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에선 파도 소리가 난다

서랍에선 파도 소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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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서랍은 무엇을 넣으라고 정해주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보다 작기만 하다면 낡은 오카리나부터 해변의 조개껍데기까지 무엇이든 들어갈 수 있습니다. 도무지 내용물을 예상할 수 없고, 그 안에는 오직 나만이 내력을 아는 은밀한 기억의 지층이 쌓입니다. 이 지층은 닫혀 있다고 해서 굳어버리는 화석이 아닙니다. 서랍이 열릴 때마다 기억들은 깊은 곳까지 헤집어지고 뒤섞이며, 그 속에서 작은 바다가 되어 쉼 없이 출렁입니다. 그리고 그 파도에 휩쓸려 잊고 있었던 것들이 불쑥 떠오르기도 합니다. 닫힌 서랍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파도 소리. 생의 다채롭고 역동적인 기록들을 이제 세상 밖으로 꺼내 놓습니다.
저자

김예준

강한가운데모래알을가라앉혀섬(河中島)을만들고그위에살며쓰고싶습니다.‘표류기’의김씨처럼.

목차

1부봄볕으로하얗게물들해풍
山寺의가을
12월
겨울비
겨울의로뎀나무
가로수
자장가
院洞
鹽藏
立春
커튼콜:3월
봄비처럼
오,猫한것
소녀와화분
아라연꽃
회광(回光)

2부쉬이밟을수없는해저
호수
세수
버스
지푸라기
날개
가을모기
모기향
실타래
손톱
카나트(Qanat)
영원과삶
봉안실
여행자
責任
달력
퇴근
잊어버리고싶은것들
눈사람의밤
식탁
연금술
달과6펜스
이카로스
깃발

3부무지개물고기의비늘은모두물고기
jenga
puzzle
태양계
괜찮으시다면,같이
봄의한가운데
역광
겨울햇살
다음날,아침
배웅
Instagram
투썸플레이스
프루스트
슬픈歡送
버스안에서
갈림길
문진

수족관
Tea-bag

출판사 서평

서랍속의파도를꺼내어닦는시간의연금술

김예준시인의첫시집『서랍에선파도소리가난다』는시인의말에서고백하듯“어디가됐든/문장은흘러가야한다”라는단호한의지에서출발한다.이시집은내면의‘서랍’깊숙이간직해온기억과감정들을꺼내어,그간묻어있던‘소금기’와‘이끼’를정성껏닦아내고새로운무늬를입히는정교한기록이다.

시집은봄볕에물들해풍에서시작해(1부),깊은해저로의침잠을거쳐(2부),관계의회복인무지개물고기(3부)로나아가는유기적인흐름을보여준다.특히「지푸라기」에서보여주는“바닥에발이닿아야한다/가라앉아야/떠오를것아니냐”는선언은삶의하강국면에서길어올린내면적에너지를상징한다.그러나이시집은개인의부상(浮上)에만머무르지않는다.각자의서랍속에간직해온파도소리를투명하게공유하며서로의존재를확인하는‘공명(Resonance)의장’으로기꺼이나아간다.

전체적으로시인의비유는일상의사물을생소하고도생생한존재로탈바꿈한다.‘모기향’을“불붙은달팽이”로형상화하거나,‘봉안실’의유골함을“80여년의시간이담겨있는모래시계”로바라보는시선은사물의본질을꿰뚫는구체적인묘사의힘을드러낸다.또한「자장가」에서보여주는“바구니한가득땀방울소리/달그락달그락”과같은표현은시인의언어가얼마나세밀하게삶의현장을포착하고있는지를증명한다.

시인은자신과세상을향해성찰적이면서도따뜻한말을건넨다.「소녀와화분」에서보여주는“나는마음에듭니다”,“나는따뜻해집니다”와같은고백은독자로하여금시인의내면세계에안심하고발을들이게한다.이러한태도는3부에이르러타인과의관계로확장되는데,일면식없는옆자리승객에게어깨를내어주고,방향이같은그에게‘괜찮으시다면,같이’란말로동행을제안한다.그리고‘버스안에서’아이에게버스벨을양보하는장면은“방향이같아/아이의손끝을따라/나도일어섰다”라고말하는주체와,‘아이’가삶의궤적을공유하며연대하는순간을포착해낸다.

시인은또한감정의과잉을경계하며언어를절제한다.대표적으로「슬픈歡送」에서슬픔을직접적으로토로하기보다“안개구름속에/가려진해를기다릴/당신을앞에두고/어떻게눈물을보이겠어요”라며슬픔의범람을막고정서의파고를낮춘다.그리고「責任」에서는책임의그무게를“페가수스의입에물린/고삐이고채찍”이라치환하며시어의밀도를높인다.

마지막으로시인은‘수족관’의투명한벽을통해“서로의표정과손짓을보고어느정도마음을헤아릴수”있음을강조한다.소리는직접닿지않아도“벽을사이에두고손을‘맞댈수’있다는사실”에주목하는시인의시선은,이시집이지향하는소통이결코화려한수사가아닌내밀한진심의확인임을보여준다.『서랍에선파도소리가난다』는개인의서랍속에잠겨있던파도소리를광장으로불러내어,우리모두는각자만의바다를품고있음을깨닫게하는온기가득한편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