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은 어째서 편지의 형식입니까? - 문학동네 시인선 212

고백은 어째서 편지의 형식입니까? - 문학동네 시인선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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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쓰다 만 편지를 세탁기에 넣고는 며칠을 묵혔다”

누군가 떠나고 남겨진 빈자리의 주변을 맴도는 마음,
타인과의 관계에서 늘 지려는 마음으로
힘겹게 앓으면서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건네는 시집
저자

오병량

저자:오병량
2013년『문학사상』으로등단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다만,다만의말로쓴
봄눈/꿈의독서/묻다/나들목/유독/다만,다만의말로쓴/딸기와고슴도치/입술은어떻게갈라졌고왜뼈처럼부러지지않는가/국수의맛/말하는법이없었다/E=mc²/편지의공원

2부대단한그루터기를바란것은아니었지만
대공황/꿈꾸는도살장/모조/녘/벽하나의,벽하나의종소리처럼/아령/무른피/개척교회/레닌그라드의집배원/그가을어떤사진의비탄적이며퇴폐적인분위기/일별/하루는긴이름/아니라면안일한/목도리사용법

3부인간의힘으로
자매결연/어쩌다사슴/모조로피는장미/미란/대홍수/나는최근에운적이있다/새들이노는아지트/원두를보는아침/결벽/수리중/어린이날/진오기/첩의딸/호랑이꽃

해설|상실이후
고봉준(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문학동네시인선212번째시집으로오병량시인의첫시집『고백은어째서편지의형식입니까?』를펴낸다.2013년『문학사상』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한오병량은문학동네시인선100번기념티저시집『너의아름다움이온통글이될까봐』의제목이된시구가담긴「편지의공원」을쓴시인으로먼저이름을알렸다.이후그가발표하는시들은아직시집으로엮이지않았음에도불구하고눈밝은뭇독자에게회자되며꾸준히읽혀왔다.『고백은어째서편지의형식입니까?』는그런시인이데뷔한지11년만에발표하는첫시집으로,오래연마한문장으로쉽게읽히지만그여운은깊다.“책상이다뜨거워지도록”“빈종이만쓰다듬는”시속화자의골똘한목소리가시집전체에오롯하게넘실거린다.주위사람들의“숱한‘죽음’의시간을통과하며”삶을“살아”(문학평론가고봉준,해설)낸화자는“며칠을밤새중얼거리다울고말았을”“밤중에빗을든사람”(「봄눈」)들의울음소리에귀기울인다.그런화자가손으로꾹꾹눌러쓴한편의긴편지와도같은이번시집은오병량의첫시집을기다려온모든이들에게반가운안부인사가될것이다.

종일마른비내리는소리가전부인바다였다
욕실에는벌레가누워있고그것은죽은물처럼얌전한얼굴,
구겨진얼굴을거울에비추면
혐오는보이는것보다가까이에있었다
(…)
이위태로움을어찌두고갈수있을까?그대여,
네가죽었으면좋겠어,라고쓴그대의편지를
두어번더기억하며해변을따라걸었다
슬픔에비겁했다,생각할수록자꾸여며지는백사장
말하자면그건소용없는커튼,소용없는커튼은
창밖을곤히지웠다도무지펄럭이지않았다
파도는죽어서도다시바다였다
죽을힘을다해
죽는연습을하는최초의생명같았다
_「묻다」부분

오병량시에는대체로연인과의작별혹은가족과이웃들의죽음,그리고그로인한결핍과상실의정서가배어있다.1부‘다만,다만의말로쓴’은“말없이울고빗물에젖은새처럼흐느끼”는“너”(「꿈의독서」)라는시적대상을그리워하며“틈틈이편지를”(「편지의공원」)쓰는화자‘나’의이야기로채워져있다.‘너’라는대상이누구인지는불분명하지만,중요한것은“아득하고따스한너를어찌사랑하지않을수있겠니?”(「꿈의독서」)라고생각하며,“다시사람을사랑하려는”“병증”(「입술은어떻게갈라졌고왜뼈처럼부러지지않는가」)에시달리는‘나’의내면이다.오병량시인의대표작이라할수있는「편지의공원」을읽어보자.

