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선량하게 잦아드네 - 문학동네 시인선 224

사랑하고 선량하게 잦아드네 - 문학동네 시인선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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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사랑이 먼저 흘러가버렸네요
흐름의 시작을 찾을 수 없는 유수와 같은 시절이었습니다”

사랑의 원류를 좇아 우리를 발견하게 하는 시,
마음의 근육을 길러 슬픔의 너머를 보게 하는 시
유수연 신작 시집 『사랑하고 선량하게 잦아드네』 출간!
대화를 건네는 듯한 친숙한 어법, 부드럽고 섬세한 감성으로 우리 안의 닫힌 마음을 두드려 깨우는 시인 유수연의 두번째 시집 『사랑하고 선량하게 잦아드네』가 문학동네시인선 224번으로 출간되었다. “인간관계로 이루어지는 총체적인 삶의 진실을 추구”함으로써 “우리의 삶”이 “사랑과 희망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긍정”의 “투시력”(심사위원 문정희, 정호승 시인)을 보여주었다는 찬사를 받으며 201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한 시인은 그간 활발한 작품활동을 통해 주목받는 젊은 시인으로 거듭났다. 첫 시집 『기분은 노크하지 않는다』로 “사람으로서 자유로이 살아가고자 하는 필사적인 마음의 움직임”(해설, 조대한)을 특유의 단정하고도 진솔한 언어로 표현했다면, 그로부터 이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더욱 정련한 언어로 다듬은 이번 시집에서는 “산다는 것”이란 슬픔을 마주하는 것을 넘어 “슬픔을 갱신하는 일”(「정중하게 외롭게」)임을 깨달은 시인이 사랑과 이별, 사람과 상처에서 발견되는 각각의 고유한 슬픔들을 특유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들려준다. 한 해의 끝에 다다른 이 계절, “살아가는” 일과 “사랑하는”(「우리의 허무는 능금」) 일 모두에 지친 이들의 시린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며 깊은 여운을 전해주는 시집이 도착했다.
저자

유수연

저자:유수연
2017년조선일보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기분은노크하지않는다』가있다.

목차

시인의말

1부네가웃으니내세상이위로가돼
정중하게외롭게/형물이잖아/습작/우리의허무는능금/가로수/수석/종다양성슬픔무성히/슬픔이익을동안나눠잊을까요/걱정/스스로/우리는시간을사랑으로바꾸며살았고누가먼저였을까사랑과바꾸긴아깝다생각한사람은/밸런스/사랑은잊히고근육은남는다/선선한슬픔/소양강소로우/우리는우리의사랑을남에게빌지않기로했지/시간이없다고말한너와겨우만났지만날싫어하는것같고헤어진후에가슴가득노을이차는것같을때

2부느슨히묶어두었지잃어도울지않으려
행복을위하여/행복의한계/희망/행복의태도/착오없는불행/행복의함정/행복을왜버려야해요/사르르/행복한나물/제철행복/조용한열정/행복1/행복의유행/행복2/행복3/여력/마지막행복/진짜마지막행복

3부아직선량할기회가오지않았을뿐이네
서른/원죄/두릅을두고왔다/경우/당기시오/기계가기도하는세계에서/동기/스티커/방심/감염/수거/죔죔/어서오세요/버추얼워터/모심으면먹을날만남았다/사람은상상하는걸다만든다만들수있는정도만상상해그런것일까그렇다면왜/온라인열반/완벽함은하느님이하시는거니나는완벽함/근처도가지않기로했다/팽주(烹主)가손을포기하면차가훨씬맛있습니다/종려

해설|슬픔을기적으로만드는사람
소유정(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바닥까지내려가보면
자신의바닥을알게되면

발돋움해나올수있을줄알았다

바닥을알고,내한계를알고
그곳을박차고나왔더니다른바닥이있다

산다는게슬픔을갱신하는일같을때

하필꽃잎도다떨어진봄날
떨어진건다시되돌아가붙지않았다

(…)

