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백제의 한

후백제의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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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견훤이 세우고 견훤이 멸망시킨후백제의 짧고도 파란만장한 역사
이길환 작가의 역사소설 『후백제의 한』이 푸른사상의 〈소설로 읽는 역사 5〉로 출간되었다. 통일신라가 쇠퇴하고 각지에서 군웅이 일어나던 혼란기, 백제를 계승하여 대륙을 호령하겠다며 제국을 꿈꾸던 후백제의 짧고도 굵은 역사를 소설화하였다.
저자

이길환

저자:이길환
1994년중편「타인의침상」으로『오늘의문학』신인작품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장편소설로『아르마딜로』『영화속의남자』『하늘채사랑』『길에게묻다』『불조직지심체요절』,창작집으로『찔레꽃화장』『살아있는돌』『매머드잡는남자』가있다.직지소설문학상최우수상,해양문학상은상,한국소설작가상,등대문학상대상을받았다.한국문인협회회원,한국소설가협회중앙위원으로활동하고있다.

목차

작가의말
등장인물

프롤로그

1.사벌주(沙伐州)
2.원종애노의난
3.혼돈의땅
4.신검의탄생
5.후삼국
6.포구의칼
7.대야성
8.조물성전투
9.서라벌
10.공산전투
11.고창전투와예성강
12.신검의반란
13.금산사
14.일리천전투
15.후백제의한

에필로그

출판사 서평

이길환작가의역사소설『후백제의한』이푸른사상의<소설로읽는역사>5로출간되었다.통일신라가쇠퇴하고각지에서군웅이일어나던혼란기,통일신라가쇠퇴하고각지에서군웅이일어나던혼란기,평양성성루에활을걸고대동강물을말에게먹이겠다며태조왕권과각축을벌였으나끝내좌절하고만비운의영웅견훤의굴곡진삶을그렸다.

신라의무관이었던견훤이따르는이들과함께반란을일으켜독자적인세력을구축하고마침내나라를건국한것이서기900년,그러나장남신검이왕위를찬탈하자적국이었던고려에투항해신검의항복을받아냄으로써제가세운나라를제손으로나라를멸망시킨해가936년.후백제는단36년간존재했던비운의제국이었다.

천년이상의과거속에묻힌짧은역사,그마저전쟁으로점철된어지러운시대였기에후백제에대한기록은승자인고려의사료에조금남아있을뿐,그다지정확하지못하다.심지어견훤과그부친아자개의출신에대해서도기록마다학설이다르다.작가는빈약한사료에상상력을덧붙여소설적재미를더하고,견훤이태어난사불성(상주),그가최초로군사를일으킨무진주(광주),건국을선언한완산주(전주),고려태조왕건과의전투현장이었던대야성(합천),공산(대구),일리천(구미)등역사의현장을직접답사하여작품에생명력을불어넣었다.

저자의말

세종시운주산중턱삼천굴앞에앉아있다.나당연합군에패배한백제의잔류세력이이곳으로와서저항하였으나,신라군에포위되자노약자와부녀자,어린아이들이삼천굴로들어가피신하고있었다.하지만겁에질린아이들이울음을터뜨리는바람에발각되었고,신라군이몰려와입구에장작을쌓아놓고불을질러안에있던사람들이몰살당했다는전설이내려오는곳이다.삼천굴의길이가무려삼천미터나되어입구에서불을피웠는데운주산반대편으로연기가나갔다는곳이다.
삼천굴앞에앉아자세히보니이곳은동굴이아니라장마때마다힘차게솟구쳐흐르는물살에바위조각이조금씩떨어져나가면서생긴큰틈새일뿐이었다.그러니까동굴이아니라계곡의굽이진부분이동굴입구처럼파인것이다.시에서도‘삼천굴입구’라는푯말을삼천굴이있는등산로에세워놓더니검증되지않은사료(史料)임을알고푯말을회수하였다.
이처럼역사에는고증이나검증되지않은것이많다.이작품을쓰려고많이뛰어다녔다.인터넷으로자료를검색하고,국립세종도서관에가서자료를찾아보고,현장답사를통해더욱리얼리티하게묘사하려고했다.다만분단되어대동강을거슬러올라가평양성을답사하지못한것이아쉬웠다.
이토록고생한덕분에한시대를정리하는책이되었다.더욱치밀하고세밀하게다루고싶었지만,방대한분량이라끝날곳에서알맞게정리했다.

책속에서

그때,숲에서잠을자던아이가배고픔에못이겨잠에서깨었다.하기야어미의젖을빤지도한참지났으니허기가몰려올시간이었다.아이가막자지러지게울음을터뜨릴때였다.숲에서커다란호랑이한마리가나타나어슬렁거리며내려와아이의옆에눕더니아이에게젖을물렸다.아이는며칠을굶은것처럼호랑이젖을빨았다.아이가젖을빨고있는동안호랑이는마치제자식에게젖을물리는것처럼편안하게앉아있었다.한참동안호랑이젖을빨던아이가배가부른지젖을입에서떼었다.(16쪽)

공산전투는그렇게끝났다.이전투를계기로후삼국의주도권은확실히후백제에돌아간다.신라를실질적인속국으로만든동시에영토역시신라9주중6주에이르러서최대판도를이룬다.구체적으로는전주(전북),무주(광주전남),강주(경남서부),웅주(충남충북일부),양주(경남동부)의일부이다.한편신라는서라벌과양주의일부만으로근근이버티고있었고,고려는변두리한주(경기도와황해도),삭주(영서지방)두주만을점유하고있었다.그것도땅만넓지산지가많고경제력이좋지않은지역이었다.한편명주(영동지방)는독립세력이었던김순식이점유하고있었다.견훤은이무렵오랫동안눈엣가시였던금성(나주)점령에도성공한다.(272~273쪽)

왕건은말을타고달려와개태사에서죽은견훤을확인하고,불교의식으로장례를준비하고모든대소신료에게궁에도분향소를차려놓고조의를하라명하였다.왕건이이만큼견훤에게경의를표하는것은삼국이통일되었으나아직후백제의호족들이고려에충성하는것을머뭇거리고있기때문이었다.옛날의백제가신라에망하더니이번에는후백제가고려에망하여후백제의호족들은나라가두번이나망하는것을두고고려에곱잖은시선을보내고있었다.게다가두왕자는변방으로유배보냈고,후백제의폐하인신검은도성에초라한벼슬을주고유배보다더한감시를하고있으니,후백제의호족들은언제든수틀리면들고일어날기세였다.이때문에왕건은견훤의죽음을접하고친히조문을온것이다.
견훤의죽음역시일흔의나이에죽어서호상이라여기고장례가아자개의장례처럼성대하고즐겁게치러졌다.사찰내에서는육식을금하므로개태사밖의공터에임시로움막을짓고많은호족과문상객들이거나하게술잔을주고받으며견훤의이야기로꽃을피웠다.견훤의장례를치르는동안개태사에는사람들이각지에서구름처럼몰려들었고,밤낮없이잔칫집처럼가무가끊이지않았다.(405~40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