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위한 힌트 (기준영 소설)

내일을 위한 힌트 (기준영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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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낯설고도 신선한 문체로 “문학은 스타일이다”(소설가 김남일)라는 심사평을 얻은 화제의 데뷔작 「제니」로 이름을 알린 이후, 그간 세 권의 소설집과 두 권의 장편소설을 펴내며 문단의 고른 지지를 받아온 소설가 기준영의 네번째 소설집 『내일을 위한 힌트』가 출간되었다.
주로 누군가가 찾아오거나 누군가와 우연히 만나면서 시작되는 기준영의 소설은 읽는 이가 예상하지 못한 전개로 놀라움을 주면서 삶의 비의와 기쁨을 동시에 안긴다. 그것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그 이유로 때로는 불안하지만 때로는 기대치 못한 활력을 얻게 하는 삶 그 자체의 속성처럼도 느껴진다. 이와 더불어 눈앞에서 연극이 상연되는 듯한 생생한 대화, 가슴속에 간직하고 싶은 아포리즘 같은 문장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기준영 소설의 백미이다. “좋은 작품은 그냥 좋구나, 어떻게 좋은지 말로 설명할 수 없어도 좋구나”(소설가 윤성희)라는 평을 불러일으킬 만큼 매혹적인 기준영만의 단편 미학은 그렇게 이번 소설집에서도 빛을 발한다. “내가 누군가의 실패작이거나 농담인지, 아니면 그냥 인생이 원래 이토록 굽이굽이 시험에 드는 일”인지, “뭘 잘못했는지 뚜렷이 자백할 수 없는데도 자책해야만 하는”(「모든 이의 모든 것」, 216쪽) 상황에 놓인, 심란하게 꼬인 듯한 하루를 보낸 사람들에게 기준영의 소설은 ‘내일’을 맞이하기 위한 하나의 소중한 힌트가 되어줄 것이다. 『내일을 위한 힌트』는 우리가 그간에 읽어온 기준영 단편 미학의 모든 것이 담긴, 가히 ‘기준영스러움’의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집이다.
저자

기준영

저자:기준영
2009년문학동네신인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연애소설』『이상한정열』『사치와고요』,장편소설『와일드펀치』『우리가통과한밤』등이있다.창비장편소설상,젊은작가상,김승옥문학상우수상을수상했다.

목차


다미와종은,울지않아요7
나를부르는소리41
여름의목소리71
헬레나의방식101
곽수산나와경우의수129
신세계에서155
부소니호텔,가을183
모든이의모든것201

해설|권희철(문학평론가)
은유하기용서하기231

작가의말263

출판사 서평

“우리는각별한사람들이에요.”

사람과사람,그사이에놓인투박한돌덩이를치워내
서로의삶에전환점을만들어주는아름답고도산뜻한단편들

소설집의문을여는「다미와종은,울지않아요」는오래전에연락이끊겼지만영모르는사이는아니었던고등학교동창‘종은’이‘다미’의집에찾아오면서벌어지는일화를그린소설로,이번책의전체적인분위기를살펴볼수있게하는대표적인작품이라할수있다.다미가종은을통해“평소라면신경에거슬렸을법한집안팎의변화들”(11쪽)을열린마음으로받아들이게되는인상적인모습,초반부에는밝혀지지않았던다미,종은의남모를아픔과상처의비밀이드러나는후반부의반전이그렇다.무엇보다언제다시만날수있을지모르게된다미와종은이나누는결말부의리드미컬한대화는“겹겹의노래”(40쪽)처럼읽는이의마음에깊은여운을남긴다.

「나를부르는소리」는“우연이반복되면거기무슨신호가있다고느끼게”(61쪽)하는매력적인작품이다.‘나’는다친숙부를모시고찾아간밤의응급실에서우연히한남자를만난다.그에게서숙부가잠시머무를곳을추천받게되는데,이후인근식당에서또다시우연히그를만난다.그를통해‘나’는회사일로지치고피폐해진일상에서뜻밖의“평안”과“평화”(69쪽)를발견하게된다.
「다미와종은,울지않아요」와「나를부르는소리」는우리의삶에깊이관여하고있지않은사람이라도마음에위안을전해올수있다는것,“나를부르는소리”를듣기위해서는먼저“내가귀기울이는”(「나를부르는소리」,68쪽)자세를지니고있어야한다는것을일깨워주는듯하다.

