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세계
시집제목에서도드러나듯이,그는세계의“북적이는찌꺼기들”을정련하여단정하고아름다운시를만들어낸다.마치도공이거친흙을주물러격정과혼란을다걸러내고잘생긴항아리를빚어내듯그는삶의소란스러운바람들을잠재우고그안에서잘정제된언어를골라낸다.그의시들은온갖사연가득한현실을대빗자루로잘쓸어낸후의깨끗한마당처럼정결하다.그의시를읽는것은잡것을다털어낸후의타작마당을보는것같고가면으로가득찬축제가끝난후깨끗이정리된거리를걷는것같다.(중략)
최일화는마치흐린창을닦아내듯다중다층의복합적인풍경을단순화한다.그의시는찌꺼기들을걸러낸술처럼맑다.그는가짜인껍데기들을귀신처럼감지하고그런것들을시야밖으로밀어낸다.그리하여장식과페르소나가사라진존재가말갛게모양을드러내는데,그것을담는그릇이바로그의시이다.위시도두세계사이에서방황하는마음의풍경을수묵화처럼잘그려내고있다.이곳을나왔으나저곳이그립고,저곳을향했으나이곳을찾는마음의불안한지도를시적인풍경으로업데이트하는것은마지막연이다.흘러가는구름을추슬러야하지만“옷자락에그늘이달라붙어있어서”그것을못한다는표현은얼마나아름다운비유적표현인가.“청산의바람도그그늘달래주지못”한다니,그그늘은얼마나깊은가.“절집을나온사람”은옷자락에(세속의)그늘을달고등에는“절집하나둘러메고”정작어느곳으로도가지못하거나아니면어느곳으로나가며고통스러워한다.문제는어딜가든다른곳이정처(定處)로부상한다는것이다.기실“절집을나온사람”만이아니라,일상적주체들의삶의여정이대체로이런것이아닐까.육신의늙음이욕망으로부터의해방을가져오지만,그해방엔이미죽음의터미널이들어와있고,무위자연은사실처음부터자연인존재에게만가능하다.인생은버릴수없는그늘과절집을옷자락과등뒤에달고늘“망설이는마음”의여정이아닌가.이시집엔이런사유와성찰이댓돌위의신발들처럼가지런하게놓여있다.그것들은무채색에가깝도록소박하지만정갈하고,일견쉬워보이지만오랜수행의눈만이도달할수있는지혜를담고있다.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명예교수)해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