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2024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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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동시대 한국사회에서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보통 사람들의 삶에 대해, 발품을 팔아 사실적으로 쓴다는 규칙을 공유하며 결성된 ‘월급사실주의’ 동인의 단편소설 앤솔러지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월급사실주의 2024』가 출간되었다. 월급사실주의는 우리 시대의 노동 현장을 담은 소설이 더 많이 발표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한국소설의 새로운 흐름이다. 소설가 장강명에 의해 촉발된 이 움직임은 2023년 첫 앤솔러지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출간으로 이어진 바 있으며,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은 이 동인이 내놓는 두번째 결과물이다.
올해 새롭게 월급사실주의 동인으로 합류한 작가는 남궁인 손원평 이정연 임현석 정아은 천현우 최유안 한은형이다. 사회의 단면들을 예리하게 감지해온 작가들이 작심하고 직장을 무대로 써낸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산문으로 뜨거운 사랑을 받아온 남궁인, 천현우 작가가 성공적으로 완성해낸 첫 단편소설이 수록된 점, 『아몬드』 『서른의 반격』 등의 장편소설로 사회적 약자들이 세계와 관계 맺는 다양한 방식을 포착해온 손원평의 최신작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 더욱 기대를 모은다.
책의 제목은 소설가 임현석의 단편소설 제목에서 따왔다. 생계유지를 위해 자신이 가진 시간과 에너지를 내놓아야 하는 노동시장에서 모두가 한 번쯤은 경험했을 인간적인 갈등 관계를 자연스럽게 연상시키는 힘을 지닌 제목이다. 제목이 그러하듯 이 책에 수록된 여덟 편의 단편소설 역시 다양한 삶의 현장을 핍진하게 그려내며 진한 공감을 이끌어낸다. 자기 자신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오늘 하루도 애쓰고 있는 모든 일하는 존재들을 위한 이 책은 5월 1일 근로자의 날에 맞추어 발행된다.
저자

남궁인,손원평,이정연,임현석,정아은,천현우,최유안,한은형

저자:남궁인
산문집『만약은없다』『지독한하루』『차라리재미라도없든가』『제법안온한날들』『우리사이엔오해가있다』(공저)등이있다.고려대의학과를졸업하고현재이화여대부속목동병원응급의학과임상조교수로재직중이다.

저자:손원평
장편소설『아몬드』로창비청소년문학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타인의집』,장편소설『서른의반격』『프리즘』『튜브』,어린이책시리즈『위풍당당여우꼬리』등을발표했으며,장편영화<침입자>및다수의단편영화각본을쓰고연출했다.『씨네21』영화평론상,제5회제주4·3평화문학상을수상했다.

저자:이정연
2017년『문예중앙』신인문학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미러볼이있는집』,장편소설『천장이높은식당』『속도의안내자』가있다.제10회수림문학상을수상했다.

저자:임현석
2022년조선일보신춘문예에단편소설「무료나눔대화법」이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

저자:정아은
2013년한겨레문학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장편소설『모던하트』『잠실동사람들』『맨얼굴의사랑』『그남자의집으로들어갔다』『어느날몸밖으로나간여자는』,산문집『엄마의독서』『당신이집에서논다는거짓말』『높은자존감의사랑법』『이렇게작가가되었습니다』,사회과학서『전두환의마지막33년』이있다.

저자:천현우
2021년부터주간경향,미디어오늘,피렌체의식탁,조선일보에칼럼을기고했다.산문집『쇳밥일지』가있다.현재게임제작사에서시나리오라이터로일하고있다.

저자:최유안
2018년동아일보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보통맛』,장편소설『백오피스』,연작소설『먼빛들』등이있다.

저자:한은형
2012년문학동네신인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2015년한겨레문학상을수상했다.소설집『어느긴여름의너구리』,장편소설『레이디맥도날드』『거짓말』,경장편소설『서핑하는정신』과산문집『밤은부드러워,마셔』『오늘도초록』『베를린에없던사람에게도』등이있다.

