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열망이 온갖 실수가 - 문학동네시인선 210

온갖 열망이 온갖 실수가 - 문학동네시인선 210

$12.00
Description
“사랑은 절찬 상영 방영 공연 대유행중이므로
쿵쿵쿵쿵쿵 하고 두 팔을 힘차게 교차하고
킹콩이 되고.”

고통받고 흔들리면서도 웃고 농담하며
생명 쪽으로 나아가는 우리들의 심장 소리
권민경 세번째 시집 『온갖 열망이 온갖 실수가』 출간!
문학동네시인선 210번째 시집으로 권민경 시인의 『온갖 열망이 온갖 실수가』를 펴낸다. 아픈 몸을 살아내며 길어올린 치열하지만 명랑함을 잃지 않는 목소리를 담은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 꿈을 꾸지 않고 오히려 실현하기 위해 삶을 탐구하는 기록을 펼쳐 보인 『꿈을 꾸지 않기로 했고 그렇게 되었다』 이후 펴내는 세번째 시집이다. 박상수(시인,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권민경 시인이 첫 시집과 두번째 시집을 출간한 뒤 펴낸 산문집 『등고선 없는 지도를 쥐고』(민음사, 2023)에서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사실을 고백한 것을 언급하며 “실존과 완전히 분리하여 그의 시를 읽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한다. 이번 시집에서도 “잘린 장기와 춤은 어디로 사라졌니”(「자연-뛰는 심장 어디로」) 같은 구절 등에서 시인이 그리는 아픈 사람의 정체성이 감지된다. 하지만 방점은 고통에 대한 사실적 묘사가 아니라 고통에서 거리를 둔 채 한 발짝 뛰어오르게 하는 시니컬한 유머에 찍혀 있다. 이를테면 “눈물은 나의 굿즈”(같은 시)라는, 키치하면서도 상상력을 자극하는 유머가 그것이다. 고통받고 흔들리는 삶 속에서도 “웃고 농담하며 생명 쪽으로 나아가는”(해설) 생생한 활력이 넘실거리는 이번 시집은, 생의 열망에 들떠 무수하게 벌이는 실수들까지 뜨겁게 끌어안는 너른 품을 보여주며 읽는 이에게 울림 큰 위로를 전해준다.
저자

권민경

저자:권민경
2011년동아일보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베개는얼마나많은꿈을견뎌냈나요』『꿈을꾸지않기로했고그렇게되었다』,산문집『등고선없는지도를쥐고』『울고나서다시만나』가있다.

목차

시인의말

1부이동그라미에대해
닳은공/이동그라미에대해/밀수/팽창하는우주/우주전쟁/고행자K2/고행자K1/세라믹클래스

2부대자연
자연-꿩/자연-사춘기/자연-밤의중간/자연-생태통로/자연-진단/자연-태반을먹는짐승들/자연-종이책의역사/자연-목욕탕/자연-층간소음/자연-백마/자연-도래지/자연-복수/자연-능소화/자연-수태고지/자연-별/자연-나무의무쓸모/자연-미인/자연-X-선/자연-뛰는심장어디로/자연-번견

3부죽을너와부활한나를위해,춤
종일/저주기계/독/권-4월16일/반지하/2기팬클럽/건전가요-깊은산으로/단지-생일/잠깐있었다/허니문/심경고백/보름-구멍세개/내가말할고통은이런게아닌데/언젠가의순번대기표

4부말의기원,맘의끝
시인이라는유행직장/줄무늬셔츠를입고/눈뜨라고부르는소리/붓돌기/천일동안고백/어린이미사3-봉제인형성당/백업싱어/도서관/별-시의기원/백스페이스/침을뱉는습성이있습니다.조심하세요!!/공든탑/시상식/팀파니연주자여내게사랑을

해설|뛰는심장팬클럽
박상수(시인,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눈물은나의굿즈.
아무도있었다는것을모르게사라져버리기.
잘린장기와춤은어디로사라졌니.

경주마가죽으면그를아끼던사람이편자를취한다.
넌어디로갔니.참담한일을당하면말을잃어버린다고하는데
나는아무것도아닌사람.아무일도겪지않았다.
안이아무리아파도오리역을지나구파발에가도나는직립한다.

