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어라, 용! - 문학동네 시인선 211

웃어라, 용! - 문학동네 시인선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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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서정적인 테러리스트로부터 시작되는 언어의 영도零度
리듬과 정서, 그 어느 것도 놓치지 않는 시의 춤사위
한국 시단의 서정적인 테러리스트 강정의 신작 시집 『웃어라, 용!』이 문학동네시인선 211번으로 출간되었다. 1992년, 21살의 나이로 등장해 30년이 넘는 시력詩歷 내내 도무지 늙음이라고는 모르는 듯이 시의 안팎에서 금기를 타파해온 강정. 이 “감각적 무정부주의자”(2017년 김현문학패 선정의 말)는 제목에서조차 ‘그럴듯함’을 거부한다. 새빨간 배경에 노란 글씨로 새겨진 ‘웃어라, 용!’은 마치 왜 그렇게 심각하냐고 묻는 것만 같다. 시는 어떤 ‘체’가 아니라는 것처럼. 대신 그는 보여준다. 그 자신의 장기인 몸을 찢는 에너지와 귀신의 언어로, 서정과 전위가 어떻게 하나의 몸안에 자리잡을 수 있는지를. 얼핏 비문처럼 보이는 문장들을 따라가다보면 강정의 눈에만 보이는 초자연적 환각의 세계가 펼쳐진다. 현실세계 바깥의 논리와 자연물의 움직임이 그곳에선 천연덕스레 자명하다. 저 찬란하게 뒤얽히는 생경함을 오래 곱씹는 동안, 우리 앞에 새로이 단장하고 현현한 몸과 언어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저자

강정

저자:강정
1992년『현대시세계』를통해등단했다.시집으로『처형극장』『들려주려니말이라했지만,』『키스』『활』『귀신』『백치의산수』『그리고나는눈먼자가되었다』『커다란하양으로』가있다.시로여는세상작품상,현대시작품상,김현문학패등을수상했다.

목차

1부온몸에가시를두르고너를부른다

흑조의따가운비말/장미장군/출렁이는오선(五線)/시의힘/물에적힌내력(來歷)/한성동북하늘찍어누른장군의형태에홀리다/우롱하는새벽/잿더미의맛/우뚝선바다/책의아귀/폭풍의필법/별들아,용용살아라/조용한저녁/거룩한식탁/머릿속꽃덤불/용의탄생

2부온몸을멈춘채로종생춤춘다

기도의정체―A.타르콥스키송시1/불타는배우―A.타르콥스키송시2/열흘간의유령/구름의문양과말의기둥/나비창세기/뜨거운밧줄/웃어라,용!/트래시메탈/액상피아노/기생수(寄生樹)/빈의자/구름의북소리/네눈물은너무광대하여대신울수없다/참된스라소니/메두사의뜨개질/모슬/그림자의견습(見習),혹은독신(瀆神)의뿌리

발문|강정,유령의말을타고말의유령을추적하는자|박정대(시인)

출판사 서평

『웃어라,용!』의첫머리에등장하는‘시인의말’은짧고강렬한시론과다름없다.“조립된말의설계도를다시짜는일아니라면시인은입다물라”(‘시인의말’)는명령을스스로수행하듯강정은“쪼개진자모음을뒤섞어빗나간소리의형태를빚”는다.그때,지난30년간그래왔듯이“사람들은잃어버린자기말을외국어인양물끄러미바라보”(「폭풍의필법」)는수밖에없다.
“말못한눈귀에침을놓”으며“쿵빡쿵쿵빡”리듬과함께“원색으로수틀을돌리”(「구름의북소리」)는강정은“흙으로빚은바다를하늘에띄”우고“쇳덩이로빚은몸뚱일땅에꽂”(「트래시메탈」)으며그간우리에게익숙했던풍경을뒤엎는다.그처럼“지구의새로운전망으로나지막이다시세워지는일”이야말로시가품은가장최소한의권능이자최대한의가능성일지도모른다.“오늘은또내가다른지구에있게되는구나/멀리바라보던어느낯익은별이오래전부터나의집이었구나”(「기도의정체」)깨닫는화자들은“비가별들의신음인양쏟아져/누워있는집천장이은하의진창같다”(「머릿속꽃덤불」)느끼며눈앞의환경을새로정립하는데이른다.

