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율 연습 (양장)

평균율 연습 (양장)

$16.80
Description
많은 것이 끊어져버린 뒤에도 미래에 대한 전망을 포기할 수 없는
우리를 위한 음악과 정원, 그리고 회복에 대한 이야기
우아하고 유려한 문장과 독보적인 묘사로 우리의 감각을 깊이 자극하는 소설가 김유진이 『숨은 밤』(문학동네, 2011) 이후 13년 만에 두번째 장편소설 『평균율 연습』을 선보인다. 장편소설로는 오랜만이지만 작가는 최근 몇 년간 파스칼 키냐르의 『음악 혐오』(프란츠, 2017), 피에르 베제르의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프란츠, 2021), 프랑수아즈 사강의 『엎드리는 개』(안온북스, 2023) 등 왕성한 번역 작업을 통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아름답고 섬세한 언어로 소개해왔다.
『평균율 연습』은 지난 2022년부터 2023년까지 ‘주간 문학동네’에 연재한 후(연재 당시 제목은 ‘미래와 전망’)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전면 개고를 거친 끝에 완성된 작품으로, 언어와 음악에 대한 작가의 유다른 관심이 본격적으로 서사화된 소설이다. 특히 지금까지의 김유진 소설 중 가장 현실에 밀착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작가의 변화가 감지되는 소설이기도 하다. 프리랜서 편집자인 수민이 이혼 후 피아노 학원에서 조율 수업을 받으며 펼쳐지는 이야기인 『평균율 연습』에는 식물을 돌보듯 자신의 미래를 천천히 가꾸어나가는 회복의 과정이 담겨 있다. 모든 음의 오차를 공평하게 나눠 가지는 ‘평균율’은 ‘순정률’만큼 완벽하지는 않지만 각각의 결함을 나눠 가짐으로써 모든 음이 편안하게 들리는 ‘지극히 인간적인’ 방식의 음률 체계이다. 이혼 후 수민이 조율을 배우는 과정은 바로 이러한 오차를 포함하는 인간적인 삶의 방식을 배워나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불완전하거나 미숙한 부분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듬는 일인 조율은, 수민으로 하여금 실패했다고 여겨지는 삶 위에서 새로 시작할 가능성을 찾도록 이끈다.
저자

김유진

저자:김유진
2004년문학동네신인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늑대의문장』『여름』『보이지않는정원』,장편소설『숨은밤』,산문집『받아쓰기』,옮긴책『음악혐오』『나의이브생로랑에게』『엎드리는개』등이있다.제2회젊은작가상,황순원신진문학상,김용익소설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여름휴가7
거리두기29
충돌61
조난99
빛의자리129
평균율연습161

작가의말205

출판사 서평

오후의정원을걷다문득발견한오래되고믿음직한나무처럼
고요하고단단하게가꿔가는지극히인간적인일년의시간

『평균율연습』을가득채우는것은나직하고차분한음성이다.문득발밑을내려다보았을때발견한작고푸른나뭇잎에서뜻밖의편안함을건네받듯이,식물성에가까운인물들이어울려만들어내는그소리는화려하고커다란소리반대편에서우리의귀를잡아당긴다.가장먼저소설의주인공인수민의목소리에귀를기울여보자.출판사를그만두고프리랜서편집자로일하는수민은남편수찬의느닷없는문자를받고지금제주도로떠나온상황이다.수찬이보낸문자의내용은이러하다.“수민아,나스님이될까해.”(13쪽)수민은평소실없는소리를잘하는수찬의성격을고려했을때그말이진심은아닐거라고생각하면서도지난오년간의결혼생활이그리성공적이지않았기에수찬의문자에충동적으로비행기표를끊고제주도로여행을왔다.하지만수민은기대와달리자신의키를훌쩍넘는방파제에가로막혀바다를보지못한다.그리고얼마지나지않아마치복선처럼수민의인생에또다른변수가생겨난다.수찬이이혼을요구한것이다.