계속놓치지않으려고,계속놓지않으려다
내사랑은죄다아가미가찢겨있구나
_「정중하게외롭게」부분

시집의문을여는첫시이자시집전체의분위기를관통하는「정중하게외롭게」에는“꽃잎이다떨어진봄날”,사랑을“계속놓치지않으려”다자신의사랑이“죄다아가미가찢겨”있다는걸깨달은화자가등장한다.그런화자의모습은일면비극적으로보이지만,한편으로그는“외로움”이란혼자남은사람을고립시키기만하는게아니라“둘”이“각자”의이유로“슬퍼”하게도만드는감정임을알고있기에사랑하는일을두려워하지않는것처럼보인다.그러므로이시는사랑의실패로인한비극성이아니라“사람마음”을얻는것이“제일어렵”(「사랑은잊히고근육은남는다」)다는걸알면서도사랑을멈추지않는화자의순도높은마음그자체를보여준다고할수도있다.
1부‘네가웃으니내세상이위로가돼’는그러한마음을지닌시적화자‘나’가시적대상인‘너’에게말을건네는듯한친숙한어법을통해사랑의여러국면을펼쳐보이는시들로채워져있다.“사랑하지않을때까지사랑해보면/사랑못할게없”(「수석」)다고되뇌는화자는사랑으로말미암은감정들을세밀하게기록한다.사랑의기쁨(“내가태어난게처음으로좋았다”,「형물이잖아」),사랑의슬픔(“반짝이면다사랑인줄알았다”,「종다양성슬픔무성히」),사랑의미련(“왜나는사랑받지못하는걸까”,「사랑은잊히고근육은남는다」),사랑의허무(“사랑도삶도맛만보며살순없을까”,「우리의허무는능금」)등사랑을둘러싸고천변만화하는감정을펼쳐보인다.유수연의시는가히“먼저흘러가버”려“흐름의시작을찾을수없는”사랑의원류를좇는,아름다운사랑학개론이라할만하다.

이야기를적는동안당신은나의가장아름다운기도가되고문득오늘의슬픔이어느날의기적이될수있기를그러나베개가많이젖었네,많이울었어?아니,아그러면젖은머리로잤구나오늘은말리고자,말해주던너는꿈에도오지않는다(…)아무도없지만너는종종내옆에눕고나는계속어떤문장을너처럼안고잠든다_「습작」부분

1부가주로‘나’와‘너’의관계를그리고있다면,‘행복’연작시라할수있는2부‘느슨히묶어두었지잃어도울지않으려’는우리삶을지속하게하는‘행복’이라는감정을한층더깊고너른시선으로탐구한다.시인은결코행복하다고만은할수없는삶에서역설적으로행복을발견하려고노력한다.이는시인이바라는행복이대단히크지않기때문으로보이기도하지만,한편으로는“산사람은살아야하니까”(「버추월어터」),“나는나를살아가야만한다”(「행복의한계」)고숨죽인의지를다짐하는태도로느껴지기도한다.“울기위해”살아가는것은“살기위해소란을택한”(「행복을위하여」)것이라는화자의목소리는해설을쓴문학평론가소유정의말처럼“생의의지를간신히다잡아보는다짐인동시에자신의행복을바라는필사적인주문”으로들린다.

무뎌지는게
물렁해지는게

다상처는아닌거지

사는게그런거라서
사는중엔잊기로한다

크기는달라도
개수는달라도

무게로재는것이니까
_「제철행복」부분

그렇다면시인이정의하는행복이란무엇일까?편집자와주고받은미니인터뷰에서시인은행복이란“답을찾는게아니라질문그자체”이며그것은“무엇이아니라”“무엇인지질문하는걸포기하지않는”것이라고답한다.
시인의이러한태도는“삶”이라는“답지”를“밀려쓴”(「서른」),더이상은어리다고만은할수없는나이에이른3부‘아직선량할기회가오지않았을뿐이네’의시적화자들과연결되는듯하다.3부에수록된시들은하루치의일상을치열하게살아가며길어올린시적인깨달음으로넘실거린다.“지갑을떨군사람”을착각해잘못주워준경험을통해어긋난믿음이불러일으키는인간심연의죄의식을발견하는「원죄」,일터에두릅을두고온사소한실수를떠올리며삶이라는한정적인시간을어떻게소중하게쓸지고민하는「두릅을두고왔다」등이인상적이다.
시인은“답이없”(「서른」)는“망망대해”와도같은삶의속절없음과그로인한슬픔을“부처님말씀”(「온라인열반」)으로상징되는종교에의탁해극복해보려고도한다.그러나시인은절대적신을통한구원을의심한다.시인에게삶이란시쓰기라는끝없는기도에다름아니다.『사랑하고선량하게잦아드네』는그러한시인이“꿈에서쫓겨난”“모든삶”(「습작」)을시를통해위로함으로써읽는이로하여금삶과사랑을함부로놓지않도록충일한의지를갖게하는시집이다.

기도한다생각하면
사랑하듯기도할수있다

(…)

어둠에게필요한건빛이아니라
같은어둠일수있다
_「행복1」부분

그는자기자신만은잃어버리지않았다.자신의손을잡아주던다른이의손이사라진뒤에도그가여전히사랑을,슬픔을,사람을,그리고스스로를포기하지않을수있었던이유는스스로두손을맞잡았기때문일것이다.그건아주고요하게기도하는손이다.
_소유정,해설에서

유수연시인과의미니인터뷰

Q1.『사랑하고선량하게잦아드네』는시인님의두번째시집입니다.첫시집을펴낼때와는또다른마음일것같아요.독자님들께드리는인사와함께소회를말씀해주세요.

