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의 탄생

풀의 탄생

$12.00
Description
“잎사귀는 푸른 지면(紙面)
너에게 여름 편지를 쓰네”

연한 그늘 아래 들려오는 녹녹한 목소리
‘맑고 부드러운 전심’을 담은 한 권의 편지
문학동네시인선의 232번째 시집으로 문태준 시인의 『풀의 탄생』을 펴낸다.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 올해로 시력 30년을 넉넉히 채우고도 남는 그의 아홉번째 시집이다. ‘서정시 가문의 적자’ ‘한국 서정시의 수사(修士)’라는 칭호에 값하는 걸출한 시세계를 우직한 소처럼 일구어나가기를 30년. 무엇보다 간결하고도 선명한, ‘운문’이라는 시의 본령에 충실한 창작으로 하여금 그는 이제 명실상부 우리 시단의 ‘서정시의 대가’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신작 시집 『풀의 탄생』은 문태준 미학과 시학의 절정이자,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전개되고 또 전회하는 그의 새 국면을 맛볼 수 있는 시편들로 가득하다.
고요하고도 따듯한 미풍 같은 시로 우리에게 언제나 새봄을 선물했던 시인 문태준이 『풀의 탄생』은 예외적으로 여름을 목전에 두고 선보인다. “제주 애월읍 장전리”에서 “풀밭의 살림을 일궈 풀과 산다”는 시인의 말이자 전기적 사실에 비추어보지 않더라도, 이번 시집에서는 새로운 삶과 재-생의 기운/기미로 생동하는 시편들이 주조를 이룬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다. 계절처럼 반복되지만 절대 같지만은 않은, 그래서 더 경이롭고 고마운 삶의 풍경이, 시인만의 시심과 시안을 통과하자 더없이 풍요로운 비경(祕境)이 되어 눈앞에 선연하게 펼쳐진다. “연하게 소생하고, 힘줄처럼 억세지고/ 가을에는 노래를 짓는”(시인의 말) “풀의 말”(「풀」) 속에 슬몃 끼워둔, 시인의 “맑고 부드러운 전심(全心)”(「작약꽃 피면」)에 우리의 귀와 마음을 기꺼이 내어주어도 좋겠다.

잎사귀에 빗방울이 떨어지네
나의 여름이 떨어지네

빗방울의 심장이 뛰네
바라춤을 추네
산록(山綠)이 비치네
빗방울 속엔
천둥이 굵은 저음으로 우네
몰랑한 너와 내가 있네

잎사귀는 푸른 지면(紙面)
너에게 여름 편지를 쓰네
_「잎사귀에 여름비가 올 때」 전문

『풀의 탄생』의 4부 구성은 사계를 담은 가방이자 한 권의 편지에 다름 아니다. 이 한 권의 가방 속에는 시인이 제주에서 보고 만나고 느낀 풍광도 들어 있거니와, 그곳에서는 물론 이제는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을 그리며 쓴 편지들도 고이 접혀 있다. 1부 ‘흙속에 이처럼 큰 세계가’에는 흙과 필연적으로 벗삼아 살아가는 시인의 오늘과 이제는 ‘흙속’에 있는 지난날과 옛사람들, 흙 위로 피어오른 생명들을 노래하는 시편을 모았다. 이 “움직이는/ 희색(喜色)”(「뒷집」)들의 이미지와 향기가 싱그럽기 그지없다. 2부 ‘첫 여름날을 맞은 해바라기를 두드리러 가자’에는 여름날, 여름밤의 풍경들을 향수 어린 목소리로 담아냈다. “투명한 정오”에는 “모시옷을 입은 잠자리가/ 하얀 깨꽃에 내려앉”(「대서(大暑)」)고, “밤안개는 여름밤을 체로 쳐 곱게 내리”(「하일(夏日)」)는 연하디연한 여름날. 더불어 「거미집」 「양지여인숙 같은 물웅덩이」에서처럼 절제되어 있기에 더욱 깊은 여운을 남기는 문태준식 엘레지 역시 이 부에서 만나볼 수 있다.

