하다.
우리현실에만연한사회문제들을비틀어조명하는한편,혼란스러운세상을살아가는개인의모습까지세심하게그려내면서작가는우리사회의어두운이면속빛의흔적을따라새로운가능성을찾아떠난다.

작품속으로
아무래도조금쯤미친사람이아닌가싶었다.정산은뱃속에서부터올라오는비웃음을정색시키려애를썼다.소설이무슨생명체도아니겠고,소설이죽었다느니또죽은소설을염습해야한다느니,이게지금어느세상이야기인가?게다가디지털장례라는건고인이디지털세상에다끼쳐놓은자취를찾아영원의침묵속에다묻어주는일이지,유물의존재여부를확인하는작업이아니다.손에잡히는물질로전화되지않았다해도이미구조화된소설이라면유물이아닐것인가? (「소설의유령을위한습작」,70쪽)

그런데참묘한일이었다.이상하게도여자에겐거절이되지않았다.마지막임신일지모른다는미묘한우울감이,제왕절개수술을또한번하게될지모른다는두려움이,아니그보다는내자궁이진짜내아기는한번도키워보지못한채로성능저하의늪에빠져버릴지모른다는냉철한직시가날체념상태로몰아갔을지도모른다.여자와내가마흔셋이라는젊지도늙지도않은애매한나이까지같다는걸알게된순간,감정선을절대로넘지않는다는내철칙이이미흔들렸는지도모른다. (「초록알람」,121쪽)

“마마께선저를온달에게시집보내리라,어렸을적부터늘말씀하셨지요.고구려온백성의아버지인마마께서그동안거짓약속을해왔다는말씀이십니까?”
평강은아버지평원왕에게따지고들었다.온달이라는사내가누군지,무엇을하는자인지알순없으나어려서부터그이름을하도많이들어마치친동기간이라도되는듯한정감이있어왔던터다.다만그이름자앞에붙은‘바보’라는수식어가조금맘에걸리긴했다.그렇더라도꼴보기싫은고도령과의혼사를물릴수만있다면바보든멍청이든별상관이없을것만같았다.
“한번울음보가터지면도무지그칠줄모르는널어르느라농담삼아했던말을금과옥조로새겼더란말이냐?”
“어찌아니그렇겠습니까?어린시절,귀에못이박이도록새겨주셨지요.한나라의지존께서한두번도아니고수없이내리신말씀을손바닥뒤집듯그리쉽게뒤집을순없는일입니다.”
(「평강의숲」,19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