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의 오로라 - 푸른사상 소설선 57

무한의 오로라 - 푸른사상 소설선 57

$18.50
Description
나 아닌 모든 이들을 염려의 대상으로 삼는
소설로 표현된 타자 윤리학
이하언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무한의 오로라』가 〈푸른사상 소설선 57〉로 출간되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시간을 넘나드는 이 소설집에는 소외되고 고통받은 인물들에 대한 책임감이 등장한다. 타자에 대한 책임감은 궁핍하고 억압당하는 얼굴뿐만 아니라 우리가 수호해야 할 민족, 국가, 조상의 땅에까지 나타난다. 타자의 윤리학을 실천하는 이하언의 작품들은 주체를 타자에게 개방함으로써 삶의 장을 무한하게 확대하고 있다.

저자

이하언

저자:이하언
2007년『평화신문』신춘문예에소설이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한국미니픽션작가회회장을역임했다.소설집으로『검은호수』,공저로『버터플라이허그』『코로나19기침소리』『카페인랩소디』『내이야기어떻게쓸까』『나를안다고하지마세요』『혼자괜찮아』『거짓말삽니다』등이있다.평사리문학대상을수상했다.

목차



무한의오로라
어디에서든
임금님귀는당나귀귀
특수임무수행
풀꽃
광야에서다
태양을품은여인

『무한의오로라』에나타난타자윤리학_이덕화

출판사 서평

고대부터현대까지의시간을넘나들며서사가펼쳐지는이하언의소설집에는소외되고고통받은인물들이등장한다.이들은현실의문제와고통에좌절하지않고가족과연인,심지어국가에이르기까지,스쳐지나가는인연일지라도모든이들을염려의대상으로삼으며타인을향한책임감을드러낸다.

말레이시아에방문하여숙소로향하던한여성이도랑에빠진개를발견하는「개」에서,그녀는어릴적엄마의학대로인해화장실에서굶주림과추위에떨다목숨을잃은동생을떠올리며,자신이구출하지않으면죽을지도모르는개를살려야한다는모종의책임감을느낀다.표제작인「무한의오로라」의화자는헤어진전애인‘혜진’이식물인간상태에빠졌다는소식을듣고병원을찾는다.이별한후에다른남자와불행한결혼생활을했던‘혜진’의사정을알게된화자는가상세계인‘무한한’에접촉하여혜진의행복을빌어준다.이하언의소설에나타나는타자를향한책임과연민은국가와민족등으로확대된다.북파공작원으로특수임무를수행했으나국가로부터외면받는인물을그린「특수임무수행」,문인간첩사건을그린「풀꽃」등이그렇다.

현대사의비극과오늘날사회문제등다양한소재로한여덟편의소설에서작가는상처받은이들의내면을세밀하게그려내고있다.고통에정면으로대면함으로써우리는자기자신을되돌아보고새로운미지의세계로나아갈수있는발판을마련하게된다는것을깨달을수있다.

작품세계

이하언의창작집『무한의오로라』에나타난작가의식은타자에대한책임감으로드러난다.그것은가족,혹은자신이몸담고있는국가등다양한형태로나타난다.타자에대한책임감은모든것이박탈된궁핍한‘얼굴’,고통받는‘얼굴’의모습으로각인된타자에대한책임감으로나타나기도하지만,우리가수호해야할민족,국가,조상의땅으로드러나기도한다.「개」에서는개로,「무한의오로라」에서는헤어진옛애인,「임금님귀는당나귀귀」에서는초점인물,「특수임무수행」부터는국가,「풀잎」에서는작가의대타자라고할수있는힘없는민중,「광야에서다」에서는민족,「태양을품은여인」에서는조상의땅이었다.

이하언의『무한의오로라』에서타자의개념은주체의존재를초월해타자를염려의대상으로삼는,모든대상을타자로지칭하기로한다.또우리가지각하고있는현실적인세계가아니라불가시적세계의선험적타자라도우리의삶에영향을미쳐주체에게영향을미치는경우,타자로설정한다.(중략)

“나의욕망은타자를통해서만활동하고타자를통해서만대상을포착한다”는레비나스의말처럼타자없이는어떤것도욕망할수없다는그타자의개입은주체의탄생을예고하는것이다.즉타자란자신을둘러싸고있는의식이며가능세계의표현이며,작가가가야할세계의무한자가현시하는지평이다.『무한의오로라』의작품들에서보여주는주체는이기적인자신을떠나서신에게받는사랑을실천하라는명령을실천하는윤리학,타자윤리학의실천의장이다.

