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소설)

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소설)

$16.80
Description
“나는 김애란이 오랫동안 사회학자였고
이제야말로 유감없이 그렇다고 주장할 것이다.”
_신형철(문학평론가)

2022 오영수문학상 수상작 「좋은 이웃」,
2022 김승옥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홈 파티」 수록
소설가 김애란이 『바깥은 여름』(문학동네, 2017) 이후 팔 년 만에 새 소설집으로 돌아왔다. “사회적 공간 속을 떠다니는 감정의 입자를 포착하고 그것에 명료한 표현을 부여하는 특유의 능력을 예리하게 발휘한 소설”이라는 평과 함께 2022 김승옥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홈 파티」와 2022 오영수문학상 수상작인 「좋은 이웃」을 비롯해 총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된 『안녕이라 그랬어』는 강력한 정서적 호소력과 딜레마적 물음으로 한 세계를 중층적으로 쌓아올리는 특장이 여전히 발휘되는 가운데, 이전보다 조금은 서늘하고 비정해진 김애란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소설집의 주인공은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많은 희곡 속 사건은 ‘초대’와 ‘방문’, ‘침입’과 ‘도주’로 시작됐다”(「홈 파티」, 42쪽)라는 소설 속 표현처럼, 이번 책에서는 인물들이 누군가의 공간을 방문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곳은 집주인의 미감과 여유를 짐작하게 하는 우아하고 안정적인 공간이거나(「홈 파티」), 값싼 물가와 저렴한 체류 비용 덕분에 한 달 여행이라는 “생애 처음으로 누리는 사치”를 가능하게 하는 해외의 단독주택이다(「숲속 작은 집」). 또는 정성스레 가꾸고 사용해왔지만 이제는 새 집주인을 위해 이사 준비를 해야 하는 전셋집이거나(「좋은 이웃」), 회사를 관두고 그간 모은 돈을 전부 털어 문을 연 책방이기도 하다(「레몬케이크」). 『안녕이라 그랬어』에서 공간이 중요한 이유는 그곳이 단순히 이야기의 배경으로 기능하는 게 아니라 인물들의 삶 그 자체와 같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방 한 칸’이 가지는 의미를 남다른 통찰력으로 묘사해온 바 있는 김애란에게 어떤 공간은 누군가의 경제적, 사회적 지표를 가늠하게 하는 장소이자 한 사람의 내력이 고스란히 담긴 총체적이고 복합적인 장소이다. 때문에 이번 소설집에서 공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은 서로의 삶의 기준이 맞부딪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은, 달리 말하면 나로 살아온 삶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사건인 것이다.
김애란은 「홈 파티」에서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24쪽) 타인의 공간을 방문하는 일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확장의 길이 될까, 아니면 서로의 기준을 꺾어 누르는 침입의 길이 될까. 어느 때보다 ‘나’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우리’로 나아가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눈앞의 풍경과 나와 관계 맺는 사람이 돈으로 치환 가능한 숫자가 되어가는 현실 속에서 김애란의 질문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 질문은 이렇게 바꿔 물을 수 있다. 공통의 포기와 낙담을 경험하고 다시금 새로운 출발선이 펼쳐졌을 때, 과연 그전과 무엇이 달라졌고 무엇이 지켜졌느냐고. 또는 무엇이 달라지고 무엇이 지켜져야만 하느냐고. 그것은 바로 누군가에게 안녕과 평안을 묻는 일이 더없이 간절해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김애란식의 인사일 것이다.
저자

김애란

저자:김애란
한국예술종합학교연극원극작과를졸업했다.소설집『달려라,아비』『침이고인다』『비행운』『바깥은여름』,장편소설『두근두근내인생』『이중하나는거짓말』,산문집『잊기좋은이름』이있다.한국일보문학상,이효석문학상,오늘의젊은예술가상,신동엽창작상,김유정문학상,젊은작가상대상,한무숙문학상,이상문학상,동인문학상,오영수문학상,최인호청년문화상등을수상했고,『달려라,아비』프랑스어판이프랑스비평가와기자들이선정하는‘리나페르쉬상(Prixdel’inapercu)’을받았다.

