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가정

어떤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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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우리는 계속 여기에 있었어”

애틋하고 선명하게 남아 있는 상처와 빛,
‘우리’가 될 수 있었던 혹은 우리가 도달할 수 있었던 가능성에 관하여
『달력 뒤에 쓴 유서』(민음사, 2023)에서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슬픔을 다시 풀어내며 ‘과거의 재해석을 위한 쓰기’를 보여준 민병훈이 문학동네에서 두번째 장편소설 『어떤 가정』을 펴낸다. 등단 이래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단편 작업을 이어오던 민병훈은 『달력 뒤에 쓴 유서』를 통해 그간 발표해온 작품과는 결이 다른, 내밀한 상처를 마주하는 자전적 고백을 선보이며 작품세계를 확장시키고 독자층을 넓혔다. 첫번째 장편으로 또다른 문학적 가능성을 선보이는 데 성공했다면, 두번째 장편소설은 한 걸음 더 깊어지고 진지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어떤 가정』에는 비극을 함께 겪은 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듣고 말할 수 있는지뿐만 아니라 가족의 의미,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한 소설쓰기가 갖는 의미 등이 생생히 녹아 있다. 특히 자전적인 소설임을 표방하는 만큼 작가 민병훈과 소설 속 ‘나’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그 궤를 나란히 한다.
『어떤 가정』은 소설가인 화자가 자전적 소설을 출간한 뒤 진행된 행사에서 “그런 소설은 왜 출간되어야 하나요?”라는 독자의 물음을 받으며 시작된다. 이 질문은 바꿔 말하면 우리가 (그런) 소설을 왜 읽어야 하느냐는 물음과도 같다. 『어떤 가정』은 원가족과 얽힌 익숙한 갈등을 펼쳐둔 채, 앞으로 자신이 새로운 가정을 이룰 수 있을지 회의하는 화자를 내세운다. 민병훈은 관계를 잇고, 끊고, 다시 결합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아픔 역시 선뜻 보여줌으로써 소설 앞에서 가장 솔직해지기를 택한다. 나아가 우리가 품은 상처, 그 보편적인 어려움 위에 자신의 상처를 덧대는 방식으로 당신 역시 기꺼이 당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놓아도 좋다는 용기를 건넨다. 이는 『어떤 가정』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방식이자, 우리가 ‘문학’에 기대하는 바에 관한 민병훈의 고유한 대답이라 할 수 있다.

누군가 손을 들고 이런 질문을 했다.
개인적인 경험을 소설로 쓴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터넷 서점에 달린 댓글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본 적이 있다. 작가의 아버지가 쓴 유서의 내용이 독자인 자신은 궁금하지 않다고. 사실 맞는 말이다. 어떤 소설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라는 건 없다. (…) 그는 대답을 듣곤 질문을 이어갔다.
그런 소설은 왜 출간되어야 하나요?
이 소설은 이러한 질문으로 말문이 막혔던 순간들을 경험한 뒤 마련한 일종의 대답이 될 것이다. _8쪽

여전히 쓰이고 있는 어느 시절에 관하여

테이블 끝에 앉은 아이는 누나가 가위로 잘라준 고기를 한 점씩 받아먹고 있었다. 투정을 하거나 보채지 않았다. 간혹 눈이 마주치면 나를 오래 바라봤다. 아이를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아직 판단이 서질 않았다. 피가 섞이진 않았지만, 우린 곧 가족이 된다. 그 사실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_56쪽

아버지가 스스로 세상을 떠난 뒤 ‘나’의 엄마와 누나는 서로를 탓하고 상처를 입히며 몇 년간 인연을 끊고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누나는 둘에게 갑작스레 연락해 초등학생 아이가 있는 남자와 결혼할 예정이며 임신까지 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누나가 자신의 방식으로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자신의 여자친구인 ‘준’과의 관계를 되짚기 시작한다. ‘준’과 함께 살며 그의 가족들을 만나고 결혼까지 생각하는 사이이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둘의 관계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음을 직감한다. 주어진 현실을 벗어나 변화를 꿈꾸는 ‘준’과 새로운 경험을 함께하고자 노력하며 그의 마음을 돌려보려 하지만, 엇나가기 시작한 마음은 좀처럼 돌이키기 어렵다. ‘나’는 원가족과 누나가 새로 꾸려나가고 있는 가족 그리고 자신이 꿈꾸는 가족의 형태를 곱씹으며 과연 스스로가 새로운 가족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내가 속한, 속하고 싶었던, 막 꾸려지고 있는, 꾸려나가고 싶은, 이 네 가지 형태의 가정은 ‘나’의 욕망과 뒤엉키며 ‘나’와 읽는 이 모두에게 가족이란 대체 무엇인지 자문하게 한다. 지금의 모습이 아닐 수도 있었을 여러 가능성을 가정하는 과정 속에서 가족을 꾸린다는 것과 누군가의 가족으로 있어준다는 것, 그 보편적인 어려움을 섬세하게 되짚는다.

