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망한 사랑

조금 망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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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첫 소설집 『마음에 없는 소리』(문학동네, 2022)가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 2위에 꼽히고 다음해 김만중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작가 김지연의 두번째 소설집 『조금 망한 사랑』이 출간되었다. 동료 소설가들의 애정을 듬뿍 받은 첫 소설집 이후 이 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소설집에는 ‘반려빚’이라는 신선한 조어를 통해 사랑과 빚의 문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사유하도록 이끌며 올해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화제작 「반려빚」과 “등장인물들을 미워할 수만은 없게 한다”(소설가 구효서)는 애정어린 평과 함께 2022년 이효석문학상 우수작으로 선정된 「포기」를 비롯해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쓴 9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번 소설집에서 우리는 지금의 청년 세대를 관통하는 핵심 정서를 김지연 특유의 꾸밈없는 솔직함과 담백한 유머로 만날 수 있다. 누군가와의 연애나 회사에서의 일이 단순히 마음이나 성취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영역에서 감각된다는 것. 그렇기에 김지연의 인물들은 연인과 헤어진 후에도 여전히 돈 때문에 엮이기도 하고, 경제적인 이유로 감정적인 문제를 뒤로 미뤄두기도 한다. 사랑과 빚, 마음과 노동, 청춘과 재해…… 멀찍이 떨어진 듯 보이지만 분리 불가능한 이 단어들을 모아 만들어낸 지금 청년들의 모습이 김지연의 소설에서 새로운 표현을 얻는다.
저자

김지연

저자:김지연
2018년문학동네신인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마음에없는소리』,장편소설『빨간모자』,중편소설『태초의냄새』가있다.김만중문학상신인상,제12회,제13회,제15회젊은작가상을수상했다.

목차

포기…007
경기지역밖에서사망…039
반려빚…073
긴끝…107
좋아하는마음없이…135
먼바다쪽으로…169
정확한비밀…201
가능한밝은어둠…235
유자차를마시고나는쓰네…261

해설|권희철(문학평론가)
틈새찾기…295

작가의말…331

출판사 서평

생활과사랑을함께했던,
더는만나지않는그때의사람들에게

김지연의소설속인물들은미지근한온도를지니고있다.그렇기에멀리서바라보면언뜻체념의정서를체화한듯여겨지지만,쉽게뜨거워지거나차가워지지않는바로그온도는인물들로하여금무언가를손쉽게포기하지않도록만든다.연애가끝난후에도완전히정산되지않고남아있는것들에대해말하는「포기」는어쩔수없이무언가를포기해야하는인물의이야기이면서동시에도저히포기할수없는것에대한이야기이기도하다.완연한겨울저녁,퇴근후약속장소에도착한‘나’를보자마자호두는이렇게묻는다.“민재연락받았냐?”(11쪽)민재와연애하던시절‘나’는사촌인호두에게민재를소개해줬고그렇게두사람은친구가되었다.문제는‘나’와헤어진후민재가호두에게이천만원을빌린것이고,더큰문제는민재가돈을들고잠적해버린것이다.민재는호두뿐아니라여기저기서조금씩돈을빌린다음사라졌고이따금씩‘나’에게만연락해왔다.‘나’는왜하필자신에게연락하는지의아하면서도“서로에게빚진것도없었고나쁘게헤어지지도않았”(15쪽)으니이쪽의상황을확인해보기위해서는자신이제일연락하기만만한상대일것이라고짐작한다.특이한점은아무도민재를신고하지않는다는것이다.호두를제외하고다들민재에게빌려준금액이크지않기때문이기도하지만,그건단지액수때문이아니라“한번씩은민재에게신세를진적이있기때문인지도”(15~16쪽)모른다.호두역시‘나’에게하소연하면서도민재를신고할생각은하지않는다.호두는돈을돌려받을가능성을포기한걸까.아니면민재와의관계를포기하지못한걸까.민재에게사람들과의관계를포기하면서까지감춰야하는속사정이있는걸까.더이상민재의연인도친구도아닌‘나’는무엇을할수있을까,또는할수없을까.

