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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윤
저자:안윤 2021년제3회박상륭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방어가제철』,장편소설『남겨진이름들』,산문집『물의기록』이있다.이효석문학상우수상을수상했다.
모린007핀홀Pinhole047담담091작은눈덩이하나127또,155하지夏至179틈215해설|안서현(문학평론가)시간관찰자시점259작가의말277
“그림자와나란히”쓰겠다는조심스럽지만단단한결의를밝히며박상륭상수상작『남겨진이름들』(문학동네,2022)로세상에나온작가안윤의두번째소설집『모린』이출간되었다.퀴어앤솔러지『팔꿈치를주세요』(큐큐,2021)의제목이된문장으로뭇독자들의지지를얻은「모린」과“정체성을구성하는과거와현재사이의부단한대화”라는평과함께이효석문학상우수상을수상한「담담」을비롯해지난사년간공들여써낸일곱편의작품을엮었다.십년전독립출판으로펴낸산문집『수기水記』가눈밝은독자들의사랑을받아2020년개정증보판『물의기록』으로재출간되었을정도로섬세하고아름답기로정평이난안윤의문장이올겨울의첫눈처럼우리앞에도착했다.낯선궁금증을일으키는제목이붙은이번소설집은저마다의모린,즉‘유일한사람’에대한이야기다.안윤소설의인물들은어긋나고교차하는방식으로서로에게유일한사람이되어간다.“지진이자해일,사막이자극지,거스를수없는중력”(96쪽)같은누군가를,“다른이가납득하도록설명할수없”(150쪽)고심지어는스스로조차이해할수없는방식으로사랑하는일.그것은나자신또한이세상에서단하나뿐인단독자라는깨달음이후에가능하다고안윤은말한다.“그의이해가내가예상하는이해와일치”(105쪽)하기를바라는대신‘나’와‘너’를오롯이받아들이기위해안윤소설이경유하는길고느리고먼시간이“어김없이찾아올새봄으로”(258쪽)으로번져간다.상실한후에야비로소이어지는조각들천천히흐르는시간의틈에서차오르는온기모린은유일한사람이었다.유일한사람을사랑하는일은그를제외한나머지모든것을그럭저럭견딜수있게된다는의미다.(9쪽)책을펼치면가장먼저마주하게되는표제작「모린」의첫문장이다.‘모린’은이소설에나오는가상의책『보이지않는것들InvisibleThings』에등장하는인물이다.이책에서모린의이름은“딱한번등장”하며“나이나인종,성별등은언급조차되지않는다”(9쪽).누구든될수있는미지의이름인것이다.「모린」의주인공‘영은’은잠시떨어져있는시간을갖기로한애인‘미란’을떠올리며,그를모린이라고부르면어떨까생각한다.곧이어덧붙는영은의고백─“하지만난알고있어요.미란씨가그이름일필요도,그렇게불릴필요도없다는걸요”(45쪽)─은그것이어느새자신에게유일한사람이되어버린미란을호명하는하나의방식임을짐작게한다.한사람을안다는것그리고이해한다는것은무엇일까.「핀홀Pinhole」에서바느질공방을운영하는‘보라’는결혼을앞둔애인‘승원’에게중증장애인거주시설에서의문사를당한형이있다는비밀을알게된다.그리고기자이자다큐멘터리감독인‘경진’과함께승원의형‘정원’이감내해야했던삶을반추한다.가장내밀한것을공유한다고생각했던애인에대해“얼마나안다고생각하”느냐는질문을맞닥뜨리는순간,눈앞의사랑하는,혹은사랑한다고생각했던사람이한없이낯설어진다.「담담」은11년이라는긴연애끝에헤어짐을택한‘혜재’와안타까운사고로아내와딸을잃은‘은석’이서로에게스며드는과정을그린다.혜재는오랜연인이었던‘수윤’을끝내“온전히이해하지못했”다는사실을받아들이며,“이해할수없는사람을사랑한다고,사랑했다고할수있을”(96쪽)지궁금해한다.첫만남에서‘바이섹슈얼’과‘유가족’이라는정체성을밝히며시작된혜재와은석의관계는,그것이서로의“가장중요한정체성”(100쪽)인동시에각자의모습을구성하는수많은조각의일부일뿐이라는사실을이해하는시간을거치며,막연한내일이아닌담담한오늘을거듭해나간다.