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당신은 없어요
하지만 내가 당신 곁에 있을게요”
온유한 시선으로 마주하는 오늘의 얼굴
반짝, 착각이 선물하는 삶의 비의들
하지만 내가 당신 곁에 있을게요”
온유한 시선으로 마주하는 오늘의 얼굴
반짝, 착각이 선물하는 삶의 비의들
문학동네시인선 222번으로 고영민 시인의 시집 『햇빛 두 개 더』를 펴낸다. 2002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한 이후, 담백하고도 꾸밈없는 일상의 미학과 시학을 전개해온 그의 여섯번째 시집이다. “겸허하고 곡진한 마음으로 ‘온기’를 불어넣으며 평범한 일상을 비일상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제22회 천상병시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시인 고영민. 시인은 일상 속에 편재한, 그러나 시심과 시안 없이는 쉬이 그 모습이 발견되지 않는 ‘사랑’과 ‘기억’을 길어내 때로는 고요하게 반짝이는 애연한 시편을 때로는 빙그레 미소 짓게 하는 소탈한 시편을 선보이며 한국 서정시의 현대적 지평을 몸소 넓히고 있다.
그의 여섯번째 시집 『햇빛 두 개 더』는 ‘산뜻한 엘레지’라 명명하고픈, 고영민 특유의 감성으로 자아낸 시작으로 가득하다. 한 인터뷰에서 시인은 “제가 가장 잘하는 것 중의 하나가 무언가에 대해 또렷이, 그리고 아주 오래 기억하는 것”이라고 밝힌바, 이번 시집 역시 부재하는 것이 현현하는 순간과 부재하게 될 것의 비애감을 품은 시편들이 주조를 이룬다. ‘무’에서 ‘유’를 보거나 ‘유’에서 ‘무’를 보는 이 시적 인식은 필연적으로 기쁨과 슬픔 또한 겹쳐 느낄 수밖에 없을 터. 이는 끝도 없이 슬플 수만도 간단없이 기쁠 수만도 없는 생의 단면을 정직하게 감각하는 태도이기도 하지만, ‘삶’이라는 비속하고도 지난한 ‘내용’이 이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기를 허락하지 않는 ‘시’의 ‘형식’과 결합하면서, 고영민만의 고유한 시를 탄생하게 하는 동력으로도 작용한다. 이 산뜻하고도 가뿐한 몸으로 그려진 깊은 슬픔이야말로 오직 그만이 다다른 경지이자 시적 성취이다.
아버지 고창선은 어머니 김도화를 만나
6남 6녀 12남매를 낳고
큰형 고명규는 5남 2녀를 낳고
큰누나 고순희는 3남을 낳고
둘째 형 고흥규는 지금은 세상에 없지만
1남 3녀를 낳고
둘째 누나 고순홍은 2남을 낳고
셋째 형 고준규는 1남 1녀
셋째 누나 고선화도 1남 1녀
넷째 형 고상규는 지금은 세상에 없지만
1남 1녀를 낳고
넷째 누나 고난영은 2남을 낳고
다섯째 형 고운규는 1남 1녀
다섯째 누나 고난희는 2녀
여섯째 누나 고난미는 1남 2녀
12남매 중 막내인 나 고영민은
2녀를 낳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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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우리에게 내일은
슬픈 것
비로소 그때 새로운 사랑은 오지
_「마태복음」 전문
특히 이번 시집에서 주목할 부분은 ‘인지적 착각’이 정교한 시의 기예가 된다는 사실이다. 시는 비단 인접한 이미지들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무에서 유로 옮겨가거나 유에서 무로 옮겨가기도, 나아가 소리의 유사성이나 인접성으로도 얼마든지 도약 가능하다는 것. “아파트 옆 동 쪽으로 걸어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에 깜짝 놀”라며 “돌아가신 지 삼 년 된 어머니가 다른 모습으로/ 아직 이승에 살고 계신 건 아닐까”(「남의 이야기」) 착각하는 일, 잘못 배달된 생수를 “집을 잘못 찾은 꼬맹이들 같고/ 정신이 흐린 뉘 집 할머니 같다” 여기며 “내 것이 아닌데 내 것 같은/ 잠시 잠깐 맡겨둔 것 같은// (……) 저 투명하고 맑은 생면부지를”(「생수」) 마주하고 골똘해지는 일, 공원의 노란 산수유나무를 바라보며 아침에 끓여놓은 카레 한 냄비를 딸이 “남자친구 준다고/ 홀랑 가져가버”(「카레」)린 일을 떠올리는 등 시인은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인지적 오류나 착각을 시의 기예로 적극 끌어들이며, ‘메타포’는 나아가 ‘시’는 그렇게 일상을 오롯이 살아내는 동안 발견되고 쓰이는 ‘삶의 기예’임을 역설하는 듯도 하다.