목차


홈파티007
숲속작은집045
좋은이웃097
이물감143
레몬케이크189
안녕이라그랬어217
빗방울처럼257

해설|신형철(문학평론가)
네이웃을네돈과같이295

작가의말315

출판사 서평

저자의말

다섯번째소설집을냅니다.
그사이여러계절을나며사람과풍경이,시절과가치가변하는걸보았습니다.

그과정에서저는소설속인물처럼“이별이라고는전혀겪어본적없는사람”인양깜짝놀란표정을짓고,먼곳의수신인을향해그들이결코들을수없는사과를하기도했습니다.그동안나는상실이무언지모른채상실을쓰고부재가무언지모른채부재를써왔다고생각하면서요.

앞으로도저는여전히삶이무언지모른채삶을,죽음이무언지모른채죽음을그릴테지만,때로는그‘모름’의렌즈로봐야만비로소알게되는것들이있음을새로배워나가게될지도모르겠습니다.삶은언제나우리에게뒤늦은깨달음의형태로다가오니까요.

책속에서

이연은자신이대상을편견없이대하는태도에작은만족을느꼈다.타고난성정이라기보다수양의결과였다.‘어렸을땐정말타인을시시콜콜판정했는데……’지난세월,시간의물살에깎이고깨지며둥글어진마음이있었다.실제로이십여년간이연이여러인물에게자신의몸을빌려주며깨달은사실은단순했다.그건‘한사람이다른사람의자리에서보는건얼마나어려운일인가?’라는거였다.그리고그로부터오해와갈등이,드라마가생겼다.(「홈파티」,23~24쪽)

살면서어떤긴장은이겨내야만하고,어떤연기는꼭끝까지무사히마친뒤무대에서내려와야한다는걸,그건세상의인정이나사랑과상관없는,가식이나예의와도무관한,말그대로실존의영역임을알았다.(「홈파티」,39~40쪽)

어디얼마나머물든주변을잘정돈하는건내오랜습관이자자부였다.어릴땐안그랬는데독립후자취하며생긴버릇이었다.그리고그럴때나는좀더잘살고있단느낌을받았다.아직무언가완전히놓아버리지않았단실감이었다.(「숲속작은집」,57쪽)

아무리실용적인내용이라도편지에는얼마간시간과정성이들기마련이고그게발신인과수신인사이에늘실용이상의무언가를남겼다.(「숲속작은집」,72~73쪽)

실제론내게별관심없는이들에게내인생을매번설명하고싶지않았다.사람들에게는그저삶의활력소처럼가볍게비난하고싶은대상이필요한것뿐이라고,삶의권태를어느정도그렇게견디는것뿐이라고여기려애썼다.자기방의벽지를바꿀수없을땐남의집현관이더럽다고생각하면많은위안이되니까.그게남뒷얘기하는이들못지않게속물적인태도란걸알면서도그랬다.(「숲속작은집」,78쪽)

한두번겪은일도아닌데,나조차그런식으로누군가의공간을침범한적이있는데,그걸보자지난시간우리가겪은과정이,그모든노출과공개가부당하고지리멸렬하게느껴졌다.대여혹은매매의사만있으면누구든실거주자집에들어와모든걸살펴볼수있다는게.(「좋은이웃」,108쪽)

근일년간부동산기사에는집값이안정되길바라는무주택자를조롱하고무시하는댓글이난무했다.시기니질투니하는말도모욕적이었지만,무지니게으름이니하는말도부당하게다가왔다.하지만무엇보다우리를힘들게한건‘어쩌면잘못은정말우리에게있는게아닐까?’하는의심이었다.매일아침한강을건너출근하는남편은‘요즘은풍경이다돈으로보인다’며뉴스를보다말고헛웃음을지었다.(「좋은이웃」,120쪽)

