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 (월급사실주의 2025)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 (월급사실주의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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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당신은 지금 원하는 모습으로 일하고 있나요?
일다운 일을 꿈꾸는 그 벅찬 소망 앞에서
넘어지고 버티고 돌파하는 보통 사람들의 생존 노동기
떳떳하게 출근할 수 있는 내일을 위하여
온 힘으로 지켜내는 오늘의 마음

※ 2025년 5월 1일 근로자의 날 발행

동시대 한국사회에서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보통 사람들의 삶에 대해, 발품을 팔아 사실적으로 쓴다는 규칙을 공유하며 결성된 ‘월급사실주의’ 동인의 단편소설 앤솔러지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월급사실주의 2025』가 출간되었다. 월급사실주의는 우리 시대의 노동 현장을 담은 소설이 더 많이 발표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한국소설의 새로운 흐름이다. 소설가 장강명에 의해 촉발된 이 움직임은 2023년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2024년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출간으로 이어졌고,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는 이 동인이 내놓는 세번째 앤솔러지다.
월급사실주의 동인은 특별한 가입 절차나 정기적인 모임을 갖지 않는다. 동인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그 취지에 맞는 작품으로 앤솔러지에 참여하면 이 동인의 구성원이 된다. 월급사실주의 동인이라는 이름은 구체적인 형태를 지닌 창작 집단이라기보다는 한국 문단의 변화를 도모하는 운동성 자체에 부여된 셈이다.
올해 새롭게 월급사실주의 동인으로 합류한 작가는 김동식 서수진 예소연 윤치규 이은규 조승리 황모과 황시운이다. 2025 이상문학상 대상을 거머쥐며 지금 이 시대의 질문에 가장 발 빠르게 응답하고 있음을 증명해낸 예소연, 주물공장에서 십 년 넘게 일하다 전업 소설가가 되어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동식, 한국어학당에서 일하는 시간강사의 이야기를 다룬 『코리안 티처』로 작가로서 첫 행보를 뗀 서수진의 신작 단편소설을 만날 수 있다. 신춘문예 2관왕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후에도 회사원으로서 생업전선을 유지하고 있는 윤치규와 2022년 백상예술대상을 수상한 12년 차 다큐멘터리 PD 이은규가 그려내는 생생한 노동 현장 역시 기대할 만하다. 그간 SF소설을 쓰며 꾀해온 미래에의 상상을 하이퍼리얼리즘소설에서 다시 한번 구현해낸 황모과와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중증장애인 노동권을 이야기하는 황시운의 작품은 문학이 동시대의 거울이어야 하는 이유를 몸소 증명한다.
책의 제목은 시각장애인 에세이스트 조승리의 단편소설 제목에서 따왔다. 이 땅 위의 근로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읊조렸을 법한 자조 섞인 한탄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나는 어떻게 일하고 싶은지, 내가 꿈꾸는 일터는 어떤 곳인지를 말이다. 쉬이 답을 찾기 어려운 이 물음 앞에서 여덟 편의 작품은 저마다 다른 ‘이런 데’를 그린다. 그들은 연차가 쌓여도 경력을 인정받지 못해 계약직을 전전하고, 사회에서 도태된 이들의 몫으로 여겨지는 일을 수행하며, 머지않아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업무를 반복한다. 허울 좋은 일자리 정책 아래에, 플랫폼 업체의 별점 뒷면에, 때론 대한민국 땅 바깥에 벌어지는 그 낯설고도 익숙한 이야기들에서 체념과 불만을 걷어내고 나면, 매일 마주하는 일터에서 온 힘을 다해 지켜내고 있는 오늘의 마음이 보인다. 일다운 일을 하는 것조차 벅찬 소망이 되어버린 현실 앞에서, 조금 더 나은 곳으로 향해가고자 하는 희망이 반짝인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넘어지고 버티고 돌파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이 책은 5월 1일 근로자의 날에 맞추어 발행된다.
저자