6월,공원에누워공원을바라본다
방안에누워방안을바라보면서
안녕,네눈에내가보이길바라지만
건조대마른옷가지에선네살냄새만난다
어제입은셔츠에비누를바른다
힘주어잡으면튀어오른다부드러움은죄다
그렇다
(…)
비가왔다낮잠을자고꿈에서누군가와싸웠다
짐승의털이라도가진다면웅덩이에몸이라도던지겠지만
젖은베개를털어말리고눅눅한옷가지에볼을부비다
너의아름다움이
온통글이될까봐쓰다만편지를세탁기에넣고는며칠을묵혔다
당신이기타와피아노를친다는말을듣고몹시기뻤어요
다친사람을위해음악을연주하고치료하는일이꿈이라고했지요
가능할지모르겠다고,엄마의기타는목이휘었다고
하지만기타는계속배울거라고마치그꿈을살아본사람처럼
차분했어요그고요한수면위에몸내릴수있는새가있을까?
나의초라한발견이평범한사람을울리기쉬운새벽이면
틈틈이편지를썼어요
_「편지의공원」부분

“네눈에내가보이길”바라는마음,“건조대마른옷가지”에서맡는‘너’의“살냄새”,“너의아름다움이/온통글이될까봐쓰다만편지를세탁기에넣고는며칠을묵혔다”고고백하는‘나’의간절한그리움은읽는이의시각과후각,촉각을뒤흔들어놓으면서그절절한감정에절로스며들게한다.“빙빙꼬리를물고돌아가는개에게”조차묻게되는,“고백은어째서편지의형식입니까?”라는‘나’의질문은“다시태어나도멈추지않을것같”은사랑의발신음의다른표현처럼읽힌다.
한편,2부‘대단한그루터기를바란것은아니었지만’은시적화자의내면에주로초점을맞춘1부와달리일터나공원,교회의풍경과그안에서살아가는이들의모습을그린다.한편의풍경화와도같은이시들은특유의비애감으로묘한여운을남기며고즈넉한서정을불러일으킨다.
“외출에서돌아온앞집부부”(「대공황」),“소시지를만드는기술자”와“그의조수”인“나”(「꿈꾸는도살장」),부활절에공원에서계란을먹으며“죽음”이란무엇인지“되새겨”보는“우리”(「모조」),“이른저녁이면종탑에올라”가는“맹인사제”(「벽하나의,벽하나의종소리처럼」),“대교”의“남단”에서“뒹군”“친구”(「무른피」),“오래전커다란배를탔”지만어느새“평범한노인”이된“아버지”(「일별」)등이시의주인공이다.이들의삶에는대체로“먹먹함”과“기구한울음”(「벽하나의,벽하나의종소리처럼」)이차올라있는듯하다.하지만이들에게서는“끝내사라지고말것을사랑한다”는마음을잃지않으려는의지또한엿보인다.“너는잘할거니까,아직희망이있어”라고말하는“아버지”(「일별」)처럼.
시인은삶이라는‘그루터기’에옹기종기붙어살아가는이들을향한연민을보내는2부에서한걸음나아가,3부‘인간의힘으로’에서인간으로서는어찌할수없는자연의생래속에서스러져간가족,이웃등의사연을쓸쓸한삽화(揷話)처럼펼쳐내면서종내‘시’란죽음을기리는예술일수있음을사유하게하는듯하다.어릴적에“슈퍼집아들”이놀다가빠져죽은개천에방문하게된화자‘나’의목소리가담긴「대홍수」를읽어보자.

가끔모르는사람이죽었다고생각하면사이렌이멈추고차가운비가하나둘떨어지는개천을따라걸으며진짜견디는것을영영말하지는않을것같아다만,살아있다는게놀라운것처럼그날의구청공무원들처럼그죽음은당신들몫이라며안도하고싶다고,줄곧우리는살아내야하니까,하는생각으로크고긴빗줄기가내릴때

산사람은살아야지,하면내가련한육신아래세상가장가벼운스티로폼하나뜨고내손마디에뼈없는수수깡하나들려있는듯한데,무덤속의병정처럼나는지킬것이있는것도같고무엇일까?살인자의심정으로개천을걸으며산사람,산사람을두려워하며너의병든하늘색운동복을빨랫줄에널던큰누나는목을걸었지.그여자가너의누나.철계단을오르며교복치마를자꾸내렸는데,너모르지?내가사랑하면죽는거,이루지못하면내가죽이는거,나는피식웃고죽은이름을세어보았다._「대홍수」부분

화자는“살아내야”하는시간동안“무덤속의병정처럼”“지킬것”이있으며그것은“죽은이름을세어보”는일이라고말한다.이러한진술은시집의마지막에수록된「호랑이꽃」에서도인상적으로변주된다.

