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억평론집『침묵과쟁론』의핵심물음은현대시의‘대화적가치’이다.문학은근본적으로‘말건넴’이라고말하는저자는,이책에서언어행위에동참할수없는‘말잃은자’의곤경을주제로삼았다.세상을떠난이나말을빼앗긴이,혹은동물들처럼말할능력을잃었거나말의능력을소유하지못한이들은자신을대변하지못한다.저자는이러한이들을대변하는시인이행하는시적대화,즉말건넴의특별함을확인하며시는어떠한소통방식이될수있는지를질문한다.시의대화적가치라는큰주제속에서침묵하는타자와시쓰기의쟁론이라는형식성을살펴보는것이다.
1부에서는시인과비인간타자사이의쟁론을분석한다.시인은타인이고통이대신증언할수없는것임을알면서도대화의장이존재한다는믿음을가지고있다.타인과더불어동물과인공지능을비롯한비인간타자를대변하고자하는시인의윤리가무엇인지를나희덕,이기성,안태운시인등의작품을통해진술한다.
2부에는시적대화가어떠한타자성을진실하게담보할수있는지를묻고있다.현대시가말건넴의한방식이자타인과충돌하고다름을확인하는과정임을논증하면서‘불화(랑시에르)’의가능성을보존하는시적언어의가치를확인한다.김언,김행숙등시인등의작품론을중심으로살펴보았다.
3부에는,시는진실한발화가아니라자신을감추고꾸며내는하나의방식이기도하다는점에서,시적대화에서꾸며낸페르소나가지니는가치를묻는다.진정성의자아보다페르소나를꾸며내는데익숙한2000년대현대시의특징을살펴보며,강성은,오은등의시편을통해꾸며낸시적자아의윤리성을검토한다.
책속에서
타자는숭고하다.다시말해서대신증언할수없는타자의고통은숭고하며,그앞에서우리는침묵해야한다.그러나말하지않는것이말할수없음을뜻하는것은아니다.우리는침묵과침묵의능력을구분해야하며,때로시인들이침묵하는자로부터어떤의미를읽어내려할때,그리고때로시인자신이도리어침묵하는자세를취할때도각자세가지닌고유성을주목해야한다.그리하여넓게숭고한타자에‘대해서’말하는것과숭고한타자를‘향해서’말하는것을구분하도록하자.타자에대한말하기란포리송처럼당신의삶을짐짓넘겨짚어서대신증언하는것이다.이와달리타자를향해서말한다는것은당신을향해육박해가는자기자신의고유한자세에대해서말한다는의미에가깝다.우리는우리시대를이루는외상적기원과마주하는순간,시인들의시안에서말의한계와침묵의능력이시험받는것을목격한다.그리고우리들은그러한작품을마주할때어디까지당신을‘향하고’,어디서말을중단하는것이정확한침묵인지되묻게된다.(96쪽)
우리는하나의변화를확인할수있다.2010년대시의초점은자기신념이나표현의문제로부터차츰타자지향의국면으로이행해간다.이때정치성이나타자지향성이란타자와손쉽게결속한다는뜻은결코아니며,오히려이념이나공감의토대가상실되었음을강조하고타자와의연대불가능성을문제삼으면서,그것을넘어서려는변증법적의식에가깝다.서효인시인의시에서발견되는스타일의변화는2010년대시가공유하는어떠한동요(動搖)를예감하게한다.가벼운사회성과진지한정치성사이의동요,사랑과혐오사이의동요,신념의지속과타인을위한신념의포기사이의동요.그러한동요를바라보며떠오르는예감은다음과같다.이러한동요속에서,삶의고통은인간의마음이안식할거처를탐색할것이고,흩뿌려진장소들을성좌처럼이어봄으로써새로운시의지도는그려질것이다.(205~206쪽)
나르시시즘의시대에문학은어떤방식으로존재하는가.응답이사라진시대에문학은얼굴을어떠한고뇌의대상으로삼는가.현재진행형으로한편에낭독이라는실천적응답이있고,다른한편에시창작이라는미학적모색이있다.이글에서살펴보고자하는것은후자쪽이다.얼굴이하나의시련으로전락한시대에관계를모색하는시인들의시를살피는것,때로이시대에사로잡히고때로이시대로인해몸부림치는그들의고뇌를빌려응시의가능성을타진해보는것이다.(2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