김동식,서수진,예소연,윤치규,이은규,조승리,황모과,황시운

저자:김동식
부산영도산복도로골목길에서어린시절을보냈다.2006년에서울로와성수동의한주물공장에서결근한번하지않고10년동안노동했다.2016년부터온라인에창작소설을올리기시작했고,독자들의뜨거운지지에힘입어『회색인간』,『세상에서가장약한요괴』,『13일의김남우』를출간하며데뷔했다.『회색인간』은100쇄를돌파하며문단에즐거운충격을안겨주고있다.등단5년만에1000편이넘는소설을창작했으며,SDF프로젝트소설집『성공한인생』,연작소설집『궤변말하기대회』,따뜻한이야기모음집『인생박물관』,자신만의창작기법을풀어낸『초단편소설쓰기』,에세이집『무채색삶이라고생각했지만』등을썼다.개성있는캐릭터들이서로를이해하며다양성을존중해가는판타지에매력을느낀다.『우주학교』는작가의첫연작장편으로,독특한세계관과작가의무한애정이담긴캐릭터가돋보이는수작이다.

저자:서수진
2020년한겨레문학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골드러시』,장편소설『코리안티처』『다정한이웃』,중편소설『유진과데이브』『올리앤더』가있다.젊은작가상을수상했다.

저자:예소연
2021년『현대문학』신인추천을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사랑과결함』,장편소설『고양이와사막의자매들』,중편소설『영원에빚을져서』가있다.황금드래곤문학상,문지문학상,이효석문학상우수작품상,이상문학상대상을수상했다.

저자:윤치규
2021년조선일보와서울신문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러브플랜트』가있다.

저자:이은규
다큐멘터리PD.〈역사저널그날〉〈세계는지금〉〈추적60분〉등의방송을연출했고,〈다큐인사이트〉여성아카이브×인터뷰시리즈를통해희극인,배우,운동선수,기자,아이돌등직업인으로서여성의목소리를담았다.백상예술대상TV부문교양작품상을수상했다.

저자:조승리
경리가꿈이었던나는시각장애인이되었습니다.
안마사로살던나는작가가되었습니다.
운명은나를어디까지데려갈까요?
책『이지랄맞음이쌓여축제가되겠지』를썼습니다.

저자:황모과
2019년한국과학문학상중단편부문대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밤의얼굴들』『스위트솔티』,장편소설『우리가다시만날세계』『서브플롯』『말없는자들의목소리』『그린레터』,중편소설『클락워크도깨비』『10초는영원히』『노바디인더미러』『언더더독』이있다.2021,2024년SF어워드,양성평등문화상신진여성문화인상을수상했다.

저자:황시운
2007년서울신문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홈HOME』『그래도,아직은봄밤』,장편소설『컴백홈』,산문집『당신이모르는이야기』가있다.창비장편소설상을수상했다.

