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 속의 사나이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48

상자 속의 사나이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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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안톤체호프

저자:안톤체호프
1860년러시아남부의항구도시타간로크에서해방된농노의자손으로태어났다.잡화점을경영하던아버지의파산으로일가족이모스크바로이주하자고향에홀로남아고학으로김나지움을졸업했다.1879년모스크바대학교의학부에입학하고생계를위해각종유머잡지와신문에필명으로단편을기고하며인기를끌었다.1884년대학졸업후의사로일하면서도집필활동을병행했으며1886년당대유명신문〈신시대〉에단편「추도식」을본명으로발표한이후,보다진지한주제를천착하기시작했다.1887년선보인단편집『황혼녘』으로이듬해푸시킨상을받으며문단의주목을받았다.1890년사할린섬에서3개월간머무르며유형지의실태를조사한일을계기로사회에대한진지한문제의식을갖게된한편,빈민구제와공공의료활동등사회사업에도힘썼다.이후‘현대희곡의아버지’로불리는체호프의대표작이자지금도활발히상연되는4대장막극「갈매기」「바냐삼촌」「세자매」「벚나무동산」을발표했다.1904년지병인폐결핵이악화되어요양차찾아간독일바덴바일러에서마흔넷의나이로숨을거두었다.
이책에는체호프가1884~1903년에발표한중단편중에서열세편을엄선해모았다.유머러스하게때로는통렬하게각계각층사람들의희로애락을그려낸이작품들에는삶과죽음에대한사색과통찰,인간에대한연민과애수가담겨있다.에드거앨런포,기드모파상과함께세계3대단편작가로꼽히는체호프는어니스트헤밍웨이,블라디미르나보코프,레이먼드카버,존치버,앨리스먼로등의작가들에게지대한영향을미쳤다.

역자:박현섭
서울대학교노어노문학과를졸업하고동대학원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상명대학교와서울대학교노어노문학과교수를역임했다.옮긴책으로『체호프단편선』『체호프희곡선』『누구의죄인가』『영화기호학』『영원한남편외』(공역)『무도회가끝난뒤』(공역)『메이예르홀트의연출세계』(전4권,공역)『매일다샤언덕을지나며』(공역)가있고,지은책으로『고전강연7』(공저)이있다.

목차

굴_7
아뉴타_17
반카_27
의사_37
6호실_49
로트실트의바이올린_135
대학생_153
상자속의사나이_163
구스베리_187
사랑에관하여_207
귀염둥이_225
강아지를데리고다니는여인_47
약혼녀_277

해설|우리모두가‘상자인간’이다_311
안톤체호프연보_333

출판사 서평

19세기러시아문학의빛나는전통을계승·발전시키며
단편소설과희곡의새로운경지를개척한작가체호프

러시아문학은19세기에푸시킨,레르몬토프를뒤이어고골과투르게네프를거쳐대문호도스토옙스키,톨스토이에이르기까지황금시대를한창구가했다.그유산을이어받은체호프는세기말을화려하게장식하며19세기를마무리지은작가라할만하다.비록1904년마흔넷의나이로숨을거두면서20세기에활동을오래펼치지못하고세상을떠났지만,일찍이대학신입생시절부터밥벌이를위한글쓰기를시작한이래반평생이넘도록집필에치열히몰두해짧은생애에비하면굉장히방대한작품들을남겼다.
체호프는주로평범한인물들을등장시켜,일상의단면을포착해삶의진실에다가가며‘열린결말’로상상의여지를남기는단편에일가견이있었다.그는“간결함은재능과자매지간이다.사람들을지루하게만드는비결은그들에게모든것을말해주는데있다”고하면서짧지만긴여운을남기는이야기의가치와미학을스스로구현하고자했다.가볍고소소한소재를유머러스하게다룬단편뿐만아니라보다긴호흡으로진지하게이야기를풀어나가는중편도여럿발표했지만장편소설을쓰는데까지나아가지는못했고,그대신희곡창작에꾸준히열정을쏟았다.말년에는그노력의결실로,지금도세계각국에서끊임없이상연되는4대장막극「갈매기」「바냐삼촌」「세자매」「벚나무동산」을내놓으면서훗날‘현대희곡의아버지’로불리며길이명성을떨치게되었다.
현대단편소설형식의확립에결정적인역할을한체호프는단편소설에특히나두각을나타낸후대작가들에게큰영향을미쳤는데,대표적으로‘미국의체호프’레이먼드카버,‘캐나다의체호프’혹은‘우리시대의체호프’앨리스먼로,‘교외의체호프’존치버를위시해어니스트헤밍웨이,블라디미르나보코프,네이딘고디머등을꼽을수있다.

