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승호평론집『기억하지못한슬픔』의키워드는기억이다.과거가된시인의시를다시읽는과정에서,저자는남겨진것을다시관계속으로불러오는작업을수행한다.1부에서는김소월,한용운,신경림의시를기억하며그들의시를다시읽고,허수경과김남조그리고신동엽시인의실천적시도를톺아본다.2부에서는이진,임경숙,서화성,최영정,김민하작가의작품을통해돌봄과치유의가치를,3부에서는그밖에위태로운존재를구현하는기억과시선들을다뤘다.
특히,김소월과한용운,신경림등의시를다시읽는1부의내용은‘기억하지못한’의미의잔여를밝히는새로운시도다.연구와비평을넘나드는작업은그자체로‘기억의고아’를찾기위한탈-경계적형식이된다.지나간일을기억하는데서그치지않고추모하고애도하며현재에재생시키고자시도하는것,이평론집에서비평은그러한작업이된다.저자는기억되지못한슬픔은없으며기억하지못한슬픔만이있을뿐이라고말한다.독자들은저자의비평을읽어가며한국현대시의가치와새로운의미들을다시톺아볼수있을것이다.비극은시간의탓이아니다.슬픔은언제까지나우리의몫이다.
책속에서
기억을토대삼아회복을반복하는일이미래를다시읽게하는힘이라면,비평의시작은그‘기억의고아’를찾아읽어보려는시도에서비롯될것이다.김소월,한용운,김남조,신경림,신동엽,허수경시인은다른시대와장소를살아왔다.그러나각기다른시간속에축적된과거의흔적은이제는시의형태로기억되고있을뿐이다.그렇다면비평의몫은무엇인가.그것은그기억된형태이면의잔여들,다시말해기억의고아를다시읽으려는노력이다.역사가기억하는것은연대기적뼈대지만문학이기억하는것은뼈대를이루는무수한순간의시학이다.그리고우리가해야하는것은많은순간의흔적들이하나의정체로굳어지는것을지양하는일이다.이것은과거를회억하는일이며,기억의고아를찾는일이고텍스트에숨겨진의미의여분을다시읽는일이다.기억은과거를포기하지않고고아는부재를탓하지않는다.기억은이미흘러간과거를아직종결되지않은것으로인식하며,고아는토대의부재를토대삼아자신이존재함을입증한다.이것이기억과고아가현재를살릴수있는이유다.(16~17쪽)
소월의시는때로민족정서적고결성으로평가받기도한다.하지만그의시는특정한정서의고유함만을추구하지않았다.오히려달콤함몽상으로부터각성을도모하는비천한정동으로지향을서슴지않았다.소월이꿈을말하면서도그곳에희망이있다고말하지않은이유는,언젠가설움을극복하고내면의인간다움을회복할수있다는달콤함보다“저무는봄”처럼결국모든것이소멸할것이라는예감이그의언어와더가깝기때문일지도모른다.그렇다면소월의두가지「꿈」이우리에게남긴의미는무엇일까.아마도그것은파상의전략으로오히려상실된대상을존재하게만드는상상의힘일테다.기약없는대타자와이를알면서도기다림으로써존재하는타자성의주체가만들어내는몽상의형식.이것이소월의시가여전히우리에게유효한전통적사랑과열정의이름으로우리에게다시다가오는까닭이다.(21쪽)
만해는비극적국면에대한비탄과절망을표하면서도인고와긍정의정신을지켜왔다.그런데그의긍정적전환은단순히비극적현실을가리기위한표현의아이러니만을함의하지않는다.특히「거짓이별」에나타나는시인의사유는역설이란이름으로그표현을단정하기에는그의미가사뭇남다르다.“한손으로이별을가지고가”면서“또한손으로죽음을가지고”오는시인에게먼저느껴지는것은윤회가아닌숭고다.이별후의만남을기약하기보다는(거짓된)이별과의이별을수용하고절망과마주하겠다는의식이그의언어에전제한다.여기에만해의시가지닌각성의힘이있다.헤어짐이기어코만남으로이어질것이라는,혹은희망의부재가진정한진리를깨닫게할것이라는,이역설의환각으로부터각성이그의시에도사린다.(23~24쪽)
애도하는주체는애도받지못한타자를밝힌다.애도주체는보존하지않아도되는삶과보존마땅한삶을구분하지않고모든존재를평등하게밝히는주체다.이러한점에서애도는은폐된타자를기억의층위로끌어올리는힘을지니고있다.허수경시에잠재한가치는여기에있다.시인은전쟁과폭력으로희생된타자를주목하고애도받지못한그들의타자성을평등하게위로한다.이는민족공동체해체를직면하지않았지만이를잊지않기위해의식적으로고아됨을자처하는주체의의식에서비롯하는것이며,이러한윤리는역설적으로여성을언어공동체를결속하는주체로서다시서게한다.(52~53쪽)