사랑을간신히내려놓느라마음이죄악필이되었어요.이글은펜을잡고쓰지않아다행입니다.잘지내셨나요?저는잘지냈어요.어느날이시집이당신이내려놓은사랑과닮았으면좋겠어요.모습도,용도도,향기도다른우리사랑의무게를같이저울질해보도록할까요?기우는쪽으로살며시영점을옮겨나란히매달려있어보아요.

Q2.시집의문을여는「정중하게외롭게」는이번시집을관통하는시예요.외로움,사랑,이별,상실의정서가매우섬세하고도조심스러운언어로표현돼있어요.이시를쓸때어떤마음이셨는지궁금합니다.

“산다는게슬픔을갱신하는일”처럼느끼며살았어요.운전면허를딴지십년이지났네요.면허를갱신하란연락을받은게오래전인데아직갱신하지못했어요.매우귀찮고복잡한과정처럼느껴졌달까요.사실그게어렵지않다는걸알면서도하지않게돼요.그런마음이담긴시가아닐까싶어요.십년의슬픔을잊고이제는새로운슬픔을해야할때예요.그런데어떻게새로운슬픔을할수있을까요.옛신분증에있는얼굴은더는제얼굴은아닌데,가끔그것을저의지금처럼보여주고는하죠.그래도괜찮아요.과거의저와지금의저를다른사람이라고부르는사람은없더라고요.그때의슬픔을알아차리는건오로지저혼자더라고요.

Q3.2부는‘행복’연작시라할수있어요.「행복을위하여」「행복의한계」「착오없는불행」「제철행복」등제목들이이채롭고,시를읽어나가면행복이란무엇일까고민하게돼요.이시들은어떻게쓰게되셨나요?

행복을찾기위한여정이었어요.‘행복이란뭘까?’그질문으로이어지는시들이지요.그런데한권분량으로점차시가많이모였는데도답이나오지않는거예요.그러다알게됐어요.아,이건답을찾는게아니라질문그자체구나.행복이란무엇이아니라,무엇인지질문하는걸포기하지않는거구나.그렇게생각하니까제마음에서피고지는모든게다행복같았어요.그누구도여름을잡고있다거나,가을을잡고있을수는없잖아요.무엇이첫눈인지,무엇이계절의시작인지저마다의기준이다르잖아요.현상은현상으로부지런히일어나고우리는그안에서그저피고져요.이시집도그래요.그냥피고진것들이에요.

Q4.이번시집에서특히아끼는시가있다면무엇인지,그이유도같이들려주세요.

「슬픔이익을동안나눠잊을까요」를조금아껴볼까해요.이시를소외시켰던기억이있어서요.이시의제목을마지막교정때고치고다시읽다이런문장이있었나?생각이들었어요.누가말해줄때까지알아차리지못한게가득한시이기도해요.제가쓰고도이런마음이담겼구나돌아봤어요.“상하는게아니라익어가는거라고/사람은그런거라고말하는너의얼굴에”라는구절은쓸때의마음과훗날읽었을때의마음이전혀달라요.이시를쓰고난뒤에저의어떤한철이누군가와나눠잊은건아닐까싶어요.나눠잊고있는동안슬픔과사랑,그리고외로움은무르익었지만말이에요.제가쓴시가낯설어질때가좋아요.그만큼슬펐음을겨우잊은것만같으니까요.이시를내가쓰고도그래그렇지,사람은그런거였지,하면서위로를받았어요.

Q5.‘마음’과‘근육’이라는시어가눈에띄었어요.“기억하는일도근육이필요해서/슬픈기억은오래붙잡고있기힘들었다”(「행복의태도」)라는대목이인상적이었고,“마음은꽤융통성이있어요”(「행복을왜버려야해요」)라는문장도기억에남아요.독자들이이번시집을어떻게읽어주기를바라시는지마지막인사와함께말씀부탁드립니다.

놓쳐주세요.떨어진걸함께주울때가오고,그것이돌아갈곳을알려주기도할테니까요.곧겨울이오고또봄이오겠죠?나무도꽃을잊으려꽃을떨구니까요.우리의꽃길은어쩌면흉터일수도있겠습니다.그러나우리를키울거름은우리가떨군사랑일거예요.그러니부디사랑의실패를사랑의끝으로생각하진말아주세요.읽어주셔서감사합니다.

시인의말

시는어렵고이해할수없다는너에게꽃을이해하려고하니되물었지그런데도나는시집을펼쳐놓고오래설명해주었어네얼굴의홍조를사랑으로이해하고싶었으니까

마침내피고지는게행복이란걸알지만무엇이우리에게서피고졌는지는굳이설명하지않을게그때떨군것들을함께주우러갈수는없으니까

아직도나는사랑을모르고착하지도않아

2024년가을
유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