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이사라진순간,비로소‘나’라는사람이보이기시작했다.
인생의정점에서내려온뒤에보이기시작한,명함너머의삶에관한이야기.
우리에게명함은단순한종이한장이아니다.이름과직함,소속과직책이적힌작은종이한장이때로는그사람이누구인지설명하고,그가어떤일을해왔는지증명하며,다른사람과의관계를만들어주기도한다.한국전력공사에서시작해글로벌기업으로활동영역을넓히고SalesManager,Director,CountryLeader에이르기까지수십년의경력을쌓은저자에게도명함은전문성과사회적위치를보여주는중요한표식이었다.
하지만정년퇴임을앞두고책상을정리하면서저자는자신을오랫동안설명해온그명함을하나씩내려놓게된다.명함이사라진다는것은단순히종이한장을버리는일이아니었다.회사를중심으로이어졌던관계와역할,직함이라는사회적외피를내려놓고‘회사밖의나’를마주하는일이었다.오랜시간준비한끝에실제로명함이사라졌을때,저자가마주한것은상실감만이아니었다.오히려휴대전화의진동이잦아든고요속에서전문가라는긴장을내려놓고한사람의인간으로살아갈수있는새로운자유를발견한다.
저자는자신의삶을‘진동’이라는공학적개념으로바라본다.거대한회전기계가정지상태에서움직이기시작하면특정한임계속도에서격렬한진동을일으키지만,그구간을지나면다시안정된정상상태에도달한다.저자에게청춘과직장생활은바로그런시간이었을것이다.끊임없이새로운환경에뛰어들고,자신의한계를넘어새로운역할을맡으며,때로는흔들리면서도앞으로나아갔다.그리고명함을내려놓은지금,그는그동안의진동이삶의파괴가아니라다음단계로나아가기위한과정이었음을돌아본다.
이책에서특히눈여겨볼부분은성공이후의삶이다.사회적으로높은위치에올라서는것만큼이나그자리에서내려오는과정역시한사람에게커다란변화이기때문이다.저자는퇴임을준비하며연락처와자료를정리하고,오랫동안회사와함께했던삶에서조금씩거리를둔다.그리고명함이사라진뒤에는이전과는전혀다른일상이시작된다.글을쓰고,서예를하고,사군자를그리고,색소폰을연주하면서그동안바쁜직장생활속에서뒤로밀어두었던자신의관심과감각을다시발견한다.
직함과소속,성과가한사람의가치를모두설명해주는것은아니다.오히려그것들이사라지고난뒤에도곁에남는가족,사람과의관계,좋아하는일,그리고자기자신을마주하는시간이삶을더욱풍요롭게만들수있다.저자는평생무언가를채우며살아왔지만,명함을내려놓은뒤에는비움이주는자유를경험한다.
치열한직장생활을지나은퇴를준비하는사람에게는자신의다음삶을생각하게하고,이미직함을내려놓은사람에게는지금의삶을다시바라보게하며,아직사회생활을한창이어가는사람에게는‘나는무엇을위해달리고있는가’를돌아보게하는책.《명함이사라진날》은한엔지니어가지나온삶의기록이면서,동시에직업과지위를넘어한인간으로서자신의삶을다시발견해가는진솔한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