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두 개 더 - 문학동네 시인선 222

햇빛 두 개 더 - 문학동네 시인선 222

$12.00
Description
“당신은 없어요
하지만 내가 당신 곁에 있을게요”

온유한 시선으로 마주하는 오늘의 얼굴
반짝, 착각이 선물하는 삶의 비의들
문학동네시인선 222번으로 고영민 시인의 시집 『햇빛 두 개 더』를 펴낸다. 2002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한 이후, 담백하고도 꾸밈없는 일상의 미학과 시학을 전개해온 그의 여섯번째 시집이다. “겸허하고 곡진한 마음으로 ‘온기’를 불어넣으며 평범한 일상을 비일상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제22회 천상병시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시인 고영민. 시인은 일상 속에 편재한, 그러나 시심과 시안 없이는 쉬이 그 모습이 발견되지 않는 ‘사랑’과 ‘기억’을 길어내 때로는 고요하게 반짝이는 애연한 시편을 때로는 빙그레 미소 짓게 하는 소탈한 시편을 선보이며 한국 서정시의 현대적 지평을 몸소 넓히고 있다.

그의 여섯번째 시집 『햇빛 두 개 더』는 ‘산뜻한 엘레지’라 명명하고픈, 고영민 특유의 감성으로 자아낸 시작으로 가득하다. 한 인터뷰에서 시인은 “제가 가장 잘하는 것 중의 하나가 무언가에 대해 또렷이, 그리고 아주 오래 기억하는 것”이라고 밝힌바, 이번 시집 역시 부재하는 것이 현현하는 순간과 부재하게 될 것의 비애감을 품은 시편들이 주조를 이룬다. ‘무’에서 ‘유’를 보거나 ‘유’에서 ‘무’를 보는 이 시적 인식은 필연적으로 기쁨과 슬픔 또한 겹쳐 느낄 수밖에 없을 터. 이는 끝도 없이 슬플 수만도 간단없이 기쁠 수만도 없는 생의 단면을 정직하게 감각하는 태도이기도 하지만, ‘삶’이라는 비속하고도 지난한 ‘내용’이 이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기를 허락하지 않는 ‘시’의 ‘형식’과 결합하면서, 고영민만의 고유한 시를 탄생하게 하는 동력으로도 작용한다. 이 산뜻하고도 가뿐한 몸으로 그려진 깊은 슬픔이야말로 오직 그만이 다다른 경지이자 시적 성취이다.

아버지 고창선은 어머니 김도화를 만나
6남 6녀 12남매를 낳고
큰형 고명규는 5남 2녀를 낳고
큰누나 고순희는 3남을 낳고
둘째 형 고흥규는 지금은 세상에 없지만
1남 3녀를 낳고
둘째 누나 고순홍은 2남을 낳고
셋째 형 고준규는 1남 1녀
셋째 누나 고선화도 1남 1녀
넷째 형 고상규는 지금은 세상에 없지만
1남 1녀를 낳고
넷째 누나 고난영은 2남을 낳고
다섯째 형 고운규는 1남 1녀
다섯째 누나 고난희는 2녀
여섯째 누나 고난미는 1남 2녀
12남매 중 막내인 나 고영민은
2녀를 낳고