“닮은; 내가 아니면서/ 남도 아닌 것 같은”(「형식들」) 것들과의 조우, 그리고 이를 통해 선물받는 삶의 비의(悲意/秘義). 이번 시집의 제목 ‘햇빛 두 개 더’ 역시 ‘해피 투게더’의 몬더그린(어떤 외국어 발음이 듣는 이의 모국어 발음으로 들리는 인지적 착각)에서 유래했다. 햇빛이라는 불가산명사를 하나둘 세어보는 일이 불가능을 언어화하려는 시쓰기와 닮았거니와, 슬픔이 밴 고영민의 시적 화자와 이를 읽는 독자들에게 선물하고픈 따스한 온기와도 닮았다. 삶은 “울음을 멈췄는데/ 그칠 수가 없고// 나는 나보다 더 오래/ 울”「그날 입은 옷」게 하지만, 그의 시는 “울어야 할 때는 일껏 섧게/ 오래도록 울”(「여름의 일」) 수 있도록 어깨를 빌려준다. 그뿐일까, 햇빛에 잘 말려둔 보드라운 손수건 같은 시이자, 그 손수건을 쥐여주며 말간 농담을 건네는 시이기도 하다.
영화관에서 단적비연수 두 장 달라는 것을
단양적성비 두 장 달라고 말했는데
단적비연수 표를 내줬다는,
형식과 내용이 합일하는 이런 경이로움을
나는 사랑한다
(……)
해피 투게더를
햇빛 두 개 더, 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후배 시인이 아는 할머니 한 분은
헤이즐넛 커피를 해질녘 커피로
알고 있다
_「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부분
『햇빛 두 개 더』는 총 4부 구성으로, 각 부의 제목은 ‘분명 우리에게 내일은 슬픈 것’ ‘일껏 섧게’ ‘반그늘’ ‘봄 쪽으로’로 정했다. 우리의 일상을 주제로 분절하는 것이 불가능하듯, 일관되고 또렷한 성격으로 부를 구분하기보다 해가 뜨고 해가 지는 하루처럼, 슬픔이 젖었다 마르기를 반복하는 리듬을 따랐다. 시인이 “환한 어둠 속에서”(「가로등」) 건네는 이 시편들은 힘껏 슬프지만, 이를 거두어가려 작정하지 않기에, 체념도 극복도 아닌 다만 너그러운 ‘긍정’의 태도로 마주하려 하기에 더욱 포근하게 다가온다. “시는 그저 일상”(‘미니 인터뷰’)이라는 시인의 말을 나침표 삼아, “수많은 오늘이 쏟아지는// 빛이 가득한 두 그루 목백합나무 사이에서// 두 사람처럼 혼자// 내려다보는 기분으로”(「새의 순간」) 그의 시를 찬찬히 음미해봐도 좋겠다. “슬픔을 밀어내는 것은/ 슬픔뿐”(「반감기」)이기에, “기억은 다 볼 수 있”기에, “당신은 없”지만 “내가 당신 곁에 있을”(「춤의 끝」) 것이기에.
세계도, 나도, 그리고 언어도 모두 흐르고 변하는 것임을 받아들일 때, 멈춰버린 삶의 본래적 상태 대신 생동하는 현재적 상태를 더 바짝 끌어안을 때 사랑은 패스워드처럼 반드시 “단적비연수”여야만 열리는 살벌한 보안의 세계가 아니라 “단양적성비”여도 망설임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장날의 잔치판이 된다. 우리는 일치의 일치보다 불일치의 일치에 더 매혹을 느끼며, 완벽히 이해할 수 없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는 사람들이다. 한 치의 오차 없는 발화보다 잘못 말한 “햇빛 두 개 더”와 “해질녘”이 더 아름다운 여기가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_이병철, 해설에서
끝으로, 간결하고 산뜻하지만 고영민 시의 요체로도 읽히는 ‘시인의 말’에 주목을 부탁드린다.
“이건 연습이에요/ 연습일 뿐이에요”
이는 어쩌면 실전만이 존재할 뿐인 삶을 마주하고도 짐짓 ‘연습’이라고 말해보(주)는 너그러움이 느껴지는 동시에, 삶 그 자체가 죽음의 연습-도정이라는 슬픈 사실 역시 상기시킨다. 그러나 이 연습이 끝내 슬프지만은 않은 이유는 ‘연습으로서의 시’가 우리의 삶에 끼어들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고영민의 시가 그렇다. “무람해진 너를 위해/ 오늘은 그곳에 있을게// 우리는 지금 막 만났고/ 나를 웃게”(「혼잣말」) 하는 그와 그의 시는 하나의 햇빛으로는 아쉬운 탓에 햇빛 하나를 더 꺼내어준다. “분명 우리에게 내일은/ 슬픈 것”이지만 “비로소 그때 새로운 사랑은”(「마태복음」) 온다. 그 따스하고 넉넉한 햇빛 아래에서, 마침내 새로운 삶 역시 우리에게 청혼해올 것이다.