「포기」의‘나’는민재에게더이상연애감정을느끼지않기에지금의상황에서한발짝떨어져생각할수있는지도모른다.하지만만약상대를향한감정이여전히깊게남아있다면?「반려빚」과「긴끝」은경제적인문제와감정적인문제가얼마나긴밀하게연결되어있는가를보여준다.「반려빚」은전세사기를당한연인서일을위해“제1금융권을돌며빌릴수있는만큼돈을빌”(83쪽)린후서일에게건넸지만,결국그와헤어지고연락마저끊긴후일억육천만원의빚이오롯이자신의몫이된정현의이야기이다.이런난처한상황을때로는웃음이비어져나올만큼유머러스하게,때로는앞이깜깜해질만큼아득하게그려낸「반려빚」에서정현과서일의관계를가로지르는핵심문제는단연돈이다.서일과사귀는동안자주부채감을느낀정현은돈으로자신의사랑을증명하고자했고,이별한후에도서일을향한감정을깨끗이처리하지못했기에돈으로얽힌심각한상황앞에서번번이마음이약해진다.

하지만「반려빚」이많은사람들의공감을불러일으킨것은빚이단순히두사람개인의문제가아님을작가가날카롭게짚어냈기때문일것이다.“이일을해결할수있는사람도제도도없었다”(96쪽)는정현의말처럼,이모든일의시작에는전세사기가놓여있는것이다.사랑과돈이뒤얽힌문제를사회적인차원에서사유하는일은「긴끝」에서도이어진다.아침에일어나강아지와함께집근처를가볍게산책하고출근해일한뒤집에돌아와연인인찬희와함께저녁을먹는삶,저녁산책을마치고집으로돌아와찬희와함께사소한이야기를나누다잠드는삶,그러니까특별한것이없는익숙하고나른한그삶은자신을욕하던사람들과모두절연하면서문애가어렵게이룬것,마침내쟁취한것이다.하지만코로나팬데믹이닥치고찬희가일자리를잃으면서,더욱이코로나이후로찬희의남동생이일을할수없게되면서안온하고안전했던두사람의세계에조금씩금이가기시작한다.「반려빚」에서정현과서일이헤어진이유가돈문제때문만은아니지만그것이제법중요한요소였던것처럼,「긴끝」에서찬희와문애가헤어지게된데에는코로나라는외부적인상황,더정확히는그로인해일자리를잃은사람들이어떤지원도받지못한상황이깊게관여해있는것이다.

그렇기에작가가자신의삶이‘조금망했다’고느끼는인물들바깥에무엇이자리하고있는지살피는것은당연한일일것이다.「경기지역밖에서사망」은별다른수식이없을때인물이곧잘‘서울거주-사무직노동자’로,즉표준화된표상으로상상되는그반대편에서‘지방거주-육체노동자’인인물을전면에등장시킨다.하청업체현장직노동자인상욱은안전관리가소홀한일터에서일하다손에부상을입고집에서쉬고있다.그런상욱의몇안되는취미는‘배틀그라운드’게임으로,상욱이게임매뉴얼을숙지하듯알아낸이세계의세계관에따르면인물도직업도집안도변변찮은상욱은사람들에게얕보이기쉬운‘호구’와같은존재다.그런상욱에게누나가아르바이트를제안한다.‘지방에사는청년들의일과삶’을주제로한작업을준비중인미주에게동네를안내하며간단히인터뷰에응하는일이다.‘서울거주-예술노동자’인미주와‘지방거주-육체노동자’인상욱은그동안접점이없는삶을살아왔지만둘다배틀그라운드를한다는공통점을통해조금씩가까워진다.하지만“젊은아가씨가해질시간까지이런산속을싸다니면흉한일을당해도할말이없는거예요.내가너무걱정이돼서하는말이에요”(66쪽)라고이야기하는노인의등장으로두사람사이에는불편한침묵이흐른다.이기기위해전력으로질주해도멀리서날아오는총알에맞으면죽음을맞이할수밖에없는게임에서처럼,남들에게뒤처지지않기위해애써온인물들의삶은그들의세계바깥에있는것들로인해언제든무너져내릴수있다.그연약하고부서지기쉬운서로의삶의조건을마음깊이이해하는것,그일에서부터두사람의점점은다시생겨날지모른다.“사실저는치킨먹을때보다저기절해서팀원이살려줄때가더좋아요.그리고팀원기절했을때제가달려가서살려줄때도좋아하고요”(51쪽)라는미주의말에상욱이고개를끄덕였던것처럼.