분명 우리에게 내일은
슬픈 것
비로소 그때 새로운 사랑은 오지
_「마태복음」 전문

특히 이번 시집에서 주목할 부분은 ‘인지적 착각’이 정교한 시의 기예가 된다는 사실이다. 시는 비단 인접한 이미지들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무에서 유로 옮겨가거나 유에서 무로 옮겨가기도, 나아가 소리의 유사성이나 인접성으로도 얼마든지 도약 가능하다는 것. “아파트 옆 동 쪽으로 걸어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에 깜짝 놀”라며 “돌아가신 지 삼 년 된 어머니가 다른 모습으로/ 아직 이승에 살고 계신 건 아닐까”(「남의 이야기」) 착각하는 일, 잘못 배달된 생수를 “집을 잘못 찾은 꼬맹이들 같고/ 정신이 흐린 뉘 집 할머니 같다” 여기며 “내 것이 아닌데 내 것 같은/ 잠시 잠깐 맡겨둔 것 같은// (……) 저 투명하고 맑은 생면부지를”(「생수」) 마주하고 골똘해지는 일, 공원의 노란 산수유나무를 바라보며 아침에 끓여놓은 카레 한 냄비를 딸이 “남자친구 준다고/ 홀랑 가져가버”(「카레」)린 일을 떠올리는 등 시인은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인지적 오류나 착각을 시의 기예로 적극 끌어들이며, ‘메타포’는 나아가 ‘시’는 그렇게 일상을 오롯이 살아내는 동안 발견되고 쓰이는 ‘삶의 기예’임을 역설하는 듯도 하다.
“닮은; 내가 아니면서/ 남도 아닌 것 같은”(「형식들」) 것들과의 조우, 그리고 이를 통해 선물받는 삶의 비의(悲意/秘義). 이번 시집의 제목 ‘햇빛 두 개 더’ 역시 ‘해피 투게더’의 몬더그린(어떤 외국어 발음이 듣는 이의 모국어 발음으로 들리는 인지적 착각)에서 유래했다. 햇빛이라는 불가산명사를 하나둘 세어보는 일이 불가능을 언어화하려는 시쓰기와 닮았거니와, 슬픔이 밴 고영민의 시적 화자와 이를 읽는 독자들에게 선물하고픈 따스한 온기와도 닮았다. 삶은 “울음을 멈췄는데/ 그칠 수가 없고// 나는 나보다 더 오래/ 울”「그날 입은 옷」게 하지만, 그의 시는 “울어야 할 때는 일껏 섧게/ 오래도록 울”(「여름의 일」) 수 있도록 어깨를 빌려준다. 그뿐일까, 햇빛에 잘 말려둔 보드라운 손수건 같은 시이자, 그 손수건을 쥐여주며 말간 농담을 건네는 시이기도 하다.

영화관에서 단적비연수 두 장 달라는 것을
단양적성비 두 장 달라고 말했는데
단적비연수 표를 내줬다는,
형식과 내용이 합일하는 이런 경이로움을
나는 사랑한다

(……)

해피 투게더를
햇빛 두 개 더, 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후배 시인이 아는 할머니 한 분은
헤이즐넛 커피를 해질녘 커피로
알고 있다
_「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부분

『햇빛 두 개 더』는 총 4부 구성으로, 각 부의 제목은 ‘분명 우리에게 내일은 슬픈 것’ ‘일껏 섧게’ ‘반그늘’ ‘봄 쪽으로’로 정했다. 우리의 일상을 주제로 분절하는 것이 불가능하듯, 일관되고 또렷한 성격으로 부를 구분하기보다 해가 뜨고 해가 지는 하루처럼, 슬픔이 젖었다 마르기를 반복하는 리듬을 따랐다. 시인이 “환한 어둠 속에서”(「가로등」) 건네는 이 시편들은 힘껏 슬프지만, 이를 거두어가려 작정하지 않기에, 체념도 극복도 아닌 다만 너그러운 ‘긍정’의 태도로 마주하려 하기에 더욱 포근하게 다가온다. “시는 그저 일상”(‘미니 인터뷰’)이라는 시인의 말을 나침표 삼아, “수많은 오늘이 쏟아지는// 빛이 가득한 두 그루 목백합나무 사이에서// 두 사람처럼 혼자// 내려다보는 기분으로”(「새의 순간」) 그의 시를 찬찬히 음미해봐도 좋겠다. “슬픔을 밀어내는 것은/ 슬픔뿐”(「반감기」)이기에, “기억은 다 볼 수 있”기에, “당신은 없”지만 “내가 당신 곁에 있을”(「춤의 끝」) 것이기에.

세계도, 나도, 그리고 언어도 모두 흐르고 변하는 것임을 받아들일 때, 멈춰버린 삶의 본래적 상태 대신 생동하는 현재적 상태를 더 바짝 끌어안을 때 사랑은 패스워드처럼 반드시 “단적비연수”여야만 열리는 살벌한 보안의 세계가 아니라 “단양적성비”여도 망설임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장날의 잔치판이 된다. 우리는 일치의 일치보다 불일치의 일치에 더 매혹을 느끼며, 완벽히 이해할 수 없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는 사람들이다. 한 치의 오차 없는 발화보다 잘못 말한 “햇빛 두 개 더”와 “해질녘”이 더 아름다운 여기가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_이병철, 해설에서

