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의 있는 힘

대지의 있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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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 사람이 무언가를 밀고 있었다
있는 힘을 다하여”
이 땅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향한 치열한 응원
박철 시세계의 새로운 원년, 열한번째 시집 『대지의 있는 힘』

소설가 현기영의 우정 에세이 「작가는 마지막 시민입니다」 수록
저자

박철

저자:박철
1987년『창비1987』에시를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김포행막차』『밤거리의갑과을』『새의전부』『너무멀리걸어왔다』『영진설비돈갖다주기』『험준한사랑』『불을지펴야겠다』『작은산』『없는영원에도끝은있으니』『새를따라서』,동시집『설라므네할아버지의그래설라므네』『아무도모르지』,소설집『평행선은록스에서만난다』등을펴냈다.천상병시문학상,백석문학상,노작문학상,이육사시문학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대지에,대지를향하여,대지를이루고
있는힘/호객/흐르다/그대장대같은/연인/뚜렷한시인/사랑이떼지나/동행/소년에서―간헐적인너의전부/미친듯이/석제사유가부좌상/흐르는강물처럼/호마병/꽃의노래/전광석화/심연/죽음의내력/상처/갈매기/주먹도끼/밀월/일포스티노/전환기/오래된병/세집메/노변풍경/물한잔

2부고운눈에게는고운눈의삶을돌려준다
의자/능수버들/어느개체와보낸한나절/묘향에오르다/김포공항/웅어가뛴다/행주강가에서/다리/건널목에서/길/햇살에기대어/가을의전설/영사정/서해낙조/서북향/방/기억/기가막힌날/호이안의밤거리/임대아파트/글싹/연년생/구시렁구시렁/철듦에대하여/아이,우서라/새의노래/시/소리없이

3부지금이야말로시를쓸때다
다소곳이/낫/사과/작용과반작용/개돼지가되어/깨어있어야한다/꽃을보는법/숨길수없는얼굴―혁명의실체/모퉁이/Live/보았는가―누군가자신이가장높은곳에임하였다섣불리말하지않아야하는것처럼,가장낮은곳에있다서둘러외치지말아야한다/허풍쟁이들/낮과밤/나에게전하는한마디―로베르트발저/천강(千江),이성의우물―장보드리야르/천강(千江),꽃밭에서―저우언라이/선물/변해야좋으나/성전의시

우정에세이|작가는마지막시민입니다―나의망년우(忘年友)박철시인의목소리를빌려
현기영(소설가)

출판사 서평

『대지의있는힘』은그러한시인이“모색과실험”을통해“확실한변화”를도모한시집으로,원점에서새롭게“미래로향하”려는시인의발돋움이자그“한권의결실”(편집자와의미니인터뷰에서)이라할수있다.시집의문을여는「있는힘」을살펴보자.

대형쇼핑센터에어둠이밀려오고
한사람이무언가를밀고있었다
있는힘을다하여
한줄에스무개,열다섯줄을
어둠을등에지고밀고있었다
가득한물건가득한사람
가득한지구를위하여
빈수레를밀고있었다
아침을향하여
경건하고진지하게밀고있었다
발등을세우고두손을움켜쥐고
몸통으로비스듬히일직선으로
밑을바라보며밀고있었다
대지란이런것이다
발걸음이란이런것이다
민다는것은이런것이다
어떤주장도외침도없이
그냥그래야하는것으로
기어이그래야하는것으로
어둠속에서
모두가돌아간곳에서
있는힘을다하여
빈수레를밀고있었다
_「있는힘」전문

시인은“한줄에스무개,열다섯줄”의“빈수레”를“어떤주장도외침도없이”밀고있는“한사람”을바라본다.“그냥그래야하는”것이아니라“기어이그래야”한다는마음으로제할일을해내는그를시인은“있는힘을다하”고있다고표현한다.‘있는힘’이란무엇일까.“있는힘을다하여산맥처럼걸어가는강”(「흐르는강물처럼」),“부딪고또치달아있는힘을다하여”(「주먹도끼」),“나있는힘을다하여먼길을돌아왔노라”(「전환기」)등여러편의시에서그구절이반복되는것으로보건대‘있는힘’이란시인이이번시집을통해강조하는중요한삶의태도로보인다.그것은“모두가돌아간”“어둠속에서”도“경건하고진지하게”(「있는힘」)제몫의노동을해내는이의최선,시인이강조하는숭고한태도일것이다.시인은그처럼이땅에발붙이고하루하루를살아내는이들을향해치열한응원을보내고,우리사회가그러한이들로이루어진“대지”가되기를희망한다.
사는일과스치고지나는모든이들과
빈번한초록과간헐적인너의전부
멀리대지에,대지를향하여,대지를이루고
너는너하나로가득자유와생명을내어던지며
대지의있는힘
산마루이어넘는너의노래
가끔너는너에게큰점수를주어라
_「소년에서―간헐적인너의전부」부분

1부‘대지에,대지를향하여,대지를이루고’가삶이라는대지를일구는이들에게보내는뜨거운응원을들려주고있다면,2부‘고운눈에게는고운눈의삶을돌려준다’는우리네소박한일상속에서사랑을길어올리는눈빛을그리고있다.