“괜찮아질거예요.”
(……)
당신이어떻게알아요?”
“알지못하는사람이해줄수있는최선의말,아닌가요.”
_「나를부르는소리」,67쪽

한편,기준영의소설에서는‘소리’라는청각적심상이소설의메시지를은연중에전하는중요한열쇠처럼보인다.「여름의목소리」는단독주택이층으로이사온‘흥경’이주인공으로,그는아침마다집주변에서“히콕히콕,꺅꺅꺅,스즈스즈부,도이치도이치”(74쪽)하고새가지저귀는소리를듣는다.정확한음도뜻도알기어려운이독특하고도경쾌한새소리는흥경이비교적허물없이지내는아랫집집주인모녀와대화를나누거나전직장동료인수빈과만날때에도내내배음처럼울리면서독자에게묘한자극을준다.그렇게읽는이의귓전에울리던새소리는이야기가진행됨에따라흥경이최근에아버지의죽음을겪었고,그와관련된남모를죄책감을느끼고있었다는것이밝혀진순간마치“물건과사람과시간과공간”을“재배열”시키며“단한번뿐인계절들을새로살아가”(82쪽)게하는마법같은의미로확장되며읽는이로하여금신비로운체험을하게한다.

한편,「헬레나의방식」은“예민하게귀를기울이는”태도로“신자들에게인기가높”(104쪽)은‘손민우아우구스티노신부’가자신앞에나타난초로의여성신자‘헬레나’의고해성사를듣는이야기이다.헬레나는오래전중학교동창‘장온조’를호감을가지고아홉번만났는데어느날그가자살로추정되는실족사로세상을떠나고만다.헬레나는장온조와의아홉번의만남을곱씹으며자신이무언가를잘못하지는않았는지오래도록죄의식을간직해왔다가,자신의고백을녹음기에담아아우구스티노신부에게건네는방식으로고해성사를한다.녹음기속헬레나의음성은그자체로읽는이의마음에파문을일으키는데,신부가자신의집에서홀로헬레나의고백을듣고나서보속(補贖)수여의행동을하지않고다만기타를연주하며즉흥곡을지어부르는모습은무척이나인상적이다.죄를사하거나구원을구하지않음으로써더큰울림을주는이장면은“미묘한힘을응축”한“새로운언어”(127쪽)의용서처럼느껴진다.

‘용서’가누군가의과거행위를없었던일로만들수는없겠지만,과거의행위가누군가를붙잡아원한과증오와자책에사로잡히게한것을조금느슨하게해줄수는있을것이다.그가과거의행위를,또과거의행위가그를서로놓아줄수있게도와줄수는있을것이다.과감하게말해서용서는과거의행위로부터그행위자를해방시켜주는것이다._권희철,해설에서

MBTI앤솔러지소설집『저는MBTI잘몰라서…』(잇다,2023)에수록되면서먼저독자를만난「곽수산나와경우의수」는‘곽수산나’‘은수’두사람이우연히은수아버지의친구분을만나러가면서펼쳐지는이야기로,기준영소설의내용적,형식적특징을뚜렷하게살필수있는흥미로운작품이다.“성향과지향이많이다른”두사람이“중첩”되는“우연”(145쪽)을겪으면서그간에는몰랐던서로의이면을발견하고그것을거울삼아현재자기삶을되돌아보게된다는점이그렇다.우정인줄만알았던두사람각자의마음이사랑의가능성으로열리는결말부는이소설을귀엽고사랑스러운연애소설로읽히게도한다.

“여행은다른시간을살아보려고하는거잖아요.”

