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는소설이아니라희곡이다!
원작의정체성과리듬을고스란히살려낸완역본
독일인들이성경다음으로중요하게여기며자랑스러워하는책,독일고전주의문학의정수이자서양근대문학을대표하는책,『파우스트』는세계문학사상가장위대한작품으로손꼽히는문화유산이다.괴테는12,111행에이르는이대작을20대초에쓰기시작해서60여년간더하고고치기를거듭하다가83세의나이로눈을감기직전에완성했다.그는각계각층의생동감있는어휘에고대와근대를넘나드는문학적양식을입히고,그리스·로마신화,민간설화,철학사상을담아서인류사에길이남을드라마를창조했다.이작품에는중세봉건사회에서근대시민사회로넘어가는시기의사상적배경,곧인간중심주의와맹목적발전주의에대한근본적성찰이담겨있다.
우리나라에서는일제강점기때인1920년,일본유학생최승만(필명극웅)이잡지『현대』에한단락을번역해서처음소개한뒤로수많은역본이출간되었다.각각의역본마다추구하는방향이있고,그런다양성이모여우리문학계를풍성하게만들어왔다.그렇다면새로번역한현대지성클래식의『파우스트』에는어떤특징이있을까?
인문학자이자도이치어권대표번역자인안인희는원작의정체성과리듬에주목했다.『파우스트』의장르는운문극(韻文劇)이다.즉,산문이아닌운문이며,소설이아닌희곡이다.이에따라시적표현을단지이해하기쉽도록평범한산문으로풀어옮기기보다는,가장적절한우리말단어를리듬감있게배치함으로써,원문에함축된의미를전달하고운율과여운이고스란히느껴지도록했다.특히일상에서쓰는입말과격식을갖춘말,허세섞인현학적표현,비속어까지활용해등장인물의성격과심리,서로의관계를현실적으로묘사했다.예를들어,메피스토펠레스는첫만남에서파우스트를“나리”라고부르며상전으로대접하는가싶더니,어느순간친구사이에서쓰는말인“du”(“그대”라고번역)로넘어가면서은근슬쩍말을놓는다.이후에도그는반말과존댓말을섞어쓰고때로는비아냥거리면서둘이가까운친구사이라는것을알려준다.지금껏둘의관계를윗사람과아랫사람으로설정하고호칭을통일한텍스트에익숙했던독자들은고정관념에서벗어나작품을다양한각도로바라볼수있게된다.
“인간은노력하는한헤매기마련이지!”
모순투성이삶에서도좌절하지않고
진정한자기실현의길로나아갈힘을주는고전
원하는것을이루어주겠다고하면서악마가접근한다면,그제안을단박에뿌리칠수있는사람이몇이나될까?하지만역자의말마따나그런행운(?)은아무에게나찾아오지않는다.자기의잠재력을최대한실현하고자치열하게살아가는영혼이라야악마도비로소관심을둘테니까.
주인공파우스트가바로그런사람이었다.그는당대의학문에두루통달했고심지어마법까지익힌대학자였지만,인간의능력에한계가있음을깨닫고좌절한다.이런그에게메피스토펠레스가나타나솔깃한제안을한다.이땅에서욕망을채우도록도와주는대신만족을느끼는순간영혼을가져가겠다는것.파우스트는당장계약을맺고,그동안감옥이라여겼던서재를벗어나세상으로나아간다.마법의힘으로젊어지기까지한그는아름다운소녀마르가레테와사랑에빠진것을시작으로온갖쾌락을경험해나간다.신화속세계를여행하고,고대의가장아름다운미녀헬레네와결혼하고,전쟁영웅으로이름을날리다가나중에는한지역을다스리는영주가된다.그렇지만그는만족하지않고더많은것을손에넣고자애쓴다.이런모습에서욕망을향해질주하는인간의본성에대한괴테의통찰과문제의식이잘드러난다.이는또한현대인의자화상이기도하다.
그렇다면파우스트는단지육욕,황금,권력,명성을추구한것일까?물론아니다.그는아리스토텔레스가말한‘엔텔레케이아’,즉자기속에지닌목적과가능성을완전히펼치려고한다.때로는악행을저지르고,잘못된판단을내리기도하고,한순간의감정때문에일을그르치기도하지만,그때마다포기하지않고자기실현을위해쉼없이달려간다.
높고고귀한영역에서얻는성취감과가장낮은자리에서느끼는고통을모조리맛보고도만족을모르던파우스트의욕망은마침내공공선(公共善)을추구하는순간멈춘다.악마와맺은계약대로라면이제그에게남은것은파멸뿐이다.하지만여기서반전이일어난다.초월적인사랑의힘으로파우스트는구원받는다.타인에대한헌신과애정이악마와의계약이라는제약을뛰어넘어그가추구하던높은영역에도달하도록이끈것이다.오류와방황속에서도목표를향해나아가는파우스트의모습은모순투성이현실에서좌절하지않고진정한자기실현의길로나아가도록우리를격려한다.
한점한점이예술품인거장들의명화,
괴테가직접그린희귀본일러스트,
나무와숲을함께보여주는각주와해제수록
“인간에게는눈으로본것을말로표현하려는욕망이있다.하지만다른사람이말한것을눈으로보려는욕망은그보다더강렬하다.소설이나시에등장한인물을눈앞에보여주는화가를우리는환영한다.”_괴테
『파우스트』제1부가출간되었을때만해도내용을그림으로표현하는것은불가능하다고여겨졌다.하지만이책은수많은화가들의창작욕에불을댕겼고,단순한장식기능을가진삽화를뛰어넘어그자체로예술품인그림들이등장하기시작했다.특히외젠드라크루아가그린석판화는괴테에게“나도미처몰랐던것을발견하게해주었다”라는격찬을받았다.현대지성클래식의『파우스트』제1부에는들라크루아를비롯해제임스티소,아리셰퍼,외젠시베르트,아담보글러등미술사에한획을그은거장들이독창적인화법으로재해석한컬러명화를수록했다.제2부에는난해한내용을사실적으로묘사한프란츠크사버짐의작품들을넣었다.대가들의명화는감성과상상력을자극하면서연극을관람하듯작품을입체적으로감상하게한다.또한괴테가직접그린지령의모습과무대장면은작가의창작의도를보여주면서,작품을깊이있게이해할수있도록해준다.연보에는괴테의발자취를돌아볼수있는시각자료를수록했다.
『파우스트』는희곡이면서분량이방대하다보니줄거리를단박에파악하기어렵다.한달음에다읽기도어렵거니와잠시내려놓았다가다시펼치면기억이가물가물해서앞으로돌아가기일쑤다.특히제2부는제1부에비해널리알려지지않았고,문학을전문적으로공부한사람들에게도낯선내용이다.그래서독자가수월하게통독하고감상할수있도록해제뒤에상세한줄거리를덧붙였다.또한원뜻을왜곡하거나중요한내용을그냥지나치지않도록537개의친절한각주를달았다.이를통해독자들은그동안벼르고별렀지만책을집어들기가주저되었던『파우스트』를수월하게완독하는기쁨을누릴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