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온다 - 푸른사상 시선 227

저녁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온다 - 푸른사상 시선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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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재학

저자:박재학
2013년시집『길때문에사라지는길처럼』으로작품활동을시작하였다.시집으로『지난세월이한나절햇살보다짧았다』『끼니거르지마라』가있다.2022년대전문학관‘시확산시민운동’작가로선정되었으며,2019년,2023년,2026년대전문화재단창작기금을수혜하였다.

목차

제1부첫마음은늘맑은사랑이라서
단추/수건/낡은운동화/검은비닐봉지/신호등/문자메시지/톡톡톡/액자속액자/유리문의얇은안부/주름진압력/전단지/활명수/세가지이야기/냄새

제2부자갈밭위에서도밥은익어갑니다
장남/순식간/발길질/고추장삼겹살/소신공양의식탁/짬뽕/순대내장국밥/수박/고단/일/취한밤/코이/이명/어른아이

제3부슬픔이지나간자리에남겨둔안부
할미꽃/밥물끓는소리/서방은한량나는일꾼/편지/낡은사진/불현듯/건강검진/시월초하루/가슴으로옮긴집/십리사탕/감나무집/끝내/비오는날/꿈

제4부그냥,저녁이라서다행인풍경
태풍/억새/출생/봄눈/신호위반/저녁인사/희망사항/빈맘/보고듣고깨닫고/아껴야할것/길들여지다/흔들렸지만/곁/사선

작품해설:새로운야생의시간을위하여_고영직

출판사 서평

추천사

박재학시인의시세계에서단연눈길을끄는것은냄새의시학이다.시인은시든꽃병에서흘러내리는꽃냄새나시계추위에앉아흔들리고있는저녁내는물론이고,할머니가발라수저에올려주던갈치살같은냄새를좋아한다.신문지로몸을덮고벤치에누운노숙자나일자리가없어새벽인력사무소간판아래서담배를피우는사람들의냄새도기꺼이맡는다.흙먼지같은세상을걸어다닌신발의고린내,비닐봉지에담긴생선의비린내,술취한사내들의방뇨로풍기는전봇대의지린내,헤엄치며살아가야하는사람들의시큼한체취,온몸에붙은파스냄새,입안의단내…….시인은그냄새를인간존재의문제로인식하고사회계층의상징으로부각시킨다.
―맹문재(시인·안양대교수)

시인의말

별일없는안부가그리운날들입니다.

대단한이야기는아닙니다.어떤날은저녁밥상의온기를담고싶었고,어떤날은낡은구두의편안함을적고싶었습니다.

그저당신이지친하루를마치고돌아왔을때툭,하고내려놓을수있는쉼터가되었으면합니다.

머물다가는따뜻한볕이되기를,당신곁에머무는작은반딧불이되기를,이시집이당신의곁에서오랫동안같이살았으면좋겠습니다.

맑은물한잔같은위로가되기를바라며
내곁을지켜준모든존재에게이투명한거울을바칩니다.

책속에서

(전략)박재학시인은시집『저녁은누구에게나공평하게온다』에서“흔들리는것들을감싸는것이내일”(「억새」)이라고자임했던본래의삶의태도를회복하고자한다.이것은소위‘K-장남의식’(「장남」)의발로일수도있겠지만,그보다는“타락한순결과너덜너덜한양심과/때로는지려놓은생활”(「수건」)마저‘닦는’“수건의삶”을살고자했던본래의심성을회복하겠다는의미에더가깝다.더이상누군가에게예속되어사는삶을거부하고,누군가를어루만지고품어주려고한본래의삶을회복하려는삶의태도가강하게느껴진다.더이상“불현듯/한사람에게길들여져/나를놓치고살던때”(「길들여지다」)로되돌아가고싶지않기때문일것이다.“나를놓치고살던때”란결국내고유의야생성을잃어버린삶이아니던가.
그래서일까.시집『저녁은누구에게나공평하게온다』는본래의야생성을되찾고자하는박재학시인의시적여정을잘보여주는시집으로읽힌다.(중략)
시인은지금세상은여전히“불덩이같은세상”(「발길질」)이지만,“나는노을의끝자락을잡고조금천천히하자고했다”(「시월초하루」)처럼더이상평가시스템에짓눌린시간이아니라‘다른시간’을사유하고그런삶을살고자실천하는것으로보인다.그래서일까.나는“계절로가는녹색신호가바뀌지않았는데가을이게릴라처럼습격해가을타는것들을안아줄새도없이작별인사를하게되었다”(「신호위반」)같은표현들에서시인본래의감싸고품어주려는성정(性情)을다시확인하게된다.(후략)
―고영직(문학평론가)해설중에서

<수건>

닦는다
타락한순결과너덜너덜한양심과
때로는지려놓은생활까지

닦고닦다스스로너덜해지면
빨려

줄에서펄럭이며
낱장으로흩어지는바람냄새를맡기도한다

흙먼지뒤집어쓰거나
똥을치우고얼룩을지우다가가는
수건의삶을
누구도귀하게여기지않아

마지막엔불태워지거나쓰레기통에처박히지만
부고(訃告)도없이사라지지만

오늘도한장의수건이
노동의표정이선명한얼굴을닦고있다

<저녁인사>

흔들리는구절초사이로초록빛은출렁이고오후를뛰놀던햇빛은쏟아져흩어지고바위를흔들며폭포수는떨어지고굴참나무잎들은물결소리를내며찰랑이고방울소리날아와부딪혀와르르무너지고참새떼는뭉쳤다흩어지고땅거미는왼쪽부터쌓여가나는거북이처럼창쪽으로느릿한걸음을옮겨기울어지는하루에게잠깐손을흔들어주고

<희망사항>

새로움이돋는내일이면좋겠다

먹먹한가슴이풀어지는날이면좋겠다

행복의보푸라기가날리다노을처럼가면좋겠다

나는하품을하고너는수채화를그리는동화같은날이면좋겠다

눈부신나신이꿈같은눈에갇혀사랑을나누는일이홀연했으면좋겠다

밤새내리던비멈추고푸른하늘로날아가는기러기같은모습이면좋겠다

어루만져주지않으면안되는상처난곳을보듬는희디흰손이었으면좋겠다

무수한벼랑을지나두려움없이뛰어다니다허기를달래겠다고밥한술뜨는날이면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