바다는 누군가가
벗어던진 반지 하나를
밤새 물가로 밀어냈습니다
아침이 되자
민무늬 반지 하나가
모래톱 위에 반짝, 걸려 있고
파도는
잠잠해져 있었습니다
_「청혼」 전문
그의 여섯번째 시집 『햇빛 두 개 더』는 ‘산뜻한 엘레지’라 명명하고픈, 고영민 특유의 감성으로 자아낸 시작으로 가득하다. 한 인터뷰에서 시인은 “제가 가장 잘하는 것 중의 하나가 무언가에 대해 또렷이, 그리고 아주 오래 기억하는 것”이라고 밝힌바, 이번 시집 역시 부재하는 것이 현현하는 순간과 부재하게 될 것의 비애감을 품은 시편들이 주조를 이룬다. ‘무’에서 ‘유’를 보거나 ‘유’에서 ‘무’를 보는 이 시적 인식은 필연적으로 기쁨과 슬픔 또한 겹쳐 느낄 수밖에 없을 터. 이는 끝도 없이 슬플 수만도 간단없이 기쁠 수만도 없는 생의 단면을 정직하게 감각하는 태도이기도 하지만, ‘삶’이라는 비속하고도 지난한 ‘내용’이 이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기를 허락하지 않는 ‘시’의 ‘형식’과 결합하면서, 고영민만의 고유한 시를 탄생하게 하는 동력으로도 작용한다. 이 산뜻하고도 가뿐한 몸으로 그려진 깊은 슬픔이야말로 오직 그만이 다다른 경지이자 시적 성취이다.
아버지 고창선은 어머니 김도화를 만나
6남 6녀 12남매를 낳고
큰형 고명규는 5남 2녀를 낳고
큰누나 고순희는 3남을 낳고
둘째 형 고흥규는 지금은 세상에 없지만
1남 3녀를 낳고
둘째 누나 고순홍은 2남을 낳고
셋째 형 고준규는 1남 1녀
셋째 누나 고선화도 1남 1녀
넷째 형 고상규는 지금은 세상에 없지만
1남 1녀를 낳고
넷째 누나 고난영은 2남을 낳고
다섯째 형 고운규는 1남 1녀
다섯째 누나 고난희는 2녀
여섯째 누나 고난미는 1남 2녀
12남매 중 막내인 나 고영민은
2녀를 낳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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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우리에게 내일은
슬픈 것
비로소 그때 새로운 사랑은 오지
_「마태복음」 전문
특히 이번 시집에서 주목할 부분은 ‘인지적 착각’이 정교한 시의 기예가 된다는 사실이다. 시는 비단 인접한 이미지들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무에서 유로 옮겨가거나 유에서 무로 옮겨가기도, 나아가 소리의 유사성이나 인접성으로도 얼마든지 도약 가능하다는 것. “아파트 옆 동 쪽으로 걸어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에 깜짝 놀”라며 “돌아가신 지 삼 년 된 어머니가 다른 모습으로/ 아직 이승에 살고 계신 건 아닐까”(「남의 이야기」) 착각하는 일, 잘못 배달된 생수를 “집을 잘못 찾은 꼬맹이들 같고/ 정신이 흐린 뉘 집 할머니 같다” 여기며 “내 것이 아닌데 내 것 같은/ 잠시 잠깐 맡겨둔 것 같은// (……) 저 투명하고 맑은 생면부지를”(「생수」) 마주하고 골똘해지는 일, 공원의 노란 산수유나무를 바라보며 아침에 끓여놓은 카레 한 냄비를 딸이 “남자친구 준다고/ 홀랑 가져가버”(「카레」)린 일을 떠올리는 등 시인은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인지적 오류나 착각을 시의 기예로 적극 끌어들이며, ‘메타포’는 나아가 ‘시’는 그렇게 일상을 오롯이 살아내는 동안 발견되고 쓰이는 ‘삶의 기예’임을 역설하는 듯도 하다.
