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틈새 -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31 (양장)

푸르른 틈새 -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31 (양장)

$18.00
Description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31 푸르른 틈새
저자

권여선

저자:권여선
1965년경상북도안동에서태어나서울대국문과와같은학교대학원을졸업하고인하대국문과박사과정을수료했다.1996년첫장편소설『푸르른틈새』로제2회상상문학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짧지않은공백기를가지며초창기작가생활을보낸권여선은2007년단편소설「약콩이끓는동안」으로오영수문학상을수상한것을시작으로2008년단편소설「사랑을믿다」로“드러내기보다는숨김을통해독자의상상력을자극한다”는평과함께이상문학상을받으면서무명에가까웠던작가의이름을단번에평단과독자에게강렬하게각인시켰다.
『푸르른틈새』이후십육년만에선보인두번째장편소설『레가토』로“한국문학에서기억의윤리학이성숙하고있다는증거”라는평을받으며2012년한국일보문학상을,세번째장편소설『토우의집』으로2015년동리문학상을수상하며한국문학을대표하는작가로성장해나갔다.
소설가로서꼭써야겠다고다짐한작품인『레가토』와『토우의집』을쓰고난후현실속다양한인물들의이야기에관심을갖고단편작업에매진하며빛나는작품목록을쌓아올린작가는2016년소설집『안녕주정뱅이』로동인문학상을,2018년단편소설「모르는영역」으로“특유의예민한촉수와리듬,문체의미묘한힘이압권”이라는평을받으며심사위원만장일치로이효석문학상을,2021년단편소설「기억의왈츠」로김유정문학상을,2023년단편소설「사슴벌레식문답」으로김승옥문학상을수상하며자신의작품세계가누구와도다른독보적인질감으로이루어져있음을선명히증명해냈다.
소설집『처녀치마』『분홍리본의시절』『내정원의붉은열매』『비자나무숲』『안녕주정뱅이』『아직멀었다는말』『각각의계절』,장편소설『푸르른틈새』『레가토』『토우의집』『레몬』,산문집『오늘뭐먹지?』가있다.

목차

젖은방_007
그이름아그네스_019
허기혹은질투_058
가을의사다리_108
미완의책_168
그의딸그의누이_221
마지막무대_273

해설|인아영(문학평론가)
모든틈새는장소다_311

출판사 서평

추천사

이책을통해나는잃어버린지도모른채살았던내과거와만나며,누구와도공유할수없는나만의후미진과거를남몰래애도한다.책갈피를서너장만넘기면,나는어느새스무살풋내기시절로돌아가있다.그녀의문장속에서는예리한지성과따스한멜랑콜리가불안하게공존한다.권여선이라는이름을떠올리는순간,내게는그저작가한사람이떠오르는것이아니라내가아직완전히떠나오지못한나의이십대,내소중한벗들의이십대가동시에덮쳐오곤한다.
_정여울(작가,문학평론가)

『푸르른틈새』가세상으로나온이후삼십년가까이권여선의소설을따라읽어온우리가모를수없는것은,과거로부터쏟아지는기억의빛은끊임없이흘러나와새로운이야기로살아난다는사실이다.(…)틈새는갈라져있는좁은간격이지만,그자체의면적을지닌공간이기도하다.지난날의상처가찢어버린흔적이지만,그자체로아름다운기억이비쳐들어오는통로이기도하다.우습고어설프고어정쩡한자세로청춘을보내왔다고생각한이,이유를알수없이슬프고아팠던청춘을보낸이가영원히빛을바라볼수있는.그래서자신의상처를치유하고새로운날개를달아날아갈수있는.그러므로이제우리는이렇게말할수있을것같다.모든틈새는장소다.푸르기에더욱슬프고아름다운.
_인아영(문학평론가)

책속에서

나의한살도나의열한살도이렇게무대인지벼랑인지모를어떤모서리에선체험이었으리라.새로운끝아니면시작이었으리라.둘을적당히곱하고더해가까스로도달한서른살의봄지금처럼.(12~13쪽)

‘자기소개’는인생의새로운단계,새로운세계로의진입을암시했다.다들자연스럽게나를알고있으려니하는유년의수동성을넘어당당히내가바로아무개라고자기를주장해야하는세계,서로의존재를매번정겨운방식으로일깨우는공동체가아니라각지고독립된개체의삶을책임져야하는사회,그런어른들의세계로진입하기위해우리는자기소개를해야했다.자기소개라는절차는일종의폭력성을내포하고있었다.소개자는자기이름을모두가알아들을수있도록명료히발음해야했고,청중은소개자가임의로요약한그혹은그녀의존재성을강제로받아들여야했다.자기소개는소극적인자들이도태되고적극적이고용감한자들만이살아남는세계로의입사식이었다.불리기를기다려서는안되고어떻게든적극적으로부르심을유도하는방식,다른사람들이자기이름을한시바삐소비하도록이름을세일하는방식이었다.(24~25쪽)