할머니가죽고보름이채되지않아
할아버지도죽었다
둘은납골당에갇혀영원히죽어진채로있다
엄마,미안합니다
허리병이든아버지가계단에털썩주저앉아하는말
나는짐짓모른체술을따르고첨잔을하고
납골당주위에술을부으며
고귀순할머니가고귀순이라고적던한글공책을생각한다
아버지와형,어머니이름하나씩동그라미를그리고
그주위에구름을두르면
꽃이라도될는지,
내희디흰이름에폭폭눈이라도왔으면했다
매번져주던사람의이름이지독히기억나지않던밤
그렇게살지말라는전화와
어떻게지내냐는문자를받았다

매번지려고하는짓
그몸짓의애쓰는마음이
꽃의말이라한다
_「호랑이꽃」부분

「호랑이꽃」은“요양병원”에입원했던“할머니”가죽고나서“보름이채되지않아”“할아버지”까지죽게된가족사를그린시이다.“아버지와형,어머니”는남겨진존재들로,화자는이들의이름에하나씩동그라미를쳐본다.이들은화자에게매번져주는사람들,그러므로화자를사랑하는사람들이다.해설을쓴고봉준은“매번지려고하는짓/그몸짓의애쓰는마음”이‘호랑이꽃’의꽃말이라고언급하는이시의말미와호랑이꽃의본래꽃말이‘나를사랑해주세요’라는점을연결짓는다.그러니까오병량에게‘사랑’이란“늘상대에게지려고하는마음”이며,“누군가떠나고남겨진빈자리의주변을맴도는”태도,“타인과의관계에서늘지려는마음으로살아서그들의부재를이토록힘겹게앓으면서살고있”(해설)는“안간힘”(「결벽」)인것이다.오병량시만의윤리,아름다움은저사랑에서비롯된것이아닐까?

삶은“살아질것같지않”(「원두를보는아침」)은미래를향해흘러가는시간,“살아지지않는시간”(「나는최근에운적이있다」)을견디는일,그리하여숱한‘죽음’의시간을통과하면서살아내는것이다.한계를넘어‘살아내는것’과,그럼에도결코“사라지지”않는시간사이에서오병량의시는시작된다._고봉준,해설에서

오병량시인과의미니인터뷰

Q1.2013년에데뷔하신이후드디어첫시집을펴내게되셨습니다.독자님들께드리는인사와함께소회를말씀해주세요.

안녕하세요,오병량입니다.그간빚진마음들에게차마하지못했고마저다하지못했던안부를전합니다.저는잘있지않겠습니다.그러니평안하세요.고맙습니다.

Q2.‘고백은어째서편지의형식입니까?’는시집의전체적인분위기와의미를오롯하게드러냅니다.문학동네시인선100번기념티저시집『너의아름다움이온통글이될까봐』의표제가된문장이담겨있기도한「편지의공원」속대목이에요.이문장들은어떻게쓰게되셨는지,또어떤것을전달하고싶으셨는지알수있을까요?

나에게말하고싶은것을씁니다.쓰는것은쉽고동시에고되며끝끝내헛됩니다.사람을사랑하는일이그와같아서우리는일기에가끔거짓을적고서진실로여기다그것이쓰여진지도모른채잘도살아갑니다.옮고그름을말하는것이아니라그렇게라도살아가야하는때가있다고여겨지던시절이있었습니다.

Q3.이번시집에서특히아끼는시가있다면무엇인지,그이유와함께말씀부탁드립니다.

제게는선생님이한분계신데「꿈의독서」는나의선생께배운것을대략오년동안썼다지우기를반복하다끝끝내미완성이라자책하며발표한시입니다.이시를생각하면늘정끝별선생님께면목이없습니다.

Q4.헤어진연인,가족,친구,이웃에대한시편들이눈에띄어요.그만큼시편들에그리움과상실의정서가넘실거리는데요.“내희디흰이름에폭폭눈이라도왔으면했다”(「호랑이꽃」)라는대목을읽으면마음이정화되는기분도듭니다.시인님에게시를쓰는원동력이무엇인가요?

저는저를사랑하지않습니다.이것을고백하기위해쓰고주지하기위해읽고그럼에도달라지지않는자신을보며절망합니다.때문에나라는큰불편을감수하고곁을준사람들을기억하지않을수가없습니다.도리라생각하면작고사랑이라생각하면그들에게죄스러울뿐입니다.

Q5.‘살아낸다’라는말이여러시편에서변주되어등장합니다.오늘도‘살아내고’있을독자분들께하고싶으신말이있을까요?

돌이켜보면가위바위보만해도배아프게웃던시절이있었는데,어쩜이렇게도사는게재미가없는지……저도잘모르겠습니다.


시인의말

봄앞에앉아,
나는여태,
나의주어가못되는처지입니다.

당신의마음은잘지내고계신가요?

그립다,
죽겠습니다.

2024년5월
오병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