목차


남궁인오늘도활기찬아침입니다_007
#비정규직#아나운서#일vs가족#직업수명

손원평피아노_037
#공부방#돌봄노동#중고거래#세속성vs순수성

이정연등대_063
#복어전문점#수습직원#위기감#정직원전환vs희망고문

임현석인성에비해잘풀린사람_091
#프랜차이즈#본사vs점주#인성vs수완#조직생활

정아은두친구_123
#간호조무사#위계서열#친구의사생활

천현우빌런_155
#물류알바#코인폭락#이(십)대남(자)#학벌주의

최유안쓸모있는삶_187
#프리랜서#통역사#다큐멘터리제작#편집된말

한은형식물성관상_221
#비건식당#매니징#사업가마인드#PC함vs최신유행

기획의말을대신하여_262

출판사 서평


혼자힘으로돈을벌어자기자신을먹여살린다는것
그혹독하고숭고한일에몸과마음을쏟아붓고있는
우리모두의매일매일에대하여

월급사실주의소설동인의
지극히현실적인밥벌이이야기그두번째!

동시대한국사회에서먹고살기위해일하는보통사람들의삶에대해,발품을팔아사실적으로쓴다는규칙을공유하며결성된‘월급사실주의’동인의단편소설앤솔러지『인성에비해잘풀린사람─월급사실주의2024』가출간되었다.월급사실주의는우리시대의노동현장을담은소설이더많이발표될필요가있다는문제의식에서비롯된한국소설의새로운흐름이다.소설가장강명에의해촉발된이움직임은2023년첫앤솔러지『귀하의노고에감사드립니다』출간으로이어진바있으며,『인성에비해잘풀린사람』은이동인이내놓는두번째결과물이다.
올해새롭게월급사실주의동인으로합류한작가는남궁인손원평이정연임현석정아은천현우최유안한은형이다.사회의단면들을예리하게감지해온작가들이작심하고직장을무대로써낸이야기들이흥미진진하게펼쳐진다.산문으로뜨거운사랑을받아온남궁인,천현우작가가성공적으로완성해낸첫단편소설이수록된점,『아몬드』『서른의반격』등의장편소설로사회적약자들이세계와관계맺는다양한방식을포착해온손원평의최신작을접할수있다는점이더욱기대를모은다.
책의제목은소설가임현석의단편소설제목에서따왔다.생계유지를위해자신이가진시간과에너지를내놓아야하는노동시장에서모두가한번쯤은경험했을인간적인갈등관계를자연스럽게연상시키는힘을지닌제목이다.제목이그러하듯이책에수록된여덟편의단편소설역시다양한삶의현장을핍진하게그려내며진한공감을이끌어낸다.자기자신을먹여살리기위해오늘하루도애쓰고있는모든일하는존재들을위한이책은5월1일근로자의날에맞추어발행된다.

남궁인,「오늘도활기찬아침입니다」
지방방송국에공채로입사했지만프리랜서로계약되어일하는아나운서‘지민’의하루일과이야기.아침방송을진행하기위해매일새벽같이기상해열심히일하지만직장에서받는월급보다각종행사로버는부수입이더높은여성아나운서의삶은생각보다화려하지않다.하지만지민은팬들의응원과관심에기쁨을느끼고그것에서일할이유를찾는다.더젊은후배아나운서들에게점차일거리를내주고,꾸려나가던방송프로그램이폐지되어도막을길이없고,퇴근후에도SNS활동을하며자기자신을홍보해야하는고단한일상을그리는이단편은TV에드러나보이지않는방송인들의낯선면모를생생하게조명한다.