나는 이 가방을 오래 메고 다녔어
가방 속엔
바닷가와 흰 목덜미의 파도
재수록한 시
그날의 마지막 석양빛
이별의 낙수(落水) 소리
백합과 접힌 나비
건강한 해바라기
맞은편에 마른 잎
어제의 귀띔
나를 부축하던 약속
희락의 첫 눈송이
물풍선 같은 슬픔
오늘은 당신이 메고 가는군
해변을 걸어가는군
가방 속에
파도치는 나를 넣고서
_「가방」 전문

3부에는 가장 멀리 떠나온 곳에서, 시인의 가장 처음이자 시원이 겹쳐 보이는 시편들을 담았다. 그리운 것과 하염없이 또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을 때, 대상은 더욱 선명해져 “살아생전 그 차림 그 얼굴”(「심곡심산(深谷深山)」)로 마음속에 돋을새김된다. 나아가 부의 제목이기도 한 “내게 오시려면 물결을 건너주세요”(「물결 1-도래(渡來)」)라는 문장은 시인이 우리에게 조심스럽게 제안하는 삶의 태도이자 시를 읽는 법으로도 읽혀 더욱 의미심장하다. 4부 ‘반딧불이가 모두 사라진다면’에는 “시간의 가건물 속에 살고 있는”(「우치(愚癡) 1-뱀허물을 보고」) 듯한 인간 삶의 덧없고도 아름다운 면면을 봄볕 아지랑이처럼 은은한 문장으로 승화한 시들을 모았다. “우리에게 때때로 슬픔이 치런치런”(「월파(越波)」) 들이차고, “살아온 날도 살아갈 날도 과월호 같아서/ 종잇장 네 귀가 닳아 있지만”(「수선화」), 그의 시편은 우리에게 “햇살의 멜로디를”(「이제 내 옷을 짓지 말아요」) 지어 입혀주고, “서러운 일은 이제 잊어요”(「수선화」) 하며 어루만져주는 듯하다.

눈송이가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오네

안간힘을 쓰지 않고

숨이 참 고르네

손쓸 필요가 없지

여파(餘波)도 없지

누구도 무너지지 않아

저 아래,

벙싯벙싯 웃고 있는 겨울 허공 좀 봐
_「안간힘을 쓰지 않고」 전문

문태준 시의 신묘함은 어린아이조차 모르는 단어 하나 없는 소박한 문장을 통해, 우주적인 열림을 불러온다는 데 있다. 그러나 그 열림은 시인에게는 물론 독자에게 역시 ‘능동적 고요’를 요청한다. 한갓진 곳에서 도드라지는 무언가의 발견이 아니라, “목소리를 더 낮추고” “내 말귀는 그대로 곧 어두워져도 좋”(「멀구슬나무 아래에」)을 정도의 비워냄이 선행될 때에야, “신앙하듯”(「우리는 이대로 내려 살아라」) 바라보고 기다릴 때에야 자연은, 시는, 우리에게 비경이 보이는 자리를 겨우 내어주기 때문이리라. 이는 자연을 그저 대상으로만 삼는 서정시와 달라지는 그만의 특유한 시적 태도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무궁하고 무진한 자연 앞의 인간. 서로를 닮았고 또 전혀 닮지 않은 이 둘의 관계는 “함께 호흡하고 흐르면서 동근(同根)으로” 여길 때, “하나를 흔들면 같이 흔들린다는 것을” 체감할 때 “공동의 살림”(‘인터뷰’에서)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은 시와 인간이 관계하는 법과도 참 닮았다. “말과 글자 없이도” “꼭 그 몫만큼의 어떤 전달”(「풀밭」)을 우리는 문태준의 시에서 오늘도 받고 또 배운다.

이처럼 모든 존재자가 거대한 그물처럼 서로 교섭하고 반사하고 반영하며 우주 전체와 연결되어가는 과정을 문태준의 시는 보여준다. 이것은 또한 앞에서 살펴본 노자의 지적처럼 만물이 번성하고 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과정과 상응한다. 문태준은 스스로 비움과 고요를 견지하여 우주 생명의 진경을 보고 듣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시세계를 감상하는 것은 그가 초대하는 겸허한 고요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그가 펼쳐 보이는 고요의 세계는 우리의 눈과 귀를 틔워주고, 자연의 비경 속에서 어느덧 우리의 본모습과 마주하게 한다. 참으로 아름답고도 풍요롭고 경이로운 세계이다. _홍용희, 해설에서
저자

