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우정을 찾으러 가볼게 (박규현 시집)

새 우정을 찾으러 가볼게 (박규현 시집)

$12.00
Description
“우리가 내다보는 경치는 무덤인 거야
비석을 세울 수 없는 묘지인 거야”

뭉근하게 피어오르는 애틋함의 온기,
상실감을 초과하는 그리움의 미덕
작별의 슬픔을 있는 힘껏 끌어안는 박규현 두번째 시집
2022년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박규현 시인의 두번째 시집 『새 우정을 찾으러 가볼게』가 문학동네시인선 233번으로 출간되었다. 첫 시집 『모든 나는 사랑받는다』가 날카롭게 벼려진 언어로 여성 시인으로서 경험하는 현실의 단면을 내보였다면, 삼 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는 커다란 상실을 겪고 난 뒤 죽음의 성질을 이해하고 삶과 연결해보려는 초연한 시도가 담겼다. 소중한 이들이 떠나갈 결심을 하도록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세상은 탓하고 증오해야 마땅한 대상이지만, 남아 있는 존재들이 발을 붙이고 살아갈 터전이기도 하므로 유지되고 지속되어야만 한다. 시인은 자신의 앞에 놓인 이 불가사의한 문제를 똑바로 응시하며 삶의 이유를 찾기 위해 분투한다. 떠나간 이들을 호명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임을 묵묵하게 받아들인 뒤, 남겨진 자의 사명으로 오래도록 기억되어야 할 친구들의 이름을 힘주어 적는다.
저자

박규현

저자:박규현
2022년한국경제신문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모든나는사랑받는다』가있다.동인‘도모’와함께하고있다.

목차


시인의말

1장쓰러질준비를한다이동할차례이다
되얼음/애프터서비스/진열대에서하나만고를수있다면/가까운사람/선영(線影)/마침내은유가아니게될때/세답장/선생님에게는어떤질문이있었는지요

2장가장환한곳으로가자
아오타다라/아오타다라/아오타다라/아오타다라/아오타다라/아오타다라/아오타다라/아오타다라

3장나를껴안은친구를껴안아
개체보호/두고온것/나와평생보낼유리/기일날씨맑음/빚과빛/지속되는어떻게/자연사박물관/저사람들/새우정/계류자들

4장애써사랑하고있다이모든장면을
열고닫는건오직내몫인경우에대하여/매개체/돌멩이나누기/컷오프/의식의식/자꾸만꿈만꾸자/휴가객/가족모임/장난이아니에요이게나의진심

5장한세기의용감함이눈을부라리고있다
친구는누굴까친구는없지만그래도누굴까/실화가왜곡되어괴담화된사례/안경알닦는사람들/안전하고슬기로운놀이/백화점에갔다그곳에서22세기를기념하는행사가열렸기때문이다나는이미성공해그건물의쇼윈도와에스컬레이터와푸드코트와
조명가운데몇개쯤은가뿐히살수있었지만/휴일에는영업시간이다를수있습니다/조금더이전의미래/아카이빙/이이야기는스노우볼을깨뜨리면서부터시작되었다

추신,
야영지

해설|아직없는,계속도래하는친구_최가은(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우리가내다보는경치는무덤인거야
비석을세울수없는묘지인거야”

뭉근하게피어오르는애틋함의온기,
상실감을초과하는그리움의미덕
작별의슬픔을있는힘껏끌어안는박규현두번째시집

2022년한국경제신문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한박규현시인의두번째시집『새우정을찾으러가볼게』가문학동네시인선233번으로출간되었다.첫시집『모든나는사랑받는다』가날카롭게벼려진언어로여성시인으로서경험하는현실의단면을내보였다면,삼년만에펴내는이번시집에는커다란상실을겪고난뒤죽음의성질을이해하고삶과연결해보려는초연한시도가담겼다.소중한이들이떠나갈결심을하도록빌미를제공했다는점에서세상은탓하고증오해야마땅한대상이지만,남아있는존재들이발을붙이고살아갈터전이기도하므로유지되고지속되어야만한다.시인은자신의앞에놓인이불가사의한문제를똑바로응시하며삶의이유를찾기위해분투한다.떠나간이들을호명하는것이자신에게주어진일임을묵묵하게받아들인뒤,남겨진자의사명으로오래도록기억되어야할친구들의이름을힘주어적는다.