나는열심히살고있었다.친구들도모두열심히살고있었다.부지런히뉴스를진행하고방송을맡고행사에서마이크를잡고지인들을챙겼다.부지런히헤어를고정하고메이크업을받고잠들기전내일의상을고민하고인스타를업데이트했다.영원한건없어도열심히할수있는건있었다.어떤미래가있을지몰라도지금주어진일은내가하고싶던것이었다.꿈을이룬사람은불평해서는안되었다.(35~36쪽)

손원평,「피아노」
어렵게구한자가에서어린이공부방을운영하던‘혜심’.여생을보내고싶은집을찾은그녀는갈아타기를시도하다가부동산시장의농간으로자가였던공부방에세입자로서살아야하는처지에놓인다.분노한혜심은공부방을그만두고지방으로내려가기로결심하고,중고거래로세간을처분하며이사를준비한다.아이들을아끼는마음으로공부방에들였던피아노만큼은팔기를망설였지만,피아노는팔리지도않아결국폐기물로처리되어버려진다.그런데어느날혜심은중고거래앱에들어갔다가자신이버린피아노가버젓이팔리고있는것을발견한다.피아노판매자의집으로찾아간혜심은그집에서자신을많이따르던아이‘준용’을마주한다.
공부방에피아노를들인건혜심의허영심이극에달했을때였다.일을낭만으로여기고열정이돈을대신할수있을거라믿었던시절,공부방에공부를하러온아이들도휴식시간에잠깐피아노를친다면,그렇게아이들의선율이공부방을채운다면행복할거라고생각해서들였던피아노였다.
(……)혜심은계속해서피아노를가져갈누군가가나타나기를기다렸다.결국돈을내고폐기해야할지도모른다는쪽으로생각이기울고있었지만이왕이면돈을받고버리고싶었다.그래야자신이피아노에담았던순수한마음이조금이나마보상받을수있을것같았다.(44~46쪽)

이정연,「등대」
복어전문점에서벌어지는범죄스릴러.전직장에서억울하게해고된‘설희’는유심히보아둔복어전문점에수습직원으로들어가게된다.홀과주방을오가는동안설희는복어의독이얼마나치명적인지배운다.정직원전환을앞두고직접손님을맞아서빙을하게된설희는복어전문점의은밀한룸들이불법적인거래를위한장소로활용되고있음을확인한다.설희가억울하게범죄에연루되었을때,식당직원들은과연궁지에몰린설희를보호해줄까?설희는전직장에서겪었던상황을되풀이하지않기위해룸에서복어독을얻을방법을재빠르게살핀다.

조리실앞에음식카트넉대가줄지어세워져있었다.설희는빈카트를내려다보며앞날을그렸다.발음하기어려운테트로도톡신의위험이있는곳에서일하느니화를뿜어내는사람을상대하는게안전할지모르지.위험은피하는게상책이었다.설희는복어독으로사망에이른사고들을곱씹으며더이상직장에서사람들에게휘둘려누명을쓰는일은없을거라고마음을다잡았다.그러다잠깐자신을구석으로몬사람들에게테트로도톡신을먹인다면어떨까하는공상에빠졌다.(78쪽)

임현석,「인성에비해잘풀린사람」
화장품프랜차이즈업체의본사영업부에서일하는‘진영’은본사의입맛에맞게가맹점주를다뤄나가야한다.전혀잘될것같지않은입지에들어선새점포를관리하며진영은점주‘선영’과조금씩교류해나간다.진영의눈에선영은바보같고물정을모르는등쳐먹기좋은인간이다.진영은선배들에게배운대로선영을구슬리고압박하면서도내심찝찝함을느낀다.영업부회식날,본부장은화장품가게는다른업종에비해일이많지않아점주의불만이많은것같다는농담을하고,주위에앉은직원들은그농담에웃는다.하지만점주에대한배려없이철저히본사의이익만을위해일해야했던진영은그말에웃지않는다.