문태준

저자:문태준
1994년『문예중앙』신인문학상을통해등단했다.시집『수런거리는뒤란』『맨발』『가재미』『그늘의발달』『먼곳』『우리들의마지막얼굴』『내가사모하는일에무슨끝이있나요』『아침은생각한다』,산문집『느림보마음』『바람이불면바람이부는나무가되지요』『나는첫문장을기다렸다』등이있다.노작문학상,소월시문학상,목월문학상,정지용문학상,박인환상,무산문화대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시인의말

1부흙속에이처럼큰세계가
작약꽃피면/풀/흙속에이처럼큰세계가/귤꽃/제비는내게말하네/동근(同根)/잎사귀에여름비가올때/가을에게/뒷집/돌/무지개/귤꽃이피는동안/멀구슬나무아래에/겨울정원/안간힘을쓰지않고

2부첫여름날을맞은해바라기를두드리러가자
하일(夏日)/막간(幕間)1/막간(幕間)2/여름밤/북/잘한일/그때그자리에/오월의무화과나무밭에서/대서(大暑)/만시(晩時)/거미집/가방/양지여인숙같은물웅덩이/손거울/눈보라와종소리

3부내게오시려면물결을건너주세요
하귤나무에앉은새/물결1―도래(渡來)/물결2―섬/물결3―삽목(揷木)/물결4―징소리/연못과거울이야기/단추/유월에보성에가서/여름사람/청무/흐르는해무/생가(生家)에서/그믐밤/심곡심산(深谷深山)/우리는이대로내려살아라/가을날/스프링클러

4부반딧불이가모두사라진다면
월파(越波)/수선화/이제내옷을짓지말아요/풀밭/귤밭집/우치(愚癡)1―뱀허물을보고/우치(愚癡)2―산수국가지를치다/우치(愚癡)3―나무의자를만들다/두계절/모자/큰눈오시는날에/그러할리는없겠지만만약에/겨울달/봄/빗돌을세우며―행방불명인열한살소년에게/풀밭

해설|고요의풍경
홍용희(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잎사귀에빗방울이떨어지네
나의여름이떨어지네

빗방울의심장이뛰네
바라춤을추네
산록(山綠)이비치네
빗방울속엔
천둥이굵은저음으로우네
몰랑한너와내가있네

잎사귀는푸른지면(紙面)
너에게여름편지를쓰네
_「잎사귀에여름비가올때」전문

『풀의탄생』의4부구성은사계를담은가방이자한권의편지에다름아니다.이한권의가방속에는시인이제주에서보고만나고느낀풍광도들어있거니와,그곳에서는물론이제는그어디에서도볼수없는것을그리며쓴편지들도고이접혀있다.1부‘흙속에이처럼큰세계가’에는흙과필연적으로벗삼아살아가는시인의오늘과이제는‘흙속’에있는지난날과옛사람들,흙위로피어오른생명들을노래하는시편을모았다.이“움직이는/희색(喜色)”(「뒷집」)들의이미지와향기가싱그럽기그지없다.2부‘첫여름날을맞은해바라기를두드리러가자’에는여름날,여름밤의풍경들을향수어린목소리로담아냈다.“투명한정오”에는“모시옷을입은잠자리가/하얀깨꽃에내려앉”(「대서(大暑)」)고,“밤안개는여름밤을체로쳐곱게내리”(「하일(夏日)」)는연하디연한여름날.더불어「거미집」「양지여인숙같은물웅덩이」에서처럼절제되어있기에더욱깊은여운을남기는문태준식엘레지역시이부에서만나볼수있다.