공동묘지로눈구경을갔다작고흰언덕들이촘촘하게빛났다친구가비석을닦으면서말했다잘견뎠어나는신발을털었다축축해

멀리바다가보였다바다에빠지지말자바다에지지말자살자두손을모은채고개를숙였는데

이미죽고없는사람이나오는드라마보는거앨범펼치는거다그만두고싶었다

카약을탄채환하게올라간입꼬리나
전구를갈아끼우다찌푸린미간
다시데려오고싶어지니까
_「되얼음」부분

“떠난친구를위한애도의말같은것이아니라,친구그자체를”(문학평론가최가은,해설)쓰는이번시집에는실로‘친구’의존재가끊임없이등장한다.그에따라붙는‘묘비’‘무덤’‘장례’와같은시어들로가늠해보건대그는틀림없이죽음과깊이연관되어있는듯하다.1장‘쓰러질준비를한다이동할차례이다’에는그러한친구의구체적인정황이담겼다.친구는“머리카락을쥐어뜯”(「애프터서비스」)으며괴로워하거나때때로“베란다창가까이서”서“바깥을내다보”(「선영(線影)」)는등위태로운모습으로그려지는데,화자는그를말리거나붙잡으려하는대신얼마간의거리를유지한채지켜보고있다.그거리감은친구와내가다른세계에놓여있다는사실을암시하기도하지만,눈앞에찾아든유령같은친구가자칫사라지거나망가질까봐염려하는마음으로도읽힌다.누군가화자에게“안쓰고살면안되니보편적으로지내볼순없겠어”라며타박하자화자는“답을알게될때까지는오랜시간이필요할것”이라며다만때가왔을때“쓰러질준비를”(「선생님에게는어떤질문이있었는지요」)한다.무너짐으로써계속해야하는일이있는탓이다.
2장‘가장환한곳으로가자’는가상의공간인‘아오타다라’를펼쳐보인다.수록된여덟편의작품에부여된제목이모두‘아오타다라’로동일하다는점에서장전체가별도로존재하는하나의세계처럼느껴진다.이곳에서친구는“삼작년스스로유령의길을택”했다고설명되는데,부당함으로가득한세상을홀연히버리고떠난그선택을두고화자는“그것은그의용기”였다며치하한다.

나는친구를수습한다
친구는나로인해정돈되어간다

이해라는말들어본적있니그런질문들을때마다마음이멀리가버린다
절룩이게된다거기서부터대낮은이어졌다친구의얼굴들어올려품에안은채

어느강물에휩쓸려왔던친구를떠올렸다친구는떠올랐다친구를건져냈던그날

생각했다가장환한곳으로가자제일트인데로안전한장소로
_「아오타다라」부분

“친구의이마는차고물렁하다는사실”이나“친구의맨발이창백하다는”사실을고요히발견해내면서,함께사랑도하고“미래를그려볼수”도있었을수많은가능성을꿈결처럼그려보다가도화자는“양지바른자리에친구를천천히뉘일”준비를한다.그렇게친구는애도의대상으로남겨지는데,이런상실의경험은역으로삶의빈틈을채우는과정이된다.무엇보다‘나’는아직“살아있”기에,“선풍기를틀어놓은채수박을베어먹”고끈적해진손을“찬물로헹구는개운함”도느낄줄아는사람이기에.박규현의시에서친구란부재를통해이러한생의감각을더욱낱낱이실감하게해주는존재로작용한다.
3장‘나를껴안은친구를껴안아’에이르러화자는매정한현실세계와본격적으로마주한다.“크리스마스나이”라고칭해지거나“손목부러뜨릴수있겠다”(「저사람들」)는차별적언행이난무하는폭력적인세상속에서,숨쉬듯무례함을일삼는타인들의틈에서홀로살아가야만함을피부로느낀다.“멀쩡한세상과의부당한단절속에갇혀있다”(해설)는이러한인식은그럼에도불구하고자신이살아서“서서히늙어갈수있음을”,“오래버티는거해야”(「지속되는어떻게」)함을받아들이며생의무게를실감하는일로나아간다.