안으로말린날개가혀를찔러
단말마에서삐져나온손끝이허공을구부리면
하고자하는말들은검은깃털의후렴으로만그대머리칼을덮으니

당신은왜내가오래도록서툰사랑에
목을길게빼는지알지못하지
_「흑조의따가운비말」에서

언어를자유자재로해체하고조립하는강정의언어유희는한편그를“감정의괴물”(박정대,발문부분)로여기게도한다.『웃어라,용!』에서발아하는생소한리듬의서정이그근거다.“하늘을보고하늘을색칠하여하늘을지운것들이다내사랑이었다(…)나는네가싫다/그래서널사랑한다/네가너라는것을너를속인채반짝이기때문,”(「별들아,용용살아라」)“내사랑은늘아픔을웃음으로울수밖에없는또다른허물이되었다”(「참된스라소니」)와같이평이했던일상의단어가강정의방식으로새로짜맞추어질때,‘사랑’의정서를격렬히북돋우는리듬이발생한다.실로“시인은무너진콘크리트잔해속에서쇠붙이들을녹여다음세대의골격을가설하”(「시의힘」)기마련인것이다.

나는그자리에앉아
그대가놓아버린그대자신의얼굴이나
내가한참붙들다몇줄시로분해해버린
인간의말따위를

아직채그려지지않은창밖풍경의빛너울에짓이겨
이세상엔없는바다로물결치게하는것이다

바다는지구어디에나있고
바다에있는우리는지구어디에서도찾을수없으니

그렇기에우리는한동안사랑할수있었지않나
_「거룩한식탁」에서

각각1부와2부의제목인‘온몸에가시를두르고너를부른다’‘온몸을멈춘채로종생춤춘다’는『웃어라,용!』의“둘로쪼개진심장모양”(「그림자의견습(見習),혹은독신(瀆神)의뿌리」)과같다.인간의세계에서제자리를찾을수없는예민한영혼은스스로를지키기위해낯선언어로무장한다.그러나그“억겁의상처더미”(「장미장군」)는도리어‘너’를막는장애물이아닐수없다.이아이러니앞에서강정의화자들은“죽음직전의기도”를올리며비애의춤을춘다.그러나삶의끝간데에서“살아생전몸이지상의절벽에얼어붙은빛의조상(彫像)이었다는것또한이제알겠다”(「뜨거운밧줄」)고느끼는그들은기존의육체와정신을내버린뒤찾아올자유를희미하게나마느낀다.“사랑과죽음이거대한물질이되는최초의형태를”(「웃어라,용!」)직면하며.
여전히강정은한국시에다시금투하되는,“모든이에게나눠줄폭탄”이다.그의형형한눈은현실세계너머의환영을바라보고,손은인간의내면과세계의풍경을가차없이거꾸로뒤집는다.그간기껍도록낯선언어를내뱉어왔던강정의입은“바닷물깊숙한곳에헹궈구슬이된지구를”문채지금,이곳에당도했다.“잘껴안으면빛이만발할것이고,그안에자기가묻혀있음을눈치못채는자는음속(音速)으로분해되어한낱더러운소문으로귀가베일것이니,물러서잘보아라”(「용의탄생」).


우리는감정의무한속에서깃발처럼나부끼다본질적고독에의해화르르점화되는,순식간에타버리는한점불꽃이었는지도모른다.강정이시에서감정을드러내는방식도이렇다.일종의침묵과통곡의아이러니다.침묵은통곡을,통곡은침묵을내장하고있다.간단한호명으로도,허공과지층을흐르던시의수맥들은강정시의황금잔속으로방향을바꾼다.한방울의물에바다를가둬버리고,그바다를하늘로띄워올려허공에떠있는바다에서자신이원하는형상의용을불러낸다.아주용맹하고세련된시인의마스터피스,그게강정의시이다.
_박정대발문,「강정,유령의말을타고말의유령을추적하는자」에서

시인의말

짐승과기계사이에서흐른고름같은것.
기억의전깃줄을흙더미속에파묻는일외엔피도살도허깨비의허물인것.
조립된말의설계도를다시짜는일아니라면시인은입다물라.
2024년5월
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