나는이가방을오래메고다녔어
가방속엔
바닷가와흰목덜미의파도
재수록한시
그날의마지막석양빛
이별의낙수(落水)소리
백합과접힌나비
건강한해바라기
맞은편에마른잎
어제의귀띔
나를부축하던약속
희락의첫눈송이
물풍선같은슬픔
오늘은당신이메고가는군
해변을걸어가는군
가방속에
파도치는나를넣고서
_「가방」전문

3부에는가장멀리떠나온곳에서,시인의가장처음이자시원이겹쳐보이는시편들을담았다.그리운것과하염없이또물리적으로떨어져있을때,대상은더욱선명해져“살아생전그차림그얼굴”(「심곡심산(深谷深山)」)로마음속에돋을새김된다.나아가부의제목이기도한“내게오시려면물결을건너주세요”(「물결1―도래(渡來)」)라는문장은시인이우리에게조심스럽게제안하는삶의태도이자시를읽는법으로도읽혀더욱의미심장하다.4부‘반딧불이가모두사라진다면’에는“시간의가건물속에살고있는”(「우치(愚癡)1―뱀허물을보고」)듯한인간삶의덧없고도아름다운면면을봄볕아지랑이처럼은은한문장으로승화한시들을모았다.“우리에게때때로슬픔이치런치런”(「월파(越波)」)들이차고,“살아온날도살아갈날도과월호같아서/종잇장네귀가닳아있지만”(「수선화」),그의시편은우리에게“햇살의멜로디를”(「이제내옷을짓지말아요」)지어입혀주고,“서러운일은이제잊어요”(「수선화」)하며어루만져주는듯하다.

눈송이가하늘에서천천히내려오네

안간힘을쓰지않고

숨이참고르네

손쓸필요가없지

여파(餘波)도없지

누구도무너지지않아

저아래,

벙싯벙싯웃고있는겨울허공좀봐
_「안간힘을쓰지않고」전문

문태준시의신묘함은어린아이조차모르는단어하나없는소박한문장을통해,우주적인열림을불러온다는데있다.그러나그열림은시인에게는물론독자에게역시‘능동적고요’를요청한다.한갓진곳에서도드라지는무언가의발견이아니라,“목소리를더낮추고”“내말귀는그대로곧어두워져도좋”(「멀구슬나무아래에」)을정도의비워냄이선행될때에야,“신앙하듯”(「우리는이대로내려살아라」)바라보고기다릴때에야자연은,시는,우리에게비경이보이는자리를겨우내어주기때문이리라.이는자연을그저대상으로만삼는서정시와달라지는그만의특유한시적태도의다른모습이기도하다.무궁하고무진한자연앞의인간.서로를닮았고또전혀닮지않은이둘의관계는“함께호흡하고흐르면서동근(同根)으로”여길때,“하나를흔들면같이흔들린다는것을”체감할때“공동의살림”(‘인터뷰’에서)으로까지나아갈수있다.이것은시와인간이관계하는법과도참닮았다.“말과글자없이도”“꼭그몫만큼의어떤전달”(「풀밭」)을우리는문태준의시에서오늘도받고또배운다.

이처럼모든존재자가거대한그물처럼서로교섭하고반사하고반영하며우주전체와연결되어가는과정을문태준의시는보여준다.이것은또한앞에서살펴본노자의지적처럼만물이번성하고그본래의모습으로돌아가는과정과상응한다.문태준은스스로비움과고요를견지하여우주생명의진경을보고듣고노래하고있는것이다.그의시세계를감상하는것은그가초대하는겸허한고요의세계로진입하는것이다.그가펼쳐보이는고요의세계는우리의눈과귀를틔워주고,자연의비경속에서어느덧우리의본모습과마주하게한다.참으로아름답고도풍요롭고경이로운세계이다._홍용희,해설에서

문태준시인과의미니인터뷰

1.아홉번째시집이자3년만의신작시집입니다.출간소회와함께독자분께인사한마디건네주실수있을까요?

앞서펴낸시집보다제주에서의생활이더들어와있는느낌이네요.시를통해많은말을하지않으려고한것같아요.한시간에한대꼴로다니는시외버스를기다리는시간은오히려저를보채지않고,바쁘게하지도않아요.계절의바뀜을충분히볼수있어요.해변으로가면앞이캄캄한해무와연쇄적으로밀려오는겹겹의물결을보게되지요.소나기를피하러큰나무아래로들어가거나눈송이가안간힘을쓰지않고내리는것을봐요.무지개와반딧불이를만나고요.하나의거대한생명의숲속에있는것같아요.듬성듬성하게,멈추고,쉬고,곁을두는그런시가이번시집속에저도모르는사이에자리를잡고앉아있는것같아요.

2.‘시인의말’을보건대이번시집에수록된시는대체로제주로삶의터전을옮긴이후쓰신것으로생각됩니다.태어난곳과도청?장년기를보낸곳과도달라진터전이작가님의시작(詩作)에어떤영향을끼쳤을지궁금합니다.