의사이자환자로서살면서도쉼없이창작을이어간
체호프의작가인생을총망라한중단편선

모스크바대학교의학부를졸업한체호프는이후의사와작가활동을병행한것으로도유명한데“의학은나의법적인아내이고문학은나의정부”라고할정도로의학에대한애정과소신을나타냈다.의사로서러시아각지에서각계각층의사람들을접한경험과열악한의료현실에대한비판의식,의사답게인간의생로병사를냉정히관찰하는시선이작품에담겨있으며,실제로작품에여러의사캐릭터가나오기도한다.권태에빠지거나불성실한의사가자주등장하는편이지만,이들과달리체호프는진료는물론이고의료봉사와전염병방역사업에도힘쓰는바람직한의사로활약했다.
의학부를졸업한해인1884년에처음객혈한이후평생결핵을앓은체호프는의사이자환자로,두입장을모두경험했다는점도특기할만하다.어려서부터가난으로고생한데다결핵으로인해육체적고통에줄곧시달려서인지체호프의작품들에는인간의유한한삶과죽음,고통에대한비애와통찰이배어있으며,암담한현실에대한염세적인인식과함께,더나은미래가도래하리란희망을잃지않는낙천적인인식과유머도동시에반영되어있다.

[수록작세부소개]

‘체혼테’시기의걸작들―「굴」(1884)「아뉴타」(1886)「반카」(1886)
체호프는열여섯살때아버지가파산하자고향에홀로남아학비를스스로벌어김나지움을졸업했다.가족들이있는모스크바로가서의학도로공부하면서도집안의가장역할을해야했던그는돈벌이를위해‘안토샤체혼테’등의필명으로단편들을엄청나게많이써서신문과잡지에기고했다.먹고살기위해쓰인이‘체혼테’시기의작품들중에서도걸작이라할만한작품들을이책에실었다.
오래굶은끝에아버지와구걸하러거리로나온여덟살소년의눈에비친현실과환상을그린「굴」에서는주점간판에서‘굴’이란글자를발견하고굴에대해상상하다가정신을잃는소년이겪는심신의변화과정이묘사된다.가난한의대생클로치코프와헌신적인여성아뉴타가동거하는삶의한장면을포착한「아뉴타」에서는아뉴타를여러용도로착취하는클로치코프와말없이순응하는아뉴타의모습을담담히보여준다.「반카」는모스크바의구두장이에게견습공으로팔려와외롭고힘든나날을보내던아홉살소년반카가크리스마스전날밤,고향에계신할아버지께자기를제발데려가달라며애원하는편지를쓴다는이야기다.애처로운반카의가련한호소가심금을울리는이작품은러시아에서「크리스마스캐럴」「성냥팔이소녀」만큼이나유명한크리스마스이야기로알려졌다.
“예술가는등장인물과그의말에대한재판관이되어서는안되며,편견없는증인이되어야만한다”고말한바있는체호프는이초기작품들에서부터등장인물들의언동을담백하게보여줄뿐어떤도덕적판단을내리거나억지감동을유도하지않는다는그만의특징을이미나타내고있다.

‘체호프의의사들’중한사람이등장하는「의사」(1887)
위독한아들미샤를살려달라는옛연인올가의간청을받지만해줄수있는일이없어난감해하는의사츠베트코프의복잡한심경변화를그린작품.올가는미샤가츠베트코프의아들이라주장하지만그는올가가다른두남자에게도그렇게주장해양육비를받는다는걸알고있으므로진실을알수없어분통을터뜨리고,그렇게의문은해결되지않은채로이야기는무겁게막을내린다.

중견작가로서의입지를확고히해준중기의대표작「6호실」(1892)
1886년당대유명신문〈신시대〉에단편「추도식」을본명으로발표한이후로보다진중한주제의작품들을집필하던체호프는1888년푸시킨상을수상하며성공가도를걷게된다.그러나이런상황에서돌연사할린섬으로찾아가3개월간체류하며의사로서유형지의실태를조사하는활동을감행하는데,1890년에이루어진이사할린여행은일종의전환점으로작용해작품세계에도심대한영향을미쳤다.
1892년에발표된중편「6호실」은의욕을잃은현실도피적인의사라긴이그가근무하는병원의정신병동6호실에서모처럼대화가통하는환자그로모프를만나철학적논쟁을벌이곤하다가차츰고립되어간다는이야기다.두인물사이에오가는대화속논쟁적사상적요소들이인상적인작품으로,발표당시에독자들뿐만아니라평론가,동료작가들에게서비상한관심과호응을불러일으켰다.종말을눈앞에둔제정러시아의지식인들을짓누르던폭압적인현실을반영한「6호실」은체호프를깊이있는중견작가로자리매김시킨작품으로도의미가있다.