이제맑은하늘을보면
뭐라도내주고싶다
서로사랑하라는말을
노젓듯흔드는버드나무아래
오랜친구와모처럼강둑에앉았다
(…)
이맑은하늘아래
강가에나나앉은처지가또한우습기도하고
아직은조금더사랑해야할텐데
하늘이저리푸르고강물이다정해도
내줄것을마땅히찾지못했다
이제는강건너만보아도아득한나이
가보지못할천불산얘기에울화가치밀지만
그래도맑은강물이돌아보며흘러갈때는
분명오늘은운수좋은날
빈손이라도꼭쥐고일어선다
오늘은기분좋은날
사랑얘기도듣고많은것을보고
무언가를받아들고
처음가는길인양마을안으로돌아선다
_「가을의전설」부분

박철을가리켜시인박형준은“우리시대사람살이와가장닮은시어로시를쓰는시인”이라칭한바있다.「가을의전설」은그처럼시인이담백한언어로읽는이의마음을어루만지는시이다.“강건너만보아도아득”해지는“나이”가된시인은“오랜친구”에게“사랑얘기도듣고”또“많은것을보”며“무언가를받아들”이려고노력한다.“사랑하는동안살아가는동안”(「시」)에주변과이웃에게,그리고자연에“뭐라도내주고싶”고,아직도세상을“조금더사랑”하고싶다고고백하는시인의목소리는깊은여운을남긴다.또한여전히삶을“처음가는길인양”대하는시인의열린마음은,관계를사람과사람사이에만국한하지않고개체와개체간으로확장한다는점에서주목을요한다.

개는예민하게반응하고나를돌아보았다
그눈빛속을들어가본듯개의마음을헤아리는동안
수시로현관문앞에서서딸을기다리는개의뒷모습을보면서
내가지녀온오래고깊은어떤아픔을떠올릴수있었다
어쩌면나의이런생각이다틀릴지도모른다
개는개이고나는나일뿐
우리의만남이나인연도한나절에불과할지모른다
그렇다해도하나분명한것은
개에게도사려[道]와우리로선알수없는말[氣]이있으며
그리고무엇보다더분명한것은
그를통해지난날감당하기힘들었던
나의어떤외로움을다시떠올렸다는것이다
_「어느개체와보낸한나절」부분

시인은“개는개이고나는나일뿐”이라고생각하지만,문득고요한관조속에서개또한시인자신처럼저만의“사려[道]”와“말[氣]”을지녔다는것을깨닫는다.개를통해시인은제안의외로움을떠올리고,“한나절에불과할지”도모르는이스쳐가는관계를운명적인마주침으로의미화해냄으로써우리주변부를새로운눈으로다시금둘러보게한다.
한편,3부‘지금이야말로시를쓸때다’는시쓰기에대한시인의마음가짐을다룬시들을통해박철시세계의변화를감지하게한다.

생각해보면급기야차라리나는태어나지않아도되지않았을까하는너그러운마음까지들기도하는것인데왜냐면내가내보이는모습은아버지가이미옛시절다보인바고내가살아가며떨치지못하는막막함은어머니가살아오며넘치게부딪친일들이기때문입니다.
이렇게시를쓰며살아가는일도할머니가아궁이에잔솔가지긁어모으며부지깽이로다그려본것이고내융통성없는미련함은아버지가늘주워삼키던할아버지의못된모습입니다.
(…)
그러나,그러나아직멀리떠나보지않은탓인지시를놓지못해그런지뭔가하나만은,한둘은나만이겪고나만이간직할깊은사연이있을법한데,하,꼭어디숨어있을텐데,아닌가,그런가,아무튼이번생에그것까지알고갈지는까마아득히오리무중이니아뿔싸.
_「변해야좋으나」부분

3부의말미에실린「변해야좋으나」는시작노트로쓰인산문으로읽히면서그자체한편의장시로도읽힌다.“시를쓰며살아가는일”에대한허무와회의가도드라져보이지만,“그러나”다음이어지는이야기는기실시쓰기에대한시인의놓을수없는열망을역설적으로드러내는듯하다.시인은여전히말해지지않은,“나만이간직할깊은사연”을담고있는“시”가어딘가“숨어있을”거라생각하는동시에,하지만그조차“오리무중”이라말함으로써시쓰기를하나의미래(未來)로남겨둔다.이의지는그간에쌓아올린시세계에안주하지않고언제든새롭고도무한한시를향해나아가려는시적태도가아닐까?“때로는낙망하고때로는기타줄을퉁기면서,있는힘을다하여”시를쓰고싶다는‘시인의말’속능청어린포부를떠올리게도하는대목이다.

작가는와글거리는질주의소음속에서정적과침묵,고독의공간을완강하게지켜냅니다.운명처럼외롭고높고쓸쓸한그공간에서작가는부박한세태속에빠르게잊혀가는소중한의미들,아름다운것들을성찰하고그것들을망각에서구해서눈에보이게뚜렷하게재현해내는일을해야하겠지요.(…)그래서나의친구시인박철은이렇게노래한것아닐까요?

