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와티라나의카페에서보낸나날
처음수록된에세이「카페로스탕에서아침을」에서작가의이야기는파리와함께시작한다.꿈과환상을불러일으키는도시파리에이스마일카다레가첫발을디딘것은1970년『죽은군대의장군』이프랑스에서출간되면서였다.공산주의국가알바니아에서글을쓰는작가에게당시파리는“이백개의도장이찍힌백개의초대장이있더라도”오기힘든곳이었는데,작가는소문만무성했을뿐실제로존재하지않았던“비(非)초대장”덕에이도시에오게된것이다.그후보이지않는끈이작가와도시를연결한듯작가는파리와깊은관계를맺게되고,결국고국에서더는책을낼수없는처지가되자1990년프랑스로망명을결정한다.
뤽상부르공원이보이는곳에자리한카페로스탕은쥘리앵그라크같은작가도자주방문했던곳으로,카다레는매일아침이곳에서커피를마시며수백쪽의원고를집필했다.책에는카페로스탕을작업실삼아글을쓰던시기에만난콜레트D.와의일화나,뤽상부르공원에서비슷한시간에산책하며자주마주친파트릭모디아노와의불발된약속,역시알바니아출신으로프랑스에서활동하던안무가앙줄랭프렐조카주와그리스영화감독코스타가브라스와협업한이야기등여러지성인들과의대화와교유가유머러스하게그려진다.
파리의카페에서시작된글은카다레의고국알바니아의수도티라나의카페로이어진다.「카페의나날」에서작가는고등학생때출간한시집의원고료를받아처음친구들과카페에갔던일화를풀어놓는다.도시의가장유명한카페에서코냑을주문한사소한일은젊은이들이외국의영향을받아“더러운돈”으로“퇴폐적인음료”를마신불미스러운행위로해석되어급기야정치적소동으로까지번진다.또한일간지에발표한‘술의나날’이라는글이출판금지조치가내려졌던사건을써내려가며그에대한소회를밝히기도한다.
이스마일카다레작품세계의근원
이에세이에서작가는고국이처한상황을돌아보며자신의문학원류인알바니아의문학과역사,정치,사회에대한날카로운통찰을드러낸다.「프레드를위한어느4월」에서는혹독한시대를살아가며부침을거듭한알바니아시인프레데리크레슈피아의삶과죽음을이야기하고,「알바니아문학의새싹들」과「악몽」에서는발칸지역의분쟁과다툼속에서여러국가의지배를받다가독재체제의억압아래놓였던알바니아의비극적인과거와현재를깊이있게서술한다.농담을섞어가며재치있는입담으로써내려간글들을읽다보면카다레의작품세계―알바니아의역사,전설,민담,그리고독특한관습법이서사의배경과중심주제가되고,비극에유머를더해‘해학적인비극’을창출해내는―가어디에그근원을두고있는지가분명하게드러난다.
한편카다레는셰익스피어의작품『맥베스』에품고있는깊은애정도아낌없이표현하는데,이는“발칸의외딴구석에서,글을잘쓸줄도모르면서”셰익스피어에게홀려,“손가락에잉크를잔뜩묻힌채”셰익스피어의작품을옮겨적으려고시도한어린시절부터이어져온것이다.특히그는이아름다운작품을전세계가함께읽는다는사실에매혹되어하나의문장이서로다른언어에서어떻게다르게번역되었는지살펴본다.언어별로미묘한차이를보이는셰익스피어의문장을탐독하는재미를따라가다보면카다레가얼마나문장하나하나를섬세하게매만지는작가인지다시금깨닫게된다.
카페에서옆자리여자들이나누는대화에신경이쓰여글을쓰지못한사소한일화부터조작된심문조서에서체제전복음모에가담한인물로거론되었던위험한경우까지,작가의목소리를통해전해지는과거의편린들은마치모자이크처럼조각조각이어져이스마일카다레라는세계적인작가를온전히보여주는하나의커다란그림으로완성된다.천상이야기꾼인작가의진면목이고스란히발휘된이자전적에세이들을읽다보면냉소적유머에킬킬거리거나코끝이찡해지거나가슴한구석이저릿해지는한편,어느새작가로서의모습뿐만아니라인간이스마일카다레에대해더깊이알게된느낌이든다.이책을옮긴백선희번역가의말처럼마치“화창한봄날아침에창밖으로뤽상부르공원이보이는카페로스탕에앉아작가가직접들려주는이야기를듣”는기분으로거장의삶을들여다볼수있는기회가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