목차


김동식쌀먹:키보드농사꾼_007
#게임아이템#직장내괴롭힘#‘쉬었음’청년#연애포기

서수진올바른크리스마스_039
#호주한인사회#역차별#산업재해#정치적올바름

예소연아무사이_077
#플랫폼노동#별점갑질#돌봄노동#노인실종

윤치규일괄비일괄_105
#정규직일괄전환#육아휴직#노노갈등#무임승차

이은규기획은좋으나_131
#탐사보도#동료평가#직업윤리#프레임밖진실

조승리내가이런데서일할사람이아닌데_155
#시각장애인안마사#복지사각지대#계약직#세대갈등

황모과둘이라면유니온_183
#해외지사#데이터라벨링#전범기업#작가노조

황시운일일업무보고서_217
#중증장애인노동권#재택근무#불쉿잡#장애인고용률

기획의말을대신하여_250

출판사 서평


당신은지금원하는모습으로일하고있나요?
일다운일을꿈꾸는그벅찬소망앞에서
넘어지고버티고돌파하는보통사람들의생존노동기

떳떳하게출근할수있는내일을위하여
온힘으로지켜내는오늘의마음

※2025년5월1일근로자의날발행

동시대한국사회에서먹고살기위해일하는보통사람들의삶에대해,발품을팔아사실적으로쓴다는규칙을공유하며결성된‘월급사실주의’동인의단편소설앤솔러지『내가이런데서일할사람이아닌데─월급사실주의2025』가출간되었다.월급사실주의는우리시대의노동현장을담은소설이더많이발표될필요가있다는문제의식에서비롯된한국소설의새로운흐름이다.소설가장강명에의해촉발된이움직임은2023년『귀하의노고에감사드립니다』,2024년『인성에비해잘풀린사람』출간으로이어졌고,『내가이런데서일할사람이아닌데』는이동인이내놓는세번째앤솔러지다.
월급사실주의동인은특별한가입절차나정기적인모임을갖지않는다.동인의문제의식에공감하고그취지에맞는작품으로앤솔러지에참여하면이동인의구성원이된다.월급사실주의동인이라는이름은구체적인형태를지닌창작집단이라기보다는한국문단의변화를도모하는운동성자체에부여된셈이다.
올해새롭게월급사실주의동인으로합류한작가는김동식서수진예소연윤치규이은규조승리황모과황시운이다.2025이상문학상대상을거머쥐며지금이시대의질문에가장발빠르게응답하고있음을증명해낸예소연,주물공장에서십년넘게일하다전업소설가가되어왕성한창작활동을펼치고있는김동식,한국어학당에서일하는시간강사의이야기를다룬『코리안티처』로작가로서첫행보를뗀서수진의신작단편소설을만날수있다.신춘문예2관왕으로화려하게데뷔한후에도회사원으로서생업전선을유지하고있는윤치규와2022년백상예술대상을수상한12년차다큐멘터리PD이은규가그려내는생생한노동현장역시기대할만하다.그간SF소설을쓰며꾀해온미래에의상상을하이퍼리얼리즘소설에서다시한번구현해낸황모과와자전적경험을바탕으로중증장애인노동권을이야기하는황시운의작품은문학이동시대의거울이어야하는이유를몸소증명한다.
책의제목은시각장애인에세이스트조승리의단편소설제목에서따왔다.이땅위의근로자라면누구나한번쯤읊조렸을법한자조섞인한탄앞에서우리는스스로에게질문하게된다.나는어떻게일하고싶은지,내가꿈꾸는일터는어떤곳인지를말이다.쉬이답을찾기어려운이물음앞에서여덟편의작품은저마다다른‘이런데’를그린다.그들은연차가쌓여도경력을인정받지못해계약직을전전하고,사회에서도태된이들의몫으로여겨지는일을수행하며,머지않아인공지능에의해대체될업무를반복한다.허울좋은일자리정책아래에,플랫폼업체의별점뒷면에,때론대한민국땅바깥에벌어지는그낯설고도익숙한이야기들에서체념과불만을걷어내고나면,매일마주하는일터에서온힘을다해지켜내고있는오늘의마음이보인다.일다운일을하는것조차벅찬소망이되어버린현실앞에서,조금더나은곳으로향해가고자하는희망이반짝인다.어제도오늘도내일도넘어지고버티고돌파하는노동자들을위한이책은5월1일근로자의날에맞추어발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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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쌀먹:키보드농사꾼」
‘김남우’의직업은게임머니를팔아먹고사는,소위‘쌀먹’이다.대학교를졸업하고중소기업에취직했지만각종질병과인간혐오만얻고퇴사한후‘덜벌더라도고통받지않는하찮은일’을찾아낸것이다.좋아하는여자가생긴그는번듯한직장을잡고그녀에게고백하기위해다시금취업시장의문을두드리지만쌀먹의굴레를벗어나기쉽지않고,설상가상으로대형게임사에서유저간현금거래를막겠다는소식이들려온다.울분에찬김남우는대기업의무자비한조치에대응해쌀먹을변호하는글을인터넷에게시하는데,그글이큰화제를모으자해당게임사는‘쌀먹을정식직업으로인정하겠다’는공식발표를보도한다.김남우는역사상최초의쌀먹정직원이되는핑크빛미래를그리기시작한다.