끝으로, 간결하고 산뜻하지만 고영민 시의 요체로도 읽히는 ‘시인의 말’에 주목을 부탁드린다.
“이건 연습이에요/ 연습일 뿐이에요”
이는 어쩌면 실전만이 존재할 뿐인 삶을 마주하고도 짐짓 ‘연습’이라고 말해보(주)는 너그러움이 느껴지는 동시에, 삶 그 자체가 죽음의 연습-도정이라는 슬픈 사실 역시 상기시킨다. 그러나 이 연습이 끝내 슬프지만은 않은 이유는 ‘연습으로서의 시’가 우리의 삶에 끼어들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고영민의 시가 그렇다. “무람해진 너를 위해/ 오늘은 그곳에 있을게// 우리는 지금 막 만났고/ 나를 웃게”(「혼잣말」) 하는 그와 그의 시는 하나의 햇빛으로는 아쉬운 탓에 햇빛 하나를 더 꺼내어준다. “분명 우리에게 내일은/ 슬픈 것”이지만 “비로소 그때 새로운 사랑은”(「마태복음」) 온다. 그 따스하고 넉넉한 햇빛 아래에서, 마침내 새로운 삶 역시 우리에게 청혼해올 것이다.

바다는 누군가가
벗어던진 반지 하나를
밤새 물가로 밀어냈습니다

아침이 되자
민무늬 반지 하나가
모래톱 위에 반짝, 걸려 있고

파도는
잠잠해져 있었습니다
_「청혼」 전문
저자

고영민

저자:고영민
1968년충남서산에서태어났다.중앙대문예창작학과를졸업했다.2002년『문학사상』을통해등단했다.시집으로『악어』『공손한손』『사슴공원에서』『구구』『봄의정치』등이있다.

목차

시인의말

1부분명우리에게내일은슬픈것
늙은시/마태복음/카잔역/그해오늘/나는나의감옥처럼/지나가는감정/남의이야기/립싱크―노래는입술을기억하고/사랑의불가능/자축/검은넥타이/형식들/보트를쓴남자/여전히그게나이기에/혼잣말/망고가가장맛있을때/감은눈/새의순간/춤의끝

2부일껏섧게
나는그저녁에대해/웃는소년/원근/쇠냄새/왕진/뿌리의심정/암막커튼/입으로물고온것들/그날입은옷/큐브/이제나저제나/인사/채광/어머니구이/채록―웃음소리/사랑니/쫓는피/그놀라운아침에/여름의일/함박눈

3부반그늘
유령/자책감―나는나를어떻게도울수있을까내가서로다른것을원할때/가로등/나는어머니입속의염소고기처럼/좁은방/댐/생수/더덕/아침/긴풀/정원/오대산/하트모양의돌/소년이소녀일때/처음보았다는이유/이많은저녁속에/관람차/관심은감사합니다만제가알아서잘하겠습니다/기어가는기분/안부

4부봄쪽으로
외로운일/점성술/깊은곳/꽃댕강/흰빛/칡/참을수없는존재의가벼움/반감기/청혼/내뒤의사람/감정/구름의운구/빗소리배웅―비는가고빗소리만남아/악기/황금빛가을에/저녁의과녁/카레/튜브/도자기새

해설|형식들속에서솟아오르는오늘의얼굴
이병철(시인,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아버지고창선은어머니김도화를만나
6남6녀12남매를낳고
큰형고명규는5남2녀를낳고
큰누나고순희는3남을낳고
둘째형고흥규는지금은세상에없지만
1남3녀를낳고
둘째누나고순홍은2남을낳고
셋째형고준규는1남1녀
셋째누나고선화도1남1녀
넷째형고상규는지금은세상에없지만
1남1녀를낳고
넷째누나고난영은2남을낳고
다섯째형고운규는1남1녀
다섯째누나고난희는2녀
여섯째누나고난미는1남2녀
12남매중막내인나고영민은
2녀를낳고
...
...
분명우리에게내일은
슬픈것
비로소그때새로운사랑은오지
_「마태복음」전문

특히이번시집에서주목할부분은‘인지적착각’이정교한시의기예가된다는사실이다.시는비단인접한이미지들로만전개되는것이아니라,무에서유로옮겨가거나유에서무로옮겨가기도,나아가소리의유사성이나인접성으로도얼마든지도약가능하다는것.“아파트옆동쪽으로걸어가는/할머니의뒷모습에깜짝놀”라며“돌아가신지삼년된어머니가다른모습으로/아직이승에살고계신건아닐까”(「남의이야기」)착각하는일,잘못배달된생수를“집을잘못찾은꼬맹이들같고/정신이흐린뉘집할머니같다”여기며“내것이아닌데내것같은/잠시잠깐맡겨둔것같은//(……)저투명하고맑은생면부지를”(「생수」)마주하고골똘해지는일,공원의노란산수유나무를바라보며아침에끓여놓은카레한냄비를딸이“남자친구준다고/홀랑가져가버”(「카레」)린일을떠올리는등시인은일상에서맞닥뜨리는인지적오류나착각을시의기예로적극끌어들이며,‘메타포’는나아가‘시’는그렇게일상을오롯이살아내는동안발견되고쓰이는‘삶의기예’임을역설하는듯도하다.