유대인차별에대한신랄한풍자가담긴「로트실트의바이올린」(1894)
손해보는걸끔찍이싫어하는인색한노인야코프는관짜는일을하면서부업으로바이올린을연주한다.평생함부로대한아내가죽자,이를계기로회한을느끼고평소에혐오하던유대인로트실트에게바이올린을유품으로남긴다.자기잇속을챙기는데급급하고인색하다는,당시의유대인에대한편견을그대로체현한야코프라는인물을통해유대인차별을풍자한것으로,간첩누명을쓰고종신형을선고받은유대인인드레퓌스대위의구명운동을벌이던에밀졸라를체호프가공개적으로지지했다는사실을염두에둔다면더욱흥미롭게읽히는작품이다.

인생의신비를깨우친젊은이의황홀경을그린「대학생」(1894)
신학대학생이베드로가예수를세번부인한이야기를과부모녀와나눈후,과거가현재와연결되어있다는점을깨닫고신비로운행복감에사로잡힌다.다소어두운분위기에서시작해미래에대한기대감으로충만해지면서밝은분위기로마무리되는이이야기는체호프자신이가장좋아하는단편이자그간내놓은소설들이대체로너무비관적이라는평에맞서서일종의‘낙관주의선언’으로내놓은작품이다.

‘소小삼부작’―「상자속의사나이」·「구스베리」·「사랑에관하여」(1898)
표제작「상자속의사나이」는자기몸과소지품을외투,덮개나케이스로감싸고다니며여러무의미한규칙으로자신을속박하는강박적인삶을살아가던‘상자인간’벨리코프를둘러싸고벌어진일들을그린다.주변사람들이합심해이마흔이넘은그리스어교사벨리코프를우크라이나에서온교사의누이와결혼시키려했으나이계획은수포로돌아가고마는데,그전말을동료교사부르킨이함께사냥나온수의사이반이바니치에게들려주는‘이야기속의이야기’형식으로서술된다.뒤이은「구스베리」에서는이반이바니치가자기동생니콜라이가극도로절약하고인색하게군나머지전략적으로결혼한아내마저잃지만구스베리가있는농장을사는꿈을이룬이야기를들려준다.「사랑에관하여」에서는이두사냥꾼이묵게된영지의지주알료힌이지인의아내안나를사랑하게되지만남의가정을감히파괴할수없어단념했다는,이루지못한사랑이야기를들려준다.서로연관된세명의화자가등장해이야기를풀어나가는이세작품은‘소삼부작’이라불리며,공통적으로사회규범이나관습에얽매여서혹은자기스스로만든세계에갇혀서삶을일신시킬기회를놓쳐버린인물들을때론익살스러우면서도우수어린필치로그리고있다.

톨스토이가열렬히찬미한「귀염둥이」(1899)
누군가를사랑하지않고는살수없는귀엽고선량한올렌카가남편을연이어여의는불행속에서도삶을이어간다는,그동안주로‘귀여운여인’이란제목으로알려진유머러스한이야기다.뜨거운호응과함께찬반양론을촉발한작품으로,반려자의관심사를자기것인양말하는올렌카를두고당시여자독자들이주관이라고는없는여성상을그렸다며항의하기도했으나,톨스토이는극찬하면서자기를찾아온손님들에게열성적으로낭독해주기까지했다고도전해진다.

‘열린결말’로자유로운상상의여지를남기는「강아지를데리고다니는여인」(1899)
불만족스러운결혼생활을하던중년바람둥이구로프는휴양지에서강아지를데리고다니는젊은유부녀안나를만나한동안밀애를즐긴다.그후각자의가정으로돌아가지만진정한사랑을찾았음을깨달은구로프가안나를찾아가고,재회한두사람은어떻게하면삶을함께할수있을지고민한다.체호프가훗날결혼하게되는배우올가크니페르와사랑을한창키워가던시기에쓰인이작품은두사람이행복한미래를그리며고민하는시점에서도덕적판단을포함해모든것을독자의상상에맡긴채마무리된다는점이특징이다.일견진실한사랑을예찬하는듯하지만현실의벽에부딪쳐언제변심할지또어떤파국을맞이할지모르는사랑의씁쓸한이면을상기시키며애수를자아낸다.

체호프가유서처럼써내려간마지막단편「약혼녀」(1903)
약혼후결혼을앞둔스물셋의나댜가친척인사샤의조언을받아들여무위도식하는약혼자와결혼하지않기로마음먹고,고향을떠나학업에열중하며새로운꿈을꾸게된다는이야기.체호프의작품중에서거의유일하게과감히결단하고행동하는여주인공나댜는새시대를열어가리라는체호프의기대를느껴지게한다.‘희망’이라는뜻을지닌나댜라는주인공을내세웠다는점에서,자기가죽은이후로도더나은미래가펼쳐지리라는희망을잃지않은체호프의절실한마음이전해지며여운을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