추모는상실대상을지나간타자가아니라부재로서역설적으로현존하는실질로바라보려는시도다.이를위해김남조는아프고멍든가슴으로태어난가엾은시인들을‘기억’하는일을강조한다.그에게기억은사건전말을정치화하기보다는존재의의미를되새기거나타자의슬픔을이입하여지속적인교감을시도하는행위에더가깝다.김남조는대상의부재를인정하면서도타자와교감을거듭하며타자를잊지않기위한이중적과제를부단히수행한다.김남조의추모가정상적애도와비정상적애도의두가지모습을모두드러내는것도이와같은이유에서다.이러한측면에서김남조의추모작업은기억과기록을통해애도를포기하지않으려는불완전한시쓰기과정이기도하다.(82쪽)
신동엽의멜랑콜리가주목되는점은‘짐승’과‘꽃’이라는표상을통해오히려열정과구원의가능성들을확인할수있다는점이다.신동엽의자아는그저우울과슬픔에빠져있는것이아니라,오히려이를극복하기위해울부짖고또몸부림친다.이러한점에서‘짐승’의울음이나‘꽃’의향기는신동엽의정신적산출물이되며,시를지탱하는자아의식의핵심이된다는점에서더욱중요하다.신동엽의멜랑콜리는절망과희망의역설적원리속에담긴새로운가능성이자,세상을향해외치는자아의정신적원천이된다.(105쪽)
우리는온전하게삶의의미를찾을수없고그것의가치를판단할수없다.시인의끝없는물음에도우리는영원히본질에가닿을수없을것이다.그러나시인의언어는남는다.그부유하는기표만이남는다.기표가남는다는것은관념의의미를찾지못했음을의미하는것이기도하지만,그기표가다시누군가의내면에가닿을수있다는가능성을암시하기도한다.물론그렇게될것이라고장담할수는없지만,그정의불가능한잠재적차원의힘이다시우리가말할수있는역설적기제가된다.이렇듯의미는그의미의틀에서벗어나는이행의순간에다시생명력을얻는다.이러한변증과역설의역학만이삶의의미를조금이라도가늠할수있게한다.(226~227쪽)
저자/기여자설명
‘책머리에’중에서
서재에책이한권씩늘어나고있다.어릴적에는책이많아질때마다내심기분이좋아지고스스로무엇이된것처럼어깨가으쓱했었다.그러나지금은새로운책이보일수록내가작아지는기분이다.얼마나더많은책을서재에들여야할지가늠조차되지않는다.그저방이좁아질수록소심해지고세계에대한괜한잣대만생기는듯하다.책을읽고글을쓸수록오히려나를둘러싼세계는좁아지는것만같다.그런데여전히책을곁에두는일은즐겁다.특히다른글을읽다가찾은귀한문장의근원이내서재에있을때,그책을다시찾아읽는일은무엇보다의미가있다.내가들인책의가치를확인하는것같아서새삼기쁘다.
시행착오를겪으며연구를시작한지10여년이흘렀다.평론가로데뷔한것은2022년이니,비평을가까이한지는기껏5년이된셈이다.이책은연구와비평을넘나들며썼던글중에서이미과거가된시인의시를다시읽는과정에서모아진글이다.동시대에대한비평과더불어진행된이작업은무엇보다귀했다.동시대비평이텍스트가‘지금-여기’에말하고있는의미를밝히는일이라면,오래된시를읽는다는것은그것이과거로부터지금에이르러다시말해질수있는의미를밝히는작업이었다.말하는것을밝히는게아니라말할수있는여지를다시생각해보는노력의결과가이비천한글의의미라면의미일테다.
이책의키워드는기억이다.그런데여기서말하는기억은남겨진것을다시관계속으로불러오는일로서‘회억(Eingedenken)’을가리킨다.단지인상과경험을간직하는게아니라포기된과거를다시현재에재생시키는시도,이것이이글에서말하는기억이다.이기억의실천적방식이애도가되고추모가된다.1부는이러한기억과애도,그리고추모를다룬글이다.김소월,한용운,신경림의시에대한기억이그들의시를다시읽기위한시도였다면,허수경과김남조그리고신동엽시인에관한글은그들이행한실천적시도를톺아보는작업이었다.2부는돌봄과치유의가치를,3부에서는위태로운존재를구현하는기억과시선들을다뤘다.
우리주변에는끝내다시읽히지못한기억이있다.기억은모든과거를보존하지않는다.단지기억은언제나망각의영역을남겨둘뿐이다.기억과망각은서로를전제한다.망각이도사리기에기억하기위해노력하며,무엇인가를기억하기때문에다른무엇은망각된다.슬픔은정확히이부분에서파생된다.기억과망각이겹쳐지고갈라지는부분에서기억의고아는탄생한다.기억하지만증언되지못하고애도받지못한그경계에서망각은발생하고,다시기억해야할이유또한생긴다.그러므로우리가과거를향해야하는이유는보존을위함이아니다.이작업은미처기억하지못한슬픔을회억하기위함이며,지나간시간이다시질문될수있는여지를마련하기위함이다.
(중략)폭력은타자에의해영원히기억되지만,폭력은스스로누군가를기억하지는않는다.폭력은도리어누군가의기억을지우려할뿐이다.지나간일을기억하지않는것은폭력이다.기억되지못한슬픔은없다.다만기억하지못한슬픔만이있을뿐.비극은시간의탓이아니다.슬픔은언제까지나우리의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