“기댈사람이있었고그사람역시자신에게기대고있었다.
그사실을떠올리면자신의삶이아주망가지지는않았다고여겼다.”

실패는아니지만선명한기쁨없이더디게이어지는삶
그삶이못내소중해아직은무엇도포기할수없는지금

한편으로삶을향한김지연의관심은삶의불가해하고불가사의한면을탐구하는일로나아간다.「먼바다쪽으로」와「정확한비밀」은서스펜스와비밀을통해흡입력있게이야기를끌고나가며불안이나믿음같은추상적인감정을마치알레고리와같은형식으로담아낸작품이다.쉽사리해결되기어려운삶의미지한영역에대해질문을던지며우리각자가그에대한답을고민하도록이끄는것이다.

가장최근에쓰인「좋아하는마음없이」도그연장선에서살펴볼수있다.소설은남편이바람이나서헤어진안지가십년이지난후남편의아내에게연락을받으며시작된다.안지는자신도“남들처럼지극히평범하게살수있다는것을빨리증명해보이고싶었으므로”(139쪽)‘아주평균적인삶’을살기위해노력해왔다.모든부분에서튀지않는,전형적인사람이되고싶었던안지는남편과사귀는동안에도무난한관계를이어가며다른사람들이연애할때하는일들을거의다했다.“서로좋아죽는것만빼면.”(같은쪽)좋아죽지는않아도남편이좋은사람이라는것만으로충분하다고생각하며결혼생활을이어나갔지만,남편은“그걸로는도통충분하지않았다”(160쪽)고말하며사랑하는여자가생겼다는고백과함께이혼을요구했고,안지는아이의양육권을포기하고집을나왔다.그리고모든일이지나간지금,남편의아내가남편이사고로죽었다는소식을전하며안지에게만나자고연락해온것이다.남편의사망보험금수익자가안지로되어있는데,아이의양육비를보태달라는이유로.안지는남편에게그랬듯아이를키우는동안아이에게특별한감정을느끼지못했다.남편을아주좋아하지는않았지만결혼을결정했던안지는이번에아이의양육을두고어떤결정을내리게될까?그리고그결정은아주평균적인삶을살기위해애써온안지에게어떤틈을만들어줄까?

『조금망한사랑』속인물들에게다른사람과의관계에서든개인의성취문제에서든성공적이라고할만한일은좀처럼일어나지않지만,이번소설집에서분명하게느껴지는것은삶을향한은은한애정이다.마치무표정한얼굴로삶이소중하다고말하는사람처럼김지연은담백하고담담하게삶을향한애정을고백한다.그마음이가장또렷하게느껴지는작품인「유자차를마시고나는쓰네」는수능이끝나고얼마지나지않은겨울,삼촌과함께유자밭에서유자를따고유자차를만드는나날의이야기라고할수있다.소설은삼촌과조카의소소한대화들을따라가며행복과불행의혼합으로이루어진복잡한삶을“달고새그럽고따뜻하고너저분한”(290쪽)유자차의맛으로그려낸다.“사람은지극히행복할때느닷없이슬퍼질수도있”(293쪽)듯이슬픔의한복판에서도따뜻하고웃음이나는순간을즐길수있다는것을말이다.사랑이나관계,일에서선명한기쁨을느끼지못하지만아직은‘조금’망했을뿐이라고덧붙일수있는여유와유머는바로삶을향한이각별한믿음과애정에서비롯되는것일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