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수비수들 - 문학동네 시인선 223

이별의 수비수들 - 문학동네 시인선 223

$12.00
Description
“인류의 구십 퍼센트는 이별한 사람입니다
십 퍼센트는 이별할 사람이구요”

성실한 이별의 조합원이 되세요!
‘이별을 쓰는 밤의 경비병’ 여성민 9년 만의 신작 시집
문학동네시인선 223번으로 여성민 시인의 두번째 시집 『이별의 수비수들』을 펴낸다. 201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시를 쓰기 시작해 2015년 첫번째 시집 『에로틱한 찰리』(문학동네시인선 68)를 펴낸 지 9년 만이다. 그 오랜 기다림은 “찰리는 죽었다”는 선언 앞에서 “부고에 죽었다는 말 대신 좋아하는 낱말을 넣”(「찰리 브라운」)으며 보낸 시간이었을까. “한 편의 시를 위해 이 세상의 감각과 이별하고 상징과 이별하고 자신의 낡은 언어와 이별하는 사람”(미니 인터뷰)이 시인이라면, 이 시집을 여성민이 좋아하는 낱말로 써내려간 지난 9년의 ‘이별 기록’이라고 불러봐도 좋겠다. 첫 시집에서 “직구와 변화구를 능수능란하게 구사”(오은 시인)하는 공격수의 면모를 선보였던 그는 이별의 수비수가 되어 아직 저물지 못하는 밤의 시간을 펼쳐 보인다. “이것이 너의 슬픔이구나”(「불가능한 슬픔」, 『에로틱한 찰리』) 하고 말하던 포즈를 바꾸어 “여기까지 내가 아는 슬픔”(「브라운」)이라고 담담히 고백한다.
이번 시집에서 “사랑으로 약해진” “이별의 수비수들”(「나의 아름다운 사회주의」)은 “밥을 먹고 더 약해져야지 좋은 수비수가 돼야지”(「생각」) 하고 다짐한다. 사랑의 수호자 대신 이별의 수비수가 되기를 자처하는 그들은 힘을 빼는 방식으로 최후의 방어선을 지킨다. 잘 이별하기 위해서는 사랑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선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별은 “밥처럼 윤이”(「시인」) 나고 “바밤바 같”(「이별의 눈부심」)이 “부드러운 노동”(「나의 아름다운 사회주의」)이 된다. 더 나아가, “사랑은 어두운 직업이라고 생각하는”(「복서의 사랑」) 화자에게 이별은 “잠든 얼굴을 찾아 순회하는 선한 목자”(「기적」)가 “물로 포도주를 만”(「반 파인트의 기적」)드는 “종교적”(「루터」)인 행위로 승화한다.
이번 시집은 총 53부의 시를 4부로 나누어 엮었다. 앞선 3부의 제목은 각각 ‘숙희’ ‘선희’ ‘경희’이다. 첫번째 시집 『에로틱한 찰리』에서 각 부마다 ‘보라색 톰’ ‘에로틱한 찰리’ ‘모호한 스티븐’이라는 제목이 붙은 것과 대조적이다. ‘톰’ ‘찰리’ ‘스티븐’이 외국인 남성의 이름이라면, ‘숙희’ ‘선희’ ‘경희’는 한국인 여성의 이름이다. 사랑과 이별은 모든 인간이 필연적으로 겪는 일이란 점에서 보편적이고 통속적인 소재이며, 동시에 한 인간을 관통한다는 점에서 유일하고 개별적인 경험이다. 시인은 살면서 한 번쯤 사랑하거나 이별했을 법한 이름들을 통해 그러한 이별의 순간을 고유한 이름으로 호명한다. 제삼자에게는 비슷비슷한 사랑과 이별일지언정, 오롯이 나에게 속한 환희와 슬픔을, 언어로 규명할 수 없는 그 찰나를 ‘숙희’ ‘선희’ ‘경희’와 같은 이름으로 불러보는 것이다. 가령, 숙희에게 사랑은 두부 속에 있는 느낌이다.
저자

여성민

저자:여성민
2010년『세계의문학』신인상에단편소설이,2012년서울신문신춘문예에시가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에로틱한찰리』,소설집『부드러움과해변의신』이있다.