지금이야말로시를쓸때다
시를써야할때는지금이다
새떼잠깨어화염속으로물들고놀은번지고

밤마다멀리쇳덩이끄는소리
곧거친세상이올거다
지금은꽃씨를삼켜야할때
눈뜨고거리에서야할때
그럼피리라너는
_「허풍쟁이들」부분

시인과사십여년의우정을쌓아온망년우(忘年友)소설가현기영은‘우정에세이’에서“지금이야말로시를쓸때다”라며시인의“과거와미래사이의현재”(「다리」)를북돋는다.그응원에동참하지않을수없다.

박철시인과의미니인터뷰

Q1.『대지의있는힘』은박철시인님의열한번째시집입니다.‘열한번째’란열번째이후다시첫번째라는생각이들고,그래서더욱의미있어보여요.시집을출간하는소감을여쭤보고싶습니다.

이번원고를묶어내면서열한번째라는걸알게되었어요.작가들은대부분지나온길은잊고살거든요.그러나요즘이런생각은늘하고있어요.육체가급격히노쇠했다는느낌과여러환경과관계에서내가늙었다는자각말이에요.그러면서무엇보다문학적자세나방법에서변화의필요성이절실해졌어요.이런저런모색과실험도해봤지요.몇권의책을내야겠다,미리다짐을하고글을쓰지않듯이단지그런마음속에한편한편써모은시집이이번에열한번째입니다.나로선확실한변화가보이는데독자들은어떨지모르겠네요.매번미래로향하듯이지난열번의궁리가이번한권의결실로증명되었으면합니다.

Q2.“있는힘을다하여산맥처럼걸어가는강”(「흐르는강물처럼」),“부딪고또치달아있는힘을다하여”(「주먹도끼」),“나있는힘을다하여먼길을돌아왔노라”(「전환기」)등여러시편에서‘있는힘’이라는구절이등장합니다.박철시세계의중요한키워드로느껴져요.이번시집의제목이‘대지의있는힘’이기도하고요.어떤의미를담고싶으셨을까요?

돌이켜보면지난시집은‘새’,그먼젓번은‘영원’,또다른시집들도마치키워드처럼시어나문장이눈에띄더군요.시를쓸당시에는전혀의식하지않은상태에서반복적으로나온말들입니다.어느한시기거기에빠져있는것이지요.‘있는힘’은큰힘이나보다나은힘을말하는것이아닙니다.풀과나무의모습이다르듯이모두저만의힘은제각각이듯,그각자가지닌‘최선의힘’을말합니다.미물을비롯해모두가최선을다해살아갑니다.비록실패한인생처럼보이는사람들도저마다최선을다해살아간다는것을믿어야합니다.그게곧차별없는세상의원천이지요.이차별없는배경에서나름의아름다움,새로움,가치,미래를발견하는것이제글의변하지않는소소한지향점이라할수있습니다.

Q3.「사랑이떼지나」에서“사랑이변하는것은아니다/사랑의풍경이변할뿐이다”라는대목이인상적이었어요.「의자」나「김포공항」또한사랑을그린아름다운시들이라고느꼈고요.이런시들을쓰실때는어떤마음이셨나요?

그리움이란우리에게언제나따라붙는것이고나이가들면조금더짙어질뿐이지요.물고물리는그리움과사랑은우리의그림자와같습니다.가봤던길,가보고싶은길에대한욕망이조울증처럼널뛰기를하는것이지요.잠시지만조증일때쓴시들일겁니다.갈수없는길도그때는갈수있으리라믿거든요.아직철이덜들었단얘깁니다.

Q4.이번시집에서시인님이개인적으로가장아끼는시가무엇인지그이유와함께말씀해주실수있을까요?

어느시집에선가한권의시집이아니라,한권의시를쓰고싶었다고비장하게시인의말을쓴적이있습니다.특별히눈이가는시가있겠어요?자식들처럼다미흡하고조심스럽지요.다만「있는힘」처럼내의지가드러나는시,여백이활짝열린짧은시가그래도좀낫습니다.

Q5.마지막으로,『대지의있는힘』을읽을독자들에게인사를건네주세요.

시가충분히읽히지않는다는생각을지울수가없습니다.많이읽히기를원치않습니다.프루스트도언젠가그런말을했지요.얼마나많이읽히느냐가중요한것이아니라,누가읽느냐가중요하다고요.누가읽느냐도매우중요하지만깊이읽어주기를바라요.모르겠어요,내가재주가없어천천히써서그런지독자분들도천천히읽어주기를바랍니다.급할수록돌아가는지점이바로시가머무는곳입니다.

시인의말

인간은세다.
다만그강인함이자연과약한이들을해치는방향으로너무쏠려있는것이문제였다.할만큼했으니,이제돌아서누군가를위하고자신에게매몰찰내치의시기.
그렇지않으면지구보다내가먼저황무지가될것이다.매사종요로운일은사람이사람으로사는것일텐데,사람됨은얼마나어려운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