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할 때는 가질 수 없고 가지고 나면 원하지 않아

원할 때는 가질 수 없고 가지고 나면 원하지 않아

$15.00
Description
박현욱이 돌아왔다!
『아내가 결혼했다』 이후 첫 장편소설

위태롭고 감미로운 세 남녀의 환승 연애
소설가 박현욱이 장편소설 『원할 때는 가질 수 없고 가지고 나면 원하지 않아』로 돌아왔다. 마지막 출간(『그 여자의 침대』)으로 따지자면 16년, 마지막 장편소설(『아내가 결혼했다』)로 헤아리자면 18년 만의 신작이다. 그간 박현욱이 그려온 ‘연애로 성장하는 인물’ ‘사랑으로 살아가는 시절’ ‘아이러니로 완성되는 이야기’에 한 번이라도 매료된 적 있는 독자라면, 신작 『원할 때는 가질 수 없고 가지고 나면 원하지 않아』는 앞엣것을 모두 충족하는 동시에 한층 더 깊어진 관계에 대한 시선과 곱씹을 거리 가득한 문장을 만나볼 기회가 될 것이다.
“야하면서도 건전하고 불순하면서도 순수한 젊은 호흡”(박완서)이라는 데뷔 당시의 평은 그때로부터 20년이 훌쩍 지나 내보이는 이번 작품에도 고스란히 입혀주고 싶은 문장이다. 오랜 침묵을 깨고 선보이는 이야기에서 작가의 시작점이자 아이덴티티를 발견할 수 있기에, 『원할 때는 가질 수 없고 가지고 나면 원하지 않아』는 다시 가동될 박현욱 월드의 리부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기존의 박현욱을 수식하는 신선함과 재기 발랄함 옆에 ‘자연스러움’이라는 단어가 새로이 등재되어야 할 듯하다. 이는 그간 ‘입담’이라고 표현되어온 박현욱식 문장이 더욱 차분해져 꾸밈없어진 때문이기도, 이번 소설 속 인물들이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데서 기인하기도 한다.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폴리아모리라는 낯설고도 파격적인 소재로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한 박현욱의 ‘셋이서 추는 왈츠’는 신작에서도 계속된다. 그러나 이번 연애담은 ‘평양냉면’처럼 은은하고 중독적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언제 만나든 항상 오늘 만나는 거예요. 우리가 다음에 만난다 해도 그날이 되면 또 오늘이에요. 내일은 영원히 오지 않아요. 같이 가요.”(14쪽)

저자

박현욱

저자:박현욱
1967년서울에서태어났으며연세대학교사회학과를졸업했다.2001년『동정없는세상』으로제6회문학동네작가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2006년『아내가결혼했다』로제2회세계문학상을수상했다.그밖에소설집『그여자의침대』,장편소설『새는』이있다.

목차


1.하이네켄
2.메이데이
3.퍼펙트데이
4.밀러라이트
5.페이퍼나이프
6.앨리스와하나
7.토스카
8.굿바이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듣기좋아요.한번더말해봐요.”
“나는당신을정말사랑해요.”

홀로하는독백,둘만아는디졸브
셋이추는위태롭고아름다운왈츠

2015년봄의저물녘,마포구합정,‘태주’는그곳에서대학동창‘재하’를몇년만에우연히마주한다.동창중에“가장빨리결혼했고,가장빨리이혼했”(11쪽)으며부동산으로돈까지많이번재하옆에는늦은오후의빛을받아환하게빛나는‘명’이있다.태주는이갑작스러운만남이지난날의재하처럼달갑지않지만,그래서“오늘말고다음에요”(14쪽)라고둘러대며얼른자리를뜨려하지만,“다음에만난다해도그날이되면또오늘이에요”라고말하는명의우아한농담에완전히넘어가버리고만다.재하와명은납치라도하듯태주의팔을하나씩낚아채고어째서인지태주는일순“행복비슷한것을느”(같은쪽)끼며그들을따라간다.

벚꽃이흩날리는봄밤의술자리이후셋은함께어울리기시작한다.자신의연인인명에게“태주어때?”(33쪽)하며은연중에과시와도발을하는재하가못마땅해태주는매번빼기일쑤지만,명의한마디면어느새못이기는척나가그들과함께있는자신을발견한다.이오네스코의문장을빌리자면“인생경주에서물러나야”하는나이서른다섯,“또다시태주는재하에대해부러움이상의부러움을”(27쪽)느끼며사랑의경주가시작될지도모르겠다고예감한다.리처드브라우티건의『미국의송어낚시』를읽고있다는남자태주와“송어낚시책보다더좋은게있”(40쪽)다며90km를달려송어회를먹으러가는남자재하.세사람이함께하던어느토요일,급작스러운일로재하가자리를뜬뒤명과태주는뜻밖의동물원데이트를시작으로마법같고,꿈결같고,낭만적인밤을맞이한다.

태주는명의말들이이미지가되어파노라마처럼눈앞에펼쳐지는것같았다.벚꽃이흩날리는장면에서밤하늘에벚꽃이휘날리는장면으로,그리고또까만밤하늘에높디높은궁궐의담위로더높이희고고운꽃잎들이춤을추는장면으로.(53쪽)

태주는뭔가강렬한욕구를느꼈다.오랫동안잊고있던욕구였다.뭔가에대한갈망비슷한것이었다.어쩌면잡힐듯,어느새가까이다가온,그러나손가락사이로빠져나가바람에멀리날아가사라져버리는벚꽃잎들같은것들에대한.(68쪽)

“아무렇게나도좋지만어떻게든나하고같이가봐요.
그러니까우리도우리의방식으로같이가봐요.어떻게든.”