목차

시인의말

숙희
인간의밤/내가찢은테니스공/웨하스/태엽/반파인트의기적/나의아름다운사회주의/복서의사랑/수비만하는사람들/잠/눈이야기/사과/나무와밀가루/불완전성의정리/애인과시인과경찰/필요없는새와필요한개/루터/시계의아름다움/숙희

선희
인간의집/기적/집의이론/영국식정원/헝가리에서/잠/이별의눈부심/지나갔으나지나가는/나의아름다운프랑켄슈타인/나의아름다운개/시인/타인과귤나무/단어의밝음/인간의핵심/설경/선희

경희
인간의잠/종이공장/해안선/속죄/생각/화양연화/순정/콜링(Calling)/좋은씨앗/가라앉은시/개이야기/미자의기분같은일/의미하지않는것/어둡고조용히/시계의아름다움/브라운/찰리브라운/경희

선희경희숙희
낙원

해설|사랑이시작되어도사랑이끝나도무관한이별의낙원에서
육호수(시인,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인류의구십퍼센트는이별한사람입니다
십퍼센트는이별할사람이구요”

성실한이별의조합원이되세요!
‘이별을쓰는밤의경비병’여성민9년만의신작시집

문학동네시인선223번으로여성민시인의두번째시집『이별의수비수들』을펴낸다.2012년서울신문신춘문예를통해시를쓰기시작해2015년첫번째시집『에로틱한찰리』(문학동네시인선68)를펴낸지9년만이다.그오랜기다림은“찰리는죽었다”는선언앞에서“부고에죽었다는말대신좋아하는낱말을넣”(「찰리브라운」)으며보낸시간이었을까.“한편의시를위해이세상의감각과이별하고상징과이별하고자신의낡은언어와이별하는사람”(미니인터뷰)이시인이라면,이시집을여성민이좋아하는낱말로써내려간지난9년의‘이별기록’이라고불러봐도좋겠다.첫시집에서“직구와변화구를능수능란하게구사”(오은시인)하는공격수의면모를선보였던그는이별의수비수가되어아직저물지못하는밤의시간을펼쳐보인다.“이것이너의슬픔이구나”(「불가능한슬픔」,『에로틱한찰리』)하고말하던포즈를바꾸어“여기까지내가아는슬픔”(「브라운」)이라고담담히고백한다.
이번시집에서“사랑으로약해진”“이별의수비수들”(「나의아름다운사회주의」)은“밥을먹고더약해져야지좋은수비수가돼야지”(「생각」)하고다짐한다.사랑의수호자대신이별의수비수가되기를자처하는그들은힘을빼는방식으로최후의방어선을지킨다.잘이별하기위해서는사랑을훼손하지않으려는조심스러운마음이선행해야하기때문이다.그렇게이별은“밥처럼윤이”(「시인」)나고“바밤바같”(「이별의눈부심」)이“부드러운노동”(「나의아름다운사회주의」)이된다.더나아가,“사랑은어두운직업이라고생각하는”(「복서의사랑」)화자에게이별은“잠든얼굴을찾아순회하는선한목자”(「기적」)가“물로포도주를만”(「반파인트의기적」)드는“종교적”(「루터」)인행위로승화한다.
이번시집은총53부의시를4부로나누어엮었다.앞선3부의제목은각각‘숙희’‘선희’‘경희’이다.첫번째시집『에로틱한찰리』에서각부마다‘보라색톰’‘에로틱한찰리’‘모호한스티븐’이라는제목이붙은것과대조적이다.‘톰’‘찰리’‘스티븐’이외국인남성의이름이라면,‘숙희’‘선희’‘경희’는한국인여성의이름이다.사랑과이별은모든인간이필연적으로겪는일이란점에서보편적이고통속적인소재이며,동시에한인간을관통한다는점에서유일하고개별적인경험이다.시인은살면서한번쯤사랑하거나이별했을법한이름들을통해그러한이별의순간을고유한이름으로호명한다.제삼자에게는비슷비슷한사랑과이별일지언정,오롯이나에게속한환희와슬픔을,언어로규명할수없는그찰나를‘숙희’‘선희’‘경희’와같은이름으로불러보는것이다.가령,숙희에게사랑은두부속에있는느낌이다.