“닮은;내가아니면서/남도아닌것같은”(「형식들」)것들과의조우,그리고이를통해선물받는삶의비의(悲意/秘義).이번시집의제목‘햇빛두개더’역시‘해피투게더’의몬더그린(어떤외국어발음이듣는이의모국어발음으로들리는인지적착각)에서유래했다.햇빛이라는불가산명사를하나둘세어보는일이불가능을언어화하려는시쓰기와닮았거니와,슬픔이밴고영민의시적화자와이를읽는독자들에게선물하고픈따스한온기와도닮았다.삶은“울음을멈췄는데/그칠수가없고//나는나보다더오래/울”「그날입은옷」게하지만,그의시는“울어야할때는일껏섧게/오래도록울”(「여름의일」)수있도록어깨를빌려준다.그뿐일까,햇빛에잘말려둔보드라운손수건같은시이자,그손수건을쥐여주며말간농담을건네는시이기도하다.

영화관에서단적비연수두장달라는것을
단양적성비두장달라고말했는데
단적비연수표를내줬다는,
형식과내용이합일하는이런경이로움을
나는사랑한다

(……)

해피투게더를
햇빛두개더,라고말하는이가있다
후배시인이아는할머니한분은
헤이즐넛커피를해질녘커피로
알고있다
_「참을수없는존재의가벼움」부분

『햇빛두개더』는총4부구성으로,각부의제목은‘분명우리에게내일은슬픈것’‘일껏섧게’‘반그늘’‘봄쪽으로’로정했다.우리의일상을주제로분절하는것이불가능하듯,일관되고또렷한성격으로부를구분하기보다해가뜨고해가지는하루처럼,슬픔이젖었다마르기를반복하는리듬을따랐다.시인이“환한어둠속에서”(「가로등」)건네는이시편들은힘껏슬프지만,이를거두어가려작정하지않기에,체념도극복도아닌다만너그러운‘긍정’의태도로마주하려하기에더욱포근하게다가온다.“시는그저일상”(‘미니인터뷰’)이라는시인의말을나침표삼아,“수많은오늘이쏟아지는//빛이가득한두그루목백합나무사이에서//두사람처럼혼자//내려다보는기분으로”(「새의순간」)그의시를찬찬히음미해봐도좋겠다.“슬픔을밀어내는것은/슬픔뿐”(「반감기」)이기에,“기억은다볼수있”기에,“당신은없”지만“내가당신곁에있을”(「춤의끝」)것이기에.

세계도,나도,그리고언어도모두흐르고변하는것임을받아들일때,멈춰버린삶의본래적상태대신생동하는현재적상태를더바짝끌어안을때사랑은패스워드처럼반드시“단적비연수”여야만열리는살벌한보안의세계가아니라“단양적성비”여도망설임없이들어갈수있는장날의잔치판이된다.우리는일치의일치보다불일치의일치에더매혹을느끼며,완벽히이해할수없어도완전히사랑할수는있는사람들이다.한치의오차없는발화보다잘못말한“햇빛두개더”와“해질녘”이더아름다운여기가바로우리가사는세상이다._이병철,해설에서

끝으로,간결하고산뜻하지만고영민시의요체로도읽히는‘시인의말’에주목을부탁드린다.
“이건연습이에요/연습일뿐이에요”
이는어쩌면실전만이존재할뿐인삶을마주하고도짐짓‘연습’이라고말해보(주)는너그러움이느껴지는동시에,삶그자체가죽음의연습-도정이라는슬픈사실역시상기시킨다.그러나이연습이끝내슬프지만은않은이유는‘연습으로서의시’가우리의삶에끼어들기때문일것이다.바로고영민의시가그렇다.“무람해진너를위해/오늘은그곳에있을게//우리는지금막만났고/나를웃게”(「혼잣말」)하는그와그의시는하나의햇빛으로는아쉬운탓에햇빛하나를더꺼내어준다.“분명우리에게내일은/슬픈것”이지만“비로소그때새로운사랑은”(「마태복음」)온다.그따스하고넉넉한햇빛아래에서,마침내새로운삶역시우리에게청혼해올것이다.