‘시인이하도많아서내가사라져도될듯함’

조각난나의말.

뛰어내렸으나솟구쳐올랐다.
_「자연-뛰는심장어디로」에서

1부‘이동그라미에대해’는몇몇시에서나타나는‘원’의이미지를통해삶의순환성을사유하는듯하다.시집의문을여는「닳은공」을보자.“가죽이너덜너덜해질때까지”“열심히”공을튀기는“우리”의“땀냄새와열기”는우리네삶이“서브리시브토스앤토스”라는매일의반복으로이루어져있음을상기시킨다.하지만권민경이그리는‘원’의이미지는삶의반복을의미하는것처럼보이지는않는다.「이동그라미에대해」의시적화자는글을쓰는사람인데,짧게쓰기를어려워하고“꽉막힌결말”을내지못한다.“일말의다정함무의식적인친절들”이“없는장기들”을대신해“뼈와살”이되어준몸으로“영원히살아있는채로있고만싶”다고,“이기적으로영생하고싶”다고고백하는화자는출발점과끝점이같은동그라미의순환에서벗어나고싶어하는것처럼보인다.권민경이그리는동그라미는둥글게닫히지않는,처음에서영영멀어지기를소망하는포부로서의‘원’이다.

나에게맞는지알지도못한채
나는어느샌가나를입고
뻘짓을하고있다
선생님이무서운흙을물레에얹고
빙글빙글돌리는순간
난,나는
허공에손을허우적거리며
보이지도않는걸돌리는시늉한다

차본다
_「세라믹클래스」에서

한편2부‘대자연’은‘자연’연작시이다.시인은편집자와의미니인터뷰를통해자연이란“우리의배경,우리삶,결국삼라만상”이라고대답한바있다.1부에서삶의방식에대한시인의태도를엿볼수있다면,2부에서삶의근원적순간을포착하는시인의깊이있는시선을들여다보게된다.그시선이향한곳은꿈속이나비현실이아니라천변이나학교,신도시,목욕탕등이라는점에서지극히현실적이다.자칫현학적일수있는주제를담은이연작시가높은공감을불러일으키며생생하게다가오는이유이다.

한사랑이끝나는동안나는넋을놓고앉아있었다
천변엔왜이렇게사람이많을까개가많을까개를데리고
나오지않은사람의집에고양이가있을까상상하며
저물녘을맞았으며
이것이밤의시작인것이
분명했다
_「자연-밤의중간」에서

학교에서도망쳐서온곳은겨우집
담임도그걸알고있었다어차피애들이할짓은빤하다
며갈곳도없다며

온갖학생들이굴러나오고
온갖심술들이싹을튀우고
온갖열망이온갖실수가

(……)

잘보세요자학과자책의시간을견뎌온
사과같은내얼굴
사과위에사과위에사과

몇살부터몇살까지로특정할수없는가슴아픈그림들
온갖온갖온갖낮들
_「자연-사춘기」에서

3부‘죽을너와부활한나를위해,춤’은죽어사라진사람들을그리는시들로채워져있다.“아홉살에멈춰있는”“종일이”를“영원히있게하려”“시인이되었다고”(「종일」)시인은생각한다.그러므로“내가아는건네가아니라너의죽음뿐”이지만,“죽은사람도생일이있어매해찾아”(「권-4월16일」)오기에“목숨에책임감느끼며/나에게다가오지않을손을믿습니다”(「허니문」)라고고백한다.죽음은삶의반대편에있는것이아니라삶과함께있다는인식이엿보이는이러한시들을통해1부와2부에서보여준삶에대한태도와존재론적인사유에서한걸음더나아가죽음까지끌어안으려는안간힘이눈물겹다.
하지만권민경은시에서그러한숭고함만을강조하지는않는다.“나한테해를끼친사람은피해를본다/고믿었던적있다”“하지만다정한사람도아프고못된사람도아프고/앞뒤가리지않는불행을과연저주라할수있을까”(「저주기계」),“제사상받으러온조상님께말합니다/나를왜낳으셨나요왜내단초가되셨어요”(「심경고백」)와같은대목처럼아무리멀쩡한이도결국에는아프고불행해지기마련인삶의순리앞에서좌절과분노를내비치기도한다.더나아가권민경은죽음조차특유의시니컬한위트로표현하면서죽음을두려워할것이아니라웃어넘길수있는것으로만든다는점또한주목할만하다.