대부분의여성작가들의작품은일상소쇄사(小?事)를중심으로서사가이루어진다.그에비해이하언작가는일상소쇄사를떠난다양한소재,역사물조차고대사,현대사를가리지않고서사화하는노회(老獪)한작가이다.타자윤리학을실천하는장으로서의이하언의작품들에서보여주는주체들은타자에게완전히개방함으로써공간과시간을초월한삶의장을확대하고있다.
-이덕화(소설가,문학평론가)

‘작가의말’중에서

소설은사람을이야기한다.그리고무수히많은사람들이세상에왔다가사라져갔다.가까이지냈을수도있고서로의존재조차모르고,만남은물론,스쳐지나가는인연도없이다른환경에서다른방식으로살았을수도있는사람들도있다.하지만그모든사람들이씨줄날줄처럼얽혀서알지못하는사이서로영향을받으며이세상을이루어왔다.생각해보면참으로경이로운일이아닌가.

사람이사라지면기억도사라진다.흔적을남기기도하지만모두다그렇지는않다.남긴것조차시간의흐름에따라변질되기도한다.우리가사실이라고믿는것들의뒤에는실상얼마나더많은사연들이변하고지워지고숨겨져버렸을까.사람들은자신들에대해어느정도까지이야기해낼수있을까.

내가글을쓰는것은언어로는도저히다표현할수없는내면들을드러내보고싶어서이다.또한세월이지워버린많은이야기들,어디엔가다른모습으로라도남아있을존재했던흔적을되살리고싶어서이다.

이소설집속의시간은고대로부터현대까지넘나든다.등장인물들은존재했고,혹은존재했을법하고,앞으로존재할지도모를사람들이다.나는그들이만들어내었을,하지만알려지지못한이야기들의가치를찾아보려고노력했다.

글을쓰면서나는새삼깨닫는다.사람들이얼마나자유를추구했고얼마나생명을소중히여겼는지,그리고인간존엄성을지키려했던부단한노력들도.나는그것들에대해계속써보고싶다.

책속에서

현실에는존재하지않았던,그러나혜진이그토록갈구하던것들이무한한속에서펼쳐지고있었다.
강에몸을던지기전에핸드폰에마지막으로남겼던이름,혜령과나는그공간에없었다.혜진은나와혜령을초대해줄수도있을것이다.하지만오로라는그럴생각이없는듯했다.나는잠든혜진을돌아보았다.혜진은무한한속에서꿈을꾸고있었다.
면회시간이끝나고병실을나서기전헤드셋을벗겼다.혜진의행복한꿈을빼앗는듯해서미안했다.
---p.56「무한의오로라」중에서

귀가너무커져흔들렸다.귀만도드라져거울속에서나는낯선사람을보는것같았다.이정도에서자라기를멈추었으면좋은데.문득귓속으로작은소리들이들렸다.원룸은층간의방음장치가잘되어있지않아위층의소음이곧잘들리곤했다.처음에는신경이거슬렸지만이제어지간한소음에는무디어졌다.그러나지금들리는것은소음이아니라사람들의말소리였다.나는벽에다귀를대었다.귀가크니까벽에귀가착달라붙는기분이었다.나는그때처음알았다.벽속으로얼마나많은이야기들이오고갔는지.어느집에서다투는소리,텔레비전소리,심지어텔레비전의내용까지다들렸다.그날있었던이야기를나누는소리,사랑을나누는소리.어느집에서는울면서누군가에게하소연하고있었다.상대의소리가들리지않는걸보면아마도전화를걸고있는것이리라.나는그모든내용들을똑똑하게다들을수있었다.
어린시절나의다락방으로돌아온것같았다.익숙한목소리가들렸다.엄마의목소리였다.
---pp.113-114「임금님귀는당나귀귀」중에서

어머니는그가왜그들에게해준것도없는나라를위해목숨을바치겠다는건지이해하지못했다.아버지는조선에서관리들의폭정에삶의터전을빼앗기고고향을떠나압록강을건너연해주로왔다.누구의도움도받지못하고갈대와자갈만무성했던황무지를맨손으로일구고논밭으로바꾸었다.아버지와같은이유로조선을떠나온어머니를만나가정도이루었다.남에게해끼치지말고남의일에참견도하지않는것이아버지의소신이었으며제식구굶기지않는것이삶의목표였다.아버지는그렇게살기위해밤낮없이일을했고결국과로로죽었다.
---p.173「광야에서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