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빛 - 푸른사상 소설선 58

어둠의 빛 - 푸른사상 소설선 58

$17.93
저자

한승주

저자:한승주
고려대학교대학원을졸업했다.『대전일보』신춘문예에단편「아침의동행」이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한국작가회의및한국소설가협회회원이며소설집으로『사설우체국』이있다.

목차

장평치킨
신호등앞에서
간병사차오센쭈K
의왕가는길
어둠의빛
두개의문
조용한혁명
내가더많이
낙엽을쓸다
여자아이리하

작품해설:부조리와싸우는,기록하는자의정체성_심영의

출판사 서평

한승주작가의소설속인물들은현실의부조리와싸우면서과거의기억속에서지나간인연들을다시금꺼내회상한다.이들은현재와이어져있는끈을놓치지않고과거의삶과오늘의삶을끊임없이대조하고성찰하여,기억을한번더기억하는것이다.

표제작「어둠의빛」에는아파트단지주민들사이에소문만무성한‘한기호’라는미궁의인물이등장한다.사람들과의교류가적은‘한기호’를둘러싸고주민들사이에서풍문과편견이퍼져나가는모습에서,루머로부터자유로울수없는현대사회의한단면을잘보여주고있다.연락두절된장모를찾아아내와의왕으로가는과정에서의상념을그린「의왕가는길」,14년간기르다가숨을거둔유기견의처리를두고불거진‘나’의과거잘못과이를둘러싼가족간갈등을그린「조용한혁명」은모두가족서사이면서,어렵게삶을지탱해온남성가장이견뎌야했던세월을반추한다.탈북민인치킨집주인과의인연을그린「장평치킨」,발목뼈골절사고를당한주인공과조선족간병인이등장하는「간병사차오센쭈K」에는타인을향한연대와관심의서사가따뜻하게펼쳐지고있다.

한승주소설의화자에게추억이란결코과거의것에그치지않고현재이자미래이기도하다.현실의문제를직접적으로대면하고있는인물들의내면과심리를섬세하게그려내어,독자들에게묵직한울림을선사한다.

작품세계

한승주소설집에실린10편의단편소설들을관통하는키워드는‘기억과기록’이라할수있다.그의소설속인물은대부분60대를통과하고있는노인이다.따라서살아갈날보다살아온날이더많고,그런까닭에살아온날들과그안에서관계를맺었으나이제는여러사정으로헤어진인물들에대한회상기억과그에따른파토스(pathos)가주된정조를이룬다.그런데과거를회상하는인물은대부분글을쓰는작가다.과거에신문기자를했거나,그게아니라도문학청년이었으며,현직에서물러난지금은소설을쓰고있다.그런데그가기억하는과거는부조리로가득차있다.따라서그의소설속인물들은그부조리와싸웠던기억을기록으로남기려하는자의정체성을뚜렷하게보인다.(중략)

한승주소설의화자에게추억이란결코과거의것에그치는것이아니라현재를이야기하고삶을말하는중요한단서로작용하고있는것은틀림없다.현재와이어져있는과거의끈을놓치지않으면서과거의삶과현재의삶을끊임없이대조하고성찰한다.그런의미에서한승주소설은“기억을한번더기억하는것이소설”이라고할때,정확하게그에부합한다.뿐만아니라소설의형식을빌린자전적글쓰기과정을통해자아정체성을새삼스레확인하면서그가살았던시대를어떻게감당했었는지개인적기억을문화적기억으로기록해두고자하는성실함의태도(부조리한삶에대한저항으로서의기록)로읽을수있겠다.
―심영의(소설가,문학평론가)

‘작가의말’중에서

소설을쓴다는것은행운이자불행이다.늦은밤독수리타법으로자판을두드리다가피로한눈을비비는것도행복이자불행이다.이책을쓰기위해오랜시간씨름한머릿속은이제텅텅비어버린것만같다.공허하기도하고개운하기도하다.과거의기억을담보로써내려간작품들을묶어두번째소설집을낸다.

책속에서

“내가당신보다먼저죽는것이내방식의사랑이다.”
사실나는아내의죽음을감당할자신이없었다.형님부부의버스추락사고사,그해일어난누이의자살과연이은아버지의죽음때문에나는우울증에걸렸다.혼자충격을버텨냈다.하지만내면을찢은상처까지는어쩌지를못했다.기자로서승승장구하던내가오보와낙종을했고,그건신문기자에게는치명적인실수였다.늘입사동기들보다앞서나가던나는그해승진과보직인사에서처음으로물을먹었다.기사를쓰기위해책상앞에앉으면지방출장중형님내외의사고소식을알려준막내누이의떨리는목소리가환청처럼들렸다.
---pp.95-96「의왕가는길」중에서

20평대의서민아파트이긴해도관리비와각종공과금,생활비와차량유지비까지합치면못해도한달에150만원은있어야할텐데,평생경제활동을전혀하지않은한기호가그만한돈을어떻게마련하느냐는의혹이뿌리의실체였다.“고정간첩일지도몰라.평생아무일도안하는데멀쩡하게살고있는게이상하잖아.북한의공작금을받고있는건아닐까?눈이오나비가오나매일해거름이면동네주변을배회하는것도수상하고.”
“어리숙해보여도정체를들키지않기위한위장술일수도있어.만약제2차남북전쟁이발발하면한순간붉은완장을차고나타나는.”
“친구는고사하고가족이드나드는걸본사람도없잖아.그렇다면고아?근데고아에게무슨유산이있어평생놀고먹는거야?”
---pp.104-105「어둠의빛」중에서

혁재는자신의과거를캐내듯언땅을계속파내려갔다.땅속엔아무것도없었다.죽은나무뿌리같은것들이흙을단단하게움켜쥐고있을뿐,비닐봉지에싼꼬맹이시체는보이지않았다.언나무뿌리에부딪힌삽날이용수철처럼튕겨나왔다.해가뉘엿뉘엿지고있었다.겨울산은어둠에게조금씩자리를내어주고있었다.저녁의차가운공기들이혁재얼굴에달라붙었다.눈을들어하늘을바라보았다.보름달이앙상한나뭇가지사이에걸려있었다.달속에서어머니가잔잔하게웃고있었다.처음보는당신의미소가낯설지만슬프지는않았다.그는눈을내리깔았다.다시삽을쥔손아귀에힘을주었다.매장이나화장은이제혁재에게중요하지않았다.자신의어린시절처럼하루하루를외롭게견뎌야했던꼬맹이의마지막가는길을가족전체가따뜻하게배웅해주고싶었다.
---pp.169-170「조용한혁명」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