매뉴얼엔손님을어떻게맞을지만나와있다.회원번호가없는상황엔,피부를보면서제품을추천해야한다.하지만장사는그런일만있는것은아니다.점주들의하소연을듣다보면,언제나매뉴얼을넘어서는일이벌어지고있었다.
여기가혹시술집이냐고묻는주정뱅이가들어오고,누군가매일새벽에컵라면을먹고문앞에놓고가서점포오픈할때마다쓰레기를발견하고,담배를꼭그앞에서만피우는무리가있고,정말저포스터모델이이브랜드쓸것같냐면서빈정대는손님을마주하거나테스터제품대신포장이뜯긴제품을뒤늦게발견하는,그런일들이벌어진다.(118~119쪽)

정아은,「두친구」
남편이직장을잃는바람에졸지에가장이되어간호조무사로일하기시작한‘지현’은병동에서환자들의잔심부름까지하고,간호사들의눈치를보고때로는혼나기도하면서돈을버는중이다.어느날신경질적인환자를만난지현은그환자가자신의중학교동창‘승미’임을눈치챈다.예전부터승미는사람을끄는에너지를발산해왔고,지현은그에너지에휘둘리고싶지않아승미와멀어졌었다.중년이되어다시만난승미는겉으로는여전히화려해보이지만비참한일들도겪고있는듯보인다.지현은병동에서일하며승미의여러모습을지켜본다.그리고승미가퇴원한후,승미의삶에닥친불행의실체를인터넷기사로확인하게된다.

병실내다른환자들과먹거리를나누며이야기꽃을피운다는것은고통과충격에쩌들었던환자가안정을찾았다는징표다.지현은그런모습을보고있으면사람은그야말로상황에따라시시각각변하는존재구나싶어뭉클해졌지만,한편으론시샘이일었다.부럽다는생각이드는것이다.아프고약해진상태로오지만,일정기간을감내한뒤에웃음꽃을피울수있는이들은진정한병원의주인이아닌가.스무명이넘는환자들의요구를들어주느라늘쫓기듯뛰어다녀야하는자신과는처지가달라도너무다른것이다.(144쪽)

천현우,「빌런」
20대남자의지극히현실적인삶이그려진단편.삼수생백수‘도지윤’은평생까먹을돈을만들기위해코인투자를하다가사기당해빚만떠안게된다.디시인사이드비트코인갤러리와투자자들의단톡방을들락거리던도지윤은또다른피해자로부터물류센터알바를같이하자고제의받고일용직을시작한다.물류센터의입장절차와업무의세부가선명하게드러나는가운데,어느날명문대출신이라는알바생이들어와직원들의관심을독차지하더니쉬운업무만배정받는등특혜를누린다.아르바이트갤러리에는그명문대생으로추정되는인물이다른직원들을무시하고조롱하는글이올라온다.도지윤은그명문대생을뒷조사한끝에어떤비밀을발견하고,명문대생의코를조용히눌러줄생각에들뜬다.

할일은너무나도간단했다.복층진열대에쌓인박스를뜯어물품을카트에쌓고지정된장소까지가져다주면끝.작업자들은각자두꺼운스마트폰처럼생긴단말기를받았는데,그저이기계가시키는대로일하면됐다.정말문자그대로의단순노동이어서처음엔코스트코에서쇼핑하는느낌마저들었다.슬슬어깨며다리가쑤실때쯤,도지윤은단말기를확인하고기겁했다.고작한시간이지나있었다.(……)도지윤은느릿느릿짐을쌓다가이따금들려오는독촉방송에서둘러달음질하길반복하면서깨달았다.이초단순노동은그저시간과돈을상호교환하는작업이며,고통은행동하는육신이아니라지루함을견디는정신의몫이었다.(168쪽)

최유안,「쓸모있는삶」
프리랜서통역가로일하는‘나’는한국의출산율을주제로다큐멘터리를제작중인런던방송국의취재를보조하는‘현지코디네이터’업무제안을받는다.문장의의미에몰두하고그안에담긴뜻을다른언어로명쾌하게풀어내는기쁨을즐겼던‘나’는다큐팀사람들의매니저역할까지맡아하느라스트레스를받는다.어느날,다큐감독이본인의입맛대로취재내용을각색하고있음을알게된‘나’는감독에게화를내고,다큐제작일에는더이상마음을쏟지않기로한다.한참뒤감독이보내온다큐멘터리완성본을무심코틀어본‘나’는놀랍게도그방송이자신을주인공으로삼고있음을확인한다.

