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타임 여행자

파트타임 여행자

$17.00
Description
반수연의 소설에는 논픽션의 우직한 근육이 있다.
그 힘을 신뢰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_하성란(소설가)

“집을 남겨두고 떠나온 사람은 아무리 오래 여행해도 파트타임 여행자라 부른다.”

2024 김승옥문학상 우수상 수상 작가 반수연 신작 소설집
2020년대가 요청하는 이민자 서사의 뉴노멀

오늘날 한국 이민자 서사는 더이상 제3세계 변방의 이야기가 아니라 가장 각광받는 주제로 변모했다. 영화 〈미나리〉(정이삭)와 〈패스트 라이브즈〉(셀린 송), 그리고『파친코』(이민진)와 『H마트에서 울다』(미셸 자우너)처럼 경계 위의 한인들의 이야기는 장르와 국경을 막론하고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더 생생하고 진실된 이민자 서사를 갈망하는 독자들의 요청에 부응할 소설집 『파트타임 여행자』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서른 너머 나이에 캐나다로 떠나 27년을 살아온 저자 반수연은 네 차례 재외동포문학상을 수상하며 굳건한 작품세계를 증명해왔다. 그리고 이민자 부녀의 마지막 ‘로드 트립’을 그려낸 「조각들」이 2024 김승옥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며 독자들의 이목을 모은 바 있다. 그 외 동두천 기지촌 출신 이민자의 브루클린 생존 분투기, 인연들을 잃고 홀로 미국 국립공원 일주를 떠난 여성의 트레일 여행기, 이국의 양로원에서 새로운 사랑을 만난 노년의 연인들 등 오늘도 이방인으로 전 세계의 거리를 걸어가고 있을 한인들의 하루하루가 담긴 『파트타임 여행자』는 경계 위의 사람들이 어떻게 ‘아름답고 강한 혼자’가 되어가는지 그 실감 가득한 일대기를 우리에게 펼쳐 보인다.

애나는 애틀랜타와 시카고를 거쳐 뉴욕으로 떠돌았다. 이름도 바꾸고, 흔적도 지웠다. 그러는 사이 애나는 미국에도 없고 한국에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세 명의 남자를 더 만났지만 상황은 갈수록 나빠졌다. 꿈이나 희망 따위를 믿는 것보다 더 지독한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 편하다는 걸 배웠다.
_「설탕 공장이 있던 자리」에서

소설집을 여는 「설탕 공장이 있던 자리」 속 브루클린 거리는 짐짓 화창하면서도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동두천 기지촌 출신 이민자인 애나는 홈리스라서, 여성이라서 어디서든 핍박받으며 “정신이란 걸 내다버려서라도 고통을 줄이고 싶었던 거리의 시간”을 고통스럽게 지난다. 그렇지만 각박한 삶 속에서도 주어진 일을 해내고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면서, 빠진 치아를 새로 해넣고 영어를 뜨문뜨문 연습하면서 “문득 열망을 품는” 그녀의 모습 너머로부터 달짝지근한 커피처럼 기대해볼 만한 미래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첫 소설이 이민자 사회 내부의 젠더·인종·계급 간 차이를 조명한다면 이어지는 「조각들」은 이민자 부녀의 세대 차이를 세밀히 묘사한다. 엄마를 잃은 어린 딸을 위해 아버지는 직업도 나라도 버렸지만, 자라는 동안 조금씩 멀어져만 가던 딸은 마침내 독립을 선언한다. 그러나 밴쿠버에서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떠난 마지막 로드 트립 동안 아버지와 딸은 서로 어떻게 세상에 적응해왔는지 알게 된다. 다른 모양의 나뭇조각이 서로 꼭 맞게끔 아귀를 맞추듯이, 차이를 존중으로 전환하는 시간을 함께함으로써.
저자

반수연

저자:반수연
2005년조선일보신춘문예에단편소설「메모리얼가든」이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통영』,산문집『나는바다를닮아서』가있다.재외동포문학상,2024김승옥문학상우수상을수상했다.

