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들어가는 글
울타리 없이 일하다 보니 바람이 불거나 비가 내리면 춥기도 했고, 외로움에 눈물 흘린 적도 있다. 그러나 조직이나 기관에 속에서 일하다 보면 놓치기 쉬운 일들이 눈 밝게 볼 수 있었고, 스스로 모든 책임을 지면서 튼튼하고 씩씩해졌다. 시니어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에 참여하다 보니 무엇보다 다양한 어르신들을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노년 이야기가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요즘이다. 그러나 잘 늙어가는 길을 찾기란 점점 더 어렵게만 느껴진다. 사람들은 노년을 여러 가지 사회현상 가운데 하나로 보거나 아니면 통계상의 숫자로만 취급하려 한다. 또한 단순한 생물학적 변화로만 보기도 하고, 경제적인 측면만 따지면서 우리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짐으로 여겨 일어나려고만 한다. 사실 노년이 우리 인생의 끝이라면, 그래서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다면 잘 늙으려 애쓰는 일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저 되는 대로 살다가 생을 마치고 이곳을 뜨면 되니까. 그러나 우리들 생의 마지막 시기인 노년에는 분명 삶의 숨겨진 의미가 담겨 있다.
죽음은 두말할 나위 없이 인간에게 커다란 위협이다. 삶이 선이라면, 죽음은 악이다.‘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도 있지 않는가. 현재의 삶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늙지 않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불로장생(不老長生)’의 인류의 꿈은 첨단과학의 기술을 통해 실현될 날도 머지않은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주위에는 여전히 여러 가지 병에 시달리면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에는 유전공학, 생명과학, 나노공학 등을 통해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노화 과정을 간섭하여 이 과정을 상당 부분 늦추거나, 노화로 인한 쇠퇴현상을 중단시키거나 개선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환상적인 여행” 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이 유토피아 여행은 노화과정과 생물학적 질서에 대한 인간의 개입으로 시작한다. 우리가 꿈꾸고 있는‘수명연장’을 한편으로는 이제까지 자연스럽게 기대한 수명을 훨씬 더 상회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예속되어 있는 진화과정에 개입한다는 점에서 급진적이고 철저하다. 120살을 훨씬 넘어 200살까지 살 수 있다면, 그것은‘영생(永生)’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의‘장생(長生)’임에 틀림없다. 과학과 기술의 힘으로 인간의 자연적인 능력을 넘어서고자 하는 포포스트휴머니즘을 표방하는 몇몇 과학자들은 이미‘불멸성(Immortality)’이 실현될 수 있다고 예견한다.
한편, 여기 슬픈 정치 시나리오가 하나 있다. 한국 사회의 미래 아포칼립스 중에 하나는 인구고령화이다. 2015년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비중이 73%, 노인인구 13%였다. 2035년에는 각각 60%, 29%, 2055년에는 각각 52%, 39%이다.
국민연금도 소진되어 간다. 저성장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생상가능인구가 노후대비가 부족한 노인인구를 부양해야 하는 것이다. 갈등의 지점은 명확해 보인다.
국가가 우리에게 해준 게 뭐 있냐는 생산가능 인구와 그래도 믿을 건 국가뿐이 없다는 노인인구의 갈등이다. 아마 미래의 일곱자 선거공약의 끝판왕은 보건복지부 폐지가 될지 모른다. 갈라치기 세대 포위에 정치적 효능감을 느낀 정치권이 이 카드를 만지작거리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국민의 리더는 칼날 위에 걷는 긴장감을 가지고 국민의 감정보다 반보 앞서 나가야 한다. 갈등의 한복판에 같이 칼을 휘두를 사람은 키보드 워리어((keyboard warrior) 키보드 워리어(keyboard warrior) 또는 키보드 전사, 인터넷 전사는 인터넷 공간에서 말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는 인터넷 세계의 익명성을 이용해 온라인상에서 직설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데, 현실에서 원래 성격이 직설적인 사람들도 있겠지만 인터넷의‘익명성’이라는 특수성을 이용해서 현실에서는 자기 의견 하나 내세우지 못하고 싫은 소리 한번 하지 못하는‘예스맨’이 이같은 키보드 워리어가 되는 경우도 많다. 아무도 누가 썼는지 모르는 화장실 낙서에 음담패설이나 가십이 적혀있는 것과 같은 원리인 것이다.
