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력 전개 - 문학동네 시인선 213

생명력 전개 - 문학동네 시인선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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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임승유

저자:임승유
2011년『문학과사회』를통해등단했다.시집으로『아이를낳았지나갖고는부족할까봐』『그밖의어떤것』『나는겨울로왔고너는여름에있었다』가있다.김준성문학상,현대문학상을수상했다.
수상:2017년현대문학상,2016년김준성문학상(21세기문학상,이수문학상),2011년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

목차


시인의말

1부그때못봤던거보러가자
그녀는거의자기집에있는것같았다/소매가긴푸른셔츠에검정바지/만두/그의태도와눈빛/한사람이두사람을끌어들여이틀에걸쳐/해낸작업에대한보고서/여주/감자양식/나오는사람들/직접적인경험/중요한역할/들어올린발꿈치의우아함/충북대학교/제라늄의도움을받아

2부이제그만와서카레를먹어
날씨/카레/단추를목까지채우고서/점심시간/이야기/밀어서넘어트리기/작은수건/음복/두사람이/그여자얼굴/부끄러움/화양동

3부모든이가이야기밖으로빠져나간후에
모두도망이라도간듯조용하다/마음속깊은곳에서/정오/의자위에올라서서/세사람/레몬/비오는날물끓이기/소설읽고나서하는청소/애니시다의죽음/어둠을밝히는불빛/늙은오이속파내기/설거지/상진녹색진실바지

4부다같이일어나추는춤처럼
내마음속에언제나/양육/다세대주택/두개의마음으로/주전자에서물이끓는동안/여성시읽기세미나뒤풀이자리에찾아온/늙은여자/야외테이블을마주하고앉아나눈대화/스웨터/종묘/크고작은애들/감자껍질까기

해설|식물의시선,낯섦의형식_선우은실(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무엇이무엇을지나무엇이되는.
아름다움이아름다움을지나아름다움을넘어가고.”

‘나’라는장소를‘나’로만채우지않기위하여,
‘한사람’이상일때발생하는생명력쪽으로

김준성문학상,현대문학상수상작가임승유신작시집

평범한일상의인물과사건을정제된언어로다루면서그사이를틈입하는찰나의긴장감을낯선감각으로선사해온임승유시인,그의네번째시집『생명력전개』가문학동네시인선213번으로출간되었다.2011년작품활동을시작해세권의시집을펴내고김준성문학상,현대문학상을수상하며오롯한시세계를구축해온그가4년만에펴내는신작시집이다.“친척집에다녀와라”라는가족의말에집을나선‘여자아이’의이야기로시작한첫시집『아이를낳았지나갖고는부족할까봐』에서시인은,금지되었기에더욱매혹적인세계속흔들리는화자를그렸다.이어“미묘한차이를지닌수많은오늘을발생시키는행위”와“여기의삶을살아내고있는데도여기에없는상태”(「뼈만남았다」)에대한탐구가인상적인두번째시집『그밖의어떤것』과세계의정형성에서부러벗어나자발적으로길을잃고자하는이들의목소리를담은『나는겨울로왔고너는여름에있었다』까지,임승유의화자는시작/출발은있으되완성/도착은없이,외려목적지그자체보다그사이의온갖샛길과갈림길들을탐구하는데,거기서시작되는관계들에골몰하는존재들이었다.
그근간에는‘나’라는1인칭시적화자가시의주도권을잡는것을경계하는태도가있으리라.‘나’라는장소를‘나’로만채워버리는일에대한염려는임승유시가안으로파고드는심상을다루기보다서사성을띠게했고,신작시집에서도이런인상적인특장은유감없이발휘된다.‘생명력전개’라는시집제목에서‘생명력’은“이야기에는한사람이상이등장한다.나는이야기에등장하는한사람이되었다가이야기에서빠져나오는한사람이되기를반복했다”라는‘시인의말’에서유추할수있듯,원래있는것,생물학적으로타고나는것이라기보다는관계를통해부여되고만들어지는긴장감과가능성에가깝다.

임승유의시에서중요한것은‘나’가보는것뿐아니라‘나’를둘러싼것도포함된다.‘나’가어떤위기에봉착해있는순간‘나’의눈에불현듯들어오는소철나무가있는풍경이나내게말을걸어오는사람이있다는인지는,‘나’의세계를이루는것이‘나’의서정만이아니라는사실을알려준다.(…)음식을하기위해서는어떤재료가당연히필요하듯,‘나’에대해말하기위해‘나’의시선뿐만아니라‘나’를둘러싼시선또한존재한다는것역시당연하다.임승유가전면화하는일상의낯선감각이이런차원의‘당연한것’을앞세우고있다고상정할때,우리는임승유의시가한감정에대해말하기위해수많은일상적-서사적장치를설정한까닭을헤아릴수있다._선우은실,해설에서