착한마음으로이야기를들어주려는사람에게윽박지르고
영원히나는윽박지르는자세로
버스에올라타고창문을내다보고기스난부분을쓰다듬고아이스크림을먹을때도
늘윽박지르는그대로이다
여러번붙여넣기를한
목덜미가뜨거워지고
모가지가달랑달랑

아빠아빠아빠몰아붙이는마음
이분의일확률로물려받은나의병
좋아하지않을이유가없다
_「내가말할고통은이런게아닌데」에서

4부‘말의기원,맘의끝’은시쓰기에대한시를노래한다.“놀랍게도/시인도노동의기쁨을안다/한참이빨을까고집에돌아가는길”(「시인이라는유행직장」),“나는최신형셰에라자드/어제는독침을쏘았네오늘은세무사와서커스내일은시민운동장에갈것이네”(「천일동안고백」).시인의시쓰기는종내“사랑을사랑을노래하고/불행과실연을노래”(「백업싱어」)하는대중가요처럼느껴지기도한다.“자꾸시가아닌시의목소리가떠오”른다고말하는시인은,시쓰기란현실에서울고웃는사람들의목소리,그“사이렌”과“단말마”(같은시)에귀기울이는것이라고말하는듯하다.
시집의마지막에수록된「팀파니연주자여내게사랑을」은시인이이번시집에서보여준시세계의총체를보여주는강렬한시다.

당신은부피를갖고질량을갖고무게와길이로수치화된다
존재감은모든것을퉁치는말이지만
사랑이여사람을어떻게정의할것인가
아니,아니,사람이여사랑을어떻게정의할것인가

팀파니를둥둥울리며걸어갑니다-그건불가합니다
둥둥울리며공간을가득채웁니다귓구멍으로들어와해골을공명합니다뇌도자극합니다가능합니다

(……)

팀파니주자여찢어진가슴을더두들겨찢어주시고
새자루에새술담듯새악기에새사랑과새영혼과
그모든일련의질량없는것들가득담아주소서

사랑이여담겨주소서
남의가죽이아닌나란자루에
우승기원으로담근과일주에
연주만을위해지어진전용홀에
눈구멍속에담긴눈알같은
이지구에
_「팀파니연주자여내게사랑을」

인간이란“부피”와“질량”,“무게”와“길이”로수치화된존재이지만,그런인간이하는사랑이란여전히규정하기어렵다.시인은이러한사랑을“쿵쿵쿵쿵쿵”울리는팀파니소리로묘사한다.“찢어진가슴을더두들겨찢어주시고”“새사랑과새영혼”처럼“그모든일련의질량없는것들”을가득달라고시인은외친다.그때“쿵쿵쿵쿵쿵”은팀파니소리이면서동시에우리의심장소리가된다.“절찬상영방영공연대유행중”인“사랑”을위해언제고“킹콩”처럼일어서는권민경의시를읽으며가슴속의소리에귀를기울일때,우리는이미모두권민경의‘뛰는심장팬클럽’(해설,박상수)에속한것이다.

언젠가바닥에떨어진것처럼무릎도펼수없는힘든시간은다시찾아올수있겠지만‘훼손된나’역시사랑할줄아는권민경의화자라면눈물콧물쓰윽닦고또일어설것이다.그토록힘든시간을통과한뒤에도이와같은건강한자의식과자존감을유지하고있다는것이반갑고고맙다.(……)울고웃으며,기쁜마음으로이소리를따라갈수있을것같다.“소중한것을지키며”,“새악기에새사랑과새영혼과/그모든일련의질량없는것을가득담아”서,쿵!쿵!쿵!쿵!쿵!사랑이여여기오라.영혼이여우리와함께하라.우리가살고있는이지구를뛰는심장소리로가득채우라.쿵!쿵!쿵!쿵!쿵!_박상수,해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