“그 누구의 잘못도, 과오도 아닌 어떤 시절의 도착지.”

나는 그를 잊고 살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를 지우고 살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 일 이후로 나의 삶은 그를 어떻게 지울 수 있을지, 다시 말해 내 삶에서 어떻게 그 기억을 덜어낼 수 있을지 혼자 분투하던 시간이었다. 그를 떠올리는 것 자체가 내게는 발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공포스럽고 두려운 일이었다. _159쪽

소설은 ‘나’의 과거와 현재, 이 두 시절을 포개어놓으며 어긋나고 빗나가는 순간들을 들여다본다. 그 빗나가는 지점들에 이유를 묻고 때론 달라질 수도 있었을 모습을 가정하며 화자는 외로운 길을 향해 걸어간다. 이와 같은 이해의 여정은 과거를 되짚으며 현실을 받아들여보려는 ‘나’의 슬픈 노력이자, 민병훈이 소설쓰기로 보여주는 작가로서의 서사적·미학적 시도다. 그 모든 물음을 천천히 곱씹다 마침내 과거의 기억과 현재가 조우하는 순간, ‘나’는 이 모든 빗나감에는 이유를 따져 물을 필요가 없음을 깨닫는다. 민병훈이 그려내는 두 시절의 흐릿한 실루엣은 결말부로 향하며 느리게 그러나 확실히 각자의 형태를 갖게 된다. 이처럼 기억을 헤집어 이유와 방법을 고뇌하다 “여기에 있”기를 택하는 ‘나’의 태도는, 이 지난한 과정이 결국 “죽음과 이별을 통과하며 돌아보는 방식으로 삶과 사랑을 가꾸”(최진영)기 위함이었음을 아프게 보여주며 반짝이는 여운을 남긴다. 동시에 『어떤 가정』은 애틋하고 선명하게 남아 있던 어느 시절의 기억을 소설로써 묶어 떠나보내려는 강인한 노력의 산물이자, 읽는 이 역시 “문득 잊고 지낸 기억을 반갑게 떠올”(‘작가의 말’에서)리며 마침내 인사할 수 있기를 바라는 응원의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변화를 발견할 때마다 반가웠고 의지를 확인할 때마다 놀라웠다”는 박혜진 문학평론가의 말이 비단 민병훈의 소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독자 또한 소설을 통해 자신의 희망을 마주하고 스스로에게도 조심스레 건네볼 다정한 인사가 되기를 바란다.
저자

민병훈

저자:민병훈
1986년생.2015년『문예중앙』신인문학상에단편소설「버티고(vertigo)」가당선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장편소설『달력뒤에쓴유서』『어떤가정』,중편소설『금속성』,소설집『재구성』『겨울에대한감각』이있다.

목차

어떤가정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여전히쓰이고있는어느시절에관하여

테이블끝에앉은아이는누나가가위로잘라준고기를한점씩받아먹고있었다.투정을하거나보채지않았다.간혹눈이마주치면나를오래바라봤다.아이를어떻게대하면좋을지아직판단이서질않았다.피가섞이진않았지만,우린곧가족이된다.그사실만머릿속에맴돌았다._56쪽

아버지가스스로세상을떠난뒤‘나’의엄마와누나는서로를탓하고상처를입히며몇년간인연을끊고지낸다.그러던어느날누나는둘에게갑작스레연락해초등학생아이가있는남자와결혼할예정이며임신까지했다는소식을전한다.누나가자신의방식으로새로운가정을꾸리는모습을지켜보며‘나’는자신의여자친구인‘준’과의관계를되짚기시작한다.‘준’과함께살며그의가족들을만나고결혼까지생각하는사이이지만,‘나’는어느순간부터둘의관계가조금씩어긋나기시작했음을직감한다.주어진현실을벗어나변화를꿈꾸는‘준’과새로운경험을함께하고자노력하며그의마음을돌려보려하지만,엇나가기시작한마음은좀처럼돌이키기어렵다.‘나’는원가족과누나가새로꾸려나가고있는가족그리고자신이꿈꾸는가족의형태를곱씹으며과연스스로가새로운가족을만들수있는사람인지근본적인질문을던진다.내가속한,속하고싶었던,막꾸려지고있는,꾸려나가고싶은,이네가지형태의가정은‘나’의욕망과뒤엉키며‘나’와읽는이모두에게가족이란대체무엇인지자문하게한다.지금의모습이아닐수도있었을여러가능성을가정하는과정속에서가족을꾸린다는것과누군가의가족으로있어준다는것,그보편적인어려움을섬세하게되짚는다.