사뿐사뿐춤을추듯이,흐르듯이,미끄러지듯이
함께떠난여행지에서발견한
기억할이름들과내일을위한힌트들

「신세계에서」와「부소니호텔,가을」은함께짝을지어읽으면더욱재미있는일종의여행기이다.「신세계에서」는고모‘이원’과조카‘이열음’이,「부소니호텔,가을」은엄마‘염세정’과딸‘권보경’,그리고권보경의친구‘원희지’가그주인공으로두작품모두“사람과사람이이어지는타이밍”(「부소니호텔,가을」,199쪽)을절묘하게보여주면서출발과도착이라는순환속삶이라는찰나의아름다움을설핏엿보게하는작품이다.
「신세계에서」에서이원은“‘가까운미래’‘먼미래’‘오지않을세계’같은표현이나관념에‘꽂혀’있는”(157~158쪽)고등학생조카이열음을엉뚱하게느끼면서도일찍이엄마를여의고아빠슬하에서자란그가마음이쓰여함께2박3일의여행을떠난참이다.그런데이열음에게는고모이원은모르는,어쩌면“사는게지옥”(158쪽)같다는표현을피부로실감케한동급생친구들과의사건으로인한문제를겪고있으며실은그것을해결하고자여행을떠난것이었다.여행지에도착하고나서이열음이혼자친구를만나러간사이,홀로남은이원은해변가에서우연히‘김호경’을만나짧은인연을만들게되고그사이돌아온이열음과함께세사람은내일함께여행을하자는약속을하게된다.이책의제목‘내일을위한힌트’는김호경이습관적으로메모하는장면을묘사한“김호경은이원과의통화를마친뒤노트를꺼내펼쳐들고늘하던일을했다.기억할이름들과내일을위한힌트들을남겨두었다”(181쪽)라는대목에서따온것이다.“이열음,이원”과함께적힌“나들이,약속,맑음”(같은쪽)은그간단한단어속에녹아있는우연으로일궈낸하루의찬란함,내일을향한기대를느끼게한다.이는기준영이독자에게전하는애틋한응원이자인사이기도할것이다.

「부소니호텔,가을」은서울명동에소재한호텔프린스에서주관하는‘소설가의방’레지던스사업십주년을기념하기위해작가가쓴소설이다.버킷리스트를이뤄보겠다는딸의친구원희지를따라딸권보경과함께대동한여행에서엄마염세정은보기보다“제법어른스러운태도”(195쪽)를보이는권보경과원희지의모습,그리고원희지가들려주는꿈이야기를통해뜻밖에여행의기쁨을느끼며“가을이짧은것”(199쪽)을처음으로아쉬워한다.읽는이로하여금어딘가로훌쩍떠나고싶게하는여행소설의면모가톡톡히드러나는작품이다.

소설의대미를장식하는마지막수록작「모든이의모든것」은「다미와종은,울지않아요」와내용적으로쌍을이루는작품처럼보인다.「다미와종은,울지않아요」에서종은이갑자기다미를찾아온것처럼,「모든이의모든것」에서는‘애리자언니’가대뜸‘나’에게오년만에연락해자신이“막다른골목”(203쪽)에다다랐다며잠시집에머물게해달라고부탁한다.‘나’는해외로파견근무를나간오빠부부의아파트에잠시간거주하고있을뿐인데다가새로운일자리를구해야하는녹록지않은처지임에도애리자언니를받아들이게된다.그리고‘나’는부모님의결혼성화로억지로나간곤경스러운자리에서애리자언니의도움을받아탈출하는데성공하게된다.이러한소동극가운데,관계의공백이길었던두사람이이토록허물없이지낼수있는배경이무엇인지에대한궁금증이밝혀지는이야기의절정부는감동적이고,동시에사랑스럽다.오래전상처를치유하기위해찾아간침묵피정수도원에서만나인연을만든‘나’와애리자언니의그일화는“보잘것없는인간들이서로를부축하고도와주며”“혼자서해내기에는너무나어려운”(권희철,해설에서)치유를오랜시간이지나지금비로소이뤄낸듯하다.기준영의소설은무정히흐르는시간을잠시멈춰세우고우리가미처살피지못했던주위사람들,풍경들을둘러보게하는단편읽기의섬세한즐거움을선사한다.

어떻게이렇게까지사랑스러운이야기가될수있었던걸까?만약우리가이소설을읽는동안소설속어떤장면은물론이고그너머의무엇인가를기어코사랑하게되거나사랑하고싶어지게되는것이사실이라면,그것은어째서일까?_해설,권희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