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우어

모우어

$17.00
Description
“끊임없이 상상하고 상상해서, 세계를 만드는 거지.
두려운 것이 없는 완전한 세계를.
그렇게 우주를 만드는 거야, 이곳에서.
그럼 이곳이 진짜가 되겠지.”

끝내 나아가게 하는
내 안의 용기에 대한 이야기

한국문학의 미래,
『천 개의 파랑』 『이끼숲』 천선란 신작 소설
2019년 『천 개의 파랑』으로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을 수상하며 혜성같이 등장해 한국 SF의 눈부신 미래를 만들고 있는 작가 천선란. 그의 세 번째 소설집을 출간한다. 천선란은 그간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나인』 등의 장편소설을 비롯해 소설집 『어떤 물질의 사랑』 『노랜드』, 연작소설 『이끼숲』과 중편소설 『랑과 나의 사막』 등을 펴내며 이 세계와 시대에 대한 고민을 가장 활발히 독자와 나누어온 작가이다. 독자가 뽑은 ‘2022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로 선정된 연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올초 펭귄 랜덤하우스와의 억대 선인세 계약(『천 개의 파랑』)이라는 놀랍고 반가운 소식을 전하기도 한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한국문학의 위상과 해외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에도 역시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작가가 되리라 기대된다.
『모우어』는 『노랜드』 이후 2년 만에 묶는 소설집으로 미발표작 두 편을 포함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쓴 단편 여덟 편이 수록되어 있다. 외계 존재 진압에 투입된 어린아이들부터 비범한 능력이 있는 십대 청소년, 장의사 안드로이드,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살아가는 인간과 비인간동물까지 다양한 존재가 조명되는 이번 소설집에는, 사라진 존재를 구하고자 분투하는 이들의 쓸쓸하면서도 아련한, 그러면서도 뜨거운 내면이 고스란히 담겼다. 극한의 상황에 직면한 천선란의 인물들은 슬픔과 상실감을 안고도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는데, 그 용기는 어떻게 생기고 또 발휘되는지, 이번 소설집 편편에 담긴 간절함이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리라 믿는다.
저자

천선란

저자:천선란
2019년장편소설『무너진다리』를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어떤물질의사랑』『노랜드』,장편소설『천개의파랑』『밤에찾아오는구원자』『나인』,중편소설『랑과나의사막』,연작소설『이끼숲』,산문집『아무튼,디지몬』등이있다.제4회한국과학문학상장편대상,오늘의젊은예술가상을수상했다.

목차


얼지않는호수
모우어
너머의아이들
뼈의기록
서프비트
사과가말했어
입술과이름의낙차
쿠쉬룩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거부할수가없어서.
몸은,거부할수가없으니까.
마음이시키면.”

소설집의앞자리에놓인「얼지않는호수」는세계가꽁꽁얼어버린이후를그린다.삶에아무런기대도없던‘그녀’의적막한일상에,소중했던친구의말라붙은심장을품에안은아이‘야자’가나타난다.‘야자’는친구의심장을그영혼에게라도쥐여주고자‘얼지않는호수’를향해먼길을간다.“이야기가세상을바꿀수있다고믿나요?”라는천진한듯애틋한듯한‘야자’의질문은‘그녀’로하여금잊고있던기억을하나둘꺼내보게하는데…모든것이얼어붙은지구위에끝끝내‘얼지않는’호수가있을까?그런호수가있다는믿음은무엇을가능하게할까?

뒤이은단편이자표제작인「모우어」는언어가사라진세계를그린다.인류의탐욕과불신과혐오가모두언어가만든질서/무질서때문이라여긴어느먼미래의인류는언어를포기하도록진화했다.“인간의언어가,언어를가진인간이,모든것에이름을붙이기시작하면서우리는영원히이생태계의이방인이”되었다.그후인간은‘의음意音’으로,요컨대머릿속에서떠올린말로소통하게되었고,입말로는어떠한규칙도없는음절들을소리낼뿐이다.언어로시간역시규정짓지않게된인간들은노화하지않는데,그런세계를살던‘초우’는어느날버려진아기를구조해‘모우’라는이름을붙였다.‘모우’는‘의음’보다‘말소리’에반응했고그것은이세계와맞지않는일일터,‘소리’와‘의미’가합쳐진‘언어’라는게무엇인지궁금했던모우는결국이단으로몰리고만다.