나는내가일의경계를뛰어넘었다는사실을깨달았다.프로의식을망각했다는뜻이었다.그러자부끄러움에서시작한내감정은차츰화에가까워졌다.발화자와수신자사이에놓인징검다리일뿐인내가,말을전하고이어붙이는역할을할뿐인내가,대체뭐라고목소리를높이는건가.픽션이냐니.나는스스로에게방금뱉은문장이무슨말인지나아느냐고,선을지키라고소리치고싶었다.저들이전문가의말을내걸든말든,전문가가한국이망해간다고하든말든,한국이진짜로망하든말든,그게나랑대체무슨상관이냔말이다.(204~205쪽)

한은형,「식물성관상」
위워크에서식물관리알바를하던‘민지’는비건식당세군데를운영하는‘보이사’의눈에띈다.보이사가좋게본것은다름아닌민지가지닌분위기.건강하고자연스러워보이는민지가식당에서식물을키우는모습자체를비건식당의이미지로확립하고싶어한것이다.민지는보이사에게일을배우며매니저로성장한다.그러나매니저로서보이사의경영방침을따라가기는벅차다.‘코즈모폴리스’를지향하며알바생은전원외국인으로뽑고,알바자리에‘잘생긴흑인TO’가있고,알바생이머물셰어하우스로보이사소유의건물을지정해급료중반절을월세로되돌려받는등,보이사는‘PC함’을이용하는탁월한사업가이지만좋은사람은아니다.보이사의말에더는따를수없는마음이될때,민지에게는어떤현실이닥쳐오게될까.

“패션비건이뭐?꼭진정성있는비건만있어야된다는법칙이라도있어?아니다,진정성이라는건낡은가치야.진정성없는게이시대의진정성이라고해도되겠다.이상주의는다망했어.1989년에동구권이무너질때내가얼마나충격받았는지알아?미제국주의가승리하고우리는다망한것같았지.그런데아니더라.세상은그렇게감정적으로접근하면안된다는걸깨달았지.(……)슬기롭고평화로운비건생활같은건그냥이데아야.하지만우리는그걸믿는시늉을하면서그일을해야하지.”(258~259쪽)

기획의말을대신하여

‘이런시대에문학을왜읽어야하느냐’‘문학의힘이뭐라고생각하느냐’같은질문을종종받는다.문학계에한발걸친사람이라면요즘다들비슷한질문을받는다.문학의힘이잘보이지않으니나오는질문이다.돈의힘이뭔지궁금해하는사람은없다.
내귀에는궤변처럼들리는답이있다.‘문학의힘은무력함에서나옵니다’‘문학은힘이없기때문에힘이있습니다’같은이야기.공허한말장난같다.나는문학에힘이없는게아니라힘있는문학이줄어든것아닌가의심한다.
(……)
아름다운노래가재난을당한이들에게위로를줄수있고그것은예술의힘이다.때로는찢어지는비명이다가오는재난을경고할수있고그것역시예술의힘이다.위로의노래가필요한순간이있고사이렌이필요한순간도있다.
지금새로운재난이오고있다는느낌을받는다.그게뭔지,거기에어떤이름이붙을지는잘모르겠다.중산층이무너지고있다.몇몇천재들의창의적인아이디어나부동산에매겨지는가격은가파르게상승하는데성실한노동의가치는추락한다.플랫폼과인공지능이노동시장을흔든다.일에서의미나보람을찾는다는사람은드물다.이런현상들을‘자본가대노동계급’이라는과거의틀로파악하고대처할수는없다는게내생각이다.
나는저현상들의한가운데있으며그현상들을제대로이해하지못한다.원인도모르고대책도모른다.그러나그것이고통스럽다는사실을알고,그고통에대해서는쓸수있다.후대작가들은알수없는것,동시대작가의눈에만보이는것도있다.스타인벡도통화긴축이대공황을불러왔다거나재정지출정책을펼쳐야한다는얘기를소설에쓴것은아니었다.이런마음으로기획안을쓰고작가들을모았다._장강명,「기획의말을대신하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