젊은시절,나는‘사람’을지키고싶었는데요즘은자꾸‘재산’을지키고싶어집니다.그래야나도,내가족도지킬수있을것같은불안이들어서요.그런데얄궂게도남의욕망은탐욕같고내것만욕구처럼느껴집니다.(「좋은이웃」,141쪽)

두사람은꽃이흐드러지게핀벚나무아래서고전적으로입맞췄다.오랫동안유지해온‘적절함’의거리를둘이힘을합쳐구겨버렸다.스무살의다급함이나허둥거림없이,과도한기대나실망도없이서로의느낌에집중하면서.(「이물감」,152쪽)

물론나이들어좋은점도있었다.젊은시절여기저기빵가루처럼지저분하게흘리고다닌말과마음들,담백하지못한처신들,쉽게흥분하거나화를낸뒤엄습한부끄러움같은건이제많이줄었으니까.경험이많다는건‘경험을해석했던경험’이많다는뜻이기도하니까.그런데냄새는,헛구역질이나트림은‘해석’이나‘의지’로잘막아지지가않았다.문제는이제겨우시작이라는거였다.기태는자신이늙음에대해아는것이하나도없음을,안다믿었던것조차실은아는게아니었음을새삼실감했다.(「이물감」,175~176쪽)

고통이나를압도할때나는일부러집밖으로나가수백년된나무들사이를걷는다.갓걸음마를뗀아기가엄마아빠의가랑이사이를통과하듯키큰나무들이줄지어늘어선공원을지나간다.마치거길다통과하면내가더자라나기라도할것처럼.그런뒤집으로돌아와세상에고통을해결해주는자연따위는없음을깨닫는다.그러곤이미아는걸한번더깨달으려다음날다시같은장소로나간다.내고통에무심한자연앞에서이상하게안도한다.(「레몬케이크」,204쪽)

다들대체이숙제를어떻게풀어나가는지감도오지않았다.‘어쩌면다들날마다아무내색않고일터에나와있는걸까?’맨정신에,취기없이.(「레몬케이크」,214쪽)

‘삶은대체로진부하지만그진부함의어쩔수없음,그빤함,그통속,그속수무책까지부정하기는어려운것같다’고.‘인생의어두운시기에생각나는건결국그어떤세련도첨단도아닌그런말들인듯하다’고했다.‘쉽고오래된말,다안다여긴말,그래서자주무시하고싫증냈던말들이몸에붙는것같다’고.(「안녕이라그랬어」,249쪽)

그런일은‘그냥’일어난다.그리고이번에는그저내차례가된것뿐이었다.그런데도우리는왜그앞에서매번깜짝놀라는표정을지을까?마치살면서이별이라고는전혀겪어본적없는사람들처럼.(「안녕이라그랬어」,250쪽)

이제나는헌수도없고,엄마도없고,‘다음단계’를꿈꾸던젊은나도없는이방에서‘너한테배웠어,정말많이,정말많이배웠어’란가사의노래를듣는다.보다정확히는네가아니라너의부재로부터무언가배웠다고.(「안녕이라그랬어」,253쪽)

어느날직장동료가“그럼더상급지로간거야?”라물었을때쉽게대답못한건,요즘부동산채널에서유행하는상급지니하급지니하는말도그때처음들은데다순간자신이개천의물고기가된기분이들어서였다.거주지에따라‘급’이아니라‘종’자체가나뉘는.(「빗방울처럼」,260쪽)

둘은이상황을어떻게든돌파해보려애썼다.그과정에서두사람이가장많이한일은무언가를‘기다리는’거였다.더불어두사람은세상에서가장힘든일중하나가무언가를기약없이기다리는일임을알게되었다.(「빗방울처럼」,2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