거칠게부서지는파도와무섭게타오르는불길속으로곤두박질치는꿈의순간에도나는내이름을애타게부르는목소리를들었고,내귓가에흐느끼듯부서지는그목소리가있는한언제든우아하고아름답게죽어갈만반의준비가되어있었다.(46쪽)

나는모든우연을필연화했다.내가채집한어떤정보도새로운사랑이다가오는징조였다.나는이런표시와저런표시의차이를몰랐고이렇게든저렇게든호감으로치장한이미지,나를인정해준다는것이명백하게조합되어나타나는그이미지를향해질주했다.
수많은디테일이차곡차곡쌓여오로지하나의대상에집중되고종합되는열정적사랑이아니라,그것과정반대로,그렇게표나는유일무이성을참을수없어하는내마음의알리바바는만나는사람에게서무엇인가를건네받는족족그정표에동일한표시를하여사랑이란보물을갈구하는내마음의도적떼를혼란시켰다.(56~57쪽)

각성이항상인생에바람직한건아니다.그것은맑은날보다비오는날온다.(59쪽)

모든달콤한매혹속에는그렇듯파렴치한,스스로외면하고싶은죄스런욕망이씨앗처럼단단히박혀있는걸까.(79쪽)

대문밖에서나는눈이빠질듯대문안쪽을노려보았다.나는절대로착한딸이되지않겠다고맹세했다.윤아와어울리면서해수와멀어지게된것이나내게도벽이생긴것이나다이즈음의일이었지만무엇보다나쁜것은,나를이해해주지않는다는이유로가장사랑하는사람에대해독한앙심을품는버릇이생긴것이었다.(106~107쪽)

나는여전히어리둥절했다.왜불행은가장사심없고순결한순간에나를습격하는가?(115쪽)

어느날엔가나는꽃무늬커튼을친어두운방에서가구에둘러싸인채동그마니앉아있었다.움직일수있다고,내부에서무언가꿈틀거리고있다고믿고싶었지만믿음과는달리습기를잔뜩머금은젖은나무토막처럼나는꼼짝도할수없었다.오랜세월이흐르도록이렇게서서히젖어가고싶다는축축한욕망이혈관을타고번졌다.먼훗날누군가이방에들어와내겐전혀개의치않고이방의가구들과함께나를들어내어서어디론가싣고가낱낱이부수어주기를,그렇게해체된채로햇볕받으며말라가기를,골수부터관절까지,마디마디까지곰팡이로뒤덮였던몸이콱콱쪼개지고틀어지며버쩍버쩍말라가기를나는꿈꾸었다.(168~169쪽)

나는풍비박산난내젊은날의신념을약하고게으른내육체의탓으로돌렸다.정신력과의지의결핍을문제삼기보다순수히육체의결함과한계를원망하는것은얼마나더불가항력적인듯이보이는가.(181쪽)

상처가없다면샤푸리야르왕이어떻게잠들지않고셰에라자드의길고지루한이야기들을들어낼수있겠는가?셰에라자드의무한한이야기의미로가없다면어찌샤푸리야르왕을벼락처럼내려찍은상처의모서리가찬란히빛날수있겠는가?낮과밤이교차하는짧은순간,상처의빛이어둠속에잠긴삶의아픈단면을드러낸다.(218쪽)

당시에내가품고있던사랑에대한결론은매우단호한것으로,존재를걸고사랑을요구할수없다면존재를걸고잊어야한다는식이었다.어정쩡한존재의걸쳐놓기는차마추악해서견딜수없다고나는과감히단언하고있었다.(241쪽)

헛된위로의힘은바로그헛됨에서나왔다.이따위망상이라니,부질없다,부질없다,하는생각이내마음의저변을차지하고있었다.그러나불가능에대한열망은격렬했고이성을완전히제압했다.내열망이헛되다는걸알면서,아니바로그헛됨때문에나는그것의실현에목숨을걸었다.확률이낮을수록,상황이절망적일수록,장기까지팔아올인하는비운의도박사처럼.(251쪽)

설령모든것이한층더나빠진다하더라도나는말을믿고,기억을믿고,그밖의다른것들을믿을것이다.닫히지않은이야기,닫히지않은믿음,닫히지않은시간은아름답다.(…)상처로열린우리의몸처럼,기억의빛살이그틈새,그푸르른틈새를비출때비로소의미의날개를달고찬란히비상하는우리의현재처럼……(3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