태어난곳은경북김천시봉산면이고그곳서스무살무렵까지살았으니까내륙의정서를살갗으로느꼈다고할수있을거예요.다시제주애월읍장전리로내려와산지다섯해가되었는데,두번째자연속에제삶과시가있다는생각이네요.봉산면에서는무속적인것,논밭의일을하는고된노동,대물림되는가난과무너지는공동체같은것이제시의목소리가되었다면장전리에서는생명세계에대한생각을새롭게갖게되는것같아요.흙과바다가지닌거대한생명세계를접하면서내가다른생명존재와함께호흡하고흐르면서동근(同根)으로서공동의살림을살고있다는생각을많이하게되네요.하나를흔들면같이흔들린다는것을공부하는거죠.시골에살다보니일손은바빠졌지만,고요함을그대로지니려고하고있고,그러다보니매달리거나억지를부리지않는것,작위가없는것에관심이생기는것같아요.

3.제목‘풀의탄생’을비롯하여‘풀’이라는시어가자주등장합니다.서정시에서종종등장하는시어이지만,이번시집에서쓰인‘풀’은여느시인과도나아가시인님이써왔던그간의‘풀’과도다르게다가옵니다.이에대해들려주실이야기가있으실지요?

일년내내푸릇푸릇한풀과억센풀과마른풀을보거든요.제눈속에풀이꽉차있고,풀밭에앉아풀을뽑다해질녘이되면풀밭에서풀벌레가울기시작하는데그때엔제가꼭풀벌레같아요.풀은질겨요.동시에풀은부드러워요.흥과신명같은것이있지요.풀을통해생명의근원과본래의면목같은걸본다고하면이런얘기는좀거창하긴한데,어쨌든또돋고돋는것에는목숨의활기와강력한탄력같은게있는건분명해보이고,풀이든정원의꽃이든곳곳의야생화든그것이드러내는,잎나고봉오리맺고꽃피고꽃지는그런현상에는어떤조건과원인이,말미암는것이대개는있다는것.뭐랄까요,꽉찬필연이랄까요,그런게있다는것또한받아들이게되는것같아요.

4.수록작중에가장마음이가는시편은무엇인가요?그이유에대해서도들어보고싶습니다.

「작약꽃피면」이나「뒷집」같은시를말할수있을것같네요.이런시는사실쓰기에쉽지않아요.시어를어떻게고를까,시가어떤속도의걸음걸이로가야할까,숨이너무가쁘지않을까,이런생각을아무래도많이하게되고훨씬조심스러워지는것같아요.요즘유행하는시와는꽤다르죠.작약꽃의개화를통해제마음을꽃피우려고했다고할까,그런생각이「작약꽃피면」에담겨있는것같아요.「뒷집」도전통적인서정시에가까운자리에있지요.느슨한고요,흔들리는고요,회복되는고요,견고한고요에대해생각도했던것같고요.적적한것은뿌리요,겉의활동은잎과가지같은것아닌가그런생각도들었어요.

5.작가님만의‘시읽기’노하우한가지를알려주세요.

저는매일시를읽어요.틈이생길때마다요.읽는시마다다이해할수는없고,그냥시쓴이의마음을짐작해봐요.시를읽으면요즘원평소국핀것보는것처럼,귤꽃핀것보는것처럼눈도시원하고그향기도좋아요.그런데,시를지으면서사는시인은시를읽지않을수없어요.시가떠나면마른진흙덩어리처럼딱딱해지고갈라지고그렇게될줄잘아니까요.

시인의말

제주애월읍장전리에산지다섯해가지났다.
풀밭의살림을일궈풀과산다.

풀은연하게소생하고,힘줄처럼억세지고
가을에는노래를짓는다.
깡마른얼굴로눈보라가지나가는걸본다.
나는풀아래에서일어나고풀아래에눕는다.

풀은울고,웃는다.
풀은어디로부터와이세계를푸르게흔드나.

어느날은앞이캄캄한안개같고,
어느날은막돌같은내게
풀이있으니,풀이되었으니
반딧불이같은
시혼(詩魂)은날아와살아라.

2025년5월
문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