“그누구의잘못도,과오도아닌어떤시절의도착지.”

나는그를잊고살았다.아니,정확히말하면그를지우고살았다는표현이맞을것이다.그일이후로나의삶은그를어떻게지울수있을지,다시말해내삶에서어떻게그기억을덜어낼수있을지혼자분투하던시간이었다.그를떠올리는것자체가내게는발바닥에땀이날정도로공포스럽고두려운일이었다._159쪽

소설은‘나’의과거와현재,이두시절을포개어놓으며어긋나고빗나가는순간들을들여다본다.그빗나가는지점들에이유를묻고때론달라질수도있었을모습을가정하며화자는외로운길을향해걸어간다.이와같은이해의여정은과거를되짚으며현실을받아들여보려는‘나’의슬픈노력이자,민병훈이소설쓰기로보여주는작가로서의서사적·미학적시도다.그모든물음을천천히곱씹다마침내과거의기억과현재가조우하는순간,‘나’는이모든빗나감에는이유를따져물을필요가없음을깨닫는다.민병훈이그려내는두시절의흐릿한실루엣은결말부로향하며느리게그러나확실히각자의형태를갖게된다.이처럼기억을헤집어이유와방법을고뇌하다“여기에있”기를택하는‘나’의태도는,이지난한과정이결국“죽음과이별을통과하며돌아보는방식으로삶과사랑을가꾸”(최진영)기위함이었음을아프게보여주며반짝이는여운을남긴다.동시에『어떤가정』은애틋하고선명하게남아있던어느시절의기억을소설로써묶어떠나보내려는강인한노력의산물이자,읽는이역시“문득잊고지낸기억을반갑게떠올”(‘작가의말’에서)리며마침내인사할수있기를바라는응원의소설이라할수있다.“변화를발견할때마다반가웠고의지를확인할때마다놀라웠다”는박혜진문학평론가의말이비단민병훈의소설에만해당되는것이아니라,독자또한소설을통해자신의희망을마주하고스스로에게도조심스레건네볼다정한인사가되기를바란다.


추천사

사랑의발생이그렇듯이별에도이유는없다.이별을예감한다고막을도리는없다.예감한이별이라고예상치못한이별보다덜고통스럽다고말할수도없다.죽음과이별에대하여,민병훈은소설을쓰며여러가정을해본다.결말을바꾸기위해서가아니다.의미나이유를찾기위해서도아니다.현실을받아들이기위해서다.그래야만비로소미래를묻고답할수있기때문이다.『어떤가정』은죽음과이별을통과하며돌아보는방식으로삶과사랑을가꾸는소설이다.두팔벌려삶을껴안을때죽음은온전해진다.돌이킬수없는이별까지받아들일때사랑은완전해진다.그모든과정을담담하게수행한뒤다음을향해나아가는사람의진심어린이야기가여기있다.
-최진영(작가,소설가)

가족의자살로상징되는해독불가한고통의피해자는민병훈의문학적페르소나다.이가면을통해표현되는것은고통그자체가아니라고통앞에선자의결벽증적태도다.자신에게주어진불행의암호를풀지않고서는다가올어떤삶도믿지못하는이‘고통근본주의자’의병변은과거에시달리는현재의모습으로나타난다.그의과거에트라우마로서의가정이있다면그의현재엔기대와의심으로서의가정이있다.그사이에서겪는방황이가리키는바,작가민병훈의문학적주제는독립이다.시간으로부터,관계로부터.오래혼잣말하던민병훈이기나긴독백의터널을지나드디어세상으로나왔다.이소설은그가터널속에서쓴최후의소설이자세상속에서쓴최초의소설이다.정직한불안과적나라한불화의언어로쓴고백록이자소설을쓰듯인생을쓰고인생을살듯소설을사는독자적방법론으로완성한비망록이다.변화를발견할때마다반가웠고의지를확인할때마다놀라웠다.작가의변화를지켜보는일은작가와의첫만남보다더가슴뛰는사건이다.
-박혜진(문학평론가,편집자)