엄마,나는죽은게아니라흐르기시작한거야.내몸의시간이흐르고있어.엄마,나는이시간이느껴져.아주얇아.거미줄보다더.내게는주름이생길거야.시간이스치며생기는자국이야.(…)나언어의소리를들었어.언어가만든시간이느껴져.
_「모우어」에서

언어를버리고감각만으로앞선인류의그모든죄를느끼며살아가게된신인류와,그사이에등장한‘모우’.언어는정말인류를자멸로이끈도구이자악습이었을까?‘모우’가새로이들은‘언어의소리’는무엇일까.애초에‘초우’는‘모우’라는이름에아무의미도담지않을수있었을까?

한편이소설집에서는가까웠던사람을잃은인물들이유독눈에띈다.「얼지않는호수」는물론이고,마인드업로딩시스템을주요하게다룬「쿠쉬룩」에서도신경네트워크에서증발한언니를둔‘엔릴’이화자이다.“각자가만든세계”,요컨대“불확실성이없”는세계로기꺼이증발한사람들은“진짜가아니라고가짜가되는건아니”라는소설속문장을의미심장하게만든다.‘엔릴’이언니를상상하고또상상하는과정끝에‘쿠쉬룩(상자)’의존재를발견하고,거기새겨진“우리만의규칙”은가상의세계에서언니를만나게한다.현실의삶에서고고학자였던‘엔릴’의언니는,과거를파헤치는사람이자,유적처럼메마른엄마를돌보는사람이자,어린‘엔릴’을보호하는사람이었다.겹겹으로부과된의무속에서과거에머무른채현실을살수밖에없던언니를‘엔릴’은“끊임없이상상하고상상”한다.‘엔릴’에게는그것이자신이선택한사랑의방식이었으리라.엉망이던“시침과분침이모두정상적으로움직”이는,“두려운것이없는완전한세계”.그곳에서드디어언니의뒷모습을발견했을때우리는납득하게된다.“진짜가아니라고가짜인건아니야.얼마나진실에가까운지가중요한거지”라는말을.

「입술과이름의낙차」속두여성,‘나’와‘주미’역시오래전가까운이를잃었다.‘나’는‘의식전이’까지당해원치않는범죄에행위자로서가담한채살고있다.적의공격을받고쓰러져있던‘나’를의학도인‘주미’가구하면서두사람은서로의삶에깊은영향을미치게된다.“저가해자가,저피해자가어쩌면언니일지도모른다는생각에자꾸몰입하고고민해요.어느곳에언니를세워두느냐에따라서내선택도달라져요”라고말하는‘주미’는평생을따라다닌,기억속비참한언니의모습을어떻게받아들일까.‘나’는단하나남은소중한기억마저지울의식전이칩제거술을끝내받게될까.어떤기억을가지고있어야,혹은놓아주어야하는걸까.

한편「너머의아이들」과「뼈의기록」에는지구밖으로보내진인물들이등장한다.「너머의아이들」의경우외계존재를진압하기위해몸집이작은아이들이필요했다.어른들은아이들의희생이불가피하며,전쟁에서이기고더나은미래를맞이해야한다는명분으로아이들을외계존재의우주선에태운다.그아이들은현실에선죽음을맞이했지만‘너머’에서는깨어나고,“어린이일때죽음이라는관문을통과해프로그램에서깨어났으므로.어른이될기회를박탈당한채현실로돌아왔으므로”시간이흘러도어린이인채이다.어린이뿐인‘너머’의세계.