끝내온전히이해할수없을지라도한순간이나마닿으려애써온시간의흔적「작은눈덩이하나」에서삼십대후반에이른‘의선’은못나고볼품없던이십대초반,서로를있는그대로바라봐주었던단한사람‘준수’를회상한다.의선은오랜시간이흐른후준수가운영하는카페를찾아가문앞에작은눈덩이하나를놓고온다.“설령흔적조차남지않”(153쪽)고녹아버릴지언정분명히존재했던진심이여전히그곳에있다.한편,「또,」의‘수진’은어느날부턴가머리카락이‘또’하는소리를내며끊어지는증상에시달린다.그리고부사수였던‘민주’가사직서를내기위해회사에방문한날,그에게서비슷한소리를듣는다.완전하게이해하고이해받을수없다는근원적인한계앞에서도작가는한순간이나마누군가를이해하려애쓰는마음을헤아린다.보이지않는것을응시하고,들리지않는것에귀기울이며그너머에있는당신이이세상어딘가에서사라지지않고살아가기를기도한다.소설의인물들이“물어보지않는다는것을상대방이알아차리게하는방식으로”(18쪽)안부를묻고“밀도높은침묵이되어내려앉”(248쪽)은긴침묵을듣는이유다.「하지夏至」는서울에서제과점을운영하던‘수림’이폐업후고향으로돌아가기전오랜친구‘지언’과노을공원으로이별캠핑을떠나는이야기다.“일일이설명하지않아도어느정도짐작”(187쪽)만으로이어지는두사람의대화는상대방에대한존중에서비롯한애정어린거리감으로성립된다.너는잘지내.서울을떠난지일주일이지났을때지언에게서몇장의사진과함께메시지가왔다.매일늦잠을자고땀흘리며청소하고밥도맛있게먹어.저녁마다바닷가에서해지는걸봐.그어느때보다도너는잘지내.꼭보이는것처럼말하네?잘지내냐고물어야지.뭘물어,안봐도아는데.(……)너는잘지내.그건마치지언이내게거는주문같았다.너는잘지내.그주문에단단히걸려들고싶었다.(213쪽)이소설에서수림이해질녘노을을바라보면서브람스의인테르메초를여러피아니스트버전으로반복해듣는모습은,그가고여있는시간을매번다른방식으로되풀이하며내일을맞이하고있음을보여준다.이번소설집의해설을맡은문학평론가안서현은이처럼“길고느리고먼”안윤의소설을“시간을바라보는이야기”(263쪽)라고명명한다.더불어,길고완만하게사건을전개하는동시에인물의내면으로부터일정한거리를유지하는서술자의그시선이곧관계를맺는태도가된다는점에주목한다.함께한시간에비례하는감정의크기로상대를옭아매기보다는각자와서로가지닌“정체성의모든국면을존중하는태도”(275쪽)를견지함으로써“사랑하면서도각자로남아있을수있다는”(268쪽)용기를주는것이다.‘너’와‘나’사이의틈이메워질때뚜렷하게떠오르는겹겹의세계마지막수록작인「틈」은‘너’와‘나’사이의틈을메우는길고긴이별의방식을보여준다.소설은이혼후연락이끊긴친구‘사희’를찾아간‘인애’의과거와현재그리고미래를오가며진행된다.사희는상실의시간을겪는동안,흠집이난그릇을수선하는도예기법인킨츠기를배우고가르친다.균열의흔적을되짚고더듬으며자신의시선과손끝에서태어나는‘온전함’을빚어나간다.인애는구년만에사희를재회한후에도그간몰래피어난응어리와그리움을이해하기까지또다시오랜세월을필요로한다.늦겨울의저수지에서얼어있던수면이산산이깨지는소리를들은인애가때늦은이별을고요히맞이하는장면은일곱편의소설과함께켜켜이쌓인시간을관통한독자만이누릴수있는시리도록아름다운순간이다.첫수록작「모린」에서시각장애인‘영은’은‘미란’과의첫만남에서이렇게말한다.“팔꿈치를주세요.(…)이제미란씨만믿을거예요.”앞이보이지않는상황에서눈앞의상대를오롯이신뢰하는마음이란무엇일까.뒤이은여섯편의소설은지금내옆에서있는한사람을무턱대고믿어보는“도무지알수없”고“흔들리고부서지기쉬운”(57쪽)그마음에대한저마다의대답이다.“사랑했고증오했고끝내헤어졌지만,그래서앞으로영영보지않을완전한타인이되기를바랐지만”(172쪽)그럼에도“헤어지고만나고헤어지고,그걸반복하”(113쪽)는이들이살아가는이야기다.유일한사람과맺는유일한관계가아닌,여러겹의세계를꿈꾸게하는안윤의소설.“책장을넘기면영은과의시간이고스란히거기에있다”는「모린」의한문장처럼,우리의시간도이책속에서겹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