불꽃놀이가되는꽃놀이,눈송이가되는꽃송이

“디보스드(divorced)”라는재하의말에“미투”라는명의대답으로시작된이‘돌싱’들의연애관계는“오랫동안서로에게편안함을”(76쪽)느끼며지속되었지만,새로운사랑이탄생하면서끝을맞이한다.태주는“여러날동안,오랫동안,어쩌면그녀를처음보았을때부터담아두었던말”“내가명을좋아해”(80쪽)라고재하에게고백한다.재하는“태주를줄위에올려놓고싶은마음이조금,아주조금있었”지만,“자신도모르는사이에자신이야말로줄위에있었”고,“떨어진사람은자신뿐”(86쪽)이라는걸자각한다.“스스로생각했던것이상으로명을사랑했”(85쪽)다는사실역시깨닫지만단호한명의마음을되돌릴수는없다.

“그런게아무렇지않을때도있고신경이쓰일때도있어.아무렇지도않아서헤어질까하는때가있었어.재하씨에게도무지마음이없어서.그러다가도신경이쓰여서헤어질까하던때도있었어.마음이있다해도다른여자만나는애인과계속만날수는없으니까.이럴때는저럴때를생각하고저럴때는이럴때를생각해.그러면굳이꼭지금끝내지않아도될것같다는결론이나와.(…)그런데이제는정리할때가됐어.이렇다해도헤어져야하고저렇다해도헤어져야해.우리는여기까지야.”(84~85쪽)

반면봄날의꽃놀이에서시작된태주와명의사랑은불꽃처럼타오르기시작하고,태주는“‘우리’라는말이반짝거리는것처럼”(100쪽)느껴진다.그러니함께밤을보낸다음날아침,아무렇게나내린커피를두고도이들은이런대화를나눌수밖에.“아무렇게나도좋지만어떻게든나하고같이가봐요.(…)우리도우리의방식으로같이가봐요.”(99쪽)명역시연인과해보고싶었던,같은책의같은대목을소리내어번갈아읽는시간을태주와가지면서새롭게다가온사랑을한껏감각한다.

사랑이사랑의말을만들었다.사랑의말이사랑을만들었다.기의가기표를만들었고,기표가기의를만들었다.명에대한사랑이사랑의발화를만들었지만사랑의발화는명에대한사랑을더깊게만들었다.(90쪽)

생각은언어로이루어진다.특정상황에서같은단어를떠올리는것은생각의경로가,감정의경로가비슷하다는것이다.언어는존재의집이다.명의언어는태주의것과다르지않았다.같은집의,같은세계의인간인것이다.(111쪽)

그러한지복의순간도잠시,명이기르는고양이‘앨리스’로인해태주에게알레르기증상이발현되면서이들의관계에도조금씩균열이일기시작한다.게다가앨리스의분리불안탓에“명의집에서밤을보낼수도,태주의집에서밤을보낼수도없”(119쪽)는상황에마저놓이고만것.태주는처음에는“재하도물리쳤는데”“앨리스는괜찮아”(114쪽)라며알레르기약과면역요법을동원하여극복해보려하지만,재하가여름휴가를떠나며명에게맡겨놓은또다른고양이‘하나’를발견하는순간“고양이도고양이지만재하에게도이길수있을것같지않”(135쪽)은기분에사로잡힌다.

욕망에대한욕망이란처음의욕망과는다른욕망이다.처음의욕망은충족되어사라졌거나이미희미해졌다.다른욕망은아직생성되지않았다.그사이에뭔가가있다.그것이이유를알수없는그무엇,러시아적권태?토스카다.(145쪽)

말수없는태주와두말않는명의사랑은기로에선다.그리고할말없는재하의흔적은사라질듯사라지지않는다.과연“열망은신체적핸디캡을넘어서지못”(139쪽)할까?정말“한눈에빠지는사랑과일년만에빠지는사랑이다른것일까.한두달만에마음이식는것과일년만에마음이식는것이다른것일까.”(152쪽)중요한것은이들의사랑은아직미결정의상태로,잠재태인채로우리를기다리고있다는사실일테다.그리고이이야기와인물들속에우리지난날의한조각도숨어있을것이라는사실역시.

무심한듯치밀한이사랑은이소설과꼭닮았다.두남자와한여자라는구도의측면에서『아내가결혼했다』의,『안나카레니나』라는주요모티프를공유하는동시에깊이있는아포리즘이산재한다는측면에서밀란쿤데라의『참을수없는존재의가벼움』의변주로도읽히는『원할때는가질수없고가지고나면원하지않아』.요즘식으로말하자면지극히리얼하고도자연스러운‘환승연애’의순간이,설렘과파토스가흘러넘치는어떤사랑의생애가이소설속에살아숨쉬고있다.얼마든지영원할수도,얼마든지순간적일수도있을30대의연애.그현실적연애의질감을제대로느껴보고싶다면,박현욱이그려낸이사랑의화신들을만나보지않을도리가없다.

작가의말

다만바라건대,그의말처럼이한편의소설이누군가의마음에조금이라도가닿을수있기를.이글로누군가는잠시라도마음의휴식을누리기를.

2024년여름
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