이별한후에는뭘할까두부를먹을까숙희가말했다

내방에서잤고우리는많이사랑했다신비로움에대해말해봐신비로워서만질수없는것에대해숙희는말했다

눈이내렸을까모르겠다신비로워서만질수없는것을나는모른다두부속에눈이멈춘풍경이있다고두부한모에예배당이하나라고

사랑하면두부속에있는느낌이야집에두부가없는아침에우리는이별했다

숙희도두부를먹었을까나는두부를먹었다
_「숙희」부분

두부속을걷는감각은두부의맛처럼희미한동시에눈보라속을걷는것처럼아름다운일이다.시인은언어로형용할수없는그희미하고아름다운시간을‘숙희’라고불러본다.이번시집의해설을쓴시인이자문학평론가육호수는이시에서이별후의사랑이“두부속에눈이멈춘풍경”이라는불가능한이미지속을걷는일이된다는점을가리키며,사랑과이별의실패를경험한독자만이읽어낼수있는기묘한은유와더불어원관념과보조관념을뒤섞는여성민시특유의재치와전복을포착해낸다.
“사랑이신의속성이”고“이별은인간의영역”(미니인터뷰)이라면,시인은그경계에있는존재이다.이시집의첫번째수록작「인간의밤」에는“시인의가죽을끌어다덮어”밤을맞이하는장면이나온다.인간이잠든시간동안시인이깨어나밤을지킨다.그의시에서밤은“안을부드럽게파내고한사람을가득채우는”(「인간의집」)시간,즉사랑의시간이므로시인은곧사랑을하는사람인셈이다.또한편의시「단어의밝음」에서‘나’와당신이밤하늘을올려다보며애인이되거나시인이되는까닭은여기에있다.

처음물이언세계가있고처음으로얼음을깎은사람이있다면얼음을깎으며얼굴에튄불이인간의첫화상이었을거예요손으로만진첫마음이어서우리가밤에하늘을보며타인을덜컥사랑하는건매일밤하늘을덮는저거대하고밝은화상때문입니다빛나는알갱이가가득해당신은애인이되고나는시인이되지만우리는같은사람입니다집으로돌아가다른컵으로물마시겠지요식도에서얼음깎는소리를듣는당신은얼음속의야곱이겠지요물을마시며화상자국처럼좁은식도를타고올라오는진달래를봤다면팥죽쑤는야곱입니다그러나우리는같이밝은사람이에요연애하는시인이거나시쓰는애인이에요
_「단어의밝음」부분

시인으로등단하기에2년앞서소설가로작품활동을시작한여성민은당선소감에서“이소설은짧은시였다”라고밝힌바있다.그의소설이시에뿌리를두고있다면,그의일상에서쓰인시또한그가꿈꾸는이야기의낙원일테다.앞서인용한「단어의밝음」에서“우리는같이밝은사람이에요연애하는시인이거나시쓰는애인이에요”라는마지막시구에도드러나는바,시인과화자의구분이모호한여성민의시는창작과생활의영역이교차한다는인상을준다.
「웨하스」에서“타인이라는말을그럴듯하게써먹어서시인이”된화자는“「타인과귤나무」이런시도썼”다고말한다.2부에수록된「타인과귤나무」에는실제로“아무도읽지않는시”를쓰는화자가등장한다.한편「루터」의첫행은“비는샐러드처럼와요”하고말하는장면에서시작하고,「나의아름다운프랑켄슈타인」에는“비는샐러드처럼온다고쓴시인”이나온다.쉬이연결짓기어려운비유로쓰인메타시들은현실과상상을뒤섞으며이상하고엉뚱한낙원으로독자를이끈다.
마지막4부‘선희경희숙희’는‘나’와세명의수비수가모두등장하는시「낙원」한편만이수록된독특한구성을취한다.이시에서네사람은“우리를둘러싼희미한대지”를걸어다니며흙바닥에“아무렇게나금을긋”고언젠가“낙원에가서각자그은선을찾아다니자”고약속하지만,그들의행적은점점주어를특정하기묘연해진다.

허연의「장마의나날」을장미의나날로읽은것이나인지선희인지모릅니다경희나숙희일수도있습니다사랑이다시시작된다고믿었을까요(…)내가그은선이미루나무나언덕이나비라고믿으며더많은선을그으면장마의나날이올지도몰라그말을한사람이나인지선희인지모르지만들판여기저기길고짧은선이늘었습니다나중에회색종이를구기면낙원이생기겠지사람들은모르지언덕을만들고급류를만든사람이누군지외과의사는자신이그은선을구별한대언젠가말이야낙원에가서각자그은선을찾아다니자그런말을하며걸어가다돌아오는나날입니다
_「낙원」부분

시의화자는어떤시의제목을잘못읽은것이“나인지선희인지모”르고“경희나숙희일수도있”다고생각한다.또한어떤“말을한사람이나인지선희인지모”르며“언덕을만들고급류를만든사람이누군지”도모른다.개인적인시적순간을지칭하던고유명사들이수비수들을포괄하는보통명사가되고,‘나’의경험이우리의영역으로폭넓게확장하는대목이다.혼자만의슬픔에한정되어있던‘나’가타인의슬픔을헤아리는존재가되는것이다.“사랑이시작되어도사랑이끝나도무관한”낙원은다만시속에존재할따름이다.“그는자신을가둘만한완벽한시를원했지만어떤시도그를가두지못했”(「시계의아름다움」)던것처럼현실의낙원은결코끝없이펼쳐지지않는다.“여기까지내가아는슬픔”(「브라운」)이라고말하는시인이할수있는일은자신이디디고선자리에이별의씨앗을심는일이다.이제그자리에서당신의슬픔이자라날차례이다.