“단한명의어른이오면우린그어른을신처럼모셔야할거야.두명의어른이오면우린두사람의비위를맞추느라눈치를볼거야.세명의어른이오면우린노동을해야할거야.더많은어른이오면불행이반복될거야.”
_「너머의아이들」에서

「뼈의기록」은장의사안드로이드‘로비스’와병원의미화원‘모미’의특별한우정이인상적이다.죽은몸을통해인간의삶과죽음을헤아리는안드로이드,라는상상력은그간천선란작품속사려깊은존재들과맞닿아있다.

잊고싶지않은것들이,몸에새길정도로좋아했던것들이가장오래도록몸에남아인간의육체를삶에붙들어놓고있는것일까.로비스는노인의몸에남은선연한문신의형태를보며생각했다.로비스의회로는그런의문을만들게끔만들어졌다.그래서로비스는모든것에질문을던진다.모든의문의종착지는헤아림이다.그리고그것은염을행하는안드로이드가가져야할가장기본적인태도였다.망자를헤아리고,남은이들을헤아리는것.
_「뼈의기록」에서

생의끝자락에있던‘모미’가죽음을맞자‘로비스’는연고없는‘모미’의염습을직접하게된다.“언젠가우주를알고,우주에서자유로우며,우주를누빌수있다고말이야.하지만그건아직이뤄내지못했고오히려우주를정복하려하고,여전히우주에서손짓한번제대로할수없지.하지만나는아직믿어.인간은언젠가우주를유영할거야.이나비처럼”이라고말하던‘모미’,어린시절화상의흉터가사는내내그를괴롭혔단것을기억하는‘로비스’는‘모미’를화장터로보낼수없다고판단,그의시신을우주로보내고자처음으로병원밖으로나가달리기시작한다.“로비스에게마음이있었다면이것을충동이라불렀으리라.”

「서프비트」와「사과가말했어」의환상성은그기세가남다르다.「서프비트」는물속에서숨쉴수있는능력,어둠속에서도환히볼수있는능력,벽을통과하는능력등을가진십대‘미다스’들의정체성탐구와성장스토리를담고있다.서로가서로를살리기위해했던선택들이엇나가면서소중한이를잃은후,어른들에의해비윤리적으로쓰였던자신의능력을스스로어떻게받아들이고또쓰고자마음먹는지흡인력좋게전개된다.「사과가말했어」는이작품집에서가장어두운작품으로,범죄피해의트라우마를겪는‘나’와태국인친구‘촘푸’가둘만의언어로현실의알수없음을풀어간다.사과밭의사과들이독특한무늬를품고두사람에게말을거는듯한기현상은‘촘푸’가‘나’에게가르쳐준태국어단어,‘스며든다,빨려들어간다,하나가된다’라는뜻의단어와맞물리며대지의진동이느껴지는결말을향해뻗어간다.

우리가서로의구원이될수있기를,
끝이없을이마음으로
위태로운세계의파수꾼이될수있기를

천선란의세계는거대우주를배경으로탁월한개인이숭고한도전을해나가는것이아니다.인간에의해뒤틀린세계를,폭력과아름다움이뒤섞인세계를,어떻게견디고잘받아들일수있을까애쓰는것에가깝다.그럼에도불구하고인간에게는마음이있다는것.서로를소중히여기는마음,잃지않으려절박하게매달리는마음으로말이다.그마음들은스스로도몰랐던용기를불러일으키고,천선란의거창하지않은인물들은그용기를소중히쥔채마음이시키는대로행동해나간다.씁쓸한현실을극복하는서사가아닌,서로를이해하고기억하는단한사람이있음을보여주는방식으로.천선란은이위태로운세계에기꺼이파수꾼이되고자하는인물들을우리에게소개한다.이인물들을알고있다는것이“홀로버텨야하는그경계에서조금은덜외롭게할수있지않을까.누군가는영웅이되고,누군가는숨고,누군가는지키고,누군가는이름만남겨놓고홀연히사라지는세상에서.”(‘작가의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