김남우는그렇게돌아설때마다자괴감이들었다.게임회사에서월급을받는게아니라게임을해서먹고사니까.이걸설명할방법도,용기도없어서이리저리둘러대다보니게임회사에다니는사람이되어버린거였다.(……)이런대화들이김남우의등에식은땀이흐르게하고심장이쿵쾅거리도록만들었지만,차마사실을고백할순없었다.그는언젠가들통날이일의끝이파멸이란걸알면서도위태로운외줄타기를하는중이었다.아무런대책도없이벌써몇년동안이나말이다.(14~15쪽)

서수진,「올바른크리스마스」
호주점유율1위인대형슈퍼마켓체인의삼년차파트타이머인‘주미’는11월중순부터시작되는크리스마스시즌을맞이해눈코뜰새없이바쁜나날을보내고있다.매니저승진을꿈꾸는주미는이시기를틈타자신의역량을보여주리라다짐하고,때마침새유니폼모델로발탁되며자신이야말로회사가필요로하는새얼굴이라는심증을굳혀간다.한인사회에얽매이지않고‘진짜호주’에서일한다는자부심과호주에서‘먹히는’외모라는자신감은,그러나회사가주미의동양적인얼굴을필요로했던이유를눈치채고자신이무능하다고생각했던동료의승진소식을듣는순간산산이흩어진다.모두가들뜨고즐거워보이는한여름의크리스마스,주미의행복은어디에있을까.

“자,이제찍는다.웃어!”
화가난데다생얼이었지만주미는프로의식을발휘해활짝웃어보였다.방금분무기로물을뿌린브로콜리니와콜리플라워보다더프레시하게.
“아,웃지말아봐.웃으니까눈이너무작네.”
주미는그말에즉각적으로눈을부릅떴다.눈이작다는말은한국에서도많이들어서익숙했지만영어로들으니왠지불쾌했다.
(……)
주미가눈이작은건(인종을망라하고)자타공인하는특성이니그는객관적사실을말한셈인가?(65~66쪽)

예소연,「아무사이」
시니어시터로일하는‘희지’는온라인중개업체‘시터닷컴’에서손꼽히는베스트시터다.높은별점과좋은후기의비결이라면자신이돌보는할머니들에게진심을다하면서도주어지지않은업무까지꼼꼼하게해내는책임감이랄까.회사원시절짧은기간입사와퇴사를반복하며자괴감을느꼈던그는드디어자신만이할수있는일을찾아낸것같다고느낀다.그런데돌보는할머니의집을방문한날,잠깐화장실에서통화를하고나온사이할머니가온데간데없이사라진다.희지에게주어진말미는단두시간.퇴근전까지보호자몰래할머니를찾아오기위해온동네를헤매고휘젓는고단한하루가시작된다.

속상하고화도나지만노인네들앞에서는입을다물게되기마련이었다.사는방식이그거하나뿐이라고믿어의심치않는이들이니까.어지간한일은참고견뎠고애써모른척했다.하지만마음속에서완전히잊히진않았다.나도모르는사이에가슴한편에켜켜이쌓인부정적인감정이일하는내내나를괴롭혔다.선뜻다정해지는것이어려웠고가볍게웃어넘기기가쉽지않았다.그럼에도나는내가돌보는할머니들을사랑한다고늘생각해왔는데그이유는……그러지않으면이일을지속하기가어렵기때문이었다.(94~95쪽)

윤치규,「일괄비일괄」
‘선미’와‘지선’은사무지원계약직으로함께일하며친해진옛동료사이다.지선은입사동기중가장특출났지만결혼후육아휴직을두번연장한끝에퇴직을택한다.이와달리선미는지선의몫까지떠맡아고군분투한끝에칠년만에정규직전환을이뤄낸다.그후정규직일괄전환정책이시행되고,두친구는추억이담긴와인을함께마시며직원들을‘일괄’‘비일괄’로구분짓는사내분위기와이름뿐인정규직처우에대해얘기하던중,속마음깊이묻어두었던원망그리고서로에대한배려가빚어낸오해를끄집어낸다.선미와지선의삶은어디서부터두갈래로갈라진건지,그들의죄책감을자극하는보이지않는적은누구였는지,멀어진틈을메우는솔직한대화에서그실마리가풀려나온다.