스님이되겠다던수찬은얼마지나지않아이혼을요구했다.이혼이출가의첫걸음이라나.수민은취미입문서의소제목으로나쓰일법한그표현에코웃음을쳤다.뭐라고했더라.템플스테이나며칠다녀오라고했던가.지금도절반은속세를떠난것이나다름없지않으냐고비아냥거렸던가.수민은자신이뭐라반응했는지는잘기억나지않았지만수찬의단호한태도만은여전히생생했다.
“수민아,나진지해.”
진지함.평소늘그에게바랐던진지함을,수민은결별을통보받는순간에서야비로소발견할수있었다.(32쪽)

수민은끝에다다른듯한수찬과의관계앞에서그와의첫만남을떠올린다.지금으로부터십오년전,스물세살의수민은대학졸업학년을앞두고프랑스로일년짜리어학연수를떠났다.여행이삶을변화시킬지도모른다는기대감으로떠나왔지만막상그곳에서수민은아날로그식행정처리를견뎌야했고,쉴새없이캣콜링을하는길거리남자들의시선을견뎌야했고,무엇보다아무것도이룬것이없는자신의처지를견뎌야했다.그런수민에게위안이되는존재는룸메이트인정우선배였다.수민보다고작한살이많을뿐이지만,“사람사이의주고받음이일종의세상의리듬이라는것을일찍이깨우친”(15쪽)그녀는수민을살뜰히챙기며어떤자리에든수민을데려간다.그리고그녀가데려간한국인유학생들의모임에서수민은처음수찬을만나게된것이다.마이크를양손에쥐고서수줍은듯떨리는목소리로보아의<어메이징키스>를부르던,스트라스부르에서원예학을공부중이던동갑내기남자아이,그애가바로수찬이었다.

삶에서가장불안정한시기에만나오랜기간을함께해왔음에도수민과수찬사이에는번번이“유대와이해를가로막는장벽”(20쪽)이생겨났고그결과현재에이르게되었다.하지만『평균율연습』에서중요한점은이혼이관계의끝을의미하지않는다는것이다.회사를그만둔뒤에도일상이이어지는것처럼,수민과수찬은이혼한후에도계속해서연락을주고받는다.마치둘의관계를새롭게시작하기위해서는이혼이라는관계를통해서라도이전의관계를정리할필요가있었다는듯이.

“조율배우니까좋은점이뭐야?”
“만져볼수있다는게좋아요.손으로만지작거리다보면
무엇이든고칠수있을것만같은기대가생겨요.”

그러니『평균율연습』은끝에서출발하여새로운시작을향해천천히나아가는이야기라고할수있을것이다.또는“누구에게도말할수없는것들”“주로실수나실패에관한것들,슬픔이나두려움,위로받고자하는마음같은것들”(107쪽)에대해겨우입을열어내뱉을수있게되는이야기라고.소설을이끌고가는핵심인물은수민이지만,『평균율연습』은별도의챕터를통해수민의엄마인정희와수찬스스로가말할수있도록공간을내어준다.그리고그구성은우리에게오래전남편과이혼하고하나뿐인딸수민을데리고상경한후독립적으로삶을가꿔온정희뒤에깊은두려움이자리해있음을,철없고엉뚱한수찬의마음에오래된구멍이있음을알려준다.이제그두려움과구멍에대해조금은알게된수민의삶은어떤식으로달라질까?

김유진작가는『평균율연습』에서확실하고선명한회복을말하지않는다.다만피아노조율기능경기대회에나갔다가사소한실수로감점을받아떨어진수민의에피소드를통해작가가말하는회복이어떠한종류의것인지를짐작해볼수있다.수민은주어진시간동안피아노의조율과조정을완료해야하지만,건반에서나는잡음을바로잡지못해결국대회에서떨어지고만다.수민이한실수는바로피아노의너트를조이지않은것.수민은학원에서실습용으로쓰는피아노가연습생들의편의를위해너트가풀려있기에시험장의피아노역시너트를조이지않은게올바른상태라고생각해버린것이다.익숙하고당연하다고생각해온눈앞의것에대해다시생각해보기.그것은피아노를조율하는일뿐아니라수민이사람들과관계를맺는방식에도적용되는이야기일것이다.

편집자가되고난후“무언갈바로잡기위해서는언제나근거가필요하다”(20쪽)고생각했던수민은조율을배워나가면서잘못된것을엄정하게고치는일그자체보다“예술의과정에존재하는사소한실책의순간들”(201쪽)이주는즐거움에대해알게된다.그리고그것이우리삶의무수한실수와오차를끌어안음으로써더욱풍성하고아름답게삶이울려퍼지도록하는방식이라는것또한.수민의삶은,그리고우리의삶은그방식을연습하는일에서새롭게시작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