중에서 찾으면 그만이다.
사람이 늙지 않은 채 영원한 젊음으로 머문다면 어떻게 될까. 노년 속에 우리들 생의 신비와 삶의 이치가 숨겨져 있음을, 그동안 부모님을 비롯하여 수없이 많은 어르신들이 몸으로 마음으로 영적인 성숙함으로 가르쳐주셨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선물이라는 것을, 노년 그 자체가 무수히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인은 선물이며, 몸소 가르치는 스승이다. 그래서 노인에 대한 거부와 외면을 넘어 노년을 있는 그로 받아들이고 더불어 사이좋게 살아갈 수 있을지를 늘 고민해 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아 온 무수히 많은 노인들. 모든 것을 세월 속에 빼앗아버린 듯 아무런 바람도 없이 멍한 눈의 노인을 만날 때마다‘무슨 재미로 살까?’‘무슨 의미로 삶을 지속할까?’라는 질문을 던졌었다.
그동안 우리들이 접한 것은 노년에 대한 가르침만 있었지 노년을 삶을 풍요롭게 할 담론(談論)은 빈약했다. 노년에 대한 담론이 풍성해진다면 우리의 중년과 청년의 삶도 훨씬 풍요로워지는 것 아닌가? 어차피 노년은 아직 우리 모두가 종착역까지 가보지 않은 길, 그러기에 우리가 지금부터 걸어가는 길이 모두 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노년을 살고 계신 분들과 또 앞으로 노년을 살아가게 될 사람들이 다 같이 운동화 끈을 단단히 조여 매고 내가 만든 졸고(拙稿)『행복한 노년을 준비하자』를 읽으면서 아름다운 노년에 이르는 길을 찾아 함께 떠났으면 좋겠다.
2023년 9월
海東 김용수
울타리 없이 일하다 보니 바람이 불거나 비가 내리면 춥기도 했고, 외로움에 눈물 흘린 적도 있다. 그러나 조직이나 기관에 속에서 일하다 보면 놓치기 쉬운 일들이 눈 밝게 볼 수 있었고, 스스로 모든 책임을 지면서 튼튼하고 씩씩해졌다. 시니어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에 참여하다 보니 무엇보다 다양한 어르신들을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노년 이야기가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요즘이다. 그러나 잘 늙어가는 길을 찾기란 점점 더 어렵게만 느껴진다. 사람들은 노년을 여러 가지 사회현상 가운데 하나로 보거나 아니면 통계상의 숫자로만 취급하려 한다. 또한 단순한 생물학적 변화로만 보기도 하고, 경제적인 측면만 따지면서 우리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짐으로 여겨 일어나려고만 한다. 사실 노년이 우리 인생의 끝이라면, 그래서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다면 잘 늙으려 애쓰는 일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저 되는 대로 살다가 생을 마치고 이곳을 뜨면 되니까. 그러나 우리들 생의 마지막 시기인 노년에는 분명 삶의 숨겨진 의미가 담겨 있다.
죽음은 두말할 나위 없이 인간에게 커다란 위협이다. 삶이 선이라면, 죽음은 악이다.‘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도 있지 않는가. 현재의 삶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늙지 않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불로장생(不老長生)’의 인류의 꿈은 첨단과학의 기술을 통해 실현될 날도 머지않은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주위에는 여전히 여러 가지 병에 시달리면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에는 유전공학, 생명과학, 나노공학 등을 통해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노화 과정을 간섭하여 이 과정을 상당 부분 늦추거나, 노화로 인한 쇠퇴현상을 중단시키거나 개선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환상적인 여행” 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이 유토피아 여행은 노화과정과 생물학적 질서에 대한 인간의 개입으로 시작한다. 우리가 꿈꾸고 있는‘수명연장’을 한편으로는 이제까지 자연스럽게 기대한 수명을 훨씬 더 상회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예속되어 있는 진화과정에 개입한다는 점에서 급진적이고 철저하다. 120살을 훨씬 넘어 200살까지 살 수 있다면, 그것은‘영생(永生)’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의‘장생(長生)’임에 틀림없다. 과학과 기술의 힘으로 인간의 자연적인 능력을 넘어서고자 하는 포포스트휴머니즘을 표방하는 몇몇 과학자들은 이미‘불멸성(Immortality)’이 실현될 수 있다고 예견한다.