이건시니까나는해가저물지않는해변에며칠이고앉아있을수있다조개껍질로모래사장을가득채울수있다아무리털어도먼지한톨안나오는몸이될수있다다시볼수없게된친구들을다시만날수있다친구들이비척거리며나타나는순간사라지도록할수있다이건시니까
_「계류자들」부분

무수히많은삶의부조리틈에계류된채로머무는친구들과자신을위해,시인은시에서나마이상적인세계를창조해낸다.“단란하고풍요롭고서로를공평하게대할줄아는여자어른들”로자라난,자랑스러운나의친구들과함께사는「계류자들」속세계는그러나“시니까”가능한것이다.이어지는4장‘애써사랑하고있다이모든장면을’에서시인은“월경컵때문에구급차부를지말지고민”(「돌멩이나누기」)해야하는일상과“여자는음기있는동물이다”“여자가남자시선가리는거아니다”(「가족모임」)라는폭력적인말로점철된외부의세계를다시금맞닥뜨린다.“사년제대학”을나오고“신체장애도정신질환이력도”없기를강요하는사회적분위기를감지하며,시인은“선발되어”진‘이상적’인간의표상들을“낭떠러지”(「컷오프」)앞에데려다놓는다.“이건시니까”(「계류자들」),그런다고해서실재하는고난이사라지지는않겠지만어떻게든“고집스럽게살아남아”(「자꾸만꿈만꾸자」)“이모든장면이낯설”지만“애써사랑하고있다”(「휴가객」)고선언해본다.

한때그는나와극장에서연극을보고칼국수를먹고커피점에서한참을떠들었지그러나마지막엔박제되는쪽을택했다그것이최후의퍼포먼스였던것이다생계형예술가였던우리는성탄절무렵백화점앞을지나칠때마다중얼거렸다나도비싼것을좋아하는데……
(……)
친구는그백화점의상징이될것이다누구도넘볼수없게내가지금그렇게썼으므로난이렇게값을지불한다모두그를보아라지금그곳에한세기의용감함이눈을부라리고있다

_「백화점에갔다그곳에서22세기를기념하는행사가열렸기때문이다나는이미성공해그건물의쇼윈도와에스컬레이터와푸드코트와조명가운데몇개쯤은가뿐히살수있었지만」부분

5장‘한세기의용감함이눈을부라리고있다’에서세상을저버린친구의결정은‘나’에게‘용감함’으로아로새겨진다.세상살이에관해나는여전히“아는바가없”(「실화가왜곡되어괴담화된사례」)지만,뜯어내도자꾸만생겨나는손톱위거스러미처럼어떤필연적인일은반드시“생겨나고일어나”(「휴일에는영업시간이다를수있습니다」)기마련이라는것만은안다.그래서떠나가는친구들을그저“양지바른곳으로가야해”(「휴일에는영업시간이다를수있습니다」)내지는“살펴/가세요”(「아카이빙」)라는인사말로전송할따름이다.
남겨진이로하여금마음을추스르고추억을정리할수있도록격려하는일이흔한‘애도’의과정인반면,박규현에게애도란그리운이를끊임없이불러들여계속해서연결되어있기를꿈꾸는일이다.1장에서5장,그리고‘추신,’으로마무리되는총여섯장의편지와도같은이번시집은그렇게우리에게로전송되어온다.영원히기억될,지속가능한이야기가되어.“이승에서저승까지”(「아카이빙」)아우르는새로운우정의형태를띤채로.