이별은좋은씨앗

이씨앗을너에게옮기고평생

인간으로남으리
_‘시인의말’전문

여성민시인과의미니인터뷰

Q1.『이별의수비수들』은2015년첫시집『에로틱한찰리』를출간하신후9년만에펴내는두번째시집입니다.저는이번시집이우리가이별해온시간이담긴상자처럼보이기도했어요.시인은마치그시간들이훼손되지않도록지키고있는것같고요.두시집사이에어떤시절을건너오셨는지요?

‘사랑과이별의시간’이었어요.시를사랑하면생활과이별했고,생활을사랑하면시와이별했어요.화해없이9년이지났네요.그사이한가지질문에매달렸어요.시인은직업일까?국가에어떤서류를접수하려고주민센터를방문하면공무원은“직업이무엇입니까?”하고물어요.나는시인이라고대답해요.그러면공무원들은한결같이“직업이없으세요?’하고되묻습니다.그런일을반복적으로경험하며‘내나라에시인이라는직업은없구나!’라는사실을받아들였죠.아마그런경험이“시인이직업인나라는없대”(「콜링(Calling)」)라든지“생활을배울까”(「설경」)같은문장속에숨어들었을거예요.일은하지만직업은아닌시인은무엇일까요/누구일까요?시인은직업일까요?이질문에답변할수없어서나자신과이별하며보낸9년이었어요.마치연애의감정은요점정리가안된다는것을알면서도“우리무슨관계지?”라고물을때대답에요점이없는사람과는연애를계속할수없는아이러니같은것.그것은또시와같아서시는요점이없는데사람들은시인에게자꾸“이시의요점이뭐죠?”하고묻거든요.그러니까지난9년은직업이없는시인으로서요점이없는시를사랑하며살았던시절이에요.직업이없는인간여성민이요점이없는시인여성민과이별하며보낸시절이에요.

Q2.시집제목이‘이별의수비수들’입니다.수록작「나의아름다운사회주의」에“사랑으로약해진사람들이별의수비수들”이라는시구가나옵니다.사랑이아닌이별을지킨다는점,그러나수비수의역할에기대되는바와달리약한존재라는점이흥미롭습니다.이제목이어떻게읽히기를바라시나요?

시인은이별하는사람이에요.생활과이별하고직업과이별하고요점과이별하는사람.한편의시를위해이세상의감각과이별하고상징과이별하고자신의낡은언어와이별하는사람.그래서“시인은이별을쓰는사람입니다”(「애인과시인과경찰」)라고말해본거예요.여기까지가시집제목에대한공격적인답이었다면이제수비적으로답을전환해볼게요.이시집의제목은‘이별의수비수들’이고,저는중앙수비수이며,수비수는훼손되지않도록지키는사람이니까요.이번시집에는연애를소재로한시편들이많고다알듯연애도게임이죠.그경기장에서저는대체로수비수였어요.스포츠경기에서수비수들은공격수보다피지컬이좋습니다.곧죽어도막아야하니까요.연애는더그래요.연인관계에도공격수와수비수가있고,수비수는경기가끝날때까지수비만합니다.그런데약해요.약해져야해요.훼손되지않게지켜야하니까손에힘을줄수없어요.그런마음을아는사람,그런마음으로아팠던사람에게말을걸고싶었어요.그런사람들끼리라도힘을모아야죠.그리하여『이별의수비수들』은수비수가수비수들에게제안하는연대이며스크럼이고노동조합같은거예요.“이별의조합원”(「나의아름다운프랑켄슈타인」)이되세요!한번이라도수비수였던적이있다면당신에게는조합원이될자격이있어요.이별의수비수들을위한노동조합.이시집제목을그렇게읽어주세요.

Q3.이번시집은총4부로구성되어있습니다.각부에‘숙희’‘선희’‘경희’그리고‘선희경희숙희’라는제목을붙이셨어요.한국인여성인물로보이는이름을호명하시게된까닭이궁금합니다.

첫시집『에로틱한찰리』에서는‘찰리’‘톰’‘스티븐’같은이름을사용했어요.외국어이름이고남성이름이죠.그이름들은‘내가모르는감각을호명하는방식’이었어요.먼이름이니까,민수나경수처럼흔하게는부를수없는이름이니까요.어떤감정또는어떤시적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