한편, 여기 슬픈 정치 시나리오가 하나 있다. 한국 사회의 미래 아포칼립스 중에 하나는 인구고령화이다. 2015년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비중이 73%, 노인인구 13%였다. 2035년에는 각각 60%, 29%, 2055년에는 각각 52%, 39%이다.
국민연금도 소진되어 간다. 저성장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생상가능인구가 노후대비가 부족한 노인인구를 부양해야 하는 것이다. 갈등의 지점은 명확해 보인다.
국가가 우리에게 해준 게 뭐 있냐는 생산가능 인구와 그래도 믿을 건 국가뿐이 없다는 노인인구의 갈등이다. 아마 미래의 일곱자 선거공약의 끝판왕은 보건복지부 폐지가 될지 모른다. 갈라치기 세대 포위에 정치적 효능감을 느낀 정치권이 이 카드를 만지작거리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국민의 리더는 칼날 위에 걷는 긴장감을 가지고 국민의 감정보다 반보 앞서 나가야 한다. 갈등의 한복판에 같이 칼을 휘두를 사람은 키보드 워리어((keyboard warrior) 키보드 워리어(keyboard warrior) 또는 키보드 전사, 인터넷 전사는 인터넷 공간에서 말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는 인터넷 세계의 익명성을 이용해 온라인상에서 직설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데, 현실에서 원래 성격이 직설적인 사람들도 있겠지만 인터넷의‘익명성’이라는 특수성을 이용해서 현실에서는 자기 의견 하나 내세우지 못하고 싫은 소리 한번 하지 못하는‘예스맨’이 이같은 키보드 워리어가 되는 경우도 많다. 아무도 누가 썼는지 모르는 화장실 낙서에 음담패설이나 가십이 적혀있는 것과 같은 원리인 것이다.
중에서 찾으면 그만이다.
사람이 늙지 않은 채 영원한 젊음으로 머문다면 어떻게 될까. 노년 속에 우리들 생의 신비와 삶의 이치가 숨겨져 있음을, 그동안 부모님을 비롯하여 수없이 많은 어르신들이 몸으로 마음으로 영적인 성숙함으로 가르쳐주셨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선물이라는 것을, 노년 그 자체가 무수히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인은 선물이며, 몸소 가르치는 스승이다. 그래서 노인에 대한 거부와 외면을 넘어 노년을 있는 그로 받아들이고 더불어 사이좋게 살아갈 수 있을지를 늘 고민해 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아 온 무수히 많은 노인들. 모든 것을 세월 속에 빼앗아버린 듯 아무런 바람도 없이 멍한 눈의 노인을 만날 때마다‘무슨 재미로 살까?’‘무슨 의미로 삶을 지속할까?’라는 질문을 던졌었다.
그동안 우리들이 접한 것은 노년에 대한 가르침만 있었지 노년을 삶을 풍요롭게 할 담론(談論)은 빈약했다. 노년에 대한 담론이 풍성해진다면 우리의 중년과 청년의 삶도 훨씬 풍요로워지는 것 아닌가? 어차피 노년은 아직 우리 모두가 종착역까지 가보지 않은 길, 그러기에 우리가 지금부터 걸어가는 길이 모두 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노년을 살고 계신 분들과 또 앞으로 노년을 살아가게 될 사람들이 다 같이 운동화 끈을 단단히 조여 매고 내가 만든 졸고(拙稿)『행복한 노년을 준비하자』를 읽으면서 아름다운 노년에 이르는 길을 찾아 함께 떠났으면 좋겠다.
2023년 9월
海東 김용수
[POD] 행복한 노년을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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