바다는누군가가
벗어던진반지하나를
밤새물가로밀어냈습니다

아침이되자
민무늬반지하나가
모래톱위에반짝,걸려있고

파도는
잠잠해져있었습니다
_「청혼」전문

고영민시인과의미니인터뷰

1.5년만의신작시집입니다.독자들께오랜만에시집을선보이는소감과더불어인사말씀부탁드립니다.
저는요즘아침일찍공원산책을하는데,매번좋습니다.매일매일다릅니다.같은적이없습니다.늘처음이고마지막입니다.그런것처럼이번시집이여섯번째출간시집인데도처음처럼긴장되고새롭습니다.시집을묶을때의기분은늘처음의처음으로,끝의끝으로돌아간것같습니다.시가시를씀으로처음나를이곳에데려온것같고,또뒤늦게도착한기분입니다.멀고낯설고,시는시인속에서비롯된것이아닐거라는생각이듭니다.

2.이번시집에서단한번도등장하지않지만,주요한키워드를꼽자면‘가족’과‘일상’이라는생각이듭니다.이두단어가작가님의시작(詩作)에끼치는영향에대해들어보고싶어요.
시인은시를살아내는사람일것입니다.시는그냥살아가는일이고살아내는것이라생각합니다.시는그저일상입니다.그리고일상의한가운데가족이있습니다.시인은그렇게일상을오롯이살아내는것이며,그안에서순간순간부딪치는질문을통해,다른차원의존재가되는것이라생각합니다.

3.작가님의주요한시적방법론중하나가‘착-각’에있다는생각을했습니다.이와연관지어시가오는순간/시가되는순간들에대해말씀해주실수있을까요?
시는보는것에서출발합니다.유심히보는것은대상을새로운눈으로보는전제조건입니다.창조의본질은관찰하는,발견하는눈입니다.프랑스소설가마르셀프루스트는“발견의진정한마법은새로운풍경을찾아나서는데있지않다.새로운눈을갖는데있다”고말합니다.즉,대상을어떻게인식하느냐가관건입니다.제시에서의착각도인식의한방법입니다.저는서로다른세계의겹침을경험할때가있습니다.물론착각이죠.관점의변화만으로도친숙한풍경이새롭게보이는현상을경험할수있기때문입니다.대상을새로운시각으로인식하는것,이것이우리가일반적으로말하는‘시적인식’입니다.흔히시인(詩人)을시인(視人)이라고말하는이유도이때문일것입니다.

4.수록작중에가장마음이가는시편은무엇이었나요?그이유에대해서도들어보고싶습니다.
「립싱크」라는시입니다.결국저는또어머니이야기를하고맙니다.이시에서의애인은어머니입니다.회사에서일을하는데,무심결제가어머니가생전에즐겨부르던노래를흥얼거리고있었습니다.이노래가어떻게나를찾아왔을까.먹먹해진가슴으로한동안자리에앉아있었습니다.어머니가그노래를어디에서어떻게익혔는지모르지만,어머니는가끔밭이나부엌에서일을할때그노래를혼자흥얼거렸습니다.노래는어머니가부른다기보다는그냥어머니에게서흘러나왔습니다.어머니가무언가에잔뜩정신이팔려자신을놓고있을때노래는흘러나왔고,자신이노래를흥얼거리는것을자각하는순간노래는어머니의입에서잦아들었습니다.그순간어머니는노래의노래였습니다.

5.작가님만의‘시읽기’노하우한가지를알려주세요.
시를쓰는사람이나읽는사람이나시의숙주입니다.시는시를쓰기로,또읽기로작정한사람의내부에서생(生)을시작하기때문입니다.사람이시속으로들어가는것이아니라시가사람속으로들어옵니다.시가들어와사는것입니다.숙주가기생체를선택하는것이아니라기생체가숙주를선택하는이치와같습니다.숙주의기능이다된경우기생체는자기에게필요한다른숙주를선택하게됩니다.시는끊임없이시를쓰기로,또읽기로작정한사람을찾아다닙니다.그렇기때문에시는한눈금도더할수도뺄수도없이몸으로살아낸만큼쓸수있으며,읽어낼수있으니덤도에누리도없습니다.시를잘쓰거나읽기위해서는자신을시적인상태로만들어놓아야합니다.시가자기안에서잘살수있도록좋은마음,몸상태를만드는것이중요합니다.

시인의말

이건연습이에요.
연습일뿐이에요.

2024년9월
고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