“선미야,노부장이옛날에회식자리에서다타버린삼겹살골라내면서나한테전환못할거면빨리결혼이나하라고했던거기억나?타이밍놓치면이꼴난다면서말이야.”
“노부장은지금도똑같아.”
“요즘도그런가스라이팅이먹혀?”
“신입들한테는안먹히지.근데나한테는먹혀.노부장이요즘뭐라고하는지알아?일괄전환된사람들한테무임승차했다고난리야.자격도없는데전환됐다고.무임승차하면벌금이삼십배니까,삼십배로일하라고.”(121쪽)

이은규,「기획은좋으나」
방송국탐사보도팀에서시사교양PD로일하는‘나’의업무는8주를주기로돌아간다.하나의사건을끈질기게추적하고,그림을만들고,편집을거쳐스토리를엮는다.방송이무사히송출된후에는같이고생한팀원들과맥주를들이켜며그간의고생을털어버리고새아이템에돌입한다.재벌3세의음주운전사건을취재한방송이열띤반향을일으킨뒤,2년차신입인‘소연’이탐사보도팀에합류한다.‘돌파력’을무기로팀에이스에서메인PD가된‘나’는위장촬영을거부하고화제성이떨어지는노동자파업현장을취재하고싶다는소연이묘하게불편하다.그러나소연이조심스레내비친합당한고민이마음에눌어붙을수록,8주라는시간너머,카메라프레임밖에존재했을지도모르는진실이눈에밟힌다.

우리가세상을바꾼것까진아니어도조금흔든건아닐까.내가잠안자고붙인컷아래서불붙는댓글창을보니조금우쭐해졌다.(……)다들팔주동안움츠러들었던어깨를조금씩펴고한마디씩더했다.나는말없이맥주를들이켰다.내가엉덩이붙인이곳이남부끄럽지않을수있는자리여서참좋다,정직하고무해하게월급을벌수있는자리라서참다행이다,그런생각이드는몇안되는귀한날이었다.(140쪽)

조승리,「내가이런데서일할사람이아닌데」
저시력시각장애인인‘나’는백화점지하삼층에서직원복지를위해고용된헬스키퍼로일한다.백화점직원들이손님에게받은스트레스를표출하는일은부지기수,마사지하는중에말을걸지말라거나,어차피안보이는데불을끄라는식의갑질도익숙하다.한때는정성과열정을다해일하기도했으나,층층이계층화된공간에서직업적존엄성을지키려는노력은번번이수포로돌아가고,어느덧최소한의원칙만지키며일하는사람이된‘나’의유일한즐거움은식단표에서맛있는메뉴를찾는것뿐이다.그러던어느날,예약시간에늦은직원에게원칙대로남은시간삼분간만마사지를해주고내보냈는데,그직원이인사과장을대동하고나타나조용한사무실문을두드린다.

내가이긴거나다름없지만사는게지겹고내운명이가혹하다는생각이들었다.새로직장을구해야한다는사실도,월셋집을전전해야하는현실도,어설프게보이는시력도.나는이렇게구질구질하게지하실에서손가락부러지도록남의몸을주물러대고있는데내머리위에서는몇백만원짜리가방을척척계산하는이들이있다.(……)세상은불공평하고나는영원히지하실이나전전하며누군가의감정쓰레기통으로살아야한다.이런내미래가가엾고불쌍해서울었다.(180쪽)

황모과,「둘이라면유니온」
‘부진’은한국에서여러중소기업을전전하다만화가의꿈을품고일본으로워킹홀리데이를떠나왔으나,여러현실적인여건으로일본테크기업제이케이콥에취업한다.AI프로젝트를담당하는한일협업팀에투입된그는거창한팀명과달리포르노를필터링하거나,챗봇자동응답서비스의답변을직접입력하는등인공지능의빈틈을메우기위한업무를수행한다.갖가지모멸을마주해야만하는회사생활의유일한위안은사내한국인동료‘리안’과의‘긴급수혈커피타임’.그렇게웃지도울지도못하는생활을이어가는나날,세심하게맥락을읽어야하는해외지사의근무환경에서경험치는‘에누리’당하고,자신이학습시킨인공지능에게생계를위협받는처지에놓이며커피타임만으론버티기힘든순간이찾아온다.

회사에서일할때면가족보다도가깝게지내는사이가있다.기간한정일지몰라도함께일하는동안엔딱풀같이달라붙는인연.친하긴하지만반말은나오지않는다.간혹경조사를챙기기도하지만옛친구같진않으니의무에가깝다.주말이나휴일에따로만나자요구할정도로무례하진않으면서도,미친듯이바빠도잠깐같이나가캔커피한잔마실수있을정도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