시편들에서“한사람이상이등장”하는방식은다양하다.“울먹이는심정이”된‘나’의곁에“갑자기나타난두사람”이“여기서뭐하세요?”라고선뜻건넨말한마디덕에‘나’는“해가비치는지평선을향해천천히움직”일수있었다(「소매가긴푸른셔츠에검정바지」).한편에선“미나리캐올게”라는한마디를남기고나간사람을기다리는‘나’가있고(「그의태도와눈빛」),남천나무를보며어린시절기억속‘금천’이라는아이를떠올리기도한다.시들한남천과“엄마뒤로숨던”금천,“키우던애가커서/키우는마음이뭔지아는순간이온다는사실”이남천-금천이름의유사성과함께새로이다가온다(「중요한역할」).외출하기,나갔다들어오기,기다리기,우연히마주치기,알아보기,기억을떠올리기등의행위를통해발생한관계와장면들쪽으로나아가는화자를따라가는즐거움이이시집을읽는기쁨일것이다.
생활속에서전개되는생명력이있는가하면글쓰기속에서이루어지는그것또한주목할만하다.

이런식으로는안되겠어.되게하려면뭘먹어야하는데.도통뭘먹는법이없는여자가등장하는소설은언제끝날지모르고그녀는자꾸만음식생각을한다.문장과문장사이에음식생각이끼어들면이야기가진행되지않는다.생각을몰아내고문장에몰입하기위해얼른음식을만들어먹고시작하자.가장손쉬운건감자.수돗물에감자를씻어서냄비에넣고기다렸다가익으면젓가락으로푹찔러서먹는거야.문제는바구니의감자가오래됐다는것.오래돼서싹이나서벌써이파리까지상상해버렸네.그렇다면껍질벗긴후에채썰어서감자채전을해먹는것도방법.스며드는기름감각.하지만그녀는벌써여러번감자채썰다가손톱까지썰었기때문에그녀에게썰게할수는없다.감자써는사람을바꿀까.아직감자를썰다가손톱을썬적없는사람으로.그로하여금껍질벗긴감자를채칼에대고문지르게하다가위험해진다싶으면쥐고있던부분을쓰레기통에던지고그다음감자,그다음감자,그렇게하다가감자채가쌓이면쌓인감자채에물을부어전분이빠지도록해놓은다음에

물묻은손을티셔츠자락에문지르며책상앞에그가앉는다.앉아서문장을적어나간다.아까뒤로빠져있던그녀가이왕이렇게된거이모든과정을문장으로적어야겠다고생각했기때문이다.더뒤로빠져있던나는그녀로하여금읽던소설을마저읽게하고싶지만

그녀는허기진상태라서이문장이끝나기전에전분이빠진감자채에소금과튀김가루약간을섞어기름에부치기위해일어나부엌으로가야한다.
_「감자양식」전문

소설속등장인물인“도통뭘먹는법이없는여자”와“앉아서문장을적어나”가는‘그’,“그녀로하여금읽던소설을마저읽게하고싶”은‘나’,이들이소설의안팎을드나들며각자가먹는것,쓰는것,읽는것에영향을주고받는다.이과정이「감자양식」이라는시로쓰임으로써또하나의층위를갖는것또한자명하다.겹겹의관계속인물들은감자를손질하고채를썰고전을부쳐먹고또먹도록하는양식(糧食)에집중하면서시라는장르의양식(樣式)이갖는‘나’의권위로부터멀어진다.
한편「감자양식」의감자채전을비롯해이시집에는음식을만드는장면이곳곳에등장하는데,“마감도하면서만두만들방법은없을까고민하다가//만두에대한시를쓰기로했다.만두를미리끌어와시를쓰고시에언급된만큼만두를만드는것이다.//(…)지금은만두만생각하자.만두란무엇인가.나는만두에대해무엇을아는가.만두는만두만드는일요일에도착할수있는가.그럴때의만두란언젠가먹어본적있으며,오래사귀던사람과헤어진날모퉁이만두가게에서혼자먹던만두인데/오오여기서의만두란그런서정적만두여서는안됩니다”(「만두」)라는구절이나,“카레는혼자먹게는안되지.먹게된다면며칠은먹겠지.어떻게든먹으려고양파를썰다가양파가자라는양파밭을떠올려도눈물은안난다.다만떠올려보고안가본데가많았으므로양파밭에들어가보기로하는데”(「카레」)같은구절은관념의흐름을서사적방식으로보여주며‘생활하기-시쓰기’의은유로읽히기도한다.

남편잡아먹은여자

옛날사람들은두려움도없이저런말을잘도했다.엄마혼자서얼마나많이들었는지

모른다.

아버지란사람이너한테가장잘한일은일찍죽어버린거라고말하던엄마는가장잘이해했다.
_「제라늄의도움을받아」부분

숟가락으로오이속을파내던엄마가이쪽을까맣게잊고오이속을파내고있으면

슬픔이몰려옵니다.

슬픔을함부로입에담다니!

엄마가설탕통에숟가락을집어넣으려하는데말입니다.