“닮은; 내가 아니면서/ 남도 아닌 것 같은”(「형식들」) 것들과의 조우, 그리고 이를 통해 선물받는 삶의 비의(悲意/秘義). 이번 시집의 제목 ‘햇빛 두 개 더’ 역시 ‘해피 투게더’의 몬더그린(어떤 외국어 발음이 듣는 이의 모국어 발음으로 들리는 인지적 착각)에서 유래했다. 햇빛이라는 불가산명사를 하나둘 세어보는 일이 불가능을 언어화하려는 시쓰기와 닮았거니와, 슬픔이 밴 고영민의 시적 화자와 이를 읽는 독자들에게 선물하고픈 따스한 온기와도 닮았다. 삶은 “울음을 멈췄는데/ 그칠 수가 없고// 나는 나보다 더 오래/ 울”「그날 입은 옷」게 하지만, 그의 시는 “울어야 할 때는 일껏 섧게/ 오래도록 울”(「여름의 일」) 수 있도록 어깨를 빌려준다. 그뿐일까, 햇빛에 잘 말려둔 보드라운 손수건 같은 시이자, 그 손수건을 쥐여주며 말간 농담을 건네는 시이기도 하다.
영화관에서 단적비연수 두 장 달라는 것을
단양적성비 두 장 달라고 말했는데
단적비연수 표를 내줬다는,
형식과 내용이 합일하는 이런 경이로움을
나는 사랑한다
(……)
해피 투게더를
햇빛 두 개 더, 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후배 시인이 아는 할머니 한 분은
헤이즐넛 커피를 해질녘 커피로
알고 있다
_「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부분
『햇빛 두 개 더』는 총 4부 구성으로, 각 부의 제목은 ‘분명 우리에게 내일은 슬픈 것’ ‘일껏 섧게’ ‘반그늘’ ‘봄 쪽으로’로 정했다. 우리의 일상을 주제로 분절하는 것이 불가능하듯, 일관되고 또렷한 성격으로 부를 구분하기보다 해가 뜨고 해가 지는 하루처럼, 슬픔이 젖었다 마르기를 반복하는 리듬을 따랐다. 시인이 “환한 어둠 속에서”(「가로등」) 건네는 이 시편들은 힘껏 슬프지만, 이를 거두어가려 작정하지 않기에, 체념도 극복도 아닌 다만 너그러운 ‘긍정’의 태도로 마주하려 하기에 더욱 포근하게 다가온다. “시는 그저 일상”(‘미니 인터뷰’)이라는 시인의 말을 나침표 삼아, “수많은 오늘이 쏟아지는// 빛이 가득한 두 그루 목백합나무 사이에서// 두 사람처럼 혼자// 내려다보는 기분으로”(「새의 순간」) 그의 시를 찬찬히 음미해봐도 좋겠다. “슬픔을 밀어내는 것은/ 슬픔뿐”(「반감기」)이기에, “기억은 다 볼 수 있”기에, “당신은 없”지만 “내가 당신 곁에 있을”(「춤의 끝」) 것이기에.
세계도, 나도, 그리고 언어도 모두 흐르고 변하는 것임을 받아들일 때, 멈춰버린 삶의 본래적 상태 대신 생동하는 현재적 상태를 더 바짝 끌어안을 때 사랑은 패스워드처럼 반드시 “단적비연수”여야만 열리는 살벌한 보안의 세계가 아니라 “단양적성비”여도 망설임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장날의 잔치판이 된다. 우리는 일치의 일치보다 불일치의 일치에 더 매혹을 느끼며, 완벽히 이해할 수 없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는 사람들이다. 한 치의 오차 없는 발화보다 잘못 말한 “햇빛 두 개 더”와 “해질녘”이 더 아름다운 여기가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_이병철, 해설에서
끝으로, 간결하고 산뜻하지만 고영민 시의 요체로도 읽히는 ‘시인의 말’에 주목을 부탁드린다.
“이건 연습이에요/ 연습일 뿐이에요”
이는 어쩌면 실전만이 존재할 뿐인 삶을 마주하고도 짐짓 ‘연습’이라고 말해보(주)는 너그러움이 느껴지는 동시에, 삶 그 자체가 죽음의 연습-도정이라는 슬픈 사실 역시 상기시킨다. 그러나 이 연습이 끝내 슬프지만은 않은 이유는 ‘연습으로서의 시’가 우리의 삶에 끼어들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고영민의 시가 그렇다. “무람해진 너를 위해/ 오늘은 그곳에 있을게// 우리는 지금 막 만났고/ 나를 웃게”(「혼잣말」) 하는 그와 그의 시는 하나의 햇빛으로는 아쉬운 탓에 햇빛 하나를 더 꺼내어준다. “분명 우리에게 내일은/ 슬픈 것”이지만 “비로소 그때 새로운 사랑은”(「마태복음」) 온다. 그 따스하고 넉넉한 햇빛 아래에서, 마침내 새로운 삶 역시 우리에게 청혼해올 것이다.
바다는 누군가가
벗어던진 반지 하나를
밤새 물가로 밀어냈습니다
아침이 되자
민무늬 반지 하나가
모래톱 위에 반짝, 걸려 있고
파도는
잠잠해져 있었습니다
_「청혼」 전문
햇빛 두 개 더 - 문학동네 시인선 222
$1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