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사를기술한다는것은역사자체를기술하는것과다르다.이미지나간역사에대한평가도시대에따라달라질수있는데,문학작품의의미는더더욱고정되어있지않고시대마다,사회마다그해석과평가가달라진다.문학사의서술은그래서어려워질수밖에없다.그리하여대부분의문학사는문학작품에반영된사회사또는문학사조의역사를정리하는데그치는경우가많다.
이책은29권의시집을펴낸현역시인이자,35년간강단을지켜온학자이기도한오세영교수가정년이후20년만에정리를완료한역작이다.신시운동부터2000년대탈이데올로기시대까지100여년의시대를가로지르고,시의장르정립부터격동의근현대사와함께부침했던온갖문학사조들에대대분석하였으며,개화기의계몽주의문학과프롤레타리아문학,친일어용문학과전쟁시,민중시,노동시,농민시에이르기까지한국근현대의사회변화를반영해온시문학의흐름을통시적으로추적하였다.수많은시인과그들의작품을논하며,김수영의작품을비판적으로분석하는등관습적평가를넘어서예리한비평을가한점도눈에띈다.
'책머리에'중에서
우리근현대시문학사(近現代詩文學史)는개화기신시운동(新詩運動)이후오늘에이르기까지이제백여년의역사를갖게되었다.그동안여러선학(先學)들의노고에힘입어그연구역시상당한수준에이르렀다.그럼에도불구하고한가지아쉬운것은시사(詩史)를바라보는학계의태도가아직별로달라진것없이선학들의논의를여전히답습하고있다는점이다.
물론초창기연구자들은불모지나다름없는당시의우리학문적풍토에서많은공적들을남겼다.그러나자료의미흡,역사의식결여,개척자로서의시행착오,방법론의결핍,비평적안목의부재등으로적지않은오류를범했던것도사실이다.따라서이제어느정도학문적성과를축적한오늘,우리는이에토대해서보다냉철하게우리의시문학사를한번쯤점검해보아야하리라고생각한다.
일반역사와문학사는물론모두대상을‘시간의축’으로기술한다.그러나전자는그자신생성소멸하는주체로서의인간을대상으로하는반면후자는그인간이만들어놓은어떤‘노작(勞作,quelquechose=artefact)’을대상으로한다는점에서다르다.문예학에서문학사기술에대한회의론이적지않은것도이때문이다.
그런데여기에는한가지문제가더따른다.하르트만(GeoffryH.Hartman)이‘역사연구는기록(document)에관련되어있으나문학연구는기록체(monument)에관련되어있다’고지적했던바로그것이다.전자는그작업이확실하고도필연적인증거에토대해서이미지나가버린과거를재구하면일단그것으로끝난다.그러나후자의경우그의미는주체가대면할때마다순간순간달라질수밖에없다.즉문학작품의의미는해나달처럼혹은뜰에놓여있는정원석처럼고정되어있지않다.임진왜란은그자체로이미종결된사건이지만춘향의러브스토리는시대마다다르게해석되고,느껴지고,다시살아나는현존적(現存的)사건이기때문이다.
문학작품이지닌이같은성격은그사적(史的)기술을어렵게만든다.문예학의논의에있어서문학사기술이,극단적으로,그자체가불가능한작업이라는주장까지도제기되는이유이다.따라서우리가일반적으로‘문학사’라여기고있는기존의업적들도엄밀히살펴보면사실그것은,진정한의미로서의문학의역사가아니라대개문학작품에반영된사회사이거나,문학의사조사(思潮史)이거나―그것도아니라면―문학에대한역사기술을아예포기해버린연대기적(年代記的,chronicle)서술들중의어느하나에불과함을알수있다.
필자라고문학사기술이지닌이같은본질적한계성을피할수는없었다.본서가우리의시를,훌륭한시인이나뛰어난작품들중심으로한인과관계나이의시간적계기로서술하지못하고정치사나사회사혹은시대이념에따라연대기적으로바라볼수밖에없었던고충이여기에있다.
한편문학의학(學)에서문학사기술이란항상연구의최종단계에서나시도해봄직한분야이다.개개의작품해독과시인연구,이의학문적분석과비평적가치평가,동시대와의관련성과통시대적이해,비교문학적영향관계와사조사적탐색등이끝나그것을최종적으로종합할수있는수준에이르렀을때비로소가능한일이기때문이다.필자가35년간대학교수로재직하고정년한지다시20년만에겨우본서의집필을한번가늠해보는이유도여기에있다.부디후학들의준열한비판과편달을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