목차


설탕공장이있던자리
조각들
파트타임여행자
춤을춰도될까요
프레살레
빅터아일랜드
화분의시간

해설|아름답고강한혼자들
김보경(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영영떠나온한국,여전히이방인일뿐인이국
그사이에서떠도는파트타임존재들의생생한로드트립

난풀타임여행자야.집이따로없어.여기가집이란뜻이지.어딜가든이혼한남편이찾아와괴롭히는바람에도망가기좋은집이필요했다고클로디아는말했다.집을남겨두고떠나온사람은아무리오래여행해도파트타임여행자라부른다는것을민은처음알게되었다.파트타임여행자라니왠지불완전한여행자같기도했다.
_「파트타임여행자」에서

표제작「파트타임여행자」는집을뒤로하고위태로운여행을떠난‘파트타임여행자’가“아름답고강한혼자”로피어나는시간을그려낸다.가족은물론,가족처럼여기던인연들이곁을떠난뒤홀로미국의국립공원들로여행을떠난화자는떠남이곧자유가아님을깨닫는다.지난상실들을곱씹는동안그는어느새삶이곧상실의과정임을,그피할수없는것을직면할때비로소삶을긍정할수있게된다는진실을마음에새기게된다.
그뒤로이어지는이야기들은각기미국오리건주와프랑스파리,캐나다밴쿠버에서다종다양한정체성의사람들곁을따라걷는다.「춤을춰도될까요」는노년의연애를터부시하는억압앞에서“이해받지않겠다고이를앙다”물고,“그것이내가할수있는유일한저항이라고,지켜내야할존엄이라고”다짐하며인생제2막을열어젖히는노년여성의이야기다.남편이죽고방에서나오지않는아들을두고막막한심정속에파리로떠난화자의이야기인「프레살레」는갑작스러운도난사고와일행간의불화에도불구하고“혼자가된다는두려움”을극복할때,“잃어서는안된다고믿었던것들을잃고도살아진다”는‘생의비밀’을깨닫게된다는비의를전한다.「빅터아일랜드」에선포르쉐911만을일생의꿈으로삼았던남자가등장한다.뇌졸중판정을받고서도아내와아이를위해만두공장에나서는그의머릿속에선애지중지했던포르쉐의가죽냄새대신,삶을전부내걸어서라도지키고싶은사랑스러운아이와아내의모습이유성처럼쏟아진다.
소설집을닫는「화분의시간」은여행이끝나고들어선집안의반갑고도낯선실감을느끼게한다.팬데믹시기의면회가제한된요양병원에있는엄마와,지근거리에서엄마에대한죄책감으로자신의삶을희생하는언니,그리고미국과한국을오갈때마다엄마와의거리감을실감하는화자.이세모녀는지난삶내내서로에대한“죄책감과두려움”그리고애증의역사로얽혀있다.마지막을예감하며엄마의아파트를정리하는시간은,삶이라는여행이닫힐때남겨진사람들을위한애도의송가가연주되는시간이기도하다.

각자가통과하고있는삶-여행도중에사람들은우연히마주치고같이잠시나마시간을보내고,때로서로의상실을알아보며함께나아갈힘을얻기도한다.이이방인들이각자의고독안에있으면서도그고독에갇히지않는건삶-여행이라는형식이이들에게예상할수없는우연한마주침을끊임없이발생시키기때문이다.
_김보경해설,「아름답고강한혼자들」에서

막막하게광대한미국서부의사막과도같은삶을여행하는이들에게『파트타임여행자』는트레일여행자를돕는‘트레일엔젤’처럼짐을줄이고속도를조절하는법,경계위에서자라나는불안을다루는법,돌아갈힘까지비축하는법을세심히알려준다.상실을통과하며살아내는법을체득할때,여행은더이상무언가를얻기위한여정이아니라삶그자체가되리라.그러므로『파트타임여행자』는돌아옴을예정한여행이아니라,내삶을찾기위해진정한여행을떠나고픈모든이들을위한안내서이다.길위의시간을먼저살아보는인물들의일곱가지다채로운기록을,다른삶을만나고상상하기위해책을펼치는독자들에게전한다.

집을떠나온후에야뒤늦게민은왜자신이그토록떠나고싶었는지에대해오래생각했다.현실을견디고싶어꾀를낸건가싶기도했지만뚜렷한답은얻어지지않았다.민은아름답고강한혼자가되고싶었다는걸기억했다.그에이르지못했다는것도알았다.늙는다는건두려운일이었고,죽는다는건알수없는일이었지만,산다는건애가타는일이었다.민은그길을살아남아여기에이르렀다.
_「파트타임여행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