박규현의친구는기억되기위해쓰이는것이아니라,죽음을죽음바깥으로미루고,어루만지고,궁극엔다시불러오기위해쓰인다.이때의친구쓰기는친구를사라지거나반대로생생하게살아남는존재로머물게하지않기위해,축제의한문장으로박제하지않기위해,다만매일같이그들과함께눈구경을가기위해행하는가장내밀하면서도밀접한접촉의형식이다.이제우리는박규현의시가죽은친구의관을끌고가는손이자묘지의흙을밟는발이며우리의반짝거림앞에친구들을불러다놓는끝나지않는문장이라고말할수있다.그의시가친구그자체를쓸때,친구는아직없는,그리고언제나도래중인‘그것’으로바로여기있다._최가은,해설에서

◎박규현시인과의미니인터뷰

1.첫시집『모든나는사랑받는다』이후삼년이흘렀습니다.두번째시집을출간하게된소회가어떠한지,어떤마음을담고싶으셨는지궁금합니다.

첫시집을출간하고나서꽤오래도록이상한강박에사로잡혀있었습니다.‘첫시집을묶는동안에품었던세계는이제완전히매듭지어야돼.’차라리쓰기를그만두면속이좀덜시끄러울까싶었지만그렇지는않았고요.꾸준히무언가를쓰거나쓰고싶어하면서저를가만히내버려두었더니자연스레알게되었습니다.원고를시집으로묶는다고해서어떤세계가완결되는건아니라는사실,여전히‘열린’상태로남겨지는세계가있다는사실을요.특히이번시집을묶으며초고에있던‘너’라는표현들을전부‘친구’라고바꾸었는데요.그러자근몇년간제가골몰해있던문제가무엇이었는지보다선명해졌습니다.이번시집에는구부정하게있다가도몸을곧게바로세우려는마음,그런마음을건강한방식으로지켜보려는저와‘친구’들의이야기가담겨있습니다.

2.그리움과애틋함이뭉근하게느껴지는시편들이많습니다.제목인'새우정을찾으러가볼게'는시「새우정」속‘친구’가화자인‘나’에게건넸던말이지요.어떤마음으로이문장을쓰셨는지,어떻게제목으로채택하게되었는지들려주세요.

두권의시집을묶고펴내는내내다시볼수없게된친구들을이해해보려고애썼어요.다들어디선가잘지내고있을거라는믿음을가져보기도했고요.그렇게저를짓누르는슬픔을간신히견뎌내다보니,어느순간부터는친구들의사라짐이저에게도그리고친구들에게도고통스러운것으로만남아있지않기를바라게되더라고요.만일그들이나에게경쾌한인사를건넨다면어떨까상상해보게되었고,그렇게“새우정을찾으러가볼게”라는문장을쓰게되었습니다.시집제목을정하려편집자선생님과한창고민하던차에,이문장을보고는‘이거다!’싶었지요.이번시집의커다란테마를‘친구’로생각해볼수있다면친구의말을제목으로쓰는게자연스럽겠다는느낌도들었고요.문장만따로떼어놓고보면제가하는말같기도해서좋았어요.어린시절에놀이터에서친구들과다같이뛰어놀다가,집에갈시간이되면허공에손을붕붕흔들며헤어지곤하잖아요.‘나잠깐좀다녀올게.다음에또놀자.’이런뜻으로도읽힐수있다면참좋겠습니다.

3.독특한구성도눈에띕니다.2장은‘아오타다라’라는가상의세계로이루어져있기도하고요.시편들을한권의책으로엮으며특히주목했던작가님만의관점이있다면무엇인가요?

이번시집은제게있어하나의편지같기도합니다.‘부’대신에‘장’으로시집을구성해보았고,각장의제목만따로떼어놓고읽었을때하나의호흡으로이어지기를바랐습니다.마지막에덧붙여진‘추신,’에속해있는「야영지」는첫시집과맞닿아있는시이기도한데요.여러모로‘이어지고있다’는감각을중요하게여기고싶었습니다.이시집의구성전체가독자분들께직선으로흐르는애도의순서가아니라순환할수밖에없는애도,기어이계속되고야마는애도의작업으로다가갔으면합니다.

4.수록작중가장아끼는한편을꼽는다면무엇인지,이유와함께소개해주세요.

「계류자들」입니다.“이건시니까”라면서이것저것다할수있다고말하는화자가등장하는시인데,사실이시를쓰고서몇달간은마음이좋지않았어요.평소에시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