하마터면나는슬픔에빠져식구들이하나둘문열고들어오는줄도모르고설탕통이어디있는지도모르고

엄마가온데간데없어지는것도모를뻔했습니다.
_「늙은오이속파내기」부분

임승유시인은출간전편집자와의짧은인터뷰에서“여성이발화위치를찾아내기어이발화하는그순간에다다르는장면을보고싶었”다말했다.‘그녀’‘여자’‘여자애’라불리는여성들이등장하는시편들에눈길이가는이유다.그리고‘엄마’.“엄마가등장하는모든시편들이내내마음에남아복기하게만듭니다.복기는저를갉아먹는행위지만시를쓰게하는힘이기도해요.제가궁극적으로가닿고싶은지점은‘엄마’를빼고도‘엄마’에대해발화할수있게되는겁니다”라고시인이이어말하기도했듯‘엄마’라는호칭이갖는위치성과그존재가갖는고유성은시인에게다풀지못한,끝끝내더잘들여다보고싶은근원적세계일지모른다.“엄마?//괜찮아.네문장속에서악을썼더니머리가조금아플뿐이야!”(「감자껍질까기」)라는강렬한문장으로문을닫는이번시집,‘엄마’에서시작해나의엄마와엄마인나를경유해엄마가다는아닌‘엄마’에닿기.‘엄마’없이엄마를쓰기.임승유의‘그녀’들이더멀리나아가보기를바라며짚어두고싶다.
“무엇이무엇을지나무엇이되는.숨을훅들이쉬고.내쉬고.아름다움이아름다움을지나아름다움을넘어”(「애니시다의죽음」)가는일.『생명력전개』에서벌어지는일이다.그러므로이시집은‘읽는’것이아니라‘드나드는’것이리라.“제라늄의도움을받아빛으로색깔을만들”(「제라늄의도움을받아」)수있는것처럼시집속인물들과시인,그리고독자저마다품게될기미와전조들이만들어갈고유하고무수한생명력들을기쁘게상상해본다.

◎임승유시인과의미니인터뷰

1.4년만의신작시집입니다.저에게이번시집은‘시쓰기에대한시집’으로읽히기도했는데요,시들을정리하며어떤생각을많이하셨을지궁금합니다.

시라는장르에대해생각하는시간이많았는데,주로1인칭화자인‘나’를어떻게할지고민하는시간이었습니다.시는‘나’라는1인칭화자에집중하게되는장르지만,‘나’가어떻게든관계속으로들어가길바랐어요.‘나’의목소리로수렴될수밖에없다고해도그목소리가어떻게생명력있는관계로확장되고재배치될수있는지쓰면서확인하고싶었습니다.페르소나를사용한다거나다른이를초점화자로내세운다거나하는게저한테는인위적으로느껴졌어요.기존의말하기방식에서벗어나되그벗어남이인위적이지않았으면했어요.그런고민을하다보니제가서사를주로사용하고있더라고요.이전시집에서도서사가안쓰인건아니지만1인칭과2인칭위주였다면이번시집엔3인칭이많습니다.‘그녀’라는단어가많이나옵니다.‘그녀’가특정인물로한정되지않고무한하게뻗어나가길바라는마음으로이시집을묶었는데요,그녀에대해서는아직할말이남아있는것같습니다.

2.시집의제목'생명력전개'는표제시가없습니다.이제목이어떻게읽히기를바라시는지궁금합니다.

이전시집들제목이좀긴편이라짧고선명한제목을염두에두고고민하던중에편집자님께서제안해주신‘생명력전개’가언뜻눈에들어왔어요.저한테는생경한구절이라서제것은아니겠다는생각을했는데요,이후로도자꾸만생각이나더라고요.감당할수만있다면이번시집이나아갈방향을지시하고,어쩌면그다음을가능하게만들어줄수도있겠다는생각이들었습니다.제가생각한제목이두개있었고나름귀여운것들이었지만솔직히수세적인제목이었습니다.이번시집엔용기라는말을중얼거리며쓴시가적잖이담겨있습니다.더나아가볼수있었으면좋겠다는말도중얼거리고있는데,‘생명력전개’는저에게그다음도있다는감각을갖게해주는제목입니다.
이번시집화자에게‘생명력전개’에대해물어보면“바로그이야기를하려고했던것같아요”라는대답을할겁니다.직전시집에서시인의말을빌려“생활하고싶었다”라고말했던바로그화자거든요.겁이많긴하지만관계를향해조금씩걸어나가고있으며,입김을불어넣어면적을넓히듯발화위치를이리저리바꿔가면서관계를확장해나가고있는사람이지요.

3.시속에채소를포함한식물들이자주등장합니다.들어오거나나가는사람들도인상적으로많고요.유독작가님에게잘포착되는존재들/행동들이있을까요?그이유는무엇인지도궁금합니다.

제시속으로잘들어오는존재나행동들이따로있는것같지는않아요.제가관심을갖는건특정존재라기보다는그존재와관련된장면입니다.언젠가친구와강변을바라보면서나란히앉아이야기를나누고있었는데거짓말처럼비가다가오는모습을보게됐어요.비